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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가 주제 설교로 여러분을 계속 만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일어난 일인데 교회의 일로 인해서 이게 감정적으로 대개 좋지 않은 성도에 대해서 나름 잘 참고 있는 이 젊은 성도가 있었어요. 우연치 않게 사모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성도가 너무 기특해서 잘 참았다고 그리고 성도님이 승리했다고 이렇게 칭찬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성도가 왜 저만 승리해야 하냐고 따졌다고 합니다.
아직 말귀를 못 알아들으신 것 같아서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도 승리하셨습니다.
아마 집에 가서 웃으실 것 같은데 약간 슬픈 그렇지만 시대적인 어떤 상황이 잘 반영된 제가 통계들을 오늘 설교 전반에 많이 좀 이렇게 여러분과 나누려고 해요.
2022년 서울연구원이 조사 발표한 결과입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 중 3명 중에 1명이 우울 증상이 의심이 되고 그리고 1년간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청년들이 무려 15% 정도가 됐답니다. 정확한 수치로 말하면 조사 대상의 34.2%가 우울증이 의심이 됐다는 거예요. 그리고 청년들이 이렇게 우울한 것은 청년들의 경제적인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서울에 사는 청년들만 우울하겠습니까? 또 다른 조사에 의하면 서울시민 2명 중 1명 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나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거예요. 이 설문에 대한 해석을 좀 길게 이렇게 달아놨어요. 그래서 그 해석의 일부를 가져와서 여러분과 잠깐 나눕니다.
우리나라가 1인당 총 국민 소득이 국민 총소득이 3만 6천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여러분 일본을 앞질렀어요. 우리는 누군가를 이기는 걸 되게 좋아하잖아요. 어쨌든 우리가 드디어 일본을 이겼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 조서에 의하면 지나친 성취 지향적인 삶이 그런 삶을 추구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거예요. 너무 한국 사회가 성취 위주의 삶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나라가 돈은 많지만 국민은 행복하지 않는 그런 나라가 됐다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서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재력과 같은 외부적인 상황이 잘 갖춰져도 사람들은 행복해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잘못된 인간관계가 오히려 우울감이나 부정적인 마음들을 더 많이 갖게 한다는 거예요. 요즘 아이들은 반 아이들이 시험을 잘 못 보면 되게 좋아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등수가 오르기 때문인 거예요. 이런 거죠. 남의 불행이 나에게 기회를 줬다고 행복해야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생각해도 한참 잘못된 거죠. 잘못되어도 많이 잘못된 거죠. 바로 성취지향적인 삶이 그런 사회가 이런 풍토와 이런 삶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사회에 길게 노출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거예요.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고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면 지는 것인 또 그런 패배감을 이렇게 주는 이런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행복하지 않는 것은 행복하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행복하지 않는 삶에서 나오는 것들이 있어요.
부모가 행복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져요? 다투고 싸우죠. 그러니까 백성이 행복하지 않으면 국민이 다투고 싸워요.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싸울까요? 제 생각엔 역대에 최고인 것 같아요. 최고로 싸우는 것 같아요. 바로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행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는 어둠과 절망이 나옵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공동체는 절망적인 거예요. 교제할수록 절망이 커지고 만날수록 절망이 커지고 함께할수록 절망이 커져요.
여러분 행복하지 않는 가족들이 계속 모여보세요. 모이면 더 싸우고 절망이 더 커져요.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조금 더 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현실을 아는 건 좀 우리를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에만 고립된 그리고 은둔하고 있는 청년들이 무려 13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런 청년들 중에 물질적이든 아니면 또 이렇게 심리적이든 도움을 받는 국가로부터 도움받는 청년들의 수가 0.43%라고 합니다. 보건복지부가 2023년 발표한 고립 그리고 은둔된 청년들의 실태 조사에 의하면 고립되고 은둔된 경험이 있는 청년들 중에 건강이나 또 정신 상태가 좋지 않다. 나는 건강이 안 좋다 나는 내 정신 상태가 건강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무려 56%와 그리고 63%가 됐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이런 청년들 중에 미래는 희망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청년이 66%였고, 타인의 시선이나 대인에 대한 접촉이, 대인관계에 대한 접촉이 어렵다고 말하는 두렵다고 말하는 청년들도 62%와 그리고 48% 정도가 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삶을 산다는 거예요. 여러분과 제가 되게 건강하게 이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내면에서는 많은 어려움들이 우리의 내면에 꽉 채워 있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외로움이 얼마나 무섭냐 하면 우리 중에 담배 피우는 분들이 거의 없으시겠죠. 우리가 외로움을 겪을 때 그 외로움의 무게가 어느 정도냐 하면 담배를 15개 피를 피우는 정도의 해로움이 외로움에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외로움은 생각보다 우리의 삶에 큰 영향력을 미쳐요. 줄담배를 피운 것 같은 몸에 해로움을 전해주는 것이 외로움인 것입니다.
