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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
Ⅰ
담당 형사는 낯이 익었다. 그도 나를 빠안히 쳐다보더니 타자를 치던 손길을 멈추고 벌떡 일어섰다.
「이게 누구야?」
「자네가 담당이었나? 마침 잘 됐네.」
「야이 사람아, 졸업하고 처음 만난 동기한테 담당부터 따지긴가?」
「미안하네. 그래 자네가 경찰에 투신했단 소식은 듣고 있었네.」
「몇 년 만인가? 이십 년도 더 넘었을걸?」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은 그 어떤 누구와도 감격적인 만남이 될 수밖에 없는 기간이지만 얼른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고등학교 동기생과의 해후는 또 다른 감회가 물씬 풍기는 것이었다.
「그놈 보통이 아니던데? 내가 다뤄 본 애들과는 좀 다른 데가 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전경에 지원한 것이 경찰에 들어선 계기가 되었다는 강경태는 경찰서 옆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앉자 창선이를 두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최근 학원 주변 폭력배 일제 단속이 실시되면서 뜻밖에도 창선이 녀석이 걸려들고 말았다. 그러나 출석번호가 일 번인 최창선은 어느 모로 보더라도 폭력배의 외양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중학교 3학년이면서도 아직 초등학교 6학년의 체구에도 미치지 못하는 왜소한 창선이가 주먹을 사용하는 폭력배의 혐의로 경찰의 신문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성적은 어느 정도야? 머리가 비상하던데?」
「그래?」
「말도 마. 웬만하면 자네한테 신병 인도를 하고 싶지만 공갈로 갈취한 액수가 만만치 않아.」
창선이가 아이들한테 공갈이나 협박을 하여 금품을 갈취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었지만 소위 창선이에게 돈을 빌려주고도 돌려받지 못한 아이들은 부지기수였다.
경찰에 의뢰하여 실시한 설문지를 끝까지 검토도 하지 않고 관할 파출소로 넘겨 준 것은 학생과의 실수였다. 물론 학교에서 일차로 자체 조사를 하기 위해 각 반 담임들에게 특수한 피해 사례가 기재된 설문지를 별도로 가려내 달라고 부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워낙 바쁜 업무에 정신이 없던 담임들 중에는 창선의 비행이 적힌 설문지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교사가 있었고 그렇게 넘겨진 문제의 설문지를 경찰은 간과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학교에서 비행 청소년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단속실적을 올리기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한 경찰에서는 평소와는 달리 학원 주변 폭력배 단속 방침을 학교와는 달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청와대 같은 고위층을 사칭하는 사기범이 단위가 높듯이 중3 짜리가 벌써 같은 수법을 써 먹었더만.」
창선이가 학급에서 금품을 횡령하도록 만든 여건은 담임인 나의 불찰에서 비롯된 것도 없지는 않았다. 사실 우유값이니 하는 자질구레한 잡부금을 징수하는 일은 교사들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잡무이다. 그렇다고 반장이나 총무에게 잡부금을 징수하게 하자니 그들은 그들대로 맡은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출석 번호 순서대로 한 번씩 잡부금 징수를 맡아서 하기로 하고 지난 3월의 우유대금은 출석 번호가 일 번인 최창선이부터 맡았었다.
서무과에서 우유급식 대금이 우리 반만 미납되었다는 통보를 해왔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창선이 우유대금을 분실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할 수 없이 그 달치 우유값을 대납하였다. 창선은 창선이대로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하였는데 2학년 때 창선이를 담임한 윤선생이 어느 날 창선이에게 잡부금 징수를 맡긴 일이 없느냐며 자기도 창선이에게 체육복 대금을 걷도록 하였다가 분실하여 곤욕을 치른 적이 있으니 한번 잘 알아보라고 귀띰을 해주었다.
「바로 그런 점이 보통이 넘는다는 것이야. 놈은 벌써 착복할 돈과 그렇지 않은 돈을 간파하고 있어.」
수사관의 어투나 몸짓이 몸에 배인 강경태는 모든 피의자를 일단 적으로 여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설마 어린것이 그렇게까지야...... 」
「어허, 자넨 선생 노릇만 해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네. 영악스러운 아이는 어른들 뺨을 친다구. 창선이 그놈이 그래. 겉으론 허약하고 어리숙해보여도 속으론 컴퓨터보다 두뇌 회전이 빨라서 자네 같은 사람은 당하게 되어있어.」
형사 강경태는 교사야말로 인간의 심성을 가장 심도 있게 다루는 전문직임을 전혀 참작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서 아이들과 생활하는 여건을 세상 물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취약점으로 간주하였다.
「보호자 최재만은 생부가 아니라던데 자넨 담임이니까 가장방문을 가봐서 잘 알겠구만.」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나는 창선의 집뿐만 아니라 우리 반 학생들의 가정을 전혀 방문하지 않았다. 일종의 직무유기랄 수도 있었다. 신학기가 되면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위해 반드시 가정방문을 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교사가 학생의 집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갖가지 잡음과 가정을 방문하는 교사를 백안시하는 일부 학부형들의 편견이 싫어서 가정방문을 생략하였고 그 대신 학생들과의 개별 면담을 실시하였다. 이것은 몇 마디 상담을 통해서도 충분히 학생을 파악할 수 있다는, 교직 경력 14년을 바라보는 나의 자만이기도 하였다.
유달리 가무잡잡하고 왜소한 창선과의 면담에서 파악한 사실은 부두에서 노동을 하던 아버지가 3년 전부터 허리를 다쳐 집에서 누워 있다는 것과 신발 공장에 다니면서 집안 살림을 맡고 있는 어머니가 아버지 술값을 제때 갖다 바치지 못하여 사흘에 한번쯤은 구타를 당한다는 것, 창선의 여동생 둘을 포함한 다섯 식구가 산복도로 위 월 12만 원의 사글세방에서 살고 있으며 아버지의 나이가 아직 60이 안된 데에다 가출한 지는 오래이나 주민등록상 장성한 창선의 형이 둘이나 있어서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을 받기에는 서류상의 장애가 많았다는 것 등이었다.
38년생인 창선의 아버지는 53년생인 어머니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창선의 형들의 나이를 보더라도 아마도 재혼인 듯싶었으나 굳이 창선에게 물어 보지는 않았었다.
집에서는 공고를 가라고 하지만 자신은 예고를 가고 싶다고 수줍어하면서도 또렷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창선에게서 그 어떤 문제점을 발견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미술 과목을 맡은 내가 담임하는 반에 배정된 것이 기쁘다며 도톰한 입술을 윗니로 누르며 수줍게 웃었다.
「문제는 빈곤이야.」
강경태는 동창들의 안부를 장시간 들먹이다가 무선호출번호가 적힌 명함을 건네주면서 수사관 생활을 통해 체험한 바를 바탕으로 결론지었다.
「빈곤이 결손을 낳고 결손은 범죄를 낳고 범죄는 결국 도태에 이르게 되는데 내 손에 체포되어 사형 당한 두 놈의 인생도 꼭 같은 코스를 거쳤어.」
「사형을?」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지.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탈옥수가 남긴 명언이 있잖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창선이 저 놈도 느낌이 좋지 않아. 내 특별히 조처해줄 테니까 잘 살펴보도록 해.」
말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하였다. 이제 15세 남짓 된 생명의 앞날을 함부로 예단하는 강경태의 인생관이 경솔하다고 보기에는 수사관으로서의 현장 체험이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징계위원회에서는 창선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리기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창선은 수업에 들어가는 대신 도서실에서 하루 종일 반성문을 적어내야만 하였고 학생주임에게 반성문이 통과되어야 귀가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창선은 동급생들에게 갖가지 명목으로 빌린 돈-거의가 주먹이 센 아이들의 이름을 팔아서-으로 무엇에 사용하였는지를 밝히지 않아서 학생주임으로부터 몇 차례 체벌도 받았다. 그렇지만 창선은 절대로 입을 열지도 않았고 반성문은 그저 다시는 아이들에게 돈을 빌리지 않겠다는 다짐만 되풀이해서 적어낼 뿐이었다. 보호자를 호출하여도 실제로 학교에 나올 여건이 못 되었으므로 결국 담임인 내가
창선이를 데리고 가정방문에 나섰다.
창선의 집은 비가 오는 날이면 산허리에 구름이 걸려 있곤 하던 고지대였다. 조선소의 전경과 항구의 야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이었는데 이런 움막집을 어째서 월 12만원씩이나 지불해야 하는 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골목에 붙어 있는 출입문을 열지 않고 주춤대는 창선이 대신 내가 문고리를 잡아 흔들었다.
「뉘시오? 좀 들어오시오.」
「학교에서 왔습니다. 창선이 담임입니다.」
방안에서 창선의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어두워서 잘 보이지를 아니하였다. 아랫목에서 부시시 일어나 앉는 사내에게서 독한 소주 냄새가 풍겨왔고 그 옆에는 김치 그릇과 술잔이 엎어져 있었다.
「아이구, 선생님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다 오시고. 대접할 건 없고....술이나 한 잔 하실랍니까?」
「몸도 불편하시다던데 이렇게 술을 마셔도 괜찮습니까?」
빈곤은 악순환이 된다지만 빈곤을 자청해서 불러들이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다 싶어 나도 조금 언짢은 어투가 되었다. 창선의 아버지 최재만은 나의 말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다시금 생각난 듯 소주를 부어 단숨에 마시고는 나를 쏘듯이 쳐다보았다.
「나요? 걱정마시우. 살고 싶으면 뭣 때문에 이렇게 마시겠오.」
아무래도 창선의 비행을 상의할 분위기는 못되었다. 삶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그에게 친자도 아닌 창선의 탈선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이런 경우가 바로 아버지가 없느니만 못한 실질적인 결손 가정이었다.
「알고 계시는지 모르지만 저 앤 내 새끼가 아니오. 지 에미가 데리고 온 자식인데 그래서 그런지 재주는 있다오. 저기 걸린 저 그림도 저 애가 그린 것인데 한번 봐 보시오. 」
출입문 위쪽에 걸린 액자엔 수채화가 끼워져 있었다. 솜씨는 있는 듯 했으나 정식으로 배우지 못해서인지 초보의 치졸함이 가신 것은 아니었다. 창선의 희망대로 예고로 진학하려면 지금부터라도 화실에 다니는 수밖엔 다른 도리가 없는데 월 10만원이 넘는 수강료를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설사 예술고등학교로 진학을 한다고 치더라도 창선의 형편으론 그 뒷일이 더 암담한 것이다.
「네 엄마 오는 소리다. 나가봐라.」
내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나 창선의 의붓아버지 최재만의 귀는 아내의 귀가를 진작부터 탐지하고 있었다. 창선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이고, 우짜것노....집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하며 걱정하는 소리가 방문 가까이 다가오더니 문이 왈칵 열렸다.
