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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국사 10만’ 결집
한국은 지금 이케다(池田) 선생님 회장 취임 60주년의 마디인 내년 5월 3일까지 ‘청년 10만 국사’ 육성을 향해 한참 달려가고 있다. 목표점까지는 365일 남았다. 이번 기획에서는 그 연원이 된 1961년 국사 10만 결집의 사제공전 역사를 재조명하며 우리가 지금부터 써내려가야 하는 승리의 방향성을 제시한다.(화광신문 1303호)
그리운 동지여
그날 그대는 있었다
그날 나도 있었다!
(2001년, 이케다 선생님 수필 <신·인간혁명> ‘불멸의 정예 10만 대총회’ 中)
△드디어 스승에게 서원한 ‘청년 10만 국사’ 결집을 이루었다. 이케다 선생님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승리(勝利)’라는 글자가 새겨진 거대한 전광판이 청년 국사를 맞이했다.(1961년 11월 5일, 도쿄 국립경기장)
청년이여, 역사를 움직이는
‘창가(創價)의 차축’으로 성장하라!
“청년이여, 홀로 서라! 두 사람은 반드시 일어서리라. 세 사람은 또 뒤를 이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나라에 10만의 국사(國士)가 있으면 고뇌하는 민중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은 불을 보는 것보다도 분명하다.”(‘국사훈’中)
창가학회 제2대 회장 도다(戶田) 선생님은 1964년 ‘대백련화’ 10월호 <권두언>에 ‘청년이여 국사이어라’(통칭 ‘국사훈’)를 발표했다.
‘국사’란, 나라릍 구제하는 지도자이며 전세계 민중의 행복과 평화를 구축하는 인재를 말한다. ‘국사’라고 하면 구시대적인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사라는 말에는 ‘현실사회와 동떨어진 종교쟁이가 되지 마라!’ ‘세계에 크게 공헌하는 지도자로 성장하라’는 청년에 대한 깊은 신뢰와 기대가 담겨있다.
당시 청년 대부분은 생활에 쫓겨 나라의 장래를 걱정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그런 청년들에게 자신의 행복뿐 아니라, 한 나라의 장래와 발전마저도 열수 있는 위대한 사명이 있다고 일깨우는 ‘청년 국사’ 육성의 흐름은 도다 선생님께서 청년을 위해 남겨주신 지표였다.
그런데 왜 ‘10만’인가. 일찍이 니치렌 대성인은 “법화경을 이인·삼인·십인·백천만억인이 불러 전해간다면 묘각(妙覺)의 수미산으로도 되고 대열반의 대해(大海)로도 될 것이로다”(어서 288쪽)라고 말씀하셨다.
가마쿠라시대에 ‘억’은 현대의 10만의 가치다. 즉 대성인은 “국사 ‘10만 명’이 지상에 나타나면, 불국토로 된다.”는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미래도를 후세에 맡겼다. 그리고 그 미래도를 도다 선생님이 ‘국사훈’으로 그려 선언한 것이다.
청년부원들은 곧바로 이 ‘국사훈’을 암송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10만’이라는 숫자는 아직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었다. 당시 청년부는 남녀 합해도 아직 2만 명을 넘지 않았다.
그런 속에서 스승의 외침을 맹세한 제자가 있었다. 이해 3월, 참모실장에 취임한 이케다(池田) 실장이었다.
‘부디 지켜봐주십시오! 반드시 10만 청년을 결집하겠습니다.’
‘결집이 날 때까지 실장의 책무는 끝나지 나지 않는다.’
실장의 뇌리에는 이미 ‘10만’을 향한 전진의 리듬이 그려지고 있었다.
확대의 원동력 ‘발로 싸운다!’
해마다 연말에 열리는 남녀 청년부총회를 마디로 10만 명을 향한 비약을 기했다.
1958년에 열린 제7회 남자부총회에는 3만5000명이 결집, 1959년 제8회 남자부총회에서는 100개 부대를 달성하며 ‘정예 5만’을 목표로 출발했다. 1960년 제9회 남자부총회와 제8회 여자부총회에는 2년 만에 약 9만 명의 청년이 결집할 정도로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낸다.
