스님은 1871년 3월 7일 전북 태인읍 상일리에서 태어나 14세때인 1884년 12월 8일 천장암에서 경허스님과 법연을 맺고 삭발출가, 23세 되던해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라는 화두에 막혀 천장암을 떠났으며 두해 뒤 봉곡사에서 오도하였고, 31세에 통도사 백운암에서 재차 오도한 후 34세때 경허큰스님으로부터 전법계를 받았다. 덕숭산에 금선대, 전월사를 비롯 최초의 비구니 수도도량인 견성암을 세우는 등 중창불사에 남달리 애를 썼고,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스님만의 법력을 펼쳐 보였으며 걸출한 풍류인답게 문재에도 뛰어나 유명한 법문과 게송을 많이 남겼다. 항일불고운둉ㅇ; 각별한 힘을 쏟았던 스님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음력 시월 스무날 세수 76세, 법랍 62세로 정혜사에서 입적하였다.
다음은 만공스님의
-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갖지마라 -
부처님이 끝내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에 비해, 직접 비구니들의 수도도량을 지어 견성암이라 이름짓고 그 현판까지 써달아준 만공스님은, 남자와 여자를 굳이 가리지 않고 넓은 도량으로 제자 모두에게 깨달음을 준 자비로운 스승이었다.
견성암에서 수행을 했던 비구니 스님 중에 김일엽 스님은 출가 전 이화여전을 나와 동경유학까지 다녀온 신여성으로 잡지 편집일을 하는 등 여류 문인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다가 만공스님의 법문을 듣고 발심하여 출가하게 된 비구니 스님으로 훗날 '어느 수도인의 회상'등 문집을 펴내어 비교적 만공스님과의 일화가 많이 알려져 있다.
만공스님이 덕숭산 정혜사에 머물고 있던 1923년 가을의 일이었다.
한양에서 웬 젊은 여인이 스님을 뵙겠다고 찾아왔다.
시봉의 안내를 받아 만공스님께 인사를 올린 여인은 나이 삼십이 채 안되어 보였다.
"스님, 그동안 평안하셨사옵니까?"
"나야 늘 이렇게 여여하게 잘 지냈네마는 그대는 아직 병이 덜 나았구먼 그래?"
만공스님의 말씀에 여인은 깜짝 놀랐다.
"예에?, 아니 그러면 스님께서는 소녀를 기억하고 계시옵니까요?"
"기억하다마다, 우리는 한 번 만난 일이 있었지, 이름은 김원주라고 했던가? 이화학당을 다녔다고 했었지."
"원 세상에....그런걸 아직 다 기억하고 계십니까요, 스님"
"그럼, 난 자네를 전생부터 알고 있었네"
"예에? 하오면 제가 무슨 병에 걸려 있다고 그러셨습니까, 스님. 전 이렇게 아준 건강한데요"
김원주라는 그 여인은 자신의 두 손을 앞으로 내어밀어 스님께 보이며 말했다.
"자넨 아주 몹쓸 병에 걸려 있어."
"몹쓸 병이라니요, 스님?"
"자넨 지금 사람을 태워 죽이는 몹쓸 병에 걸려 있어. 사내들 사랑을 받지 못해 안달이 난 병 말이야, 애욕의 병!"
"예에? 사내들 ...애욕의 병이요?"
겨우 두번째 만나는 자신에게 서슴없이 애욕의 병에 걸려 있다고 큰소리로 힐책하시는 만공스님 앞에서 김원주는 그만 기가 질려버렸다.
"아, 아니옵니다, 스님. 소녀는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았사옵니다."
김원주는 손까지 내저으며 민망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자네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었어.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쓰여 있구먼 그래"
"아, 아니옵니다, 스님"
"애욕의 병에 걸리면 사내는 계집을 탐하고, 계집은 사내를 탐하고, 그 욕망이 충족되지 아니하면 훨훨 타는 애욕의 불길에 타죽는 법이야"
김원주는 서슴없이 말씀하시는 스님앞에 제대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스님, 소녀는 이제 그런 생각 모조리 다 버리고 왔사옵니다."
"그런 생각 모조리 다 버리고 왔다구?"
"예, 스님"
"자넨 아직두 멀었어"
"아니옵니다, 스님 이제는 이미 그런 생가 다 버렸으니 제발 무아무애의 불문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시오"
"무아무애의 걸림없는 세계로 이끌어달라?"
"예, 스님"
"미안하네만 나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네"
"하오나 스님, 무엇이든 스님의 분부대로 하겠사오니 제발 입산수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예, 스님?"