「선생님 오셨습니까? 잠깐만 계시이소. 시장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공장에서 퇴근하던 창선의 어머니는 집에 와서야 아들의 담임이 와 계신단 소리를 듣고 허둥대었다. 내가 문밖으로 뛰어 나가서 창선의 어머니의 손목을 붙들었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창선의 일로 잠깐 말씀만 드리고 가겠습니다. 」
유달리 작은 몸집에 한 쪽 다리를 절룩거리는 창선의 어머니에게서 경황 중에도 묘한 느낌이 풍겨왔다. 40여 년을 넘게 살다보면 처음 보는 사람도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고 늘 보던 사람도 어느 순간에는 낯설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창선의 어머니는 뭐랄까, 분명히 내 기억의 어느 골을 메꾸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었다.
「그래도 이 높은 데까지 오셨는데 그냥 가실 수야 있습니까. 잠깐이면 됩니다. 바로 요 밑이 시장이니까요.」
「아니오. 그럴 시간도 없습니다. 실은 창선이가 학교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징계 중에 있습니다. 상당액수의 금품을 빌렸는데 어디다 썼는지 밝히지를 않는군요. 혹시 집에서 알고 계시나 해서 이렇게 들렀습니다.」
「네에? 우리 창선이가요?」
절망의 표정이 그녀의 이마에 드리워지는 순간 언젠가 꼭 이와 같은 표정의 절망을 목도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또 다시 치솟았다.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창선이가 도둑질을 했습니까?」
누가 봐도 박복해 보이는 사람의 절망은 자칫 짜증스러워 보이기가 쉽다. 선천성 소아마비였을 창선의 어머니 역시 태어난 이래로 살아 있다는 자체가 무슨 징벌처럼 무거운 업보가 아니었을까? 능히 그 고통만으로도 절망의 한계를 넘어 섰을 터이나 지금 또 다시 아들의 비행으로 그나마 실낱같은 한 가닥 삶의 기대마저 무너지고 있는 중이었다.
교직에 있다 보면 여러 가정의 벼라별 불행을 다 목도하게 되는 법이긴 하지만 지금 내 눈앞의 창선의 어머니는 내 삶과는 무관한 불행으로 치부하기에는 아무래도 무언지 모를 끈끈한 여운이 자꾸만 옮겨 붙는 것이었다.
「도둑질한 건 아니지만.....」
「훔친 게 아니라면 그럼, 이놈이 죽은 지 애비처럼 또 남의 돈을 등쳐먹은 게로구나! 이리 오이라, 이놈. 니하고 내하고 단박에 죽자.」
조그만 체구에서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창선의 어머니는 아들의 멱살을 왁살스럽게 낚아채더니 그만 아들과 함께 골목을 뒹굴기 시작하였다. 창선은 어머니의 한풀이에 가까운 악다구니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창선의 반응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끝없이 반복되는 불행에 익숙한, 습관성에 가까운 체념이었고 그 어머니의 악다구니는 타인의 재물을 탐한 아들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는 채찍질이라기보다는 가난이라는 덫에 걸려 몸부림을 치는 본능이었다.
「이 놈아, 어디 물려받을게 없어 그 따위 더러운 행우지를 대물림했나, 이놈아. 니죽고 내죽자!」
내가 엉겨 붙은 모자를 간신히 떼 놓았지만 창선이 어머니의 분노는 쉽사리 사그라들지를 아니하였다. 골목에 드러누운 창선의 어머니를 부축을 하다시피 하여 방으로 들어갔다. 그 난리통에도 창선의 의부는 두 딸과 함께 어울리지 않게도 텔리비젼의 오락프로 가요톱텐을 시청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선생님. 이 일을 우짜마 좋습니까? 고마 교도소에 처넣으마 사람이 되어 나오까예?」
「교도소에 넣는다고 오가 놈의 피가 없어지능강?」
창선의 의부가 아내를 보고 힐난하였다. ‘오가 놈’으로 불려지는 아내의 전 남편의 이력을 최재만 그도 꿰고 있는 눈치였다. 최창선의 본성이 오씨였다는 생각이 들자 불현듯 한 인물이 떠올랐다. 사람에겐 몇 십 년을 살다보면 각기 성(姓)을 대표하는 인물이 하나씩 기억에 자리 잡게 마련이다. 나의 경우는 오씨를 대표하는 인물은 오기출이었다.
일찍이 나의 소년기에 나타나서 출중한 재능과 영민한 감수성으로써 경탄과 긴장, 희망과 용기, 기만과 배신, 도전과 실패 및 좌절과 몰락의 전형을 유감없이 보여 준 한 많은 오기출, 그는 가난이 낳은 영원한 사생아로서 그 역시 가난의 덫에 걸린 인생을 끝내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 역시.....!
「혹시 돌아가셨다는 창선의 아버지가 오기출씨 아닙니까?」
스스로도 화들짝 놀랄 정도로 어떤 예감의 일치를 순간적으로 확신하였고 놀란 눈으로 멍청하게 쳐다보는 창선의 어머니에게서 15년 전의 기억을 번개같이 건져내었다.
「저 모르시겠습니까? 기출이 친구, 마산의 간판점으로 찾아갔던 친굽니다. 생각 안 나세요?」
「그러면 그때 창녕에 사신다는........?」
「맞습니다. 바로 접니다. 」
「아이고, 세상에! 무슨 이런 기막힌.....」
인연이었다. 참으로 기구한 인연이었다.
「소식이 없어 궁금했습니다. 그래, 친구가 언제 죽었습니까? 죽은 건 확실합니까?」
워낙에 잡초 같은 인생이어서 오기출의 죽음은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의 소식은 죽음을 전제로 내 앞에 다가왔다.
「서른 셋 되던 해 위암으로 죽었습니다.」
「왜 연락을 안했습니까?」
「빨리 죽을 작정을 했던게지요. 친구 분이 아시면 술도 못 마시고 더디 죽을 뿐이라면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게 했어요.」
「위암인데도 술을 마셨나요?」
「죽기 사흘 전까지 마셨어요.」
「고통이 엄청났을 텐데도 술을? 병원엔 안 갔었나요?」
「그저 술병으로만 알았지요. 병이 든 지 석 달 만에 죽었는데 그 동안엔 신음 한 번 안 했어요. 위암인 줄도 죽고 나서야 알았어요.」
그렇다면 그건 자살이었다. 가장 잔인한 방법의 자살이었다. 세상에 위암으로 죽어가면서 신음 한 번 안 하고 죽을 수 있었다니.
「내가 죄 많은 년이지요. 하긴 나도 그때 같이 죽을 작정이었으니 피를 토하고 나서도 술을 찾으면 또 드렸지요. 창선이 애비를 죽인 사람은 바로 납니다. 내가 남편을 어서 죽도록 부채질했지요. 이 독한 년이 그때 고마 따라 죽어야 했는데 ....흐이고오 흐이고오 창선아!」
「이 여편네가 선생님 앞에서 무슨 청승이야? 빨리 있는 대로 저녁상이나 차리지 않고 뭐하고 있어?」
아내의 때아닌 곡성에 발끈한 최재만의 호령 소리를 등뒤로 나는 창선의 집을 허우적거리며 헤쳐 나왔다. 우거진 밀림을 헤치고 나오듯이 창선의 집, 아니 오기출의 잔영으로 우거진 정글을 헤치고 나왔다.
그의 끈질긴 불행은 그가 죽었음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오기출의 불행은 철저하게 유전되고 있었다. 수 억 년을 두고도 어김없이 북제가 된다는 DNA처럼 오기출에게는 철저한 가난의 덫이 복제되고 있었다.
Ⅱ
오기출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도 짐승처럼 몸뚱이가 털로 뒤덮여서 의복에 대한 걱정이 없어야 하며, 개미처럼 굴을 뚫어서 생활하거나 까치처럼 나무 위에다 둥지를 틀어서 집 걱정이 없어야 하며, 배고프면 사냥하고 배부르면 먹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자처럼 먹잇감을 저장할 줄도 모르는 맹수여야 하였다.
대체 빈곤(貧困)이나 부유(富裕)는 먹이나 의복 따위를 저장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니 오기출의 인생에서 근본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한 것은 바로 이 빈곤이다.
몸에 털이 없는 일차적 증세가 누구에게나 공평한 사실은 참으로 통쾌한 일이다. 옷을 구하는 과정과 옷을 걸친 후의 사정에서부터 편차가 생기긴 하지만 그 편차로 인한 희비가 오히려 일률적으로 털을 부여받은 짐승들이 감히 우러르지 못할 쾌로 치부될 터이다. 더구나 마음먹기에 따라 벗음과 입음의 경계를 뛰어 넘을 자질까지 구비했음에랴. 미각을 밝히는 폐단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자연계에서 혈육지간이 아님에도 먹거리를 나눌 줄 아는 유일한 종(種)에 소속된 은총 또한 대단한 것이다 이 은총은 먹거리를 두고 혈육지간까지도 능히 고의적인 살상을 일삼을 수 있는 불가사의한 종족에 소속된 불명예로써 이내 상쇄 당하고 말지만 적어도 풍족하게 배를 채우는 면전에서는 굶어죽는 일은 드물다. 인간은 세파에 예사로 시달리면 아무 데서나 잘 수가 있다. 이 아무 데의 기본적인 조건은 굴러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경사각을 유지하면서 풍상우로를 가리는 정도면 되는데 나는 몰라도 오기출의 안식처는 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정작 난처한 것은 나도 그랬지만 유독 오기출과 같은 독특한 생명체를 온전하게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위에 열거한 이점들은 별반 도움이 되지를 못했다는 점이다. 딱하게도 그의 체내에서 진행되는 신진대사의 걸림돌은 지독한 가난 외에도 또 다른 무엇이 있었던 것이었다.
오기출의 인생을 도태시킨 숨은 공로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우선 황새가 거닐던 자본주의를 이 땅에 들여와 뱁새의 보폭으로 밟아 댄, 덧창 난 자본주의와 그 자본주의의 곪아터진 열매를 무작정 따도록 부추긴 눈 먼 교육제도, 그로 인한 오기출 자신의 대책 없는 부화뇌동 및 끝까지 부화뇌동을 청산하지 못한 무지(無知)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우습게도 오기출이 자본주의의 덫으로부터 탈출하는데 실패한 결정적인 요인은 잡초처럼 제 멋대로 자라난 예술적 영감이었다. 오기출과 같이 번득이는 창의력이 부족하였던 나는 늦게나마 탈출을 단념한 덕분에 적당한 선에서 안주하고 말았지만 오기출 그가 자본주의의 덫에 걸려 탕진한 젊음은 너무나 싱싱한 것이어서 실로 가슴 아프다.
