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 主が望まれる人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는 네 번째 시간으로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義に飢え渇く者)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보에는 한자 한 글자. ‘갈(渴)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요한복음 18장 37절~38절에서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께 질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8장 37절~38절
“37.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そこで、ピラトはイエスに言った。「それでは、あなたは王なのか。」イエスは答えられた。「わたしが王であることは、あなたの言うとおりです。わたしは、真理について証しするために生まれ、そのために世に
来ました。真理に属する者はみな、わたしの声に聞き従います。」
ピラトはイエスに言った。「真理とは何なのか。」こう言ってから、再びユダヤ人たちのところに出て行って、彼らに言った。「私はあの人に何の罪も認めな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진정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모른 채 헤매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믿음이 있다 또는 믿음이 없다,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모든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믿음의 대상이 어떤 신인 경우도 있고, 또는 학문이나 재물이나 경험인 경우도 있겠지요. 설령 본인 스스로도 나는 믿음이
없다,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계시지만, 결국 그 사람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의 생각을 굳게 믿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부터 일본은 수많은 신들이 일본을 지켜주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신들인가 하면 야오요로즈라고 해서 한자는 800만이라고
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나, 둘, 세어서 정확하게 800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불교에서 나온 사상인데, 말하자면
대단히 많은 숫자라는 뜻이지요. 일본에 보면 도시나 지방을 막론하고 크고 작은 절이나 신사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이는 일본만이 그런 것은 아니죠. 한국도 마찬가지지요. 시골에 가면 절도 많고 성황당 같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동양만 그런가 하면 서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그리스로 전도를 간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스라고 하면 신화가 얼마나 많습니까. 거기에 보면 남녀의 수많은 신들이 등장하지요. 그리고 그 신들을 믿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모든 것은 우상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복음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본 바울은 말합니다.
사도행전 17장 22절~23절
“22.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パウロは、アレオパゴスの中央に立って言った。「アテネの人たち。あなたがたは、あらゆる点で宗教心にあつい方々だと、私は見ております。
道を通りながら、あなたがたの拝むものをよく見ているうちに、『知られていない神に』と刻まれた祭壇があるのを見つけたからです。そこで、あなたがたが知らずに拝んでいるもの、それを教えましょう。
여기서 아레오바고라고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연설을 할 수 있는 언덕을 말하고, <아덴>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를
가리킵니다. 그렇게 학문이 발달할 만큼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 그리스였으며, 그 수도에서 당당하게 바울은 예수님을
전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기를, 그리스 아테네에 와서 보니까 우상들도 많고, 하물며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친다는 제단도 많이 봤는데,
당신들이 모르는 신, 바로 그 신에 대해서 알려주겠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에 의하면 여기서 바울이 말하기를 <종교심이 많다>라고 한 것은 너무나도 많은 신들을 미신적으로 믿는다는 뜻이라고 해석하면서,
이는 칭찬이 아니라 비판하는 의미로 한 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어떤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집에 가봤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집은 경제적으로 좀 상당히 넉넉한 편이었습니다. 부모님은
그 학생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이 원하는 책은 다 사줬어요.
그런데 그 집에 딱 가서 그 학생이 쓰는 책장을 봤더니, 와, 이건 국어, 영어, 수학 뿐만이 아니라 물리, 화학, 생물을 비롯해서,
지리, 역사, 도덕, 음악, 미술 등 전과목 참고서 문제집이 다 있어요. 그리고 대학별 문제집도 수십 종류가 책장에 꽂혀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런 광경을 보셨다면, 여러분께서는 그 학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쉽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 학생, 공부를 하는데 문제가 없는 학생일까요? 아니면 있는 학생일까요?
저도 아이들을 몇 년 가르쳐봐서 압니다만,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우선 이 학생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결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문과로 가야 할지 이과로 가야 할지, 그리고 어느 대학에 가야 할지도 모르고 있어요.
시중에 그렇게 책이 많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에는 대학도 많고 전공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맞는 공부법이 있습니다. 공부면
그냥 다 좋다고 해서 정말로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한다면, 자신의 진로선택에도 실패하고, 그리고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살아간다고 하면 결국 자신의 인생도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그런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공평하게 남자와 여자, 한 사람씩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여자분입니다. 마가복음 5장 25절~29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5장 25절~29절
“25.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そこに、十二年の間、長血(ながち)をわずらっている女の人がいた。
彼女は多くの医者からひどい目にあわされて、持っている物をすべて使い果たしたが、何のかいもなく、むしろもっと悪くなっていた。
彼女はイエスのことを聞き、群衆とともにやって来て、うしろからイエスの衣に触れた。
「あの方の衣にでも触れれば、私は救われる」と思っていたからである。
すると、すぐに血の源が乾いて、病気が癒やされたことをからだに感じた。
이 여자는 12년 동안 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많은 병원에 다녀봤겠지요. 그 때는 무슨 지금 같은 의료보험이 있나요.