영국에는 아주 특별한 부서가 있어요. 장관이 있는데 외로운 부라는 부서가 있고 이 부서에 장관이 있어요. 얼마나 외로운 사람들이 많으면 그 선진국에서 외로운 부라는 그 부서를 만들고 지도자를 세워서 국민의 외로움을 케어하려고 했을까요? 이 모든 통계치는 많은 사람들이 외로워한다는 거예요.
제가 오늘 이 말씀을 이렇게 묵상하면서 저는 보통 설교를 어떻게 준비하냐 하면 좀 단순하게 준비해요. 어떤 내용을 이렇게 묵상하다가 그냥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내 마음에 답을 가지고 그냥 이렇게 설교를 준비할 때가 꽤 많이 있어요.
이번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오늘은 본문과는 전체적으로는 맥락이 비슷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좀 본문을 해석하지 않는 그런 말씀이에요.
제가 왜 사람들이 이렇게 우울할까 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외로움을 탈까라고 딱 생각했을 때 저에게 떠오른 답이 두 가지가 있었어요. 이 말씀을 말씀과 한번 비추어서 나누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왜 우울할까? 바로 첫 번째로는 하나님과 멀어졌기 때문이에요. 성경은 수없이 많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과 가까이해야 할 존재라는 거예요. 인간은 원래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닐던 존재였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것이 인간의 본래적인 모습이라는 거예요. 본래적이라는 것은 그게 실존과 실체라는 거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인간의 참모습이라는 거예요.
문제는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과 우리의 삶을 사이에 담을 만들고 이 담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해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고,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불안한 존재가 된 거예요. 원래 하나님과 함께할 존재가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그래서 불안이 불안한 존재가 된 거예요. 이 불안이 우리의 삶에 불행을 만들고 우울을 만든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질수록 불안해집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어길수록 그리고 불안해집니다. 이 시대가 불안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시대가 하나님과 멀리 있다는 거예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거예요.
아담과 하와가 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먹었을까요? 더 완전해지려고 선악과를 따먹은 거예요. 그러니까 완전해지려고 하나님의 법을 어겼는데 실제는 더 불완전한 존재가 된 거예요. 불완전하고 불안한 존재가 된 거예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좀 더 세상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밝기 선명하게 분명하게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악과를 따 먹었어요.
근데 문제는 이렇게 완전해지려는 노력이 오히려 하나님께 범죄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더 불안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우리가 뭔가를 하려고 할 때는 하나님을 봉사하고 예배하려고 하고 사명감대로 살려고 하기보다는 실제는 더 안전해지고 더 안전해지려고 뭔가를 해요.
우리가 왜 열심히 직장생활을 해요? 더 안전해지려고 더 완전한 환경을 만들려고 열심히 일하잖아요. 문제는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다는 거예요. 내가 더 안전해지고 하려다가 내가 더 완전해지려고 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된다는 거예요.
문제는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어기면 인간은 더 불안해지는 거예요. 아담과 하와가 더 완전해지려고 말씀을 어겼고 그런데 그 결과 완전해진 것이 아니라 더 불완전해진 거예요. 그리고 불안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실수로 범죄하기도 하지만 연약해서 범죄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더 완전해지려고 하다가 그리고 더 완벽해지려고 하다가 범죄하는 거예요.
우리의 가정을 조금 더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내 미래를 조금 더 조금 더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하다가 우리가 범죄예요. 문제는 이렇게 하나님께 범죄했을 때 우리는 더 불안전해진 불안한 존재가 된다는 거예요.
왜 이 시대가 이렇게 불안하게 되었을까요? 바로 안전하려고 하다가 더 안전해지려고 하다가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이 그래서 불안한 우울한 사회가 된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도 같은 맥락입니다. 더 완전해지려고 탑을 쌓은 거예요. 흩어지지 말자. 더 완전해지려고 탑을 쌓은 겁니다. 창세기 11장 4절 말씀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같이 읽습니다. 시작
또 말하되 성육과 탑을 건설하여 그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의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이 4절 말씀을 모으면 인류가 더 완전해지려고 한 거죠. 더 완전해지고 더 편안해지고 더 온전해지려고 한 거예요. 그러다가 하나님께 범죄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상 가운데 흩으셨던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서 인류의 언어가 달라지게 되었고 이전보다 더 큰 혼란이 인류에게 오게 됩니다.
원래 우리는 창세기 1장 28절의 말씀처럼 문화 명령 그래서 흩어져서 세상을 봉사하고 섬기고 다스려야 할 존재인 거예요. 세상 모든 곳으로 가야 할 존재, 세상 모든 상황으로 가야 될 존재, 세상 모든 어려움으로 가야 할 존재가 우리인 거예요. 여기에 모여서 우리랑 즐기고 우리가 놀자고 하면 안 되는 존재인 거예요.