삼십여 년 전, 오기출은 놀라운 재능과 충격적인 가난의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었다. 중학교 2학년 짜리가 쓴 편지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필치와 문장력, 그리고 사람이 기거할 수 있는 주거 환경으로 그와 같은 최악의 구조물을 처음 목격한 충격 등은 거의 경악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가 지닌 재능과 가난의 일정 부분은 이미 나에게도 익숙한 것이었고 또 그 당시엔 가난한 집 아이들이 재주가 있는 사례가 빈번하였던 까닭에도 불구하고 오기출이 처한 환경의 전반적인 상황은 경악 바로 그 그것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가난이 장차 그의 재능과 인성을 어떻게 도태시켜 나갈 것인지를 당시의 내 인식으로써 예측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었다. 때문에 그 경악의 성격을 지금 돌이켜 본다면 오기출이 지닌 재능엔 질투가 완전히 배제되지 못한 경탄과, 찢어지게 가난한 그의 환경엔 우리 집과 비교된 미묘한 우월감 따위가 약간 가미되긴 했지만 가슴 저리는 동정이 쌓여 형성된 중압감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기출이 나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경악토록 한 것은 아무래도 그의 천재적인 그림 솜씨였다.
진주 개천예술제의 중.고등부 사생대회장엔 그림을 더 이상 그릴 의욕을 상실해버린 수많은 남녀 학생들이 오기출의 등 뒤로 몰려들었다. 일반적으로 재능겨루기인 사생대회 같은 곳에선 상대방의 출중한 재능을 목격하는 순간부터 전의는 저절로 상실되기 마련이다. 중학교 2학년인 오기출이 그려내고 있는 화폭엔 가을을 수놓는 단풍을 어째서 아름답다고들 하는지 그 원인 극명하게 형상화되고 있었다. 나도 진작에 그리기를 포기하고 붓을 집어던진 부류중의 하나가 되어 그의 화폭을 주의 깊게 노려보았다.
이해하기가 힘든, 그러나 그런 기적인 존재한다는 것을 직접 발견하는 기쁨에 겨운 채로 우리는 오기출의 손놀림에 의해 저질러지는 색채의 마술적 경지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나로서는 불과 하루 전 그와의 첫 대면에서 받은 인상을 전면 재조정해야 하는 이중의 혼돈 속을 헤매고 있었으므로 그의 재능이 발산하고 있는 충격은 오기출의 주변에 모여든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력한 것이었다.
도대체 흑인의 피 한방을 섞이지 않고도 피부가 어찌 저리도 검을 수가 있으며 호박에 찍힌 손톱자국보다도 더 가느다란 저런 눈에도 과연 세상의 윤곽이 제대로 보여 지는 것일까, 그리고 인간의 문명된 환경과 그 어떤 연관을 지을 작정으로 입술은 저다지도 두툼하단 말인가! 열대우림 지역에서 서식하는 인종을 제외하곤 아마도 오기출의 입술이 가장 두터울 것이다. 숫제 풍선에 가까운 그의 입술은 너무 두껍고 둔중하여 당장 입술의 날렵한 동작여부로 확정되는 몇 가지 종류의 우리말 발음조차 기이한 소리로 뒤바뀌는 판국이 아닌가! 그건 그렇고 이 무슨 엉뚱한 수줍음이냐. 나의 의기를 완전히 주눅 들게 만든 그 달필의 주인공이, 세상의 묘리를 거침없이 갈파해내던 명문의 편지를 썼던 주인공이 정작 펜팔로 맺어진 같은 또래의 친구 앞에선 부끄러워 고개도 제대로 들지를 못하다니.........
오기출은 자신이 다니던 중.고등학교의 미술 선생님 하숙방 구석에서 도무지 고개를 들지 않는, 우직한 한 마리의 곰이었다. 우리 둘의 관계를 맺어 준 처녀교사들은 개천 예술제를 계기로 오랜만에 만난 미술대학 동기생들끼리의 반가움도 잠시 접어 둔 채 깔깔대며 오기출을 놀려대었다.
「어마마마, 이 머시매 좀 봐? 그렇게 기다리던 친구가 왔는데도 바로 쳐다보지도 못해? 쟤가 지금 겁먹었나 보다. 너희 학교 미술부가 훨씬 세다고 몇 마디 해 줬더니만 저러고 있다 얘.」
「그래에? 난 출이가 저럴 줄은 몰랐는데? 옳아! 그러고 보니 지금 라이발 의식 땜에 긴장을 한 거로구나?」
「야이, 곰 같은 녀석아, 너 만나보려고 일부러 기차 타고 먼데서 온 친구한테 이게 무슨 꼴이니? 어서 악수하고 우리 동네 구경도 시켜주고 그래야지.」
진주 근방이라곤 해도 오기출의 동네 역시 우리 동네와 같은 소읍에 지나지 않았다. 미술 선생님에게 떠밀려 마지못해 선생님의 하숙방을 나선 우리는 시골이라 별로 놀러 갈 데도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그를 만나기 오래 전부터 흉중에 품고 있었던 내 나름대로의 궁금증-도대체 이 친구의 공부방에는 무슨 책이 꽂혀 있으며 어떻게 생활하고 있길래 매 번 편지마다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어른스런 냄새를 물씬물씬 풍겼단 말인가?- 때문에 오기출이 한사코 싫다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의 집을 가 보게 되었다.
한 마디로 집이랄 것도 없었다. 흡사 연극 흥부놀부전에 나옴직한 무대 장치 같은 움막이었는데 마당에서 바로 안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어찌나 낮았던지 내 딴엔 최대한 머리를 숙였는데도 이마가 위 문턱에 부딪히고 말았다.
「출이 친구가 왔구나. 이리 앉아 저녁 좀 같이 먹자. 」
말소리는 들렸으나 갓 영화관에 들어섰을 때처럼 방안은 깜깜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를 않았다. 얼마를 지나 동공이 커지고 조리개가 한껏 넓혀진 나의 눈에 오기출이네 집 안방의 윤곽이 천천히 드러났다. 병든 아버지, 고생에 찌든 어머니, 올망졸망 둘러앉은 오기출의 동생들이 세숫대야만한 양푼에 담긴 보리밥과 무짠지 하나로 저녁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흙바닥에 바로 삿자리를 깐 방바닥 윗목에는 고구마 종자 등속이 가마니와 함께 쌓여 있었고 벽지도 바르지 못한 흙벽엔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어 그 구멍을 땜질한 창호지는 바람이 불 적마다 뻘럭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공부방은 고사하고 눈어림으로도 앉은 식구가 그대로 드러누우면 정작 오기출 자신이 누울 자리가 없었다. 한참 후에 오기출은 자신은 동냥잠으로 잠자리를 해결한다고 내막을 털어놓았다. 얼른 말귀를 못 알아듣는 나에게 오기출은 친구 집을 돌아다니며 남의 집에서 잠자리를 얻어 자는 잠을 동냥잠이라고 뜻풀이까지 해 주었다.
이로써 나는 잠자리도 구걸의 대상이 된다는 또 하나의 새로운 현실을 발견하였다. 제 한 몸 누울 자리가 없어 책가방을 아예 교실에 두고 있다는 오기출은 학교에서 지급되는 장학금 외에도 그의 재능을 아끼는 선생님들로 구성된 ‘오기출 후원회’ 덕분에 그나마 학교에 다니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들은 후원회가 지원하는 금액보다도 오기출 자신이 직접 구두를 닦거나 아이스께끼 장사를 정식으로 시작하는 것을 더 절실히 원하고 있어서 그의 학업은 언제 중단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안고 있었다.
세상살이가 어떤 건지도 몰랐던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서로가 가난하다는 공통점으로 쉽사리 일치가 되어 ‘열심히 노력하여 반드시 성공하자’는 주먹구구식 결의를 하였다. 어떤 종류의 성공일지는 몰라도 누군가와 함께 결의를 하는 순간은 매우 희망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오기출과의 결의는 우리 둘이 지닌 재능과 포부가 비슷한 연유로 일종의 경쟁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비록 우정어린 선의의 경쟁이긴 하지만 장래에 누가 유명한 화가로 성공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우린 흐뭇한 긴장감을 나누어 가졌다.
그러나 우리가 설정한 희망들은 얼마 못 가서 일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60년대를 청소년기로 보낸 이 땅의 젊은이들 치고 자신의 꿈대로 굴절 없는 진로를 택할 수 있었던 경우가 몇이나 있었을까마는 나와 오기출의 경우는 그 굴절의 정도가 너무나 혹심하였다.
대학까지 보낼 여건이 못되니 상업학교를 가서 취직한 연후에 야간대학을 가든지 맘대로 하라고 결정이 난 나의 경우는 그래도 훨씬 나았다. 고향의 중학교와 붙어있던 고등학교로 그대로 진학하였던 오기출은 채 1학년을 못 다니고 간판점에 취직을 해야만 하였다.
「도와주시던 선생님들이 대부분 전근가셨어. 이젠 내가 벌지 않으면 아버지 약도 못 구 하고 동생들은 굶어야 해.」
나를 찾아 온 오기출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함께 성공을 하자고 결의를 한 후 희망찬 발걸음도 제대로 떼어보기도 전에 닥쳐온 오기출의 낙오였다. 그렇지만 나로선 어떻게 힘을 써 볼 도리가 없는 그의 중도 탈락이었다. 막연하나마 ‘세상일이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를 가슴에 새겨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오기출의 가슴에는 세상일이 어떻게 맘대로 안 되는 가를 신물이 나도록 새기는 일만이 계속되었다.
재수를 하느라 서울 바닥에서 나의 젊음이 덧없이 소진되기를 6개월 째 접어드는, 태양이 작열할 채비를 갖춘 초여름의 어느 날 오후, 신촌의 이화여자대학 앞 거리를 꽉 메운 화려한 차림의 여대생들의 물결사이로 웬 낯익은 거지 하나가 지나가고 있었다. 거지는 뜻밖에도 오기출이었다. 며칠 째 세수를 못한 듯 얼굴엔 땟국물이 흘러내렸고 어쩌다가 팔을 부러뜨렸는지 깊스를 한 채 초점 잃은 눈으로 인파에 섞여 흘러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의 어깨를 쳤다. 오기출은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야, 너 출이 아니냐? 서울엔 웬 일이냐? 이 팔은 어떻게 된 거냐?」
속사포 같은 질문을 퍼부으며 나타난 나의 등장에 오기출은 놀랍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반가워서 어깨를 친 것이 골절된 팔의 통증을 폭발시켰는지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어..... 그래 , 니....... . 니도 서울에 있었더나?」
「그래. 이 팔은 우짜다가 뿔랐어?」
「그럴 일이 좀 있었다. 그런데 이 근처에 영화 볼 데 없으까?」
「영화는 왜?」
「보고 싶어서 그래. 아무거라도....」
「아파서 정신을 못 채리는 판에 영화는 무슨 놈의 영화, 이럴 게 아니라 내하고 하숙으로 가자. 우선 좀 씻어야겠다.」
그러나 오기출은 방에 들어서는 즉시로 쓰러져서 잠을 잤다. 그에게 있어서 세수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두터운 입술을 헤벌린 채 드르릉 코를 고는 오기출의 깊은 잠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그의 육신의 안전이 보장된 곳에서 마음 놓고 잠을 자지 못했는가를 직감할 수 있었다. 명색이 친구의 하숙방이라고 그는 모처럼 마음 놓고 영육을 편히 누인 자세로 잠에 빠져 있는 중이었다. 유난히 검은 오기출의 피부에는 모질고도 독한 세파에 긁힌 자국들이 역력했다. 상처투성이인 오기출의 솥뚜껑 같은 손에 비하면 여자 손과 다를 바 없는 나의 손이 세파에 시달리고 있는 그와 나와의 차이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오기출은 또 다시 뼈가 부러진 현실로 되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난 뒤 골절상으로 인한 신음을 섞어가며 지나온 몇 년간의 사정을 들려주었다.
