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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부터 옥천신문에서 시작해, 해마다 20명가량 예비 언론인을 교육하는 옥천저널리즘스쿨. ‘필요’, ‘쓸모’, ‘민주’를 기치로 지역 언론인 양성의 산실이 된 옥천저널리즘스쿨을 통해 지역 언론의 가능성을 확인해본다. 편집자 주
지역 언론 즉 풀뿌리 언론, 커뮤니티 저널리즘은 사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이자 마지막 보루다. 정보를 알아야 참여하고 행동할 것 아니겠는가. 언론이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한다면 지역 언론은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에 가깝다. 언론이 창 너머 세상을 관전하는 것이라면 지역 언론은 자신의 삶터를 거울처럼 돌아보는 것이다. 대상화하지 않고, 내 문제, 우리의 문제로 더 훅 다가온다. 모든 사람이 특별하다.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지면에 등장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커뮤니티 저널리즘이다.
커뮤니티 저널리즘은 ‘쓸모’와 ‘필요’, ‘민주’를 담보한 저널리즘이다. 삶터를 변화시키고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에 쓸모 있는 정보가 담겨 있는, 그리고 일상 속의 민주주의를 실시간으로 구현할 수 있는 그야말로 ‘솔루션 저널리즘’이다. 내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정치인의 쓸데없는 논쟁들은 싣지 않는다. 이슈의 식민화에 복무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이슈를 발굴해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게 한다.
옥천만 하더라도 700명에 달하는 공무원이 있고 여덟 명의 군의원과 두 명의 도의원, 한 명의 군수, 옥천, 보은, 영동, 괴산을 지역구로 하는 한 명의 국회의원 등 열두 명의 선출직 공무원이 있다. 매년 6,000억 원에 달하는 군 예산이 있으며 의회를 통해 이런 예산이 통과되거나 삭감된다. 지방자치가 시작됐지만, 뽑기만 하고 어떤 예산과 정책이 시행되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없다면 이는 가짜 자치이고 가짜 민주주의다. 신문은 이런 정치 행위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얼마만큼의 예산으로 어떤 사업이 시작되는지, 군의회를 통해 어떤 의원이 무슨 발언을 하고 예산을 살리고 삭감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군의회 방청석에 앉아있는 유일한 사람은 옥천신문 기자밖에 없다. 의회 영상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주고 실시간으로 생중계를 한다지만, 홈페이지 접속하는 사람도 이를 시청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신문을 보고 피드백을 하고 해당 정치인에게 직접 연락하기도 한다. 지역은 물리적 거리와 정서적 거리가 가깝고 관계적 거리도 비교적 가깝다. 의원이나 군수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기보다 슈퍼마켓 가다 만나고 식당 가다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지역의 크나큰 장점이다.
열악한 지역 언론의 현실
건강한 지역 언론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키우는 자양분이다. 그런데 사람 구하기가 늘 힘들고 늘 쪼들린다. 대부분의 지역신문이 적게는 한 명 많게는 서너 명의 취재기자를 확보해서 어렵게 운영한다. 한 명이나 두세 명 갖고는 매주 지면 내기가 버거운 실정인데 그나마도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 늘 애를 태운다. 언론인 지망생들도 늘 인서울 언론을 꿈꾸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언론사를 떠나서 지역, 농촌 자체가 비선호 지역이라 아예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또 남아있는 기자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래버티지 못하고 떠난다. 악순환이다. 물이 들어와야 어떤 흐름이 만들어지는데 물이 바싹 마른 채로 우려먹으려 하니 순환이 안 되고 탁해지는 것이다. 전국 각 지역신문에서 사람을 구해달라는 전화가 비교적 자주 오는 편이다. 그나마 옥천신문은 공고를 내면 많은 지원자가 몰리고, 늘 젊은 청년과 청소년이 배우러 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건은 그리 녹록지가 않다. 각 지역신문의 실정은 옥천신문과 또 다르고 새로운 지역에서 다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기 때문에 사람을 쉽게 구하기가 여전히 어렵다. 옥천저널리즘스쿨을 기획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옥천저널리즘스쿨의 시작
옥천신문은 1989년 군민주 신문으로 만들어졌고, 주민이 주인인 신문이다. 32년의 역사 동안 다른 사업으로 한눈판 적이 없고 오로지 ‘저널리즘’으로 승부를 걸었던 새로운 지역신문 모델이다. 어려울수록 본질에 충실했고 그렇기에 어려운 파고를 헤쳐나갈 수 있었다. 지금은 노동조합이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노사 동수의 이사제를 운영해갈 방침이다. 그리고 노동자와 협의를 통해 지속할 수 있는 노동과 복지 체계를 구축하고자 매해 노력하고 있다. 변칙형 주4일제 근무, 35시간제 노동을 지향하고 점심시간도 1시간 30분으로 늘이는 등 여러 새로운 시스템을 고민하며 실현해나가고 있다. 또한, 20년 가까이 자체적으로 청소년기자단을 운영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삼선재단의 청년인턴십을 운영해본 경험과 아울러 2년 전부터 서울특별시 청년허브와 함께 ‘별의별 이주기자’를 운영해 본 경험들이 실질적으로 옥천저널리즘스쿨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됐다. 삼선재단 청년 인턴십은 1년동안 매월 50만 원을 지원한다. 청년들이 지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도록 탐색하는 시간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서울특별시 청년허브의 별의별 이주기자는 청년들에게 2주 동안 지역신문 기자를 경험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서울특별시가 숙식비와 기획비를 제공해줘 비교적 수월하게 운영할 수 있었는데, 옥천신문은 이 프로그램을 기회로 게스트하우스까지 마련하게 됐다. 옥천신문에서 인큐베이팅한 로컬푸드 옥이네밥상에서 식사를 하고 마찬가지로 옥천신문에서 탄생한 사회적기업 고래실이 운영하는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에서 차를 마실 수 있다. 이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적 인프라 때문에 옥천저널리즘스쿨을 상상할 수 있었다.
