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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일시 : 2024-6-1 (토)
o 날씨 : 맑음
o 산행경로 : 봉수산자연휴양림 - 산불감시초소 - 임존성 - 봉수산 정상 - 큰배티고개 - 원점회귀
o 산행거리 : 5.7km
o 소요시간 : 2시간
o 지역 : 충남 예산군
o 봉수산 지명도: 산림청 '숨겨진 우리산 244'
o 산행정보 : 봉수산, 임존성, 예당저수지, 봉수산자연휴양림
o 일행 : 나홀로
o 트랙 :
o 산행지도
오늘 목적지는 예산군에 위치하고 있는 봉수산입니다. 봉수산은 산림청에서 선정한 '숨겨진 우리산 244'에 속하는 300대 명산이지만 안내산악회의 산행지로 좀처럼 간택(^^)이 되지 않고, 내 생활권과도 동떨어진 곳이라 벼르고 벼른 끝에 오늘을 디데이로 잡았네요. 예산역에서 운행하는 버스가 많지 않아 택시를 타고 봉수산 자영휴양림까지 수월하게 도착했습니다...
비소식은 없었는데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안개가 짙습니다. 봉수산 산행은 아래에 있는 예당저수지 조망이 멋진데 날을 잘못 잡았을까요? 작년 이맘때도 차를 몰고 왔다가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산행을 포기한 적이 있었는데...
산행은 봉수산자연휴양림에서 '숲속의 숲' 방향으로 진행하면 산행등로와 연결됩니다. 완만한 오르막길에 초여름의 기운이 상쾌하게 전해옵니다. 오전시간이기도 하고 오늘은 낮기온도 20도 정도에 불과해서 시원한 기운이 좋네요...
등로에 '내포문화숲길'이라는 시그널이 자주보입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내포문화숲길은 가야산 주변의 4개 시군 (서산시, 당진시, 홍성군, 예산군) 내포 지역에 남아 있는 많은 불교 성지들과 내포 천주교 성지, 내포 지역의 동학, 역사 인물 및 백제부흥운동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지점들을 옛길과 마을길, 숲길과 임도, 들길, 하천길과 연결한 충청남도 최초, 최대의 장거리 도보 트레일이라고 합니다. 길이가 무려 320㎞나 된다고....
가픈 숨을 참고 올라서면 산림감시초소가 있는 곳입니다. 쉼터가 마련되어 있고 예당저수지도 시원스럽게 내려다 보이네요. 안개와 운무가 아쉽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눈에 보이는 좋은 등로를 따라 직진해서 좌틀하면 임존성 우물터로 연결되며, 산불감시초소에서 약간 되돌아내려가면 임존성의 남문지로 연결되는 등로가 있습니다. 계획은 후자였는데 등로 파악을 소홀이 하는 바람에 전자의 방향으로 진행했답니다...
임존성은 백제부흥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곳이라고 합니다. 산성의 길이가 2500m에 달하는 삼국시대 최대급 산성이며, 지금도 넓은 터에 당시의 흔적인 우물터 등이 남아 있고, 중앙에는 '임존성 백제 복국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예산 임존성(禮山 任存城)]은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백제 석성이다. 이 산성은 해발 484m 봉수산 정상부에서 중복(中腹)에 걸쳐 축조한 삼태기식 산성으로, 봉수산성이라고도 한다. 이 산성은 둘레가 2,462m에 이르는 삼국시대 최대급 산성으로 북벽과 서벽에 초축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다. 예산 임존성은 백제 부흥군이 나당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처음으로 승리한 곳으로 이후 백제 고지(故地) 전역에서 백제부흥운동이 일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이다. 660년 7월 백제 의자왕은 나당 연합군의 침공에 굴복해 항복하였다. 이때 흑치상지(黑齒常之)도 무리를 거느리고 함께 항복하게 된다. 나당 연합군이 의자왕을 옥에 가두고 군사들을 풀어 심하게 노략질을 하자 이를 두려워한 흑치상지는 좌우 추장(酋長) 10여 명과 함께 도망쳐 임존산(任存山)을 기반으로 백제부흥운동을 일으켰다. 8월 26일 나당 연합군이 임존성을 공격하자 백제 부흥군은 험한 지세를 이용해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이를 통해 임존성은 백제 부흥군의 주요 거점성 중 하나가 되었다. 663년 백제 부흥군에 내분이 일어나 복신(福信)이 도침(道琛)을 살해하고 풍왕(豊王)이 복신을 살해하는 과정을 겪으며 흑치상지도 나당 연합군에게 항복하게 되었다. 그 후 흑치상지가 임존성을 공격함으로써 임존성은 마침내 함락되었다. 후삼국시기에 이르면, 예산 임존성은 후백제와 고려의 주요 접전지가 되었다. 유금필이 이끄는 고려군이 925년에 예산 임존성을 함락시킴으로써 후삼국 통일을 위한 결정적 발판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성곽과 관련된 부대시설로는 성문, 건물지, 우물터 등이 있다. 문지는 북문지와 남문지가 남아 있고, 건물지는 성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우물터는 모두 세 지역에서 발견된다. (네이버 백과사전)
성벽 한켠에는 '묘순이 바위'의 전설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끕니다. '묘순이바위' 전설은 백제부흥운동으로 유명한 예산군의 임존성에 전해지는 지형지물유래담입니다. 묘순이와 막동이라는 남매가 있었는데, 아들과 딸,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할 운명이라고 하자 어머니가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을 선택하고 음모를 꾸며 딸을 죽였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읽으며 어디서 본것 같아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작년에 다녀온 공주 무성산에도 비슷한 전설이 있었네요. 공주 무성산에는 묘순이 대신 홍길동 남매와 어머니가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구요. 대를 잇기 위한 남아선호 사상이 잘 드러난 설화라고 합니다...