득도를 위한 고행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술의 밥을 구하기 위해서도 그에 못지않는 고행이 있음을 오기출의 험난한 표류가 증명하고 있었다. 더구나 득도를 위한 자발적 고행에 비해 순전히 강요된 고행 속에서 어느 한 구석 보람의 요소를 그가 느낄 수 있었겠는가.
간판점 주인이 하도 오기출의 엉덩이를 자주 걷어차는 바람에 그는 더 이상 간판점에 붙어 있지를 못하고 뛰쳐나와야 했다고 하였다. 주인의 발길질의 원인에 대해선 그는 상세한 설명을 생략했지만 발길질을 당해야 하는 숙명적인 당위쯤은 나도 짐작할 수 있었다. 적어도 오기출과 같은 재능의 소유자에게 있어서 고용살이 그 자체는 고문에 해당되는 비틀린 삶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쉴새없이 솟구치는 상상력을 감당 못해 잠시라도 머릿속을 정리하고 앉았노라면 주인의 눈에는 얼빠진 놈으로 비치기가 십상이었을 것이다.
오기출 그는 한낱 간판공의 조수 신분으로 그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창조적 상상력을 감당해내기에는 상상력의 용량이 너무 비대하였던 것이다. 거대한 스튜디오 한 가운데에서 이미 고갈된 상상력을 짜내느라 갖은 괴팍과 패악을 부려대는 얼치기 예술가들에 비하면 이 얼마나 안타깝고 억울한 모순이냐.
그는 차라리 붓 한 자루만 들고 전국을 유랑하는 삶을 선택하였다. 방랑은 그의 천성과 맞아 떨어졌다. 일찍이 잠자리부터 정처가 없는, 동냥잠으로 성장한 그에게 떠도는 삶이 오히려 평온하였다. 한 곳에의 정착을 강력하게 바라는 나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극적인 사건들이 그에게는 일상이 되어 따라다녔다.
페인트칠할 데가 있으며 칠해주고 글씨를 필요로 하는 곳엔 글씨를 써 주면서 받은 돈으로 밥만 사먹고 남은 돈은 언제나 집으로 송금을 하였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고향의 그의 집은 어머니의 날품만으로는 식구들의 허기를 채우고 병든 아버지의 생명을 유지시키기에는 너무나 어려워 그의 희생을 보태지 않으면 안 되었다. 때문에 잠시라도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떠돌기 위해선 좀 더 많은 몫의 송금이 병행되어야만 하였다. 그래서 오기출은 대구의 어느 신축 목욕탕 굴뚝에 기꺼이 올라가게 되었다. 까마득히 높은 굴뚝에 씌어지는 글자 한 자는 평지의 몇 곱의 값을 쳐주었다. ♨를 그린다음 청수탕의 3글자 중 마지막 남은 ‘탕’자를 쓰다가 굴뚝 밑에서 줄을 조작하고 있던 인부들의 부주의로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말았는데 그것도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라 목욕탕 옆 목공소의 경사진 지붕에 일차로 떨어진 다음 이차로 추락한 곳이 목공소 앞마당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아교솥이었다고 했다. 골절상에다 화상까지 입은 오기출은 그의 앞에 달려와 울면서 사정을 하는 인부들의 가난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주머니를 있는 대로 털어서 내놓은 그들 가난의 규모로는 자신의 부러진 팔뼈의 복구가 불가능한 것을 알고 오기출은 고민하였다.
-대한민국에서 누가 나의 뼈를 고쳐 줄 수 있을까-
가장 위급한 순간의 오기출에겐 언제나 위기에서 그를 건져주는 하나의 그룹이 있었다. 한때는 후원회를 조직하여 생계의 일부까지도 도맡았던 선생님들은 비록 각지로 흩어졌지만 방랑에 지친 오기출이 찾아가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분들이었다. 중학교 때 과학선생님의 남편이 김포공항 의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의사라는 사실을 떠올린 오기출은 부러진 팔을 안고 밤 열차를 탔다. 아무런 응급처치도 안된 골절된 팔은 야간열차가 흔들릴 적마다 뼈가 으스러지는 통증을 오기출에게 안겨주었다. 초죽음이 된 오기출이 천신만고 끝에 공항에 도착하였지만 그러나 중학교 때의 사실이 이미 몇 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계속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선생님의 남편은 없었다. 다행히 사정을 딱하게 여긴 의무실의 다른 의사가 치료를 해주어서 오기출은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러나 통증이 너무 심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지간한 아픔에는 면역이 되어 있던 오기출도 골절의 통증을 이겨내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는 영화관을 찾았다.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고 싶었다. 영화 속의 세계로 도피하고자 그는 영화관을 찾았다. 그러다가 나를 만났다.
「그래 앞으로 어떡할 작정이냐?」
내 딴엔 가장 절박한 현안을 물어본 질문이건만 오기출은 도리어 나를 보고 웃었다.
「너는 내가 무슨 작정 같은 것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으로 보이나?」
오기출의 반문이 담고 있는, 달관이랄지 체념이 전혀 생소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벌써
우리 나이에 익숙한 것으로 여기기에는 너무 억울하였다.
「어때? 다시 공부를 시작해보는 거. 서울 와서 보니까 어렵게 공부하는 사람들 많이 보았어.」
「공부.....?」
「그래. 나하고 같이 해보는 거야. 좀 힘들겠지만 낮엔 일하고 밤에 책을 보면 되지 않겠니?」
「너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니?」
「 .................. 」
가느다란 오기출의 눈에서 섬광이 흘렀다.
「한때 나도 그렇게 작정했었지. 그러나 그게 얼마만한 착각인지 너도 아마 경험했을 걸?」
「.......................... 」
「적어도 우리 처지에 공부란 아무리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어 있어.」
오기출보다 나의 체험이 일천한 탓이었을까. 면도날 같은 오기출의 단정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하는 처지를 당장 뼈저리고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부에 대한 주먹구구식 미련을 씻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는 마쳐야 하지 않겠니? 너 정도면 검정시험으로도 충분히 끝낼 수 있으니까 해보는 소리야.」
고등학교를 졸업 못한 오기출에 비해 그 어떠한 기득권 따위도 확보하지 못한 처지이면서도 나는 그의 학벌을 걱정하고 있었다. 세뇌란 무서운 것이다. 오기출의 장래는 그의 학벌에 비례하여 당연히 어두운 것으로 비쳐지는 것이었는데 이 모두가 상아탑이 우골탑으로 변질되는 사회적 풍조에 이미 세뇌될 대로 되어버린 내 인식의 벗은 모습인 것이다.
「그러잖아도 시골로 내려갈까 한다. 김승녀 선생님이 자기가 근무하는 농고에 3학년으로 편입시켜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어.」
「그래? 그거 참 잘 됐다. 우린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공부를 한번 해보는 거야.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 않았어?」
어떤 법칙에 의해 이 세상이 순진한 젊은이의 고생을 끝도 한도 없이 요구하는지 알 길이 없었던 나는 오기출의 일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가는 모습을 번연히 보면서도 정체모를 희망에 들떠 있었다.
이튿날 오기출은 시골로 내려갔다. 서울역에서 오기출은 배웅 나온 나에게 말했다.
「너야말로 고향에 가면 최소한 하루 세 끼의 밥과 잠자리는 보장될텐데 서울서 버티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정말로 공부가 목표라면 필요한 건 밥이 아니라 시간이야.」
오기출의 지적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것이었다. 나는 서울에 공부하러 올라왔다. 그러나 정작 공부는 내 육신의 임상적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밥과 잠자리를 확보하기에 바빠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인 양 착각을 하며 살았다. 왜냐하면 내가 치르고 있는 모든 고생의 목표는 공부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일련의 고생은 공부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언젠가는 이러한 고생에 대한 보상을 위대한 서울이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하며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날이 갈수록 육신의 진만 빠지는 고생은 그 강도가 높아졌고 가까이 해야 할 책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버렸다. 공부를 위해선 밥이 아니라 필요한 건 시간이라는 오기출의 지적에 정신이 번쩍 들었을 때는 이미 6개월이라는 금덩어리 같은 시간이 종적을 감춘 뒤였다.
며칠동안 심사숙고하였다. 내가 벌어서 대학까지 공부를 마치겠다는 계획은 그 동안 직접 부딪혀 본 서울의 각박한 생태계에 쉽사리 뿌리를 내릴 것 같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성공해서 돌아가겠노라고 장담해놓고 6개월도 안돼서 낙향하는 꼴을 보인다는 것 또한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수많은 상경파들이 낯가죽에 화상을 입을 정도로 모욕적인 서울의 냉대를 어금니를 악물며 참아내는 원동력은 바로 고향 사람들에게 맥없이 낙향하는 꼴을 보이기 싫은 한 줌의 자존심 때문이다. 내게도 낙향을 거부하는 자존심은 어김없이 남아있어서 시간이라는 금덩어리와 자존심이라는 추상적인 금덩어리를 놓고 머리카락까지도 바짝 타는 갈등을 겪어야 하였다.
물론 고향의 집에는, 거지와 진배없는 오기출의 경우와는 달라서 하루 세 끼의 밥과 잠자리 정도는 보장된다. 문제는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공부에 효과적으로 쪼개 쓰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곳이든 의식주가 제공되고 시간만 주어진다면!-
바로 이거야말로 내가 이 지긋지긋한 서울 바닥에서 그렇게도 갈구하던 환상의 조건이 아니었던가! 한 시가 급하다. 보따리를 싸자.
낙향은, 서울에서의 탈출은 이렇게 해서 결행되었다. 피골이 상접한 나의 몰골은 어머니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한 형상이어서 서울서 살아 돌아온 것만 하여도 대환영이었지만 아버지는 ‘사내가 한번 뽑은 칼로 썩은 호박도 찔러보지 못한’결과에 대해서 드러내놓고 책망하였다.
「하는 꼴 보니 아무 것도 안 되겠다. 공부고 뭐고 다 때려 치워라!」
아버지의 질책은 순전히 내가 빼 든 칼날의 경도(硬度)와 썩은 호박이나마 서울 호박이 지닌 경도의 차이가 얼마만한 것인지 전혀 모르는 데에서 터져 나온 것이었지만 성공도 못한 굴욕적인 낙향의 대가로는 혹독한 것이었다. 거기다가 아버지는 지난 날 나의 과오를 잊지 않았다.