맨 처음에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제안 사업으로 풀뿌리청년언론학교를 1주간 기획했다. 당초에는 강좌가 8할이었는데, 참가자들은 강좌보다 실전 취재, 동행 취재 수업이 좋았다고 의견을 냈다. 이를 바탕으로 1년 365일 옥천저널리즘스쿨을 열어보자 기획했다. 지난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별의별 이주기자에서 기간을 연장하고 싶은 친구들은 3개월까지 연장하며 같이 배웠다. 기간이 넘으면서 추가되는 숙식비와 비용은 전부 옥천신문이 부담했다. 서울특별시 청년허브 사업은 보통 6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되는데 옥천신문은 자부담으로 나머지 기간까지 전부 맡아 운영하겠다고 제안했다. 현재 옥천저널리즘스쿨의 수강료는 없다. 무상교육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숙소 비용을 월 5만 원씩 부담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낼 것이 없다. 우프(WWOOF)의 사례도 참조했다. 우프는 ‘친환경 농가에서 일하는 기회(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이란 뜻으로 유기농 농가 및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는 곳에서 하루에 반나절 일손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는 프로그램이다. 전 세계 150여 국가에서 활동할 수 있다. 우프에서 힌트를 얻어 우리는 LROOP(Local Rural Opportunity on Organic Pen)를 기획했다. 유기농 농가가 아니라 유기농 펜, 즉 지역신문을 경험하는 것으로 변경한 것이다.
우리는 그라운드를 제공한다
여타 다른 저널리즘스쿨과 다른 것은 우리는 현장의 그라운드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탁상에서 배우는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서 부딪쳐 가면서 배운다. 옥천이라는 그라운드에서 직접 사람을 만나고 취재를 하며 기사를 써본다. 옥천이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지역, 농촌이라는 보편성을 동시에 배울 수 있다. 일반 언론에서는 그렇게 만나기 어려운 지역주민을 직접 자주 만난다. 스스로 기획하고 기사를 쓰는 것을 도와주며 실제로 자신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실습을 빙자한 보조만 하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고민한 만큼 쓸 수 있다. 지역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통으로 배울 수 있다. 한 분야만 파는 게 아니라 분야별 이음쇠가 어떻게 연결돼 돌아가는지 그 흐름과 맥락을 읽을 수가 있다. 작기 때문에 통으로 볼 수 있고, 작기 때문에 왕성한 피드백을 경험할 수 있고, 작기 때문에 언론의 본질을 더 느낄 수 있다. 직접 제작하는 지면에 참여하며 매일 실전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한다. 취재하기 전 충분히 상의와 숙의를 거치고 출고 전 기사를 갖고 토론과 검증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삶이 교육이어야 하는 것처럼, 저널리즘스쿨도 이론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머리로 배운 것들이 현실에서 살아 움직거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허송세월을 해야 하는가. 옥천저널리즘스쿨의 일원이 되면 지역에 먼저 산다. 같이 살아보면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 주민이 되는 것이다. 살아보며 부딪치면서 기삿거리가 나오고 취재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고 깊어진다. 인터뷰, 스트레이트, 피처 기사, 행사 기사, 민원 기사, 정책 기사를 비롯해 심층 취재까지 본인의 역량과 맞물리면서 기사 작성의 모든 것을 현장에서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쓴 기사는 검증을 통해 지면에 반영된다. 2019년에도 18명의 인원이 거쳐 갔고, 2020년에도 20여 명의 인원이 다녀갔다. 짧게는 2주부터, 길게는 6개월까지 많은 청년이 거쳐 갔다. 충남대, 동국대와 학점 인정 인턴십 교류도 하고 있고, 제천, 금산 간디학교와 진로캠프 같은 1~3개월 과정도 비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옥천저널리즘스쿨을 시작하면서 여러 계획이 생겼다. 취업 또는 창업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옥천은 지리적으로 남한의 중심인 만큼 여기서 커뮤니티저널리즘의 본산을 만들어보자. 지역 언론인을 꿈꾸는 많은 청년을 길러내 민들레 홀씨처럼 전국에 흩뿌려 보자. 이런 거창한 생각으로 기획했지만, 그렇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직도 지역은 신문 하나 없는 곳도 태반이며 사이비 언론만 그득한 지역도 넘쳐난다. 네이버나 페이스북에 링크된 베껴쓰기 보도자료의 지역 뉴스만 보면서 생활을 하는 주민들이 과반이 훌쩍 넘는다. 언론은 공급자 중심의 뉴스 체계에서 여전히 복무하고 있고 주민들의 눈과 귀와 입을 가린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실제 생활에 필요한 정보는 하나도 없고 쓸모없는 정보만이 그득하다. 풍요 속 빈곤이다.