그런데 인류가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바벨탑을 쌓았던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다르게 하셔서 다 흩어버리셨던 겁니다.
창세기 1장 28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바벨탑 사건은 하나님의 문화 명령. 창세기 1장 28절 우리가 보통 문화 명령이라고 해요. 이 문화 명령을 거역하는 사건이었어요. 더 완전해지고 안전해지고 완벽해지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어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범죄했다고 여기시고 그들을 흩어버렸어요. 불안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진 인간은 불안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와 싸우지 않으면 자꾸 불안해져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는 점점 불안해져요. 우리가 재물을 더 많이 쌓아야 우리가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죄와 싸워야 우리가 더 안전해지는 거예요. 불안해지지 않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반대로 하는 거예요. 안전하려고 불안해지지 않으려고 우리는 죄를 지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불안한 존재, 더 우울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불안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죄를 짓게 되고 오히려 더 불안한 존재가 되어 가는 겁니다.
두 번째로 사람들을 우울하게 하는 것은 같은 맥락이에요. 불순종입니다. 불순종은 우리를 마귀의 종으로 살게 해요. 순종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한다면 불순종은 우리를 마귀의 자녀로 살게 해요. 원래 우리는 마귀로부터 난 자잖아요. 원래 우리는 마귀가 우리의 아버지였어요.
요한일서 3장 8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러 하심이니라
불순종함으로 범죄의 죄를 짓게 되고요. 죄가 우리의 삶에 자리 잡음으로 말미암아 마귀가 우리 인생의 주인 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하나님이 품게 하시는 마음을 품지 못하게 해요. 그리고 마귀의 마음을 품게 합니다. 불순종한 횟수가 늘어갈수록 우리의 마음은 더 불안함이 자리 잡게 돼요. 왜냐하면 마귀의 역사가 더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내 삶에 강해진다면, 반대로 불순종하면 마귀의 역사가 내 삶에 강해지는 거예요.
순종이 내 삶을 평안하고 안전하게 한다면 불순종은 내 삶을 불안하게 하고 불안정하게 하는 거예요. 성경은 마귀를 정확하게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불순종할수록 마귀의 역사는 더 강력해진다는 거죠. 여러분과 제가 불순종할수록 우리 교회는 마귀의 역사가 더 강력해지고, 여러분과 제가 불순종할수록 우리 가정의 마귀 역사는 더 강력해진다는 거예요.
왜 시대가 이렇게 혼란스러울까요? 마귀의 역사가 강해졌기 때문인 거죠. 마귀의 역사가 강해진 이유는 불순종한 사람이 많아진 거죠.
여러분 교회는 순종하는 사람이 많으면 안정적이 되고요. 불순종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불안정하게 돼요.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말하면 안정적이 되고요. 불순종한 사람이 많아지면 불안정하게 돼요. 시대가 혼란스럽다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시대가 얼마나 혼란스러워요. 저는 선진국을 왜 선진국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겠어요. 선진국의 지표를 보면 후진국보다 훨씬 못한 것들이 많은데도 왜 그들을 선진국이라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사회가 더 불안정해요. 인권위도 유린이 되고, 총기 난사가 총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하는 일들이 더 빈번하게 일어나요.
그렇지 않은 나라들보다 왜냐하면 안전해지려고 평안해지려고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한 거죠. 교회도 불순종하면 마귀의 역사가 강해집니다. 우리의 삶도 불순종하면 알수록 마귀의 역사가 강해져요.
문제는 이 마귀가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육체와 우리의 마음을 파괴하여 성경에 있는 많은 질병들이 마귀와 귀신과 연관된 것을 우리가 수없이 봤잖아요. 성경에 있는 많은 내면의 상태가 마귀와 귀신과 연관된 것도 수없이 많이 봤잖아요. 성경에는 많은 영적인 상태가 귀신과 마귀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 우리가 수없이 많이 봤어요.
마귀가 그런 존재라는 거죠. 불순종하면 마귀 역사가 강해지고, 마귀 역사가 강해진 곳에 있는 성도들은 더 불안정한 사람, 더 불안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우리를 괴롭히는 존재입니다. 질병으로도 우리를 괴롭히고요. 좋지 않은 생각으로도 우리를 괴롭히고요. 하여튼 모든 걸 다 동원해서 우리를 괴롭히는 존재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어떻든 우울한 사회에 살고 있어요. 그런데 이 우울을 여러분과 저의 삶에 떠나게 하려면 답은 하나예요. 다시 순종하는 자리로 돌아오는 거죠.
