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소개
추억의 영화
렛 미 인(Låt den rätte komma ins, Let the right one in, 2008)
어떤 평론가가 영화 <렛 미 인>을 두고 말한다. “너무 좋아질까 봐 무서운 영화다” 이 영화의 이미지는 일단 겨울, 순백의 눈 속의 마을, 그리고 그 하얀 눈밭에 떨어지는 붉은 피, 그러니까 순백의 도화지 위에 자홍색 물감들을 드리핑한 것 같은 공포와 아름다움이 뒤섞인다. 영화의 분위기는 차갑고 쓸쓸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외로움과 구원, 그리고 진한 사랑의 의미가 서려있다. 볼수록 깊은 감정과 여운이 남는 영화다. 영화는 너무 아름답다 못해 몸이 지린다. 그리고 차가운 세계 속에서 선택된 온기가 남기는 불편한 여운이 남는다. 영화 <렛 미 인>(스웨덴 판)이다.
<렛 미 인>(Låt den rätte komma in: Swedish다)은 2008년에 나온 스웨덴 표 로맨틱 호러영화다.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대니시 걸>로 유명한 감독이다. 이 영화는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가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스웨덴 어느 시골마을에서 12살짜리 소년과 또래의 흡혈귀 소녀와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하얀 눈밭 위로 떨어지는 선홍색 핏방울, 캄캄한 밤, 금발 소년,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부조화스러움들이 그 들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고유한 색채를 발할 때 영화는 비로소 그 자체로 아름다워진다. 정글집, 침대, 병원, 수영장, 기차 모두 선명하게 기억에 꽉꽉 들어박히는 가슴시린 장면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의 눈앞에 펼쳐진다. 이 작품이 나왔을 때 모두가 주목했던 것은 뱀파이어 영화라는 장르적 틀을 깨고 철저하게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한 동시에 성장영화였기 때문이었다. 공포영화의 피보다는 외로움, 우정, 첫사랑의 설레임을 눈으로 뒤덮힌 차갑기만 한 북유럽 특유의 감성으로 표현해 낸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영화보는 내내 북구의 유혹적인 포에틱이 물씬 피어 오른다.
어느 눈이 흩날리던 추운 겨울날, 외딴 마을에 엘리(리나 레안드레손)라는 소녀와 노인이 이사를 온다. 옆집에는 엘리와 비슷한 또래의 오스칼(카레 헤데브란트)이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학교에서 주변으로부터 늘 괴롭힘을 당하는 약한 왕따소년이다. 오스칼은 저녁 무렵 동네 놀이터에서 우연히 엘리를 만나게 되고 둘은 묘한 우정을 만들어 나간다. 그런 중 이 마을에는 최근 살인사건이 여러 번 발생하게 되고 그 정체가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한다.
소년과 소녀는 그렇게 우연히 만났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소년은 소녀의 힘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대항하기 시작한다. 지금껏 대항할 생각조차 못했던 오스칼은 소녀 엘리를 만나고부터 바뀐다. 오스칼은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고 한편 소녀 엘리는 지금까지 정 붙일 곳도 없이 뱀파이어라는 신체로 무의미하게 살아왔는데 소년을 만나고부터 그녀가 품었던 가슴속 한이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소녀에게 종전에 없었던 정을 줄 사람이 생긴 것이다.
둘의 사랑은 조건이 없었으며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서서히 주변의 여건들이 그들을 조여오기 시작한다. 소녀는 피를 마셔야 하는데 같이 사는 노인이 소녀에게 피를 제공하기 위해 살인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소녀가 물어서 피를 마셨던 여자의 애인이 찾아오는데 소녀에게 물린 여자는 감염으로 뱀파이어가 되었고 그걸 모르고 햇빛에 나갔다가 타서 죽는다. 이를 본 여자의 애인인 남자가 소녀에게 복수를 감행하지만 소녀는 낮에는 이불 속에서 숨어 지내는데 남자가 침입하자 소녀의 집안에 숨어 있던 오스칼이 칼을 들고 그 남자를 막아선다. 이에 소녀가 깨어나서 그 남자를 죽여 버린다. 소년이 소녀를 구한 것이다. 이렇게 그들의 관계는 더욱 깊어만 간다.