풀뿌리 지역신문은 어떤 보도를 하는가
옥천신문이 지금까지 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안남면 덕실리 주민의 대형 쪼개기식 태양광 반대 투쟁을 처음 보도한 것은 2020년 11월 6일이다. 최근까지 수십 건의 뉴스를 생산해내고 현상을 지속해서 보도하고 있지만, 일간지에서는 두 달 가까이가 지난 12월 28일 슬그머니 보도했다. 군청에 천막을 쳤고 면 대책위원회가 크게 반발함에도 불구하고 일간지의 보도는 늦고 단편적이다. 옥천신문이 장수와 영동의 태양광 반대 투쟁의 사례를 지속해서 보도하며 조금 더 깊이 있게 보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추미애·윤석열 논쟁이 1년 가까이 소모성 논쟁으로 전락할 때 옥천신문은 계속 지역의 새로운 이슈를 세팅하면서 여론의 불을 댕겼다. 청성초등학교 전교생 수가 15명으로 줄었고 내년에는 13명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작은 학교 위기론을 다시 점화하며 농촌 작은 학교의 실질적 대책을 요구하는 기사를 계속 써냈다. 이는 일간지에서 하나도 보도되지 않은 기사들이다. 이 기사를 시작으로 없던 청성초등학교 총동문회가 만들어졌으며 마을에서는 귀농·귀촌인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내놓았다. 그리고 지역 대책위가 꾸려져 학교 살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옥천신문은 이런 작지 않은 움직임을 매주 보도하면서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코로나19 시국에 군내 한 군립어린이집 음주 회식 기사도 옥천신문이 2020년 12월 24일 자로 제일 처음 보도했고 그 이후 MBC충북에서 2021년 1월 5일 뒤늦게 보도했다. 옥천신문은 이슈를 계속 끌고 가며 구조적인 문제를 봤고 MBC 보도가 되기 전까지도 몇 차례 후속 보도를 통해 제도적 보완을 요구했다. 옥천버스회사 직원의 갑질 기사도 유일하게 옥천신문만 보도했다. 청주지방노동청에서 갑질 인정을 받기까지 지속해서 보도했지만, 다른 언론사는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앞에 인도가 없는 것을 계속 보도해 인도를 만들게 했고 끊어진 산책로를 보도로 잇게 했다. 이런 것은 절대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다.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제보를 하며 이것들은 지면 공론화 과정을 통해 해결된다. 기자들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앞서서 지켜내는 첨병 구실을 한다. 제보가 끊이지 않는다. 취재기자가 10명으로 거의 광역방송국 수준이지만, 많은 제보를 다 감당하기에는 기자가 더 많이 모자란다. 옥천신문이란 도구가 이미 32년 동안 실효성을 획득하고 ‘필요한’ 매체임이 증명되고 있다. 신문 구독이 구시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시대에 옥천에서 월 1만 원짜리 종이신문 독자가 3,500명에 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역 저널리즘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플랫폼이 아무리 날고 기고, 뉴미디어가 하루 지나 나타나며 순위가 바뀐다 해도 지역 생활 정보의 필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생활 정보 이상의 지역 저널리즘은 여전히 필요하고 대체될 수 없을 것이다. 당근마켓이 새로운 생활 정보 시장을 열고, 배달의 민족 등이 지역 시장까지 잠식하고 있지만, 지역 저널리즘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지역에 살아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옥천저널리즘스쿨은 많은 건강한 지역 언론인을 양산해 내는 창구가 될 것이다. 취업뿐 아니라 지역신문이 없는 지역에서 새롭게 창업할 수 있도록 방법까지 전수하고 일러줄 것이다. 이런 지역신문들이 각자의 지역에서 뿌리내리며 전국적으로 네트워크 될 때 다양한 문화가 만들어지고 다른 패러다임이 펼쳐질 것이다. 지역신문은 오늘의 지역을 기록하는 역사다. 체계형 언론이 아니라 민으로부터 시작되는 관계형 언론이고 이는 초창기 언론의 원형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커뮤니티 저널리즘의 산실이 되고자 하는 옥천저널리즘스쿨에 많은 청년이 관심 갖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위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방송' 21년 2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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