순종해야 교회가 안정적이 되고, 순종해야 삶이 안정적이 되고, 순종해야 우리의 내면이 안정적이 되고, 순종해야 우리의 사역이 안정적이 되는 거예요. 마음에 있는 많은 질병들을 이기려고 하신다면 다시 순종하는 자리로 돌아와야 돼요.
여러분 순종의 힘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인 거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류가 구원받았잖아요. 여러분 순종의 힘이 이렇게 강력하다는 거예요. 우리는 순종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약자의 삶과 약자의 논리가 순종이다. 힘이 없는 사람이 약한 사람이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펴는 것이 펼치는 것이 순종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아니요. 아담과 하와의 거역이 온 인류를 범죄한 자로 만들었잖아요. 여러분 불순종이 이렇게 강력해요. 그렇다면 반대로 순종의 힘도 그만큼 강력한 거예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류가 제 가운데 놓여졌다면 반대로 순종의 힘도 그만큼 강력해요.
근데 문제는 우리가 순종의 힘이 이렇게 강력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예요. 불순종의 힘이 이렇게 강력하다면 반대로 순종의 힘도 그보다 더 강해야 순종의 불순종을 이겨내는 거잖아요.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이 이렇게 강력해요. 온 인류를 범죄하게 만들고 온 이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이렇게 인류가 멸망해 가고 있는 것도 결국 아담과 하와의 범죄 때문이잖아요.
아담과의 불순종이 이렇게 강력하다면 우리의 순종 또한 그보다 더 강력하다는 의미예요. 순종은 약자의 논리거나 순종은 약자가 펼치는 삶이 아니에요. 여러분과 제가 순종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 안정적이 되는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목회자가 강단에 순종을 이야기하면 목회 편하게 하려고 저렇게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렇게 하는 목회자들이 있겠죠. 여러분 그거는 다 드러나지 않던가요? 제가 이 강단에서 제 목회 편하라고 하는 말, 하나님 말씀대로 선포하지 않고 제 임의대로 하는 말은 여러분 성도들 다 알아차려요. 그 말은 교회에 처음 온 성도도 알아차려요. 모를 것 같아요. 다 알아요.
순종해야 거역으로 만들어진 내 내면의 삶이 다시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만든 황폐한 우리의 내면의 삶이 다시 우리가 순종하기 시작해야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거예요.
순종해야 거역으로 만들어진 영적인 환경이 새롭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의 역으로 여러분과 저의 불순종으로 영적인 모든 환경이 황폐화됐어요. 이 황폐한 영적인 환경을 다시 되돌이키려면 다시 순종하는 자리로 우리가 돌아가야 된다는 겁니다.
순종해야 거역으로 만들어진 잘못된 삶이 새롭게 됩니다. 여러분 불순종으로 우리의 삶이 잘못되었어요. 잘못된 곳이 너무 많아요. 이걸 다시 돌이키려면 회복시키려면 다시 우리가 순종의 자리로 돌아가야 됩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아담과 하와의 고역으로 만들어지는 파괴된 세상에 대변형이 일어났어요. 영원히 사망해야 될 인류가 영원히 사는 길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었어요. 순종의 힘이 이렇게 강력한 거예요. 여러분과 제가 말씀에 순종할 때 내 내면에 대변형이 일어나고, 여러분과 제가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 교회 안에 대변혁이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그래야 흐트러진 질서가 잡히고요. 엉망인 내 내면의 삶도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가 다시 순종의 자리로 돌아와야 된다는 거예요. 순종하는 길이 사는 길이고 순종하는 길이 회복되는 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제가 순종함으로 우리 교회가 살 수도 있고요. 여러분과 제가 순종함으로 섬에 있는 어떤 교회가 살 수 있고요. 여러분 제가 순종함으로 선교지 어떤 교회들이 다시 회복될 수도 있어요. 우리의 순종은 여기에서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 열방에 하나님의 역사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 순종인 거예요.
만약에 여러분이 정말 회복을 바란다면, 정말 우리 내면과 삶의 회복을 바란다면 다시 순종하는 자리로 돌아와야 되는 거예요. 우리 교회가 다시 순종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이 질서를 잡아주십니다. 흐트러진 나의 내면도 정결하게 됩니다. 나를 억누르는 우울감도 내가 이겨내게 됩니다. 인생의 외로움도 내가 승리해 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순종하면 외로움이 사라져요. 마음에 생각이 많은 분들이 있으실 텐데 순종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에 순종의 삶을 살면 내 삶의 외로움은 사라지게 돼요. 여러분을 이기려면 말씀에 순종하 세상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삶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면 여러분 인생의 외로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 외로움은 본질적인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야만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 순종하는 길. 무쪼록 여러분과 제가 순종의 힘을 정말 뼈자리게 깨닫고 다시 순종하는 자리로 돌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