[묘순이 바위 전설] 묘순이와 막동이라는 남매가 있었는데,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 어머니는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인 막동이를 살리고 딸인 묘순이를 죽이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성 쌓기 내기를 시켰다. 아들인 막동이에게는 철신을 신고 한양을 갔다 오게 하고 묘순이에게는 성을 쌓게 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묘순이가 힘이 얼마나 센지 앞치마에다 돌을 날라서 성을 척척 쌓아 올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들인 막동이는 한양을 간 지 두 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내기 기간은 석 달이었다. 석 달이 다 되어 가자 어머니는 걱정이 되기 시작하였다. 묘순이가 성을 거의 쌓아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달이 난 어머니는 묘순이를 꾀기로 하였다. 물도 마시고 쉬엄쉬엄 쉬어 가며 하라고 타일렀던 것이다. 묘순이도 성을 다 쌓아 갔기 때문에 어머니의 말대로 천천히 일하였다. 그런데도 막동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묘순이는 마지막 돌 하나만 올리면 성을 완공할 수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다시 물과 종콩밥을 갖다 주며 먹고 하라고 꾀었다. 묘순이도 마지막 돌 하나만 남아 물도 마시고 종콩밥을 먹고 하기로 하였다. 묘순이는 그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성 쌓기만 해 왔으므로 몹시 허기가 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종콩밥을 입에 넣는 순간 목이 메어 제대로 넘어가지를 않았다. 씹히지도 않았다. 그렇게 종콩밥과 실랑이를 하는 가운데 그만 막동이가 돌아오고 말았다. 깜짝 놀란 묘순이는 살기 위해 바위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지칠 대로 지쳐 있는 데다 돌도 지금까지 옮긴 것 중에 가장 큰 것이어서 쉽지가 않았다. 게다가 도착한 막동이가 돌을 위에서 눌러 버리는 바람에 묘순이는 바위에 깔리고 말았다. 결국 내기에 진 묘순이는 바위에 깔린 채로 죽고 말았다. 지금도 임존성 아래에는 ‘묘순이바위’라는 커다란 바위가 남아 있다. (예산군지)
임존성의 넓은 공터에는 클로버(토끼풀)이 넓게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유구한 백제의 역사는 한낱 풀 한포기의 시간 앞에 무상함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공터 뒷편에는 '백제임존성청수'라고 적혀있는 우물터도 보이네요...
임존성을 뒤로하고 산길을 따라갑니다. 중간에 쉼터가 있는데 3개의 작은 돌탑중 하나가 '어린왕자'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돌의 형태와 색상 그리고 햇볕의 조화가 만들어낸 마술이지만요. 내 마음속에는 아직 어린왕자에 대한 동경이 남아있는 걸까요 ^^
임존성 둘레를 돌아 올라서면 북문지에 도착합니다. 지나온 산불감시초소에서 직진하면 임존성을 스킵하고 이곳으로 바로 연결됩니다. 산봉우리 같은 곳이라 예당저수지가 시원스럽게 내려다 보입니다. 예당저수지는 관개용으로 개발되었지만 낚시터로도 유명하고 1986년부터는 출렁다리, 모노레일, 조각공원, 생태공원 등이 조성되면서 예당국민광광지로 새롭게 탄생했다고 합니다...