영화 후반부에 소년이 복수한 아이의 형이 소년을 응징하기 위해 소년이 있는 수영장으로 찾아온다. 그는 소년을 협박한다. 물속에서 3분을 견디면 칼로 살짝 그을 것이고 3분을 못 버티면 눈알 하나를 파내어 버리겠다고. 소년은 공포에 질려 물속으로 들어가 숨을 참고 있는데 갑자기 위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니 뭔가 물속으로 떨어진다. 그 다음은 강한 스포일러가 되기에 중지합니다.
영화 <렛 미 인> 속의 인물들은 지친 삶속에서 별 희망도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약한 소년은 힘이 없어 매일 남들에게 당하기만 한다. 힘이 약하다 보니 그저 당하기만 하는 존재감 없는 동네북이다. 홀 어머니는 일에 바쁘고 학교 선생님은 그에게 관심이 없어 그야말로 양육강식의 상황에 방치된 상태이다. 그에겐 좌절뿐이다. 한편 옆집으로 이사 온 소녀 역시 완전히 격리된 상태이다. 어떤 연유인지 아니면 사고가 있었는지 일반 사람과는 다른 뱀파이어 상태가 되어 인간과 공존하지 못하고 낮엔 숨어 지낼 뿐이다. 그나마 빛을 피해서 모두가 잠드는 밤에 밖으로 나와 잠시 여유를 가지는데 그것마저 잠시이며 혼자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두 외롭고 홀로 내버려진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보자마자 서로 간에 동질감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소년은 언젠가는 이 사회에 항변하며 저항을 해 봐야하는 입장이고 소녀는 내재된 힘을 숨기고 스스로 죽어지내고 있으니 그대로는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약자 그 자체였지만 소녀는 아니었다. 그 속에 광포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가 한밤중 아무도 없는 고요한 놀이터였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서로에게 비슷한 상처들이 있음을 발견했었는 지도 모른다. 어느 사이 소녀는 소년에게 말한다. “괴롭힘을 당하면 이제부터 내가 도와 줄테니 강하게 맞서라” 라고. 그러자 소년은 말한다. “네가 여자아이가 아니더라도 너를 계속 좋아할게”라고, 그리고 짐짓 어색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진지함을 확인한다. 두 아이는 서로를 위안하며 강한 유착감을 형성한다. 소년은 소녀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소녀는 소년을 통해 인간다움을 가지는 과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해 낸다. 또한 소녀는 뱀파이어라는 존재에 대해 고독해 하고 슬퍼하는데 영화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과 사랑, 우정을 심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여느 뱀파이어 영화들처럼 공포스러운 공격으로 인간들에게 공포를 주는 그런 분위기로 나아가지 않고 뱀파이어의 특성보다는 두 소년, 소녀의 관계와 교감에 더 집중한다. 그러기에 관객들은 공포영화라기 보다는 로맨스 영화 쪽으로 인식하게 된다. 감독의 연출력은 매우 뛰어나다. 영화 전체가 색채가 대단히 아름다워 하나의 회화같기만 하다. 톤은 어둡고 색감은 차갑기만 하다. 음악마저 매우 적절해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인물들 간의 감정 교감의 흐름을 잘 흘러가게 한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극찬하고 수많은 영화제가 상을 준 것처럼 이 영화는 공포영화치곤 매우 유니크하다. 공포영화라기 보단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영화로 보는 편이 맞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처음에는 외로움, 그리고 우정, 나중에는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다. 그것도 하얀 도화지 위에 빨간 핏물을 뿌려가며.....
소녀는 말한다. “내가 평범한 여자애가 아니어도 좋아해 줄래?” 그리고 12살 소년은 영원한 사랑을 만난다!
*리메이크한 미국영화 <렛 미 인>(2010)은 스웨덴 영화와 같은 분위기가 없습니다. 그냥 범작입니다. 혼돈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