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즈음 내 속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에 자물통을 채웠다. 커튼을 걷어 햇빛을 본다거나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는 일도 귀찮아졌다. 누가 보면 빈집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달력에
적힌 약속들은 몸살이라는 이름으로 무산시켰다. 눈이 내릴 것 같다거나 안개가 자욱하다는 사소한 일기예보마저 지인들이 보내주는 안부를 통해 알았을
뿐 그다지 세상 돌아가는 일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바람이 창문을 뒤흔들자 작은 진동이 내가 누워있는 침대 머리맡으로 슬슬
파고들었다.
‘강아지 꼬리 같은 목련 눈이 조금씩 떴습니다.’라는 사진 한 장이 날아들지만 않았더라도 나의 동면은 좀 더 길어지지
않았을까. 곰이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듯 스무날을 훌훌 털고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강아지 꼬리 같은 목련 눈을 찾아 봄 마중이라도 갈
기세였건만 신문을 펼쳐놓고 난데없이 마늘 봉다리를 풀었다. 왜 그랬을까. 죽을힘을 다해 달려들었다. 내게 주어진 할당량처럼
말이다.
받쳐 놓은 신문의 사회면을 읽으며 껍질을 벗겨 내고 정치면을 읽으며 썩어가는 부위를 도려냈다. 경제면을 읽을 땐 파리하게
삐져나온 마늘 눈을 도려내 바가지에 담았다. 뒷목과 팔목이 뻐근하다 싶으면 봄철 내내 덖은 쑥차나 찔레꽃차를 마셨다. 손톱 밑은 아리고
엄지손가락 안쪽엔 물집이 잡혔다.
간혹 내가 마늘을 까고 있다는 것조차 잊었다가 칼날에 베인 상처에 화들짝 놀라 고개 들면 이러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설기까지 했다. 잡념이 빠져나간 자리에 무념무상이 들어왔던가. 겉껍질을 벗겨내고 얇고 투명한 속껍질을 벗겨내고 썩어가는 몸을
도려낼 때 느꼈던 통쾌함이나 희열감을 누가 알까. 밥 먹는 시간조차 잊어버린다거나 딸아이의 모닝콜 시간을 놓쳐 지각까지 시켰다. 사흘째가 되자
점점 미쳐갔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을 깐 수백 톨의 마늘은 봉분을 만들었다.
자식들 재산 분배하듯 일부는 부드럽게
갈아 수십 개의 지퍼 팩에 담아 냉동실에 얼렸다. 얼추 몇 년은 먹을 만치라고 해도 믿겠다. 싱싱해 보이는 것들은 장아찌를 담았다. 멀쩡했던
마늘들이 이내 청동 제품처럼 푸른색으로 물들더니 여기저기서 둥둥 떠오른다.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하자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친정엄마의
목소리가 한심하다는 듯 나를 휘몰아친다.
“바람이 들어서 방방 뜨제......그카이 모든 게 제 철이라는 게 있지. 속이 차지 않고
헛바람만 들어 그라제,,,...그러니 사람이나 물건이나 진중해야 가라앉지!”
푸른빛이 돌았다는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자신의 몸
일부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수고로움이 헛물이 되었지만 아깝다는 생각보단 나흘 동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의
짧고 뭉텅한 손끝이 마늘이라는 사물에 닿기까지 그 사이엔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뽀얗고 미끈한 그의 몸을
움켜쥐었을 땐 이미 가늠할 수 있는 거리가 잡힌다. 딱히 마늘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였으리라. 한 호흡이었지만 다가가면 갈수록 멀어 ‘텅 빔’은
끝날 것 같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애원하거나 소리쳤다. 허나, 마음이 내뱉은 것들은 중간에서 사라지기
일쑤거나 침묵이라는 이모티콘 형태뿐이었다.
결국 언어는 새끼를 낳지 못했다. 묵음만 수북했다. 황금으로 변할 것도, 하지 않으면
쫓겨 날 일도 아니건만 온 힘을 다할 필요조차 없는 그 일에 밥까지 굶어가면서까지 껍질 벗겨 내는 일이 내게 그리 중요했던가. 그저 그를 벗겨
냄으로써 충만감을 얻은 꼴이 아니었을까.
자욱한 먼지와 표현조차 할 수 없는 냄새가 뒤섞인 방안을 보고 있자니 태백산 신단수옆
동굴이나 다름없었다. 이쯤이 되니 적어도 난 동굴에서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간 호랑이는 아니라는 우월감마저 들었다. 속이 텅 빈 마늘 한 알을
씹었다. 그녀의 스무하루가 삼천일 같다. 두 알을 씹었다. 알싸하며 걸쭉한 냄새가 콧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녀가 먹었다는 스무 개의 마늘이 이천
접으로 보인다.
문이란 문을 죄다 열었다. 오늘은 내가 너를 붙들고 고해성사라도 해야겠구나.
웅녀야 네가 수십 일 동안
마늘을 먹었다면 나는 어루만진 것만으로도 손이 아리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환웅과의 약속을 위해 사투를 벌일 때 나는 매번 몸이 아프다는,
귀찮다는 이유로 약속을 깰 궁리만 하였구나. 네가 인고의 세월로 잉태하는 동안 나는 헛바람만 들어 부표처럼 둥둥 떠다녔구나. 무수한 시간 끝에
빛나는, 듬직한 단군을 세상에 출산했을 때 나는 두렵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출산시키지 못했구나.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다는 말이 맞았던 거지.
그나마 나흘 동안 네 인생을 빌려 살다 보니 악착같이 살아 낸 건 맞았어. 처음엔 동면에서 덜 깬
곰의 비몽사몽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깟 일에 그토록 사투를 벌였던 나의 마늘 까기는 외로움이었거나 혹은 환웅의
부재였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