민공스님은 김원주가 애걸하다시피 청했지만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입산수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야, 유명해지려는 생각, 글을 쓰려는 생각, 명작을 만들겠다는 생각, 그런 욕심이 가득한 사람은 입산수도를 해봐야 말짱 헛일이야."
"아니옵니다, 스님. 소녀 이미 그런 욕심 다 버렸사옵니다."
"입산수도하려면 다 버려야 해. 글을 쓰려는 생각은 물론이고 책을 보는 버릇까지도 다 버려야 해"
"예,스님. 무엇이든 스님께서 분부하시는 대로 반드시 시행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허락하여 주십시오"
"여자가 입산수도를 하려면 남자보다도 배가 더 많은 엄한 계율을 지켜야 하는데 그걸 다 지킬 수 있을 것 같은가?"
"예, 지키겠습니다, 스님. 여승이 지켜야 할 계율이 삼백 가지 아니 오백가지, 천 가지라도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스님"
"그렇게 입산수도를 해서 대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예, 스님 나도 없고, 걸림도 없는 무아무애의 경지를 구하고자 합니다"
김원주는 간절하게 만공스님을 바라보았다.
"대체 어떻게 하면 무아무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옵니까, 스님"
"그렇게 조급하게 덤벼들지 말게, 차근차근 여유를 갖고 한 가지씩 제대로 따져보게. 나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육신은 무엇이고 정신은 대체 무엇인가"
김원주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스님, 대체 이 사람의 육신이란 것은 무엇이옵니까?"
"사람의 육신, 그것은 흙이고, 물이고, 불이고, 바람이야. 살과 뼈는 썩으면 흙이 도힐 것이요, 아홉구멍에서 흘러내리는 것은 물이 될 것이요, 더운 기운은 불이 될 것이요, 움직이는 기운은 바람이 되는게야"
"하오면 스님, 불가에서는 대체 사랑과 미움을 어찌 보십니까?"
"사랑과 미움?"
"예, 스님"
사실 이때의 김원주는 사랑과 미움의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 무엇보다도 이 문제에 대해 스님인ㅇ 속시원한 해답을 내려주시기를 바라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지.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미원하는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로우니라'하고 말이야"
"하오면, 스님...."
만공스님은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듯 김원주의 말을 막았다.
"오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거라, 한양으로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때가서 결심을 해도 늦지 않을게야..."
김원주는 할 수 없이 스님께 고개 숙여 절을 하고 물러나왔다.
이날 이렇게 만공스님으로부터 법문을 듣고 간 김원주가 다시 만공스님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928년 여름. 만공스님이 시봉을 데리고 금강산 표훈사 비구니 암자인 신림암에 잠시 머물고 있을 때였다.
기어이 삭발출가를 하겠다고 찾아온 김원주는 이날 금강산 표훈사 신림암에서 이성혜 비구니를 은사로 마침내 삭발출가하여 만공스님에게서 법명을 받으니 그 법명이 세간에 많이 알려진 일엽
[一葉]. 이때가 김일엽의 나이 서른 세살이었다.
김일엽은 만공스님이 금강산 마하연에 머무시다가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가시게 되자 스님을 따라 덕숭산 수덕사 견성암으로 거쳐를 옮겨 만공스님 가까이에서 수행을 계속하게 되었다.
일엽은 만공 스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흔히 생각해왔던 고승의 근엄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만공스님의 또 다른 일면인 천진난만한 모습을 많이 보기도 했는데 특히 만공스님이 '누룽쟁이 노래'를 부르면서 어린아이처럼 몸짓을 곁들일 때는 모두들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오랑께루 강께루
정지문뒤 성께루
누릉개를 중께루
머긍께루 종께루"
이 노래는 원래 스님이 아주 어렸을 때 배웠던 노래인 모양으로 고갯짓, 어깨춤을 추어가며 천진한 표정으로 벙싯벙싯 웃어가며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또 이상하게도 만공스님이 머무시는 곳마다 시주가 넘치도록 많이 생기곤 해서 하루는 일엽이 스님에게 여쭈었다.
"스님, 정말 이상한 일이 있사옵니다."
"이상한 일이라니 무ㅠ엇이 이상하단 말이냐?"
"금강산 마하연 말씀입니다, 스님"
"금강산 마하연?"
"예, 스님. 스님께서 마하연에 처음 가셨을 때에는 절이 어떻게나 가난했던지 스님들 양식조차 걱정할 지경이었습니다."