「애비 시키는대로 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지. 지금쯤은 은행원이 되었을 것 아니가? 한 치 앞도 못 보는 녀석이 뭐 하나 제대로 하겠어.」
서울서 성공해서 돌아 올 아들에 대해 은근히 품었던 기대가 무너진 뒤끝이라 아버지의 실망은 하루아침에 사그라들지를 않았다. 어머니는 은행원도 대학생도 되지 못한 아들과 그러한 아들의 꼴을 평온한 눈길로 보아 내지를 못하는 아버지 사이에 하나의 완충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이웃할머니 혼자 사는 오두막의 작은 방을 나를 위해 마련해주었다.
나는 아버지의 시선이 닿지 않는 완충지대에서 다시 수험 준비에 돌입하였다. 시험일까지는 6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그해 여름이 더웠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에 없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갖가지 고육지책을 동원하였다. 오는 잠을 막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러나 계속 잠에 빠져 있는 것은 더더욱 어리석은 짓이었다. 잠깐 조는 듯 숙면을 취하되 곧 일어나는 방안을 강구하였다. 다리를 책상 밑에 구겨 넣은 채 잠깐 졸다보면 바위에 깔린 악몽이 이내 잠을 깨워주었다. 물을 많이 마시면 참기 힘든 요의가 잠을 깨워주기도 하였다.
공부방으로 찾아오는 고향의 친구들은 귀중한 시간을 갉아먹는 일종의 적군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포용할 입장이 못 되었다. 그들은 이해한다 하면서도 응어리진 감정을 안고 등을 돌리기가 일쑤였다.
가을이 깊어졌고 예비고사도 끝났다. 11월도 저물어 가는 어느 날 저녁 어스름 무렵에 고향에서 멀지 않은 이웃 동네의 농고에 다니고 있던 오기출이 목발을 짚고 나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다리뼈를 부러뜨렸다고 했다. 게다가 오는 도중 동구 밖의 하수구에 빠져 더러운 오물로 범벅이 되었다.
오기출과 나는 소주를 마셨다. 아무 말 없이 소주를 마시던 오기출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 인생은 아무래도 실패작인 것 같애.」
오기출의 두터운 입술 사이로 자조가 섞인 웃음이 새어나왔다.
「우리 어머니가 지지리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곱사한테 논 서마지기를 받고 팔려가듯 시집을 갔었는데.....」
갑자기 오기출의 눈이 충혈되는가 싶었는데 눈물보다 콧물이 먼저 떨어졌다.
「도저히 살수가 없어서 도망을 쳐 나와 지금의 아버지를 만나서 나를 낳았어. 폐병이 들어 언제 죽을지 모른다. 」
그가 자신의 인생을 실패작으로 규정지은 배경에는 이미 그 이전에 또 하나의 실패작인 부모의 낙오된 인생이 있었다. 오기출은 실패를 숙명적으로 대물림을 당해야만 하는 신세타령을 하기 위해 나를 찾아 온 것이었다.
「부모나 동생들은 언제나 내 어깨를 짓누르는 바위덩어리와 같다. 차라리 내가 고아였다면 나 혼자 자유롭게 떠돌아다닐 수나 있는데.....내가 벌지 않으면 동생들은 굶어 죽는다.」
그래서 그는 농고에 다니면서도 보리타작과 같은 농사일을 거들든가 자취방에다 동네 쪼무래기들을 모아서 가르쳐서 자신의 입칠과 동생들의 입칠 까지도 떠맡아야만 하였다. 정미소 지붕에 페인트칠을 해주러 올라갔다가 피댓줄에 감겨 떨어지는 바람에 발목뼈를 다쳤다고 했다.
「김승녀 선생님은?」
객지를 떠돌던 그를 불러다가 편입을 시켜 준 노처녀 김승녀는 오기출의 재능을 아끼고 그의 가난에 가장 가슴아파한 선생님 중의 한 분이었다. 먹고 입는 것 걱정 말고 교육대학에 진학할 준비를 하라고 오기출에게 매일 성화를 부린다는 이야기는 얼마 전 오기출이 보낸 편지에 적혀있었다.
「그저께 대판 싸운 뒤로 말도 잘 안 하신다. 」
「싸우다니? 누구하고?」
교육대학 진학을 위해서 당분간 고향의 동생들 치닥거리는 뒤로 미루고 입시준비에만 전념해달라는 것이 김승녀 선생의 요구였고 오기출은 자신의 결혼까지 연기해가며 도와주시는 은사가 고맙기 그지없지만 식구들과 병든 아버지를 제쳐두고 입시에만 전적으로 매달릴 수 없는 형편일 뿐만 아니라 또다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가능하지도 못할, 더구나 미대도 아닌 교육대학에는 가기 싫다는 고집으로 맞섰는데 기어코 그저께는 사제간에 기묘한 언쟁이 벌어졌고 믿었던 제자의 이해 못할 배은망덕에 크게 실망한 은사는 다시는 오기출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결별 선언이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왜 그런 짓을 했니?」
전적으로 오기출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나는 마치 추궁하는 투로 물었다. 그러나 오기출은 말없이 소주잔만 비웠다.
「도와주시는 거야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일이지.」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나아지는 건 아무 것도 없어.」
「그건 너무 뻔뻔스러운 심보 아냐?」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도움을 받았으니 당연히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대가가 아니고 보답이야.」
「마찬가지야. 이미 내 모습이 아니기로는....」
오기출이 필요로 하는 도움이란 자신의 모습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의 뒷받침이었다. 약간의 개량된 밥과 잠자리를 제공받은 표시로 그의 본질에 벗어나는 변화를 주문하는 것을 그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오기출 그는 자신의 말처럼 실패작임에 틀림이 없었다. 적어도 이 세상에서 오기출이가 자신의 모습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획득할 가능성이란 그 어디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가장 불우한 환경의 주인공이 가장 사치한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성을 타고 태어난 것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었다.
내 앞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오기출은 가난과 이상의 극단적인 편차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실패작으로 낙착되는가를 진작에 터득해버린, 말하자면 가난의 달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씨도 안 먹힐 논조로 나는 격려를 해댔다.
「그렇지만 우린 젊었다 아이가? 한번 해보는 거야. 맘만 먹으면 미대를 가지 않더라도 그림을 그릴 수야 있지 않겠어? 우리 정말로 열심히 노력해서 한번 겨뤄보자구. 아직은 누가 더 멋진 작품을 남기게 될 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 아니겠어?」
그러나 오기출이 돌아가고 난 뒤 나는 오기출에게 격려했던 논조가 얼마나 씨가 안 먹히는 소리인지를 절실히 경험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미대를 가기 위해 광분하고 있는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하필이면 굶어죽기 알맞은 환쟁이가 되려고 미술대학이냐? 정 대학을 가려면 교대를 가거라. 군에도 안 가고 2년만 다니면 선생을 시켜준다니 우리 형편에 교대 외엔 갈 곳은 없다. 그림은 선생질하면서도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릴 수 있다.」
아버지는 내가 오기출에게 한 소리를 마치 엿듣기라도 한 듯 꼭 같은 말을 하였다. 혼자 벌어서 대학에 가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1년 전과는 상황이 달랐다. 아버지는 대학에 보내주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아들을 위해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임에도 생각을 달리하셨다. 대학은 보내주되 미술대학만큼은 못 가도록 어떻게든 말려야 한다. 미술대학이 가장 돈이 많이 든다는 소문은 시골의 구석구석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머니 앞으로 한 장의 편지를 써 두고 나는 가출을 단행하였다. 며칠간 머리만 식히다가 돌아올 것이란 내용으로 심약한 어머니의 안전을 충분히 염두에 둔 가출이었지만 극적 효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서울과 대구 등지의 화실 동문들의 하숙을 전전하며 나는 나대로 미술대학이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가를 알아본 다음 돌아온 날 어머니는 울면서 소원대로 미술대학에 가도 좋다는 결정사항을 알려주셨고 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아무 말씀도 없이 자리를 뜨셨다.
내가 지원한 대학에 두 번이나 낙방한 원인을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더 잘 알 수 있었던 사실을 나는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또한 그러한 원인이 계속해서 기세등등할 현실에 대해서는 원망스러울 뿐이다.
한 마디로 미술대학의 선발 제도는 그림을 잘 그릴 학생을 선택하지 않고 이미 지겹도록 잘 그린 학생을 택했다. 시험장에는 서울의 유명 학원에서 기계적인 요령에 숙달될 대로 숙달된 기능공들이 몰려들어 권투경기의 시작종과 함께 펀치를 날리는 선수들처럼 화판에 달라붙었다.
30분이 넘도록 연필선도 긋지 않고 석고상을 응시하고 있는 내 곁으로 감독관이 다가왔다.
「학생은 어째서 그리지를 않는가?」
「생각을 좀 해 보고요.」
「왜? 그릴 자신이 없는가?」
「그게 아니라 어떻게 그릴까 구상 중인데요?」
「구상 중이라구? 이봐, 학생. 여긴 입학시험장이야.」
불행하게도 나는 감독관이 요구하는 로봇 종류가 아니었다. 이윽고 떠오른 구상에 힘입어 그리기 시작한 나의 데생은 실기시험장의 어느 작품과도 유사성이 없는 특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작품들 사이에 정교한 손으로 직접 다듬은 수공예품 같은 작품 하나가 수험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등 뒤에서 나즈막히 속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어느 학원풍이야?」
「글쎄 처음 보는 기법인데?」
「기성 작가도 아니면서 저러면 감점일텐데.........」
「그래도 기분은 좋아 보이잖아?」
「좌우지간 대담해. 입시 작품을 저렇게 그리다니.」
결국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대구의 조그마한 미술대학에 다니게 되었다. 그 대학의 4년간 등록금을 면제해주는 장학제도는 혼자 벌어서 공부하겠다고 큰소리를 친 내가 두 번의 낙방 끝에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어쨌든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이런 곳이 대학이었던가 싶은 자탄과 그림을 전공하겠다는 나의 진로 설정에 대한 후회가 무르익어가던 1학기 말, 오기출이 나타났다. 오기출은 대학생복 차림이었다. 진주교육대학에 진학했다는 오기출은 진주 시내에 화실을 꾸며 학비를 충당하고 있다고 하였다.
나의 눈에는 이제 오기출의 가난이 그 끄트머리가 보이는 듯 하였다. 나는 오기출의 손을 잡고 힘껏 흔들면서 축하를 해주었다.
「대학에 와서 보니까 그림을 그려서는 안 될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 본때를 보여주는 뜻에서라도 우리 한번 열심히 해보자구.」
그러나 오기출은 씁쓸한 웃음만 한 번 지어 보였을 뿐 흡족할만한 맞장구를 치지는 않았다. 그랬던 오기출이 2학기 개강과 함께 또 나타났다. 소집 영장을 받고 논산 훈련소로 끌려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교대생이 무슨 놈의 군대야?」
「....군사 ...훈련에.....불참했어....」
「그건 무슨 소리야? 뭐가 힘들다고 불참을 해?」
나는 기가 찼다. 불과 2년만 다니면 국민학교 교사가 되어 그 지긋지긋하던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렇게 스스로 박차버리다니. 교육대학생에게 군복무면제를 시켜주는 대신 방학 중 실시하는 입소훈련이 그 강도가 높다는 것은 나도 들은 바는 있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입소훈련이 공수특전단과 같을지라도 오기출의 처지에서 몸을 도사릴 훈련이 아니었다.
