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장을 소멸한다? 업장을 소멸하려면 업, 카르마라는 것이 뭔지 우선 알아야 하잖습니까? 이 말을 하기 전에 위 영상에서 예수를 이야기하면서 인도의 "간디'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러나 최준식 이 분은 간디의 실체에 대해서 아직은.. 전혀 몰라서 간디를 성인의 반열에 세우는 것으로 보이는데 간디는 그냥 초국적 자본(특히 로스차일드)의 앞잡이요 협잡꾼에 불과했습니다. 인도인들도 이제는 이 사실을 알기에 간디를 추종하지 않습니다.
다시 하려던 이야기를 해 보자면 업이란 생각입니다. 업이란 쉽게 말하면 자기가 행한 일의 과보를 말하는 것인데 우리가 농사를 지을 때 콩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납니다. 그러나 업이란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신체 불구자를 흉 보았다고 해서 나중에 내가 반드시 신체 불구자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중간에 변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발생하는 수 많은 변수에 자기의 타고난 성향 그리고 부모에게서 물려 받은 성향 그리고 사회에서 교육받은 결과물들이 어우러지면서 자기에게 다가오는 일들을 대하기에 이 모든 것들이 합해져서 하나의 결과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일러서 업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행동은 행동하기 직전 이 모든 것들의 최종 결과물로써 생각이 작동하고 이 생각이 표현되는 것이 행동이고 말입니다. 말하자면 업장의 최종적인 결과물은 생각이라는 말입니다. 생각은 행동을 불러오고, 행동은 다시 다음의 업의 원인을 심고, 업의 원인은 지금 나의 환경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이 환경은 다시 나의 생각을 만듭니다. 이것은 바로 윤회의 간략한 축소판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살면서 고난이 닥치면 "내가 전생에 뭔 죄를 지었길레.." 혹은 "내가 전생에 뭔 업보를 지었길레.."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고난이 반드시 나쁜 업장을 지어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선한 행동은 반드시 선한 과보를 받게 되어 있고 악한 행동은 반드시 악한 과보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자신에게 닥친 고난이 악한 업보의 영향인지 아니면 선한 업보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반대로 지금 풍족하고 편하게 살고 있는 것이 과거 행했던 악한 행동의 결과물인지 아니면 과거에 행했던 선한 행동의 결과물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100년 남짓한 한시적인 삶 속에서 물질의 풍요를 선한 업의 결과물로 그리고 신체의 불구나 가난을 악한 업의 결과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수백생을 윤회하고, 윤회의 종말이 곧 깨달음이며, 그 과정이 영혼이 진화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관점이 좀 달라질 수 있을겁니다.
좀 오래 전.. 어려서 여자친구를 따라서 여자친구 언니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니에게는 딸이 둘 있었습니다. 작은 딸은 초등학생이었는데 똘망똘망했고 큰 딸은 당시 15~17세 정도로 보였는데 지체장애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그렇게 태어나게 된 이유는 언니가 아이를 임신했을 때 감기에 걸린 적이 있는데 당시 감기약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큰 아이만 보면 한숨이 나오고 걱정이 되면서 죄책감이 든다고 했습니다. 당시 친구 언니에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너무 죄책감을 갖지 마세요. 지금 저 아이는 먹을 것만 있다면 행복한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살펴 줄 부모도 있고요. 저 아이가 저렇게 태어난 이유를 그 누구라서 알 수 있겠습니까? 혹시 알아요? 전생에 너무나 치열하게 수행을 했기에 이 생에서는 좀 쉬기 위해서 저런 모습으로 태어난 것인지..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저 아이가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도 없어 보입니다. 다만 언니의 걱정은 진실을 모르는 자의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것일 뿐인 겁니다. 그러니 모든 근심걱정을 버려 버리세요."
사실 저는 "영혼의 진화" 라는 말을 위에서 사용했지만 이런 말 아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본질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적에 영혼의 진화 이런 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최고의 영혼의 상태에 있습니다. 다만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혹은 정신적인 게으름으로 인하여.. 혹은 깊은 업장으로 인하여 생각에 사로잡혀 살면서.. 오해가 깊어서 자신의 "본래면목"을 모르면서 살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삶이 어느 날 갑자기 바람처럼 흩어질 것을 안다면 그리고 삶이 마감되었을 때, 그가 삶에서 무엇을 이루었든 혹은 이루지 못했든 삶의 대차대조표는 정확하게 영(제로)으로 회귀한다는 것을 실감한다면 누군들 물질에 집착하겠습니까? 그러나 왜인지 물질에 집착하고 또 이유가 뭔지 모르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지나가 버린 과거에 집착하면서 삽니다. 또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자기-에고"에게 집착하면서 삽니다.
다시 시작하는 명상과 수행에 대한 이야기 10...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당신은 누구인가?
이 모두가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 오해를 벗겨내는 작업이 바로 수행인 것입니다. 그리고 수행을 해서 오해가 한꺼풀씩 벗겨 내어지다보면 생각에 의한 행동이 아니라 이치에 입각한 행동을 하게 될 날이 올 것이고 어떤 생각이 떠 오르든 그 생각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그런 날이 올 겁니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오면 당신은 자신의 모든 업이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