그러니까 돈은 돈대로 깨지고, 이 병원 저 병원 다 다녀봤으니,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가는 병원마다 무슨 검사나 무슨 치료다 하면서
괴로웠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녀에게 남편이 있었는지, 자녀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쩌면 모두가 다 떠나가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5장 28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あの方の衣にでも触れれば、私は救われる」と思っていたからである。
그녀는 그토록 오랫동안 고통을 겪으면서 한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가 믿을 것, 내가 의지해야 할 것은 돈도 아니요, 의사도
아니요 오직 예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손을 내밀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다고요? 예수님께 그 손이 닿자 마자
그 여인의 질병이 모두 다 나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더 딱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5장 2절~9절 중반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5장 2절~9절 중반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エルサレムには、羊の門の近くに、ヘブル語でベテスダと呼ばれる池があり、五つの回廊がついていた。
その中には、病人、目の見えない人、足の不自由な人、からだに麻痺のある人たちが大勢、横になっていた。
(なし)한글판에는있음
そこに、三十八年も病気にかかっている人がいた。
イエスは彼が横になっているのを見て、すでに長い間そうしていることを知ると、彼に言われた。「良くなりたいか。」
病人は答えた。「主よ。水がかき回されたとき、池の中に入れてくれる人がいません。行きかけると、ほかの人が先に下りて行きます。」
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起きて床を取り上げ、歩きなさい。」
すると、すぐにその人は治って、床を取り上げて歩き出した。……
예루살렘에 있는 베데스다라고 하는 연못에 어떤 한 사람이 누워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나이가 몇 살인지, 그 사람이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질병을 앓은 지가 38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38년이라고 하면 올해가 2020년이니까
1982년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로 언제부터인지 그 연못 옆에 누워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이 믿는 것이라고는
무엇입니까. 거기에 가끔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바로 그 움직이게 했을 때 제일 먼저 물속에 들어가면 병이 낫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는 다리가 불편하니까 제일 먼저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말씀을 하셨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곧 나아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목이 마를 때에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그렇습니다. 물이 필요합니다. 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런데 목이 마를 때 군고구마를
먹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팝콘을 먹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소금물 마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일납니다. 갈증은 해소되지 않고 갈증만 더욱 심해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좋은 의사를 만나면 병이 나을 줄 알았습니다. 돈을 많이 들이면 나을 줄 알았습니다. 좋은 약을 먹으면 나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의사를 찾아가도, 아무리 돈을 많이 써도, 아무리 좋은 약을 먹어봐도 몸과 마음은 괴로워져 갔습니다.
38년 동안 걷지 못하는 질병에 시달렸던 그 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병이 낫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소문처럼 물이 흔들릴 때 내가
먼저 들어가지 못해서다. 물이 흔들릴 때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어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불편한 자기 다리 탓을 했을 것입니다.
