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부산시는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내년 4월 7일 실시 예정인 시장 보궐선거 법정 선거 비용의 분납을 요청했다. 오거돈 시장의 후임자를 뽑는 데 들어가는 총 219억원 가운데 절반 정도는 올해까지, 나머지는 내년도 예산이 시의회를 통과한 다음에 내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추가경정예산을 세 차례나 편성할 정도로 재정 상황이 나쁘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지자체 보궐선거의 경우 비용은 해당 지자체가 전액 부담한다.
법정 선거 비용의 분할 납부 신청은 역사상 처음인 듯한데 여태 아무 말이 없는 걸 보면 그래도 서울시는 형편이 나은 모양이다.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박원순 시장 자리를 이을 서울시장 보궐선거 비용으로 570억여원을 추산했다. 부산시장의 경우에는 267억원 정도였다. 이는 10% 이상 득표한 후보들이 환급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선거운동 보전 비용을 합친 액수다. 어쨌든 서울과 부산의 시장 보궐선거에는 총 838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당혹스러운 사실은 이 돈이 고스란히 국민 혈세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부산 오 시장의 사퇴나 서울 박 시장의 자살은 누가 뭐래도 본인의 선택이자 책임이다. 그들의 성 추문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저지른 범죄다. 그런데도 보궐선거 비용은 보통 시민과 일반 국민이 댄다고 한다. 도대체 유권자들이 무슨 죄를 짓고 납세자들이 어떤 잘못을 했기에 이처럼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것일까.
보궐선거를 유발한 당사자나 가족에게 구상권 청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애초에 원인 제공자를 공천한 정당에 책임을 묻는 방법이 논의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서울이나 부산에서 시장을 당선시킬 정도의 정당이라면 이미 선관위에서 정당 보조금을 많이 받고 있다. 따라서 해당 정당이 선거 비용의 전부 혹은 일부를 부담하게 하거나, 당해 정당 보조금을 일정 부분 삭감해도 크게 억울할 일은 아니다. 유사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보궐선거 비용 문제는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해 보인다.
보궐선거를 통해 취임할 서울과 부산의 차기 시장 임기가 전임자들의 퇴임 예정일인 2022년 6월 30일까지라는 사실도 꽤 허탈하다. 이들의 재직 기간은 15개월을 채우지 못하는 450일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하루 자리 값만 각각 1억2700만원과 6000만원 정도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비싼 밥 먹는 후임자들이 겨우 1년 남짓 재임 기간에 얼마나 대단한 시정(市政)을 펼치겠는가. 이들이 실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이보다 더 짧을 수도 있다. 업무 파악이 끝날 때쯤이면 곧바로 대선 정국이기 때문이다. 실속을 따진다면 지금의 권한대행 체제가 나을지도 모른다. 800억원대 보궐선거치고 가성비는 아무래도 너무나 낮다.
물론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어진 법과 절차에 따라 선거 ‘관리’만 하는 듯한 모습은 적잖이 유감이다. 비합리적·비효율적 요소가 많은 현행 보궐선거 방식에 대해 무언가 의견 표명이라도 하는 것이 헌법기관으로서의 존재 이유 아닐까. 아쉬움은 이것만이 아니다. 최근 국회에 출석한 선관위 사무총장은 코로나 관련 긴급 재난지원금이 지난 4·15 총선에 “당연히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면서도 “선거법 위반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정치 평론가가 아닌 고위 공직자가 이렇게 넘어갈 순 없다. 현금 살포 복지에 관련하여 차제에 선거법상 일정한 원칙과 기준을 정하자고 고언(苦言)하는 게 직무상 도리다.
내일 임기가 만료되는 권순일 선관위원장 역시 퇴진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잡음이 많았다. 대법관 임기 종료와 더불어 선관위원장 직책도 끝내는 오랜 전통에 역행하려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물러나면서까지 내부 인사를 열심히 챙기려 했다는 것이 언론 보도다. 현재 선관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4⋅15 총선 관련 소송이 무려 140여건으로 폭증했지만 아직 재판은 한 건도 열리지 않았고 선관위는 아무런 말이 없다. 선거가 끝난 지 반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부정선거 논란 또한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교과서에 의하면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 정치에서는 선거가 ‘민주주의의 독’이 되어간다. 선관위의 향후 처신과 행보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이미 충분히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