羊 이란 글자에는 '권력'이란 의미가 있다.
애니어그램의 지혜, 돈 리처드 리소 : 인간의 성격에 관한 연구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 독일인 : 현대사회의 모순이나 위선을 꼬집는 데 탁월해 세계 곳곳의 독잘들로 부터 많은 사랑
10회. 방황과 독서 편력
중편 세 편으로 구성된 1981년 장편소설 『젊은날의 초상』을 나는 ‘자연산’이라고 부른다. 절반을 넘지는 않겠지만, 내 직접 체험이 가장 많이 녹아 있는 작품 중 하나여서다.
이 소설의 3부 ‘그해 겨울’에서 작중 화자는 10년 전 경상북도 어느 산촌의 술집에 ‘방우’로 있던 시절을 회상한다. 방우는 당시 불목하니, 즉 땔나무를 베고 물을 긷는 허드레 일꾼을 뜻하는 보통명사였다.
소설가 이문열씨의 밀양국민학교 6학년 시절. 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작가다. 사진 왼쪽 윗편에 '희망이 크다 우리는'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사진 이재유
나는 실제로 방우 노릇을 한 적이 있다. 시기나 처한 상황도 소설과 비슷했다. 소설의 ‘나’는 도시와 학교를 떠나 강원도로 향한다. 광부가 될 작정이었다. 하지만 개인 탄광의 갱에 들어간 첫날 막장이 내려앉아 두 사람이 묻히는 장면을 목격하고 광부 노릇을 단념한다. 그다음 찾아간 동해안의 작은 어촌에서 고기잡이배를 타려 하지만 해적 같은 외모의 선주가 화자의 흰 얼굴과 매끈한 손을 살피더니 귀한 집 도련님은 돌아가 책이나 보라며 박대한다. 그래서 이르게 된 곳이 산촌, 그곳에서 방우로 일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색시 나오는 술집에서 ‘방우’ 노릇
실제의 나는 방우 노릇을 산촌이 아니라 고향 석보(경북 영양군 석보면)의 장터에서 했다. 당시 큰 형님이 여인숙 겸 술집을 차렸다. 소설에서처럼 색시가 있었다. 나는 술병 하나, 석유병 하나씩 꿰차고 아홉 개 방을 돌며 군불을 때곤 했다. 86년 교통사고로 숨진 큰 형님은 수완가였다. 실전에서 태권도보다 세다는 당수(唐手) 2단이었고, 깡패들과 어울렸다. 게다가 여론조사소 조사원증까지 갖고 있었다. 당시 여론조사소들은 업체들로부터 돈을 뜯거나 조사원증을 팔다 적발돼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곤 했다. 사이비 사회단체로 지목돼 지탄받으며 70년대 초반까지 극성을 부렸을 것이다. 깡패 기질에 여론조사원증까지 갖췄으니 형님이 뜨면 시골 경찰서 지서 정도는 벌벌 떨었다. 경찰서 지서에 들어서면 순경이 일어나 경례를 올려붙였다.
탄광 이야기 역시 있었던 일이다. 영화에서처럼 다이너마이트에 불붙이고 급하게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폭파하는 일을 하면 신뻬이(초짜)에게도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친척이 있는 강원도의 탄광을 찾아갔는데 이미 전기를 이용한 뇌관 기폭으로 바뀐 지 오래라고 했다. 공교롭게 내가 찾아간 날 막장이 무너져 매몰된 광부의 아내가 우는 장면은 목격했지만 다행히도 그 광부가 죽지는 않았다. 나는 고기잡이배 일자리도 알아봤다. 뱃멀미 안 하느냐고 묻길래 심하다고 했더니 “치아라~” 해서 돌아왔다.
[강경희 칼럼] '세 김 여사'와 그의 '婦唱夫隨' 남편들
선출직 남편 지위에 얹혀
前근대적 '황후 놀음'
과거 '3김의 여사'들과는
천양지판 품격의 김 여사
3인 각자의 김 여사 방어하면서
한국 정치 퇴행시키는
尹·文·李의 적대적 공생
강경희 기자
입력 2024.06.03. 00:15업데이트 2024.06.03.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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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12월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 입장문 발표하는 김건희(왼쪽) 여사. 지난 2020년 7월 곶감을 만들기 위해 손질하고 있는 김정숙(가운데) 여사. 지난 2022년 2월 과잉 의전 논란 관련 사과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혜경 여사. /고운호 기자·청와대 페이스북·이덕훈 기자
과거의 ‘3김’은 정치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작금의 ‘3김 여사’는 깊은 오점으로 남을 듯하다. 현직 대통령, 전직 대통령, 차기 대선 주자인 거대 야당 대표, 이 세 권력자의 배우자가 동시에 눈살 찌푸리게 하는 논란을 야기한 건 전무후무하다.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법’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집요하게 공격하자 여당 비례 초선의원이 ‘김건희·김정숙·김혜경 3김 여사 특검’을 주장했다. 정치판의 말싸움 맞불이었는데 때마침 문재인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을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라고 두둔하다 되레 불씨를 키웠다.
