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도 별로…” 5남매중 유일하게 대학갔던 ‘흙수저 서울대생’의 현재
‘둥글둥글한 얼굴형, 축 처진 눈매, 라이언의 코와 비슷한 콧수염’ 카카오프렌즈 최고 인기 캐릭터 ‘라이언’을 꼭 닮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카카오’ 김범수 의장입니다. 2019년 5월 카카오는 대기업 반열에 오르며 국내 대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죠. 다른 회사들을 인수하며 몸집을 늘려온 카카오. 사실 카카오의 시작은 PC방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요. 어떤 이야기인지 알아보도록 할까요?
카카오의 성공신화를 쓴 김범수 의장의 학창 시절로 떠나봅시다. 전남 담양에서 서울로 이사 온 부모님 밑에서 셋째로 태어난 김 의장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죠.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일같이 돈을 벌러 나갔는데요. 잘 될 것만 같던 집안 형편은 아버지의 부도로 김범수 의장은 공부 하나만 믿고 혈서까지 쓰면서 독하게 공부했습니다.
힘든 재수시절을 보낸 그는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하는데요. 입학과 동시에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과외 아르바이트에 나섰죠. 그동안 힘들었던 삶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는 대학시절 고스톱, 포터, 당구 등 게임이란 게임은 모두 섭렵했습니다. 하지만 학업을 완전히 놓지 않았는데요. 4년 만에 학사와 대학원을 졸업합니다.
김범수 의장은 1992년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석사를 졸업한 후 삼성SDS에 입사합니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던 김 의장이었지만 당시 삼성 SDS에는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많았죠. 프로그래밍을 전혀 할 줄 몰랐던 김 의장은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는 현실에 막막하기만 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꿉니다.
“6개월 후 남들보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건 뭘까?”라는 고민을 시작하게 됩니다. 거듭된 고민 끝 김범수 의장이 내린 결론은 “윈도우가 뜰 것이다”라는 것이었는데요. 프로그래밍 기본을 건너뛰고 김 의장은 윈도우만 파고들기 시작했죠. 그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컴퓨터 업계의 판도가 바뀌면서 그가 오히려 동료들을 역전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는 “6개월 후 회사 내에서 강사 활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1990년대 말 온라인 게임의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김범수 의장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죠. 대학시절 당구나 고스톱을 치며 놀았던 경험을 인터넷으로 옮기고자 마음을 먹습니다. 삼성 SDS 퇴사 결정을 한 후 김 의장은 거금 2억 4천만 원을 들여 한양대 앞에 ‘미션넘버원’이라는 이름의 PC을 차립니다.
개업 6개월 만에 5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PC방은 승승장구합니다. 이때 전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과 함께 PC방 고객 관리를 전산화합니다. 김 의장과 삼성 SDS 유니텔 팀에서 함께 일한 남궁훈 대표(현재 카카오게임즈 대표 겸 라이프엠엠오 대표)는 요금 정산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국 PC방에 영업을 나섰는데요. 이 프로그램 덕분에 1억 5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죠.
1998년 김 의장은 PC방 운영을 아내에게 맡긴 후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합니다. 1년 후에는 아예 PC방 사업을 접고 한게임에만 집중하는데요. 고스톱, 포커, 장기, 테트리스 등의 게임을 개발해 국내 최초 게임 포털 ‘한게임’을 열게 되죠. 한게임을 출시 3개월 만에 100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넘기는 기염을 토합니다.
한게임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PC방 마케팅 덕분이었는데요. 김 의장 측은 PC방 고객 관리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는 조건으로 한게임 아이콘을 바탕화면에 설치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2000년 당시 치솟는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한 한게임은 마침 수익모델이 필요했던 네이버와 합병하게 됩니다. 합병 이후 2001년 게임 아이템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한 NHN은 다음을 가볍게 제치고 포털업계 1위에 오르죠.
NHN의 공동대표, 2004년에는 단독 대표를 거친 후 김 의장은 2007년 사표를 던집니다. 모든 걸 다 털어버리고 그는 가족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떠납니다.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요? 김 의장은 미국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학교를 데려다주며 한 해를 보내죠. 다시 한국으로 귀국한 그는 책과 음악에 빠져 시간을 보냅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혼자 지내던 김 의장은 가족들에게 “1년만 휴학하고 한국에서 놀자”고 가족들에게 제안하죠. 가족들은 그의 뜻에 흔쾌히 따랐습니다. 김 의장의 말에 따르면 가족들과 여행 다니고 당구 치고, PC방에 다녔다고 합니다. 넷이서 게임을 하다 보면 시계를 새벽 4시를 넘어가기 일쑤. PC방 주인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곤 했지만 김 의장은 그때가 정말 행복했다고 회상했죠.
그렇게 놀기를 3년. 아이폰이 새롭게 출시되면서 김범수 의장은 또 다른 사업을 구상을 하게 됩니다. PC에서 모바일 시대로 옮겨갈 것이란 흐름을 예측했던 것이죠. 2010년 카카오톡, 카카오아지트 등을 연달아 내놓은 끝에 ‘카카오톡’이 성공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이때도 남들보다 ‘6개월 빠르게’라는 그의 공식이 빛을 발하는데요. 카카오톡은 빠르게 시장을 선점하며 국내 앱스토어 소셜네트워크 1위를 차지합니다.
김 의장은 국내 2위 포털사업자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을 결정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그가 몸담았던 네이버의 경쟁사인 다음과 손을 잡으며 업계에서 또 다른 지각변동을 일으키죠. 카카오는 자산 총액이 10조 원을 돌파하면서 2019년 공정위로부터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되죠.
카카오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죠. 계열사는 무려 92곳에 달합니다. 김범수 의장은 한 매체를 통해 “아직 카카오는 하고 싶은 것이 많다”고 말했는데요. 할 수 있는 것, 해야만 하는 것도 너무 많아 모바일을 넘어선 새로운 도전을 임직원들과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혀 큰 화제가 되기도 했죠. 비즈니스의 고민을 넘어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자’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겠다는 그의 행보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