[예당저수지] 면적 약 9.9 km2. 둘레 40 km. 너비 2 km, 길이 8 km. 예산군 및 당진시에 걸친 넓은 홍문(鴻門)평야를 관개하기 위하여 1929년 4월에 착공, 8 ·15광복 전후에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1946년부터 예당 수리조합의 주관으로 공사가 재개되어 63년에 완공하였다. 댐의 높이 12.1 m, 길이 247 m. 무한천(無限川) ·신양천(新陽川) 등이 흘러들어와서 호수를 이루고 댐에 설치된 26개의 자동조절 수문을 통하여 다시 무한천이 되어 북류한다. 유역면적이 3만 7360ha에 달하는 충남 유수의 호수로, 상류의 집수면적이 넓어 담수어의 먹이가 풍부하게 흘러들어오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낚시터로서도 유명하다. 1986년 응봉면 예당저수지 일대가 예당국민관광지로 지정, 개발되어 다양한 휴양지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출렁다리, 모노레일, 조각공원, 중앙생태공원 등이 들어서 있으며, 주변의 관광지로는 수덕사,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사적 제229호], 덕산온천, 덕숭산, 임존성, 의좋은형제공원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북문지에서 봉수산 정상까지는 약 0.3km의 짧은 거리입니다. 숲길이네요. 땀에 젖은 몸을 감싸고 도는 바람이 참 좋습니다...
봉수산은 봉황새의 머리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정상은 사방이 막혀있어 그 모습이 연상되지 않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있는 봉황새일까요?^^ 그래도 울창한 단풍나무아래 봉수산을 독차지하고 앉아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집니다...
[봉수산 鳳首山] 충청남도 홍성군의 동쪽 금마면에 위치하는 산으로 해발고도는483m이다. 예산군 대흥면과 경계를 형성하며, 일명 대흥산(大興山)이라고 불리는 산정상부에는 백제 시대의 임존산성이 있다. 이 산의 산세는 매우 험준하며, 북쪽 산록에는 비티(飛峙)라는 험준한 고개가 있는데, 과거에 홍성지방과 대흥을 잇는 길목이다. 현재에도 작은비티고개와 큰비티고개[大飛峙]가 산정상부에 존재하고 있다. 봉수산이라는 이름은 산이 봉황새의 머리를 닮았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대흥면에 있는 산이라 하여 '대흥산(大興山)'이라고도 불린다. 정상 동남쪽에는 백제의 전략적 요충지인 임존성(사적 제90호)이 남아 있다."임존성(任存城)이 바로 백제의 복신(福信), 지수신(遲受信), 흑치상지(黑齒常之) 등이 당나라 장수 유인궤(劉仁軌)에게 항거하던 곳이다. 지금의 본읍 관아 서쪽 13리 지점에 옛 돌성이 있는데, 그 주위가 5,194척이며, 안에 3개의 우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의심컨대 이 성이 아닌가 한다."라고 적혀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하산은 비티고개방향입니다. 도중에 지나는 작은비티고개에서도 봉수산자연휴양림으로 내려갈수도 있지만 오늘 산행거리가 짧아서 큰비티고개로 계속 진행...
봉수지맥 팻말도 보이네요. 1대간 9정맥을 완주한후 한때는 기맥과 지맥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이제는 꿈으로만 남겨둬야 할 것 같습니다. 꿈은 꿈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큰비티고개에서는 시멘트포장 임도를 따라 갑니다. 도중에 무장애숲길이 있지만 탄력을 받은 걸음은 계속 시멘트도로로 고고~~
[봉수산자연휴양림]은 예산 예당저수지(예당관광지) 남서쪽 인근에 솟은 봉수산(483m)에 조성된 자연휴양림이다. 2007년에 개장하여 다양한 산림휴양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천연림과 인공림이 조화를 이룬 절경에 각종 야생조수가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휴양림 내에는 1시간부터 3시간 코스까지 다양하면서도 완만한 등산로가 있어 숲속 산책과 등산을 즐길 수 있어 가족 및 동호회 단위의 등산객이 많아지고 있다. 임존성을 둘러보고 봉수산 정상까지 오르는 코스에서는 예당저수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휴양림 내에는 숙박시설(숲속의 집, 산림문화휴양관)과 물놀이장, 족구장, 세미나실, 숲체험장 등이 마련되어 있다. 인근에는 예당저수지, 봉수산수목원, 의좋은형제공원, 대흥슬로시티, 광시한우거리 등이 있다.
봉수산자연휴양림의 이모 저모를 구경하게 되네요. 원홍장둘레길이라는 안내판도 곳곳에 보입니다. 원홍장둘레길은 지극한 효심으로 아버지의 눈을 뜨게하고 나중에는 진나라의 황후가 되었다는 원홍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봉수산자연휴양림 입구로 원점회귀한 후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출렁다리고 구경하면서. 작년에 이곳 주차장까지 왔다가 비가 내리는 바람에 산행을 포기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예산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부를까하다가 대흥중학교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렸는데 다행히 금방 버스가 왔습니다. 예상보다 빨리 산행을 마치고 예산역으로 돌아왔지만 서울가는 기차시간까지는 아직 2시간 이상 남았으니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