<김 여사1>은 선거 두 달 반 전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학위 논문 표절 등 문제투성이였고, 듣도 보도 못한 매체와 미주알고주알 나눈 7시간 대화 녹취록이 공개됐다. “두렵고 송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그러고 몇 달 지나지도 않아 전력도 의심스러운 목사를 만나 명품백을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영상으로 폭로됐다. 윤 대통령이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결국 사과했는데 ‘현명하지 못함’은 선물 수수만이 아니다. 김 여사는 미술을 전공하고 몇 건 전시회를 성공시켜 경력을 쌓은 정도였지, 외교안보나 대북 문제를 전공했거나 그 분야에서 활동한 적도 없다. 남편이 대통령에 취임하니 일면식도 없던 종북 목사를 만나 “남북 문제에 제가 좀 나설 생각이에요. 남북통일을 해야 되고 목사님도 한번 크게 저랑 같이 할 일 하시고”라고 ‘오버’했다. 실행에 옮긴 건 없지만 7시간 녹취록, 몰카 영상에서 드러났듯 대인 관계에서 안목도 미흡하고 태도와 말투에서 교양과 겸양이 결여돼 논란을 자초했다. 대통령이 부인의 ‘현명하지 못함’을 사과한 바로 전날도 김 여사가 역대 대통령 부인을 만나서 받았던 책 등을 서명 속지도 제거하지 않은 채 내다버린 ‘현명하지 못함’이 보도됐다. 대통령의 등잔 밑이 얼마나 깜깜한지 또 드러났다.
<김 여사2>는 청와대 관저에서 감 깎아 말리고 주렁주렁 매단 감 밑에서 사진을 찍어 홍보했다. 직접 만든 곶감을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선물했다. ‘프로’ 전업 주부가 이미지 메이킹의 포인트였다. 청와대에서 대통령 부부는 치약 칫솔 같은 건 사비로 사서 쓴다고 공사 구분 반듯한 이미지를 앞세웠다. 하지만 공작새처럼 나날이 옷차림이 화려해지면서 급기야 어마어마한 옷잔치 편집 사진이 시중에 나돌았다. 청와대는 옷값 공개를 거부했다. 그 많은 옷은 청와대에 남아있질 않고 청와대 소유의 집기까지 사라졌다고 한다. 대통령 해외 순방 때마다 유명 관광지를 들르는 관광 외유가 잦다고 언론이 지적하니 자제하기는커녕 청와대가 그 칼럼 쓴 기자에게 소송을 걸었다. 대통령 없이 전용기로 인도 타지마할까지 다녀온 것을 문 전 대통령이 “나 대신 참석했다”며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로 미화했는데 망신만 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초청받아 정부 대표단장이었고, 김 여사는 장관의 ‘특별 수행원’이었다. 이 ‘특별 수행원’ 모셔 가느라 장관 출장의 몇 곱절 예산이 들었다.
<김 여사3>은 남편의 경기도지사 재직 시절 ‘소황후 놀음’이 드러나 재판받고 있다. 요리책까지 내고 대선 캠페인 때도 요리하는 모습을 어필했는데 실제로는 세금 법카로 소고기, 초밥 10인분, 닭백숙, 민어탕, 월남쌀국수 등을 골고루 배달시켜 생활한 것이 7급 공무원의 폭로로 드러났다. 어엿한 경기도청 소속 공무원인데 하루 일과 90% 이상을 도지사 부부를 수발 들고 깐 밤, 북어포, 대추 같은 제사 음식까지 챙겨야 하는 ‘공노비’ 신세가 부끄러워 가족에게 업무 내용도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공익 제보자 조명현씨는 “행정안전부는 지자체장의 배우자를 공무원이 수행하게 하거나 의전 지원하는 것을 금한다. 무슨 왕실도 아니고 고위 공무원 가족이 잔심부름시키고 부려 먹을 ‘몸종’을 고용해 세금으로 월급을 줄 이유가 없다”면서 용기 내 폭로했다. 7급 공무원의 공적 마인드가 ‘여의도 대통령’으로까지 불리게 된 이재명 민주당 대표 부부보다 훨씬 선진적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선거를 통해 선택된 선출직에게 ‘일정 기간’ ‘위임’될 뿐이다. 그런데 세 김 여사는 더하고 덜하고를 떠나 선출직 남편 옆에서 공사 구분 못하고 권력 ‘콩고물’을 향유하는 후진적 행태를 보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수십 년 전 ‘3김의 여사들’은 달랐다. 드러내지 않고 과시하지 않아도 ‘3김 정치인’ 남편의 든든한 동지요, 대등한 동반자였다. 그 때보다 나라는 선진화됐고 각계각층에서 여성들 활약도 늘었는데 ‘3김 여사’는 딱할 정도로 의식이 뒤떨어져 있고 부창부수(婦唱夫隨) 남편들은 배우자 1인 관리도 못 하면서 5000만 국민을 다스린다고 한다. ‘어쩌다 권력’이 대통령 되고 대통령 후보가 되니 그 배우자들까지 공직의 무게와 책임보다는 권력의 달콤함에 먼저 빠진 탓이다. 절제와 품격은 사라지고 욕망과 과시만 남은 정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태평로] 명배우들은 왜 '무덤파기'를 탐내나
문제적인 인물들이 득시글한
'햄릿'에서 진실을 말하는 배역
부귀도 영화도 권력도 덧없다
늦기 전에 잘못을 바로잡아라
박돈규 기자
입력 2024.06.03.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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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에서 무덤파기를 연기한 배우 권성덕. /신시컴퍼니
2022년 국립극장에서 연극 ‘햄릿’을 공연할 때 벌어진 일이다. 출연진은 권성덕,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길해연 등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만 10명이었다. 예상대로 배역 경쟁이 치열했다. 그런데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탐낸 배역은 주인공 햄릿이나 오필리어, 클로디어스나 거트루드가 아니었다.