「아마도 네가 돌았구나. 그 따위 이유로 교육대학을 포기하다니....!」
「글쎄, 넌 군사 훈련이 어떤 건지 내가 아무리 말해봐야 모를 것이다. 」
오기출은 수수께끼 같은 한 마디를 던지고는 논산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0월, 가을이지만 날씨가 꽤나 쌀쌀했던 어느 늦은 밤에 기숙사로 전화가 걸려왔다. 오기출이었다. 학교 앞 여인숙으로 급히 좀 나와달라는 오기출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는 달랐다. 휴가를 나왔겠거니 하고 찾아간 나의 눈앞에는 군복대신 반바지 차림에 어느 집 쓰레기통을 뒤져서 찾아 입었는지 알몸에 때묻은 와이셔츠 한 장만 걸친 오기출이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너 탈영했구나!」
오기출의 행색을 보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강렬한 전류같이 나의 온 전신을 관통하였다. 오기출은 내 두 손을 힘껏 움켜쥐더니 닭똥같은 눈물을 뚜루룩 떨어뜨렸다.
「친구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낱낱이 기록해두었다가 내가 죽거들랑 이 원한을 좀 풀어다오.」
탈영임이 분명한 오기출의 행색과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일상이 되다시피한 극적인 사건들, 게다가 눈물까지 흘리는 상황까지 한데 뒤엉켜서 바야흐로 그이 입을 통해 듣게 될 일종의 증언은 오기출의 목숨과 직결되는 급박한 사연임은 얘기도 듣기 전부터 이미 감지되었다. 아니게 아니라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오기출이 들려주는 한편의 대하드라마는 사연의 억울함과 기막힘, 그리고 기구함이 뒤얽혀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의 심장은 어느 순간에는 얼어붙었다가 또 한 순간에는 폭발할 듯한 격정으로 고동치는 되풀이를 반복하였다.
논산 훈련소에 입대한 오기출은 인간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취급하는 군사훈련을 자신이 생각해도 대견할 정도로 잘 참아내었다. 그는 입대 전부터 과연 자신의 심성이 군대라는 조직체에 제대로 적응이 되어줄 것인지 스스로도 걱정이 될 정도로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훈련병들보다 몇 배의 인내로써 마침내 신병 훈련과정을 끝낼 수 있었다. 신병들이 일선부대로 배치가 되어 출발할 즈음 그는 별도로 호출되어 수용되었다. 수용소에서 오기출은 자기처럼 영문도 모른 채 소집되어온 다른 사병들과 함께 일종의 특수 적성 테스트를 받았다. 테스트는 고도의 순발력을 필요로 하는 어휘력 측정이 주된 내용이었는데 그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길만이 좀 더 좋은 조건에서 군복무를 마칠 수 있는 지름길일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삼십 초 이내에 ‘ㄱ’으로 시작되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명사를 생각나는 대로 적는 식의 문제였는데 남들은 한 개도 제대로 못 적는 것을 오기출은 시간이 부족할 지경으로 적어나갔다. 적성검사를 치른 100명 중에서 오기출을 포함한 3명만이 선발되어 짚차에 태워졌고 얼마 안 가서 그들은 보안상의 이유로 검은 안대에 눈이 가려진 상태가 되었다. 한참 후에 안대가 벗겨진 그들 3명의 눈앞에는 대형스크린이 나타났는데 그때부터 꼬박 사흘간 국가 안보에 관련된 영화만 매일 보았다. 영화마다 국가의 안보가 얼마나 막중한 것이며 그 안보를 위해서는 한 개인의 능력과 자질, 그리고 때로는 개인의 숭고한 희생이 어떻게 국가 안보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하는가를 상세히, 그리고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친구야. 내 겉이 팔자가 더러운 놈은 군에 가서도 왜 그 모양일까?」
「그래 그게 무슨 직책인데?」
「국군 특수 정보부대 암호 추리분석반의 암호해역병.」
「그런 주특기도 다 있나?」
「이건 주특기 자체가 일급 비밀이기 때문에 일반 병과의 장교나 사병들은 아무도 모른다. 전군에서 가장 어휘력 연상력이 우수한 두뇌를 가진 사병을 차출하여 적의 암호문을 한번 들려주고 직감으로 떠오른 어휘를 적어내는 직책인데 힘드는 것은 없어.」
「그런 병과를 맡았으면 너한테는 너한텐 더 잘된 것 아냐?」
「친구야. 그게 정말로 좋은 병과라면 나라에서 무엇 때문에 내 겉이 가난하고 힘없는 놈한테 맡기겠노. 유사시엔 보안 유지를 위해 쥐도 새로 모르게 죽여버리는 병과가 바로 암호해역병이다.」
「그럴 수가?」
「차출된 암호해역병들 거의가 고아나 다름없는 사병들이고 연고자가 있다해도 가난하고 무지해서 뒷수습이 수월한 농사꾼 자식이 태반이다.」
「네가 하필 그런 험악한데 걸려들었단 말이지?」
「정식 휴가를 나와도 행적을 미행당하고 제대를 하더라도 15년간은 의무적으로 관할부대에 신고를 하고 난 뒤에 여행을 해야 한다. 」
「알겠다. 그래서 탈영했구나. 」
「오해하지 마라. 그것 때문에 탈영한 것 아니다. 」
오기출은 자신에게 맡겨진 직책엔 커다란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인간을 짐승이나 물건처럼 취급하는 일반 보병부대에 떨어진 것 보다 혼자서 조용히 명상에 잠길 수 있는 그 직책을 다행으로 여겼다. 오기출은 선임하사 한 사람과 암호해역병 셋이 한 조가 되어 적의 암호가 빈번하게 날아다니는 일선의 전파감지소에 파견되어 근무를 하였다. 근무는 수월한 편이었다. 까마귀니 올빼미, 홀애비니 과부, 혹은 새벽별이나 보름달 같은 암호의 사용 빈도를 청취하여 보고하면 나머지 시간엔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같이 근무하게 된 충북 단양 출신의 조태호는 목공으로 일하다가 군에 입대하였는데 그의 가정 형편이 오기출과 흡사하였다. 소설가가 될 꿈을 안고 있는 조태호 역시 병든 아버지와 수많은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처지였으므로 동병상련이라 둘은 이내 친해졌다. 근무교대시엔 상대방의 꽁꽁 언 손을 자신의 샅에 넣어 녹여 줄 정도로 서로가 의지하며 지내던 중 조태호가 의문의 실종을 당하였다. 실종 당할 이유가 없는 조태호였다.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해꼬지를 당한 느낌이었다.
암호해역병의 실종은 일반 사병의 실종처리와는 그 절차가 달랐다. 월북 기미가 포착되어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상부에 보고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기출은 조태호의 실종이 아무래도 납득이 가질 않았다. 며칠 뒤 오기출은 주벽이 심한 선임하사와 조태호가 함께 술을 마신 사실을 알아내고 비번일 때 틈을 내어 술을 마셨다는 주점의 뒷산을 수색했다. 주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급히 묻은 흔적이 있어 파보았더니 놀랍게도 조태호의 시신이 목이 없는 상태로 묻혀 있었다.
억울한 것은 차라리 다음 문제였다. 오기출은 자신이 조태호와 같은 죽음을 당할 경우를 가정해보았다. 도저히 조태호의 죽음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반드시 진상규명을 하여 남은 가족들에게 보상금이라도 돌아가게 해야만 된다고 생각하였다. 오기출은 시체를 파내어 들쳐메었다. 시신을 들쳐메고 내려오는 오기출의 등 뒤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선임하사였다. 흥분한 선임하사의 손에는 대검이 들려 있었다. 오기출은 거의 본능적인 뒷발질로 선임하사를 주저앉혔고 대검을 뺏아서 목, 가슴, 배 등 가리지 않고 마구 찔렀다. 사람을 칼로 찌르는 동안 오기출은 일종의 한풀이 비슷한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 길로 도망쳐오는 길이다. 친구야 나는 이제 잡히면 사형이다. 아는 이제 이 땅에선 살 수가 없다. 친구야 나를 좀 살려다오.」
참으로 소설 같은 사건이었다. 아니 소설이라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나는 오기출의 불행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행이 이다지도 모질게 어떻게 한 인간에게만 집중된단 말인가. 오기출이 타고난 운명의 기구함에 나는 치를 떨었다.
「그래 좋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 네가 잡히면 나도 같이 죽겠다. 당장 어떻게 하면 되겠니?」
「오오사카에 친할아버지가 계신다. 주소도 갖고 있다. 친구야 날 변장시켜 부산까지만 보내다오. 밀항하는 수밖에는 살 도리가 없다. 」
살인.
탈영.
밀항.
사형.
어떤 인생이 이토록 극적일 수가 있을까. 그러나 오기출에겐 당장 코앞에 떨어진 일상이 되어 있다. 내가 입던 대학생복을 오기출에게 입혔다. 같은 기숙사생 중 R.O.T.C. 훈련생의 모자를 빌리고 명찰을 만들었다. 돈을 빌릴 수 있는 데까지 빌려 긁어모았다.
「미안하다. 밀항하자면 목돈이 있어야하는데....」
「괜찮다. 부산까지만 가면 부탁해볼 데가 또 있으니까....」
살아서는 마지막이 될 오기출과의 이별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장하였다. 기차가 점점 멀어지자 오기출의 존재 역시 멀어져서 하나의 점으로 변했다가 마침내 눈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이제 이 땅에서 사라진 것이다. 한 많은 조국을 등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오기출의 인생을 되짚어보며 나는 오랫동안 플랫홈에서 눈물을 떨구었다.
일주일 뒤에 오기출은 다시 나타났다. 밀항에 실패했다고 했다.
「저녁 여덟시 정각에 다대포에서 출발하려는 찰라 경찰이 나타났어,」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오기출의 체포는 곧 살인, 탈영병을 은익 도피시킨 나의 체포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오기출이 떠나고 난 후로는 헌병과 마주치거나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오금이 저려왔다. 밤에는 내가 교수형을 당하는 악몽에 시달리기가 일쑤였다.
「호송도중 차에서 뛰어내렸다. 지리산에 가서 숨어야겠다. 내가 아는 형님이 지리산 밑의 시골 분교에 있는데 당분간은 숨어 지낼 수 있을 거다. 」
나는 오기출을 다시 변장시켰다. 마침 한 벌뿐인 양복은 오기출에게도 꼭 맞았다.
