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머슴이라도 행복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고모 댁에는 집안의 농사일을 돌봐주는 용일 아재(머슴이었지만 저는 아재라고 불렀음)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침 일찍 일어나 쇠죽을 큰 가마솥에 쒀서 소에게 갖다 주고 논에 들려 논물을 둘러보고 집에 들어와 아침밥을 먹습니다. 사발에 고봉으로 담은 밥을 고추장에 썩썩 비벼 열무김치와 함께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밭일을 나갑니다. 주인인 고모는 새참을 준비해서 머리에 이고 밭으로 갑니다. 막걸리 한 주전자와 칼국수에 김치가 전부입니다. 새참을 먹은 후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입을 손으로 쓱 닦습니다. 어릴 때 용재 아재의 모습은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만족감이 얼굴에 배어 있는 듯했습니다.
밭일을 마치고 부지런히 산에 올라, 한 짐의 나무를 해옵니다. 저녁에는 아재를 위한 푸짐한 만찬(?)이 준비됩니다. 꽁치도 구워 놓고 콩나물에 고사리도 무쳐 놓았습니다. 그때 제가 본 머슴은 참 행복했습니다. 그 얼굴에는 근심과 불안이 없었습니다. 저녁을 꿀같이 달게 먹고는 건넛방에 가서 퉁소를 불어 댑니다. 그 소리가 애간장을 녹이기도 했지요. 그리고 잠자리에 듭니다.
코를 요란하게 골며 깊은 숙면(熟眠)을 하는 것이지요. 이와는 반대로 주인인 고모는 늦게까지 머슴이 입었던 옷을 깁기도 하고 빨래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침밥을 위해 부엌에 나가 반찬을 미리 준비합니다. 누가 주인이고 머슴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말이죠.
성실한 머슴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고모 댁에 있었던 용일 아재는 저에게도 언제나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겨울이면 썰매를 만들어 연못에 가서 함께 밀어주며 깔깔대며 웃은 적도 있었고 봄이 되면 풀피리를 만들어 함께 불기도 했습니다. 깊은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서는 소나무 껍질을 벗겨내면 그 안에 얇은 박피(薄皮)가 있는데 이것이 봄기운을 타고 물을 머금고 있어 그 맛이 시원하였습니다.
그분 덕에 신비로운 음료도 맛본 적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즐겁고 마음에는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이분을 고모는 먼 친척 되는 갑분 이라는 마음씨 곱고 예쁜 처녀를 중매 들어 장가를 가게 하였고 밭과 논을 물려주어 사는 데 지장이 없도록 선처하여 주었습니다.
가끔 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종의 모습은 어떠하여야 할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이 아재가 기억납니다. 내일을 염려하지 않고 주어진 하루의 일을 충실하게 감당하였더니 그가 구하지 않은 장가가는 문제부터 생활의 터전까지 준비가 된 모습을 보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사람도 자기를 위하여 충성스러운 종을 위하여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푸는데 하물며 좋으신 하나님께서 택하신 종들을 위하여 어련히 모든 것을 채워주시지 않겠나 하는 믿음을 가져 봅니다.
고전 9:9,10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