“무덤파기 역을 강력히 희망했다”(박정자) “나도 무덤파기를 맡고 싶었다”(정동환) “무덤파기 역을 원했는데 빼앗겼다”(유인촌)... 무대에 짧게 등장하고 대사도 적은 ‘무덤파기’에 무슨 꿀단지라도 숨어 있는 것일까. 기자회견장에 지팡이를 짚고 느릿느릿 나타난 권성덕이 농담을 던졌다. “그토록 바라는 줄 알았다면 무덤파기를 내놓고 내가 햄릿을 할 걸 그랬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400년도 더 된 작품이다. 덴마크 왕자 햄릿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곧장 숙부(클로디어스)와 재혼한 어머니(거트루드)를 원망하며 바닥 모를 슬픔에 빠져 있다. 장례식장에 올린 고기를 식기도 전에 결혼식장으로 옮긴 셈이라며 비통해한다. 선왕의 망령은 “클로디어스가 나를 독살했다”고 폭로한다. 그러나 햄릿은 복수를 망설인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독백 “사느냐 죽느냐~”는 그 대목에서 흘러나온다.
명배우들이 무덤파기를 탐낸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이 연극이 새롭게 보였다. 수십 년 동안 무덤을 파고 시신을 매장하는 일만 해온 무덤파기의 입을 빌려 셰익스피어가 들려준 통찰은 무엇일까. 묘지 장면에서 햄릿이 묻고 무덤파기가 답한다. “그 해골은 누구였소?” “선왕의 어릿광대입지요.” (해골을 집어 들고) “이게 요릭이라고?” “확실합니다!”
불완전하고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들이 득시글대는 ‘햄릿’에서 가장 확신에 차 있는 인물은 무덤파기다. 오직 무덤파기만이 확고부동한 진실을 삽으로 퍼내듯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준다. 해골을 든 채 햄릿은 중얼거린다. “살아서 제아무리 고결하면 무엇 하나.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도, 천하를 떨게 하던 시저 황제도 흙 속에선 이런 몰골이겠군.”
사람은 누구나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는다. 무덤파기는 우리가 알면서도 회피하는 진실, 눈을 돌리고 귀를 막는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부귀도 영화도 권력도 이념도 덧없다. 모두 언젠가 해골이 되고 먼지가 될지니. 왕이든 거지든 삶에는 끝이 있나니, 죽음만큼 평등한 것도 없다. 죽음을 두려워하며 운명의 발길질을 견디던 햄릿은 마침내 행동한다.
오는 9일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 14명이 참여하는 ‘햄릿’이 대학로에서 개막한다. 혼탁함과 어리석음, 악으로 들어찬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연극은 문제적 인간들을 다루지만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훈계하지 않고 ‘저렇게 살아도 되나?’라고 관객 스스로 반문하게 한다. ‘햄릿’에는 흉악무도한 클로디어스가 “신은 악마를 사랑하신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세상이 이토록 악으로 넘쳐날 리가 없지”라고 기도하는 대목이 있다. 하느님에게 대들듯이 자신이 저지른 죄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잘못한 놈이 더 뻔뻔하게 큰소리치는 혼탁한 세상을 거울처럼 보여준다.
미워하고 파괴하는 것은 쉽다. 건설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어리석고 나약하지만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고통스러워도 용기를 내 ‘햄릿’의 끔찍한 내부를 들여다보라. 사느냐 죽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아직 보지 않은 것이 문제다. “좋았던 시절은 간데없고 두 눈을 떠보니 땅속이로다~”로 흘러가는 무덤파기의 노래를 들어라.
연극 '햄릿'(2022)의 2막 엔딩. 무대 전체를 무덤으로 표현했다. /신시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