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초다담’에서 향기로운 쉼표 / 월랑 신낙형
어디론가 목적지를 정해두고 바쁘게 달리는 여행도 좋지만, 때로는 가던 길을 멈추게 만드는 다정한 인연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 법이다. 8월 어느 날 푸른 하늘 아래 너른 들녘이 펼쳐진 충북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의 한적한 길목. 그곳에서 문득 발길을 붙잡는 이름 하나를 만났다. '본초다담(本草茶談)'.
생명을 돌보는 천연 한방의 이치를 뜻하는 '본초'와 그 온기를 차와 함께 나눈다는 '다담'이 어우러진 이름이다. 굳이 일부러 찾아들려 애쓸 필요조차 없다. 지나치는 길에 몸과 마음이 지쳐 쉼을 청할 때, 차를 멈추고 창밖의 들녘과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세상의 온갖 근심을 잠시 내려놓기 딱 좋은 곳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디디자, 은은하고 깊은 편백나무의 향기가 먼저 나그네의 호흡을 편안하게 감싸 안았다. 짙은 나무 인테리어와 포근한 조명은 도심의 번잡함을 순식간에 지워내 주었다.
손녀와 나란히 앉아 누린 족욕은 이번 여정에서 가장 뜻깊은 호사였다. 무엇보다 개별 족욕탕으로 깔끔하게 구비되어 있어 위생적이면서도 아늑한 독립감을 주었다.
침향을 비롯해 몸을 보하는 15가지 소중한 한방 성분이 가득 담긴 약초 주머니가 따뜻한 물속에 풀어졌다. 제천의 상징인 황기를 비롯해 오미자, 구기자, 감초 등 지역산 약초의 은은한 향기가 공간 가득 피어올랐다. 뜨끈한 한방 약물이 발끝에 닿는 순간, 찌뿌둥했던 여정의 피로가 온몸의 혈관을 타고 올라와 머리끝까지 순식간에 달아나는 듯했다.
"한약에 녹인 따듯한 물이 발끝에 닿자마자 머리끝까지 피곤함이 한순간 달아나 버리는 느낌을 받는 것은 비단 나만의 호사일까?"
투명한 족욕탕 속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물결을 바라보며 도라지꽃 무리가 방실거리는 창밖의 들녘을 응시했다. 한가로이 흘러가는 구름 속에 세상 근심을 슬며시 던져두고 아무 생각 없이 멍을 때리는 그 시간만큼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완전한 해방이었다.
따뜻한 황기차 한 모금을 입안에 머금자 속 깊은 곳까지 훈훈한 온기가 스며들었다. 여기에 갓 구워내어 고소하고 바삭한 건강 빵까지 곁들이니 입안의 즐거움도 배가 된다.
이곳을 지키는 신용하 대표와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는 여행이 건네는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우연히도 나와 같은 성씨를 가진 그는, 내 손녀와 코 흘리개 시절이 겹치는 삼남매를 키우고 있는 다정한 아버지였다. 문득 가슴 한켠이 뭉클해져 늘 품에 품고 다니던 내가 직접 쓴 동시집 『채아의 365일』을 꺼내 들었다. 본초다담의 무궁한 발전과 신 대표의 아이들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사서에 꾹꾹 눌러 담아 건넸다.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길 위에도 진정한 '인연의 족적' 하나가 깊이 아로새겨지는 순간이었다.
한방의 도시 제천은 그 정체성 고스란히 약초의 향기로 나그네를 맞이한다. 본초다담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관광의 경유지가 아니라, 지친 일상에 건네는 다정한 위로이자 따뜻한 온기 그 자체였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든, 문득 삶의 쉼표가 필요하다면 제천의 들녘이 보이는 그곳에서 차 한 잔과 족욕을 즐겨보시길. 차 향기와 따뜻한 물의 온기가 만나는 그곳에서, 지친 하루는 사르르 녹아내리고 새로운 발걸음을 뗄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첫댓글
이사님
안녕하세요
"천연 한방의 이치를 뜻하는 '본초'와
그 온기를 차와 함께 나눈다는 '다담'이
어우러진 이름"
늦게 찾아 읽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찾아 주시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