"그야 그랬었지"
"그런데 스님이 그 절에 머물러 계시면서부터 시줏돈이다, 공양미가 줄지어 들어와서 마하연이 부자절이 되지 않았습니까요?"
"출가 수행자가 사는 절간, 가난하면 어떻고 부자면 어디다 쓴단 말이냐?"
"그래두 이상하지 않습니까요, 스님?"
"뭐가 이상하다는게냐?"
"아, 스님이 오시기 전에는 이 덕숭산 수덕사도 양식 걱정을 했었다는데 스님이 오시자마자 시줏돈에 공양미가 줄지어 들어와서 양식 걱정을 벗어나게 되었으니, 대체 스님께서는 전생에 무슨 복을 그리도 많이 지으셨습니까요?"
일엽의 말에 만공스님은 장난스레 씩 한번 웃으셨다.
"많은 복을 짓기는 뭘, 내가 그저 전생에 고생을 해가면서 저축을 좀 해두었더니 그게 지금 돌아오는게야"
일엽이 스님의 전생 이야기가 궁금해서 얼른 여쭈었다.
"무슨 저축을 어떻게 하셨는데요?"
"전생에 나는 여자였느니라"
일엽은 스님의 말씀에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그러나 만공스님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천천히 말씀하셨다.
"그래 여자도 복도 지지리도 없는 여자였다. 부모복도 없고 형제간 복도 없는 박복한 여자였다"
"...원, 세상에...어떻게 사셨길래요?"
"전라도 전주땅에서 기생노룻을 했었지"
"예에? 기생을 하셨다구요?"
평소에도 남들이 들으면 민망할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거침없이 하시는 만공스님이셨지만 전생에 당신이 기생이었다고 하시니 일엽이 민망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니, 왜 그러느냐,...그때 내 이름은 향란이었지"
"원 세상에, 향란이라니...스님께서 설마하니..."
만공스님은 일엽의 이 말에 대뜸 꾸중을 내리셨다.
"믿지 않으려면 왜 물었느냐?"
"아, 아니옵니다, 스님, 그 그래서 어찌하셨습니까요, 스님?"
"뭘 어째... 그때 육보시를 좀 했지. 그리고 버는 돈이 있으면 굶는 사람들 양식을 사다주고 전주 봉서사에 계신 스님들 양식을 대드리고...그때의 그 양식들이 저축이 돼서 이제 조금씩 돌아오는게야."
일엽이 장난끼가 동해서 다시 슬쩍 여쭈었다.
"그럼 스님께서는 결혼도 하셨나요?"
"암, 해도 여러 번 했지"
"아이구머니나...원 참 스님두...스님, 그럼 그게 몇 생전이신데요?"
"내가 기생 노릇한 것 말이냐?"
"예, 스님"
"아마도 그게 삼생전일 게다. 그때 전주 봉서사에 진묵스님께서 계실 때였으니까 말이다"
"그럼 그 다음 생에서 무엇으로 사셨습니까?"
옆에서 스님의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제자가 스님께 여쭈었다.
"그 다음 생에는 장수였었다"
"그럼 요 전생에는요?"
"요 전생에는 소였었지"
일엽이 다시 여쭈었다.
"스님, 그럼 이생에는 왜 또 출가해서 스님이 되셨습니까요?"
"전생에 빚을 다 갚지 못해서 그 빚을 갚으려고 중이되었다.
또다른 제자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끼어들어 여쭈었다.
"소였다고 하셨는데 무슨 빚을 지셨습니까요, 스님?"
"이 녀석아! 소도 소 나름, 여물만 배 터지게 먹고, 일할 때 게으름 피우면 소 노릇 제대로 못한 것이니 빚이 남는 법! 너희들도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야! 옛스님들은 이렇게 경계하셨느니라, 출가승려라고 해서 신도들이 갖다주는 시주물을 받아먹고 중 노릇을 게을리해서 불도를 이루지 못하면 이는 신도들의 재물을 도적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마땅히 죽어서 소가 되어 그 빚을 갚아야 할것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느냐!"
"예, 명심하겠습니다. 스님"
만공스님은 항상 이러셨다. 스님이 해주시는 재미나는 이야기에 한참을 정신없이 듣다보면 어디서인지 모르게 그 이야기는 자연히 법문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그래서 스님의 이야기에 넋이 빠져 깔깔거리고 웃다가도 한 방 몽둥이로 내려치는 듯한 법문에 깨달음을 얻고는 숙연히 고개를 숙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