총회를 거듭할수록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기세가 만들어졌다. 차츰 ‘10만 국사’의 일원이라는 자각이 확대됐다.
그 흐름에는 이케다 선생님의 투혼이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청년을 만나 ‘국사훈’에 담긴 도다 선생님의 신뢰를 전하며 위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그것은 이케다 선생님이 제1부대장 시절부터 보여준 확대의 원동력이다.
실제 평소 300명 정도 결집하던 부대에서 1000명 이상을 결집해 큰 승리를 거두었던 일이 있었다. 선생님이 철저하게 한사람을 만나고 한집, 한집 가정 방문한 결과였다.
이케다 선생님의 확대의 방정식은 청년에게 전해져 10만이라는 거대한 숫자도 거기에서부터 시작했다. 철저하게 ‘발로 싸운다!’
청년리더가 물었다.
“조직을 확대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선생님이 답했다.
“먼저 자신이 어서를 공부하고 신심을 심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 함께 연찬하십시오.
또 분대 하나가 부원 10명을 달성할 수 있으면 됩니다. 100개 분대가 생기면 ‘1000명이나 되는 정의의 진열’이 됩니다. 큰 숫자에 떨 필요는 없습니다. 한 사람 또 한 사람과 새로운 청년을 소중하게 규합하면 됩니다. 그에 앞서 반드시 승리한다고 확신하십시오.”
“모든 투쟁은 원점을 잃어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지, 무엇을 위해 결집하는지를 놓치면 공전합니다. 세계평화를 위해 열심히 분발하십시오!”
그렇게 한계의 벽은 차례로 허물어졌다.
1년을 100년분으로!
은사의 뒤를 이어 이케다 선생님은 창가학회 제3대 회장에 취임했다.(1960년 5월3일)
당시 이케다 선생님의 일정은 지부결성대회로 꽉 차 있었다. 지부는 ‘광포 싸움터’라는 관점에서 노도와 같이 순회하고 장년부와 부인부, 남자부, 여자부 4부가 혼연일체가 되어 투쟁하는 대세를 만들었다. 선생님이 순회한 조직에는 청년부를 소중히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지부결성대회는 남녀 부대의 결성대회이기도 했다.
이케다 선생님은 새로운 지부의 결성에 대해 이렇게 지도해주셨다.
“조직을 비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모두 종횡무진 움직이도록 조직을 분할하여 세밀하게 보살피는 일이 중요합니다.
인재는 찾아내는 것입니다. 조직을 세밀하게 만들면 훌륭한 인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찾아낸 인재를 모두 협력해 육성해야 합니다. 조직의 책임자로 발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청년이 크게 성장합니다.”
이 시기, 각지의 신임 지부장에는 남자부 부대장이 많이 등용됐다. 선생님이 손을 썼기에 칭년부는 파죽지세로 육성됐다.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회장으로서 맞는 첫 새해를 앞두고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년은 100년분으로 움직이겠습니다.”
스승의 구상을 현실로!
광포(廣布)는 서원(誓願)을 완수하는 것
회장 취임 1주년 “목표는 10만 결집!”
회장 취임 1주년의 5월 3일, ‘10만 결집’ 결착의 날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5·3’ 기념 본부총회에서 청년부 대표가 포부를 발표한다.
“‘청년이여 홀로 서라! 두 사람은 반드시 일어서리라. 세 사람은 또 이어지리라.’ 이 국사훈을 생각할 때, 홀로 선 분은 바로 이케다 선생님입니다. 그리고 뒤를 잇는 사람은 우리 청년부입니다. 마침내 ‘국사훈’을 실천할 단계에 들어선 때를 자각하고, 올해 청년부 10만 결집을 반드시 달성하겠습니다.”
어느새 스승의 구상은 제자의 서원으로 옮겨졌다.