도움을 주지 않는 매정한 세상 탓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탓, 남의 탓만 하면 병이 낫나요? 아니요. 낫기는커녕 몸과 마음은
점점 더 우울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사라는 말이 나오면 다 성경적인 것인가요? 아닙니다. 뭐 요즘만이 아니라 옛날부터 여러 가지 신흥종교집단들이 많이
있었습니다만, 거기에 보면 꼭 나오는 것이 천사입니다. 천사가 나타나서 이런저런 계시를 주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받아 적은
것이 이 책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과감합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서 말씀을 하셨다는 거예요. 아니면 예수님이 이런저런 환상을 보여줘서 그것을 적으라고
했는데, 그게 바로 자기가 쓴 책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성경에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1장 7절~8절
“7.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ほかの福音といっても、もう一つ別に福音があ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あなたがたを動揺させて、キリストの福音を変えてしまおうとする者たちがいるだけです。
しかし、私たちであれ天の御使いであれ、もし私たちがあなたがたに宣べ伝えた福音に反することを、福音として宣べ伝えるなら、そのような者はのろわれるべきです。
요한계시록 22장 18절~19절
“18.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私は、この書の預言のことばを聞くすべての者に証しする。もし、だれかがこれにつけ加えるなら、神がその者に、この書に書かれている災害を加えられる。
また、もし、だれかがこの預言の書のことばから何かを取り除くなら、神は、この書に書かれているいのちの木と聖なる都から、その者の受ける分を取り除かれる。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기독교 서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책들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좋은 책들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난 다른 내용이 적혀
있다면, 이는 복음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약이 아니라 독입니다. 생명이 아니라 사망에 이르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갈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しかし、わたしが与える水を飲む人は、いつまでも決して渇くことがありません。わたしが与える水は、その人の内で泉となり、永遠のいのちへの水が湧き出ます。」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채워주시는 물이 진정한 물입니다.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해주시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생명의 물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信仰の創始者であり完成者であるイエスから、目を離さないでいなさい。この方は、ご自分の前に置かれた喜びのために、辱めをものともせずに十字架を忍び、神の
御座の右に着座されたのです。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움 가운데에 있더라도 주님을 의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자면 또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あなたはわたしを見たから信じたのですか。見ないで信じる人たちは幸いです。」
이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아이구, 그 너무 무슨 하나님의 능력이다 기도 응답이다 하면서 보여달라고 하면 안돼. 그냥 안 보고 믿는
믿음이 더 크다고 하시잖아.
이게 맞는 말씀인가요? 여러분, 만약에 제가 하나님의 능력도 체험해 본적이 없고, 기도 응답도 받아본 적이 없다면, 제가 여러분께
뭐라고 말씀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능력이 있습니다……라고 합디다”
“여러분! 기도를 하면 응답을 해주십니다……라고 합디다”
이렇게 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이 크다는 것은, 2천년 전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지 않고 믿는다 하더라도, 축복이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나중에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제자들 사이에서도, 아, 나는 예수님을 직접 만났다.
너는 만나지 못하지 않았느냐 뭐 그러면서 서로 싸우는 일어나지 않도록, 예수님과 직접 동행했던 사도들에게 겸손함을 가르치려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표적인 사도 중 한 사람인 바울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도 훨씬 큰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4장 18절~21절을 봅니다.
사도행전 4장 18절~21절
“18.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21.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そこで、彼らは二人を呼んで、イエスの名によって語ることも教えることも、いっさいしてはならないと命じた。
しかし、ペテロとヨハネは彼らに答えた。「神に聞き従うよりも、あなたがたに聞き従うほうが、神の御前に正しいかどうか、判断してください。
私たちは、自分たちが見たことや聞いたことを話さないわけにはいきません。」
そこで彼らは、二人をさらに脅したうえで釈放した。それは、皆の者がこの出来事
のゆえに神をあがめていたので、人々の手前、二人を罰する術がなかったからである。
자신들을 핍박하는 자들에게 베드로와 요한은 말합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私たちは、自分たちが見たことや聞いたことを話さないわけにはいきません。」
그렇습니다. 우리는 보고 믿고, 듣고 믿고, 그리고 이를 우리 이웃들에게 전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0장 27절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それから、トマスに言われた。「あなたの指をここに当てて、わたしの手を見なさい。手を伸ばして、わたしの脇腹
に入れなさい。信じない者ではなく、信じる者になりなさい。」
도마는 자신이 직접 보기까지는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안 믿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보는 것만이 아니라, 이 십자가에 못 박힌 손과 옆구리를 만져봐라. 그렇게 해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성경에 적혀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20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ですから、あなたがたは行って、あらゆる国の人々を弟子としなさい。父、子、聖霊の名において彼らにバプテスマを授け、
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命じておいた、すべてのことを守るように教えなさい。見よ。わたしは世の終わりまで、いつもあなたがたとともにいます。」
우리는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정답입니다. 우리 마음의 갈증을 채워주실 분은 예수님 뿐입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このように、あなたがたは悪い者であっても、自分の子どもたちには良いものを与えることを知っているのです。それならなおのこと、天におられるあなたがたの父は、ご自分に求める者たちに、良いものを与えてくださらないことがあるでしょうか。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도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義に飢え渇く者は幸いです。その人たちは満ち足りるからです。
우리 모두, 세상에서 축복의 목마름, 은혜의 목마름, 믿음의 목마름에 시달릴 때, 좋은 것으로 배 부르게 채워주시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말씀이신 성경을 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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