「하하하, 친구야. 걱정 마라. 나는 그리 쉽게 체포되지는 않을 거다. 」
오기출은 불안과 초조로 안색이 창백해진 나를 안심시키는 여유까지 보인 뒤 사라졌다. 두 달 가량이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날, 오기출은 소백산에서 오는 길이라며 또 나를 찾아왔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진동을 하고 우리가 마주앉은 다방의 천장은 번쩍거리는 성탄절 장식들로 휘황찬란하였다. 오기출은 벌겋게 달아오른 톱밥난로 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었다. 난로 속의 불꽃이 오기출의 검은 얼굴의 명암을 지우고 있었다.
「이 추운데 소백산에서는 어떻게 지냈니?」
「선사들과 같이 수도생활을 했어.」
「수도생활?」
「.........응.」
그러고 보니 오기출의 눈동자가 전보다 한결 맑아 보였다.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소백산엔 움막을 짓고 그 속에서 명상에 잠긴 선사들이 많이 있어.」
「명상을 한다고?」
「깊은 명상에 잠기면 이 세상의 얽히고설킨 모든 인연의 매듭들이 한 가닥씩 풀어져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하루에 생쌀 한 줌, 감자 한 톨로 생식하고도 능히 산을 원기 차게 오르내리며 베옷 한 벌로도 어떤 추위도 가릴 수가 있다고 했다.
「남은 여생을 산에서 살고 싶다. 인간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잊고 싶다.」
오기출의 얼굴에는 오랜 방랑 끝에 마침내 안식처를 찾은 사람처럼 평화스러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나도 그의 평화가 영원하기를 빌어마지 않았다.
「그래. 차라리 그게 낫겠다. 부디 고통의 근원을 깨닫게 되면 내게도 깨달음을 나눠 주라.」
「그런데 한 십 만원만 있으면 되겠는데........」
「십 만원?」
「산 밑의 단위조합에다 예금해두면 매달 그 이자만 갖고도 수도생활에 필요한 양식을 평생 동안 조달할 수가 있는데....」
그러나 오기출과 나는 소주만 들이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오기출의 기구한 운명에 동참하기로 했지만 한 학기 등록금의 두 배나 되는 거금을 고학생과 다름없었던 내가 마련할 길은 없었다. 우리는 여인숙에 누워서 음모를 꾸몄다. 굳이 음모랄 것도 없었다.
「한득자 선생님을 찾아가는 것이 제일 낫겠다. 그 동안의 사연을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목숨이 달린 문제라고 사정을 한번 해봐. 」
이튿날 눈을 떠보니 오기출은 사라지고 없었다. 머리맡의 종이 쪽지엔 오기출의 낙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너는 착한 놈, 착한 놈, 착한 놈-
-나는 나쁜 놈, 나쁜 놈, 나쁜 놈-
낙서는 자학의 흔적이었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오기출은 끝없이 친구의 신세를 져야하는 자신을 학대하고 있었음을 낙서는 보여주고 있었다. 오기출에게 결정적인 도움도 보태지 못한 내가 그의 심중 깊은 곳의 갈등을 목격한 것 같아 나는 나대로 마음이 편하지를 못했다.
방학 중 모처럼 틈을 내어 고향에 내려갔다. 그 곳에는 믿어지지 않는 또 다른 드라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득자 선생은 나를 보자마자 탄식을 하였다.
「기출이 그 놈 니한테도 찾아 갔제? 세상에 그놈이 유명한 사기꾼이다. 아는 선생님마다 찾아다니며 사람을 깜쪽같이 속여서 돈을 뜯어서 돌아다닌단다. 저 탈영병 저 놈을 어서 붙잡아서 자수를 시켜야 하는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노?」
「사기꾼이라니요?」
「니도 당했을 낀데 아직도 모르나?」
「어째서 탈영하게 됐는지 사정을 들어보셨습니까?」
「야가 지금 무슨 소리하고 있노?」
「기출인 지금 체포되면 바로 사형입니다. 어떻게 자수를 해요?」
「와? 니한테 와서는 사람을 죽였다 하더나? 옳지 그라고 보니 니는 지금 그놈한테 깜빡 속고도 속은 줄도 모르는구나.」
한득자 선생이 전하는 오기출의 행각은 가히 초인적인 사기 행각이었다. 초인적이라 함은 그가 속여서 취득한 금액의 액수가 아니고 속이는 방법의 다양함과 속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연기의 완벽성에 있어서 보통사람의 상상을 초월했다는 뜻이다.
차량사고를 냈는데 급히 손망실 처리를 하지 않으면 영창을 가게 된다는 오기출의 눈물 앞에, 총기 오발사고로 총상을 입은 민간인의 치료와 보상 문제 때문에 떨구고 있는 오기출의 고개 앞에, 급식병력 인원수의 허위기재가 보안대에 적발되어 사건 무마조로 취사병 전원이 금품을 갹출하게 되었다며 난감해하는 오기출의 주름살 앞에 모두가 하나같이 있는 대로 돈을 털어서 위로와 격려를 한 다음에 보내고 나면 며칠 후에는 다시 나타나 사건이 잘 해결되는 중이라며 마무리 비용을 요청해오곤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왕 군생활 할 바에는 장교 시험을 쳐보겠다는 오기출에게 생각 잘했다며 필요한 시험교재 구입비를 흔쾌히 보태준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한득자 선생 자신은 몇 시간을 쑥스럽다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 오기출을 자신이 직접 닦달한 결과, 휴가나오는 순진한 군인들만 상대로 교묘하게 유혹하여 간통죄를 뒤집어 씌우는 남녀사기단에 오기출이 걸려든 사실을 밝혀내고 상당 액수의 합의금을 대납했다는 것이었다.
「아이구 야야, 말도 마라 열차 안에서 만난 여대생한테 혼을 뺏기는 대목은 불란서 영화는 저리가라더라야. 거짓말도 우찌 그리도 능청스럽게 하겠노.」
그것은 오기출의 능력이었다. 검은 피부에 두툼한 입술의 오기출은 누가 보더라도 전형적인 아둔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다양한 사건들의 완벽한 기승전결이 저장되어 있었고 오기출은 상대와 장소에 따라 적절한 사건을 끄집어내어 활용했을 따름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 들이댄 이야기가 가장 극적이고 또한 구성의 치밀성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도피행각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데에도 손색이 없는 완벽한 내용이었다. 그로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인 사기극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기출은 안 해도 좋을 실수를 공을 들여 하였다. 적어도 나한테만은 거짓말을 않는 것이 좋았다. 차라리 그랬더라면 그가 뒷날 감당해야만 했던 완전한 고립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뒤 오기출을 다시 만난 것은 내가 졸업을 하고도 6개월이 지난 7월이었으니 그가 논산 훈련소에 입대한지 만 3년하고도 9개월이 되는 때였다. 내가 대구에 있는 예비사단에 입대하기 위해 시외버스 주차장에 도착하였을 때 그때까지도 오기출은 군복을 입은 채 낯선 도시의 주차장을 떠돌고 있었다. 34개월이면 제대를 하건만 오기출은 45개월이 넘어도 병영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오기출은 말없이 증명서를 보여주었다. 탈영죄로 체포되어 군형무소에서 복역한 기록과 보름 후면 제대를 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제대 휴가를 나왔건만 고향에도 가지를 못하고 객지를 떠돌아 다녀야 하는 오기출의 처지였다.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내가 말했다.
「입대할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자세한 얘긴 차후 내가 제대하거든 나누기로 하자. 우선 이 돈으로 목욕부터 하고 전에 네가 신세진 사람들에게는 먼저 사죄하는 편지부터 쓰는 것이 좋겠다. 」
「미안하다. 내가 한번 면회갈께.」
군대는 오기출과 같은 인간형으로서는 견디기가 힘들었음을 나 자신이 군인이 돼 보고서야 절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군대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존재하는, 어떠한 의미가 통하는 곳이 아니었다. 숟가락 하나 때문에, 때로는 단추나 바늘같이 지극히 하찮은 물건들로 인해 2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형성된 인격체가 통나무처럼 구르기도 하고 걸레처럼 쥐어 짜여지거나 휴지처럼 구겨질 수가 있는 곳이 바로 군대였다.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죽음을 택해야만 하였다. 정상인으로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으로부터의 일체의 정서적, 이성적, 감성적 반응체계를 죽인 다음에 자아를 완전한 하나의 통나무나 걸레, 폐휴지쯤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하였다. 자신을 완전하게 객체화시키는, 일종의 득도가 없이는 배겨날 수가 없는 곳이었다.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잘들 득도를 해내었다. 의외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나 부잣집 아들들이 무지막지한 군대체계에 쉽사리 순응하였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과정에서 군생활을 능가하는 고생을 이미 맛본 사람들이, 오기출과 같은 내력을 지닌 사람들이 유독 탈영을 많이 하였다. 그들이야말로 군에 입대하기 전부터 몸담았던 사회밑바닥에서 이미 통나무와 같은 인생을 살았고 걸레가 되는 수모를 신물이 나도록 겪었을뿐만 아니라 폐휴지나 다름없던 인생을 지겹도록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겐 일시적인 수모를 견디고 제대하면 보장받을 수 있는 그 어떠한 희망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군에서까지 강요되는 빼앗긴 삶 그 자체를 참아낼 인내력이 오래 전에 바닥이 난 사람들이었다.
오기출의 탈영은 병영생활이 주는 신체적 고통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빼앗긴 삶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한여름의 운동장은 육안으로 직접 내려다볼 수가 없을 정도로 눈이 부셨다. 쏟아지는 7월의 뙤약볕은 송두리째 운동장에 되쏘여선 곧바로 교무실의 천장에 부딪히고 있어서 교무실은 차라리 바닥이 어두웠다. 운동장 끝에 나란히 서있는 미루나무를 위시하여 시골학교의 모든 교직원과 학생들은 진작부터 폭염의 맹위에 일찌감치 항복을 선언하고서는 오수의 나른한 포로가 되어버렸다.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 않는 운동장에 하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자그마한 포터 트럭 한 대가 들어섰다. 잠시 후 폭염의 맹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용감하게 트럭을 몰고 돌아다닌 주인공이 교무실 복도에 나타나서 나를 찾았다.
뜻밖에도 오기출이었다.
「야, 이 친구야. 제대했단 소리는 들었는데 이렇게 깊숙한 시골학교에 파묻혀 있을 줄은 몰랐다. 」
오기출은 함께 데리고 온 기사를 인사를 시키더니 이내 명함을 한 장 내밀었다. 명함에는 금박으로 '藝林工社 代表 吳基出'이 인쇄되어 있었다. 나는 오기출의 얼굴과 명함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여전히 검긴 해도 옛날의 의기소침했던 오기출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오기출을 힘껏 끌어안았다.
「고맙다. 출아. 네가 마침내 성공을 했구나. 네가 정말로 예림공사의 사장이란 말이지?」
「장가도 갔다. 한번 놀러 와.」
그러더니 오기출은 금방 일어섰다. 군청에 건설과 담당 직원을 만나봐야 한다며 다음에 또 오겠다고 했다. 83km 구간의 도로표지판 제작발주를 맡을 작정인데 눈코 뜰 새 없다는 것이었다.