“자, 제2막이 열렸습니다. 청년이 크게 활약하는 마디로 만들기 위해 오늘을 출발점으로 해서 올해를 ‘청년의 해’로 정합시다.”
이케다 선생님은 선언했다
“오늘부터 ‘청년의 해’로 한다!”
스승과 호흡하는 ‘정예 10만’을
회장 취임 1주년 청년부 결성 10주년의 가절인 ‘청년의 해’
청년부에는 머지않아 10만 결집을 달성한다는 기세가 넘쳐흘렀다.
“10만 결집은 도다 선생님 유언이므로 당연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집만으로 모두 끝나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세계광포의 선두에 서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러므로 이 10만 결집에 모인 청년들이 나와 호흡을 맞춰 세계광포의 투쟁에 임했으면 합니다. 그것이 앞으로 펼칠 투쟁입니다.
사제일체라면 어떤 일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성취하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이것이 청년부의 책임이자 사명입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단순한 숫자싸움으로 끝나면 안 된다. 스승과 호흡을 맞춘 청년을 모으는 것이다. 도다 선생님의 정신을 근본으로 한 10만의 인재, 바로 사제의 길을 관철하는 ‘정예 10만’의 모임이 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흘 후에는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국사 10만 명이 결집합니다. 나는 이 모임을 학회의 영원한 승리를 여는 사제의 의식으로 하고자 합니다.”
“이것의 제가 참모실장으로서 해야 할 마지막 일입니다. 선생님도 기뻐하시리라고 믿습니다.”
1961년 10만국사 결집
△‘정예 10만 국사’가 결집한 국립경기장에 청년부기, 젊은 사자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이케다 선생님이 입장했다. 장내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이케다 선생님은 손을 흔들며 영웅 한 사람 한사람에게 시선을 쏟아 격려한다.
11월 5일, 은사의 유언을 실현하는 맹세의 아침. 자신이 국사라고 자처하는 남자부 10만 명이 결집했다.
이케다 선생님이 단상에 섰다. 늠름한 목소리가 국립경기장 가득 울려 펴졌다.
“은사 도다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하고 생각하니 조금 전부터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도다 선생님도 영산에서 ‘장하다. 내가 육성한 제자여’라고 빙그레 웃고 계시리라 저는 굳게 확신합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손을 흔들며 한 사람 한사람에게 시선을 쏟기라도 하듯 청년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싸우자 벗이여! 인류의 새로운 역사의 막을 열기 위해, 이 한정된 인생을 영원히 빛내가기 위해.’
‘10만 결집’에 모인 청년부는 모두 이케다 선생님과 나눈 추억을 가슴속에 새기고 있었다. ‘스승이 있기에 내가 있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고서 어떻게 살수 있단 말인가’라고.
‘10만’이라 해도 그것은 이케다 선생님이 발굴하고 손수 육성한 인재들의 총결집이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승리의 방정식은 무엇인가.
‘10만 결집’의 도전이 시작된 1957년 말 은사는 제자에게 유언으로 시를 선사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인간 생명의
상사이지만
최후의 승리는
부처에게 기원하라
이케다 선생님은 말한다.
“이것이 선생님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시가 되었습니다. 반드시 이겨라! 최후에 승리하라! 이것이 창가의 사제를 관철하는 서원입니다.”
‘사제불이의 기원’ - 승리의 방정식은 영원히 변함없다.
“제자가 법화경을 넓히는 공덕은 반드시 스승에게 돌아간다.”(어서 900쪽, 취의)
도다 선생님이 승리했기 때문에 마키구치 선생님이 승리했다. 이케다 선생님이 승리했기 때문에 도다 선생님이 승리한 것이다.
‘청년의 승리’. 창가(創價)의 스승에 대한 보은은 이 길뿐이다.
“청년이여, 역사를 움직이는 새로운 ‘창가의 차축’으로 성장하라!”
이것이 국사 10만 결집이 가리키는 현대의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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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도움 되었어요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맞는말씀입니다 가슴 깊이 세기고 실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정의 달 5월의 첫 날 더욱더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원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한달되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