한시바삐 오기출의 성공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나는 오기출이 다녀가고 난 2주일 후에 마산에 있다는 예림공사를 찾았다. 과연 명함에 기재된 대로 신마산 역 앞에 '藝林工社'는 있었다. 벽면을 따라 세로로 기다랗게 부착되어 있는 간판 '藝林工社'는 분명히 오기출의 솜씨로 쓰여진 것이었다.
나는 한참동안 길 건너편에 서서 간판점 예림공사를 감개무량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비록 소규모 간판점에 지나지 않는 점포였지만 그것은 유달리 처절하고도 지루했던 오기출의 궁핍의 마감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의 전 인생을 짓눌렀던 결핍은 끝이 났다. 지금부터는 저 간판점 예림공사가 그의 인생의 후반부를 안락하고 포근하게 감싸줄 것이다. 나는 좀 더 감개무량한 기분을 혼자서 즐기고 싶었지만 오기출과 그이 아내가 나를 반가이 맞이해주는 장면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려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길을 건넜다.
간판점 예림공사는 의외로 굳게 닫혀 있었다. 점포 안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고 물건도 없는 텅 빈 상태였다. 또다시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왔다. 오기출의 상표처럼 나의 뇌리에 깊이 박힌 실패의 전형들-깊스를 한 부러진 팔, 목발을 짚었던 다리, 붉은 글씨의 탈영전과 기록카드, 쓰러지기 직전의 고향의 움막들-이 예림공사를 두드리고 있는 내 손목의 힘을 슬금슬금 빼놓고 있었다.
한참 후 점포에 딸린 방안에서 자그마한 여인이 다리를 절룩거리며 나왔다. 소아마비로 보여지는 여인은 만삭이었다. 오기출의 아내였다. 그녀는 나를 유심히 살펴보며 징계를 늦추지 않다가 내가 찾아온 사연을 듣고서야 마음을 놓는 눈치였다.
「친구분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어떡하면 좋습니까? 내일까지 점포를 비워줘야 하는데 주인은 어디 있는지 일주일째 소식이 없으니 저 혼자 어떡하면 좋습니까?」
한득자 선생으로부터 오기출이 결혼한 내력을 상세하게 들은 것은 최선을 다해서 오기출의 행방을 알아보겠노라고 오기출의 아내를 위로한 뒤 고향집에 들른 그날 저녁때였다.
「제대하고 돌아와 봤자 어느 누가 거들떠보기라도 했겠나. 그런 차중에 삼백 만원을 얹어 줄테니 다리가 불편한 딸이라도 데려가겠냐는 제의에 눈이 번쩍 뜨였겠지.」
오기출의 결혼은 애정의 결합이라기보다는 사업자금 확보의 의미가 더 앞섰다. 그러나 사업은 도산하고 아내는 만삭이 되었다. 도대체 어떤 힘이 오기출로 하여금 저 암울한 불행의 늪에다 끝없는 자맥질을 시키고 있는가.
한 달 뒤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있는 시골 하숙방으로 오기출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나는 오기출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제는 바른 말 좀 해봐. 도대체 어떻게 살 작정이냐?」
그러나 오기출은 술부터 마시고 싶다고 애원하였다. 그는 한참동안 술만 마셨다. 시골의 주막 안은 늦여름의 오후 볕이 그 마지막 열정을 다해 토해 놓은 열기로 후끈거렸다. 열기와 술로 벌겋게 달구어진 오기출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너는 아직도 내가 무슨 작정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격앙된 오기출의 반문에 나는 역습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런 오기출의 표정도 또한 처음보았다.
「어디 한번 말해봐. 작정 없이 살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지를.......」
오기출의 분노는 두꺼운 지각 밑에서 오랜 세월을 끓어온 용암이었다. 마침내 억눌러온 지각을 뚫고 치솟는 용암이었다.
「아무도 함부로 나한테 말하지마. 누구누구는 빈손으로 시작하여 재벌이 되었다더라, 또 누군 고학으로 공부하여 박사가 됐다더라.......... . 그래! 나도 빈손이었지만 마지막까지 빈손이다. 고학도 해봤지만 대학 문 앞에도 안 가지더라. 그래, 나한텐 재벌이 되고싶은 작정이 없었는줄 아나? 끝까지 공부해서 고상한 인격자가 되고 싶은 작정이 없었는 줄 아나? 처언만에! 내 진짜로 품고 있는 작정을 한번 말해주까? 잘 들어라, 친구야. 나는 말이다, 반드시 재벌이 되어서 이 원한을 꼭 풀고야 말겠다. 두고봐라. 꼭 원한을 갚고야 말거다!」
오기출의 분노는 두터운 지층 밑에서 오랜 세월을 끓어온 용암이었다. 마침내 지각을 뚫고 치솟은 용암이었다.
Ⅲ
내가 최창선, 아니 오창선의 집으로 달려갔을 때 강경태의 찌그러진 프레스토가 먼저 도착해있었다. 관할 파출소에서 교무실로 연락이 날아든 순간부터 나는 강경태만 찾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DDD 장치를 폐쇄시킨 교무실의 전화로는 무선호출이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외근중이라는 강경태를 호출하는 방법은 소위 삐삐뿐이었다. 복도에 설치된 공중전화에 매달려 몇 번이나 삐삐를 쳐도 강경태로부터 연락은 오지를 않았다.
오창선. 중학교 3년생. 의부를 살해.
너무나 엄청난 상황이라 나는 무턱대고 맹목적으로 형사 강경태만 애타게 찾았다. 그것은 오직 강경태만이 이 엄청난 사태를 다스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네가 삐삐를 치고 있을 때엔 이미 사건현장으로 달려오고 있는 도중이었어. 피해자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모양이야. 글쎄 내가 뭐라든? 조그만 새끼가 벌써부터 눈에 살기가 돌더라니.....」
강경태가 나를 발견하자 급히 다가와서 간단히 상황을 전하고는 무전기가 왕왕거리고 있는 짚차 쪽으로 달려갔다. 이렇게 끔찍한 살인을 저지를 피의자를 불과 며칠 전에 훈방조처하도록 한 자신의 실수를 강경태는 개탄하였다.
「체포하는 건 시간문제야. 자넨 경찰서로 먼저 가 있게. 참고인이 필요할테니까.」
강경태는 전경들에게 뭐라고 지시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나를 돌아다보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체포.
이제 겨우 세상을 15년 밖에 살지 않은 창선에게 씌워진 운명은 바로 체포이다. 오기출의 한 점 혈육다운 운명이었다. 모여든 동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아무리 허리를 다쳤대도 그렇지. 최씨가 그렇게도 힘이 없었던가? 쬐끄만 애한테 당하다니....」
「어린것이라도 모진 맘먹으면 무서운 벱이여. 어제 저녁에 지 에미 들쳐업고 병원으로 뛰는 것 못 봤어? 이웃사람은 손도 못 대게 하고 기어이 응급실까지 업고 갔다더만.」
「하긴 최씨도 죽을라고 들었지. 지 엄마가 그토록 반죽음이 되는 것보고 어느 아들이 가만 있겠어?」
「애가 또 워낙에 모진 데가 있긴 있어. 평소에 그렇게 두들겨 맞아도 눈물 한번 흘린 적이 없다는구만.」
「그러나 저러나 이제 창선이네 집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일세. 에미는 응급실에 애비는 영안실에.... 아들은 살인범이 되어 쫓기는 신세니....」
「최씨가 아직 죽지는 않았다던데?」
「무슨 소리! 부엌칼이 최씨 목을 완전히 관통을 했다는데 살기를 어떻게 살아?」
미술실에 불려내려온 창선은 아버지 오기출의 얼굴은 기억에 없다고 하였다. 기억에만 없는 것이 아니라 창선에게 있어서 오기출은 어떤 의미조차도 지니지 못한 존재였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별루요.」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궁금하지도 않니?」
「예.」
「너희 아버진 재주가 많은 분이었다.」
「......... 」
「네가 그림을 좋아하는 것도 아버지를 닮아서야.」
「.......... 」
「솔직히 말해봐. 그 돈으로 한 달쯤 화실에 다닌다고 원하는 학교에 무난히 합격할 것 같았니?」
고개를 숙인 채 뭉개고 있는 몸짓이 오기출과 흡사하였다. 더구나 가능하지도 않는 꿈을 꾸는 열정에 있어서도 창선은 제 아버지를 빼다 박았다. 오기출의 일생이 불행으로 끝난 것도 그림에 대한 어울리지 않은 열정 때문인 지도 모른다. 간판장이면 간판장이, 벽돌공이면 벽돌공의 지위에 충실했더라면 그는 아들에게 이런 처절한 가난을 물려주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지난 3월에 내가 한 말 기억 안나? 일단 공고로 진학하여 취직을 한 다음에 그림을 배워도 늦지 않다고......어머니와 동생들은 앞으로 네가 모셔야 할 것 아니니? 결코 무거운 짐이라고는 생각하지마. 운명적으로 맺어진 인연은 함부로 어찌할 수는 없단다. 」
정작은 이미 죽고 없는 오기출에게 해야 될 말을 그의 아들에게 하고 있는 내가 이상하였다. 그렇지만 오기출이 풀지 못하고 남긴 숙제를 아들 창선이 만큼은 시원스레 청산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야만 오기출의 일생을 따라다닌, 거머리 같은 불행의 그림자가 더 이상 창선의 인생에는 범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창선이는 처참했던 제 아버지의 전철 못지 않는 불행한 길로 이미 접어들었다. 응급실에서 늑골에 금이 간 어머니를 밤새도록 간호하다가 입원비를 마련하러 돌아온 창선이는 술에 곯아떨어진 잠이 든 원수, 의부를 발견하였다. 원수를 갚을 때는 바로 이때라고 생각하였다.
술을 사오지 않는 절름발이 아내를 폭행하여 혼절시킨 최재만이 기어이 어린 딸을 시켜 술을 사오게 하여 마신 뒤 다음날 아침까지 곯아떨어졌다가 눈을 떴을 땐 벌써 창선이 힘주어 찌른 칼이 목에 깊숙이 박히는 순간이었다.
「저것 봐. 뛰어봐야 벼룩이라고 섬에서 산으로 도망간댔자 어딜 가겠어.」
「쯧쯧. 어린것이 기어이 수갑을 차는군. 정말 안됐어.」
산중턱에 있는 약수터 길로 형사 강경태 일행과 전경들이 내려오고 있었는데 몸집이 작은 창선이는 전경들 속에 파묻혀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경들의 틈 사이로 언뜻언뜻 반짝이는 빛은 오기출의 아들 창선의 손목에 채워진 쇠고랑에 부딪친 햇빛임에 틀림이 없었다. ▩
첫댓글 이 중편도 중간부분의 실화를 바탕으로 1과 3을 지어낸 허구인데 오기출(가명)은 아직 생존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