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은 중국속의 또 다른 중국이다.
홍콩과 맞붙어 있어 일찍부터 홍콩경제권으로 분류되는 곳이다.
길도 깨끗하고
도로도 넓다.
다른 중국과는 확 다른 느낌이 온다.
전에 여기를 왔을때 여기서 사업하던
친구의 말에 의하면
홍콩 집값이 비싸 여기에 살면서 홍콩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어제 호텔에서 주는 마지막 아침을 먹고
한국에 돌아왔다.
이제 저런밥도 질리고 슬슬 김치찌게도 그리워 진다.
그래서 하루에 네 번의 출입국도장이 찍히니 네 달이 지나면 여권이 꽉차 갱신을 한단다.
어제 점심은 기내식으로
저녁은 집에 와서 마침 두 사위가 와 있어 소주
한 잔했다.
집에 온 느낌이 난다.
사회주의 국가에도 거지는 있다.
저기에 맛들리면 일이 있어도 안한다는데
그렇게 편하고 좋단다.
하기사 LA에서는 한국 거지를 본적도 있다.
국제적 거지.
늙은이들이 모여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가끔 보는데 좋아 보인다.
아침 공원에서 한 곡하고 계신다.
자기내면의 또 다른 표현이다.
어떻게 저런 기기묘묘한 풍경을
연출할 수 있을까?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니 가능한것 같다.
깃발부대.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어주고
저 팀이 한번 지나가면 귀가 멍멍할 지경이다.
호떡집에 불난것처럼이란 말
이해가 간다.
내가 혼자 여행하면서도 외롭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쓰고
그리고
불고
그리고 마시고
이게 가능하지 않으면
20일 넘는 혼자만의 여행은 뷸가능하다.
어디서나 체면가릴것 없이 기회만 되면 먹는다.
식당에서 음식을 종이컵에 주기 때문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아침은 주로 흰죽에 밀가루 기름에 튀긴 유조나 만두, 국수를 먹지만
점심, 저녁은 양껏 먹는다.
내가 삼십년전 처음 중국에 갔을때와 비교했을때 중국은 급변했다.
시내버스도 에어컨이 들어오고 시외버스에는 입석을 태우지 않는다.
안전벨트도 해야하고
그 사이 물가도 많이 오른것 같다.
그러나 아직 먹는것은 저렴한데 정부에서 통제를 한단다.
전에 기차를 타고가면서 보니 맥주를 마시고 빈병을 창밖으로 버리는것을 보고 기겁을 했던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번에 내가 간곳이 중국의 남부지방 소수민족들이 살고있는 오지이다.
중국의 중심인 중원지방에서 봤을때 구름이 넘어가는 곳이라 해서 윈난
(雲南)이라 했다.
가고 오는것이 불편했지만 그런만큼 자기들의 전통문화는 지켜나가고 있었다.
공연의 마지막은 공연을 했던 무희들과 관객들이 어울려 손에 손잡고 피나레를 장식한다.
실제 다른 민족끼리 마음과 마음이 얼마나 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전통문화의 보존이라는 거창한 명제가 아니라 밥벌이를 위해서 춤을 추는 저 사람들은 자기의 전통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는 장소도 시간도 구애받지 않는다.
발가는데로 가다가 좋은곳이 있으면 3분 정도에 스케치를 마친다.
저녁에 숙소에 들어와 맥주 한 잔 하면서 칼러를 하는 경우도 있고
파사족의 교훈
이익이 생기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물을 마실때 그 근원을 생각하라.
어려움에 처하면 국가에 대한 충성을 먼저 새기고
덕을 베풀땐 현명하게 대처하라.
내 해석이 맞나?
이번 여행에는 가이드북을 가져가지 않았다.
그냥 부딪치기로 했다.
길은 통하기 마련이고
뜻이 있으면 길은 열린다.
바이두 지도가 있지만 와이파이가 있어야 볼 수있으니 낮에는 무용지물이다.
비온뒤에 무지개가 반겨주니
잘 풀리겠지.
검소한 소찬이지만 화기애애한 자리에
같이 할 수있어 고마웠다.
전부 표정이 밝아보였고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렇지만 연예인 이야기를 하면
난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최무룡, 김진규수준에 가수는 심수봉이 하한선이다.
수많은 세월을 자식들 먹이는 문제에 급급하여 저런 걸작을 만들어 냈다.
오로지 인간의 땀과 노력으로만 만든
저 논이
이젠 버젓한 관광상품이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자태를 볼것이 아니라
저 속에 아롱진 아버지의 눈물을 봐야한다.
아직 저런 원시림이 남아있다는것을 만나는 즐거움도 좋았다.
아스팔트길이 아닌 흙 길을 호젓이 걸어보는 호사도 여기 아니면
느낄 수없는 특권이다.
비온후의 안개산도 좋았고
깊은 산중에 묻혀 살지만 외지에서 찾아준 길손에게 술한잔을 권하는 인정이
아름답다.
우리나라에서도 남의집에 시집간 며느리가 갖추어야할 덕목이
봉제사 접빈객이라 했는데
지금은 희미한 옛사람의 그림자.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래야 아들래미 연필이라도 하나 사줄텐데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나도 모델이 한번 되어보자.
옛날엔 몇가지가 했던 기능을 스마트폰이라는 똑똑한 놈 하나가
일당백을 한다.
그러니까 짐도 간편해졌다.
옛날 카메라 3대를 가지고 다니던 시절
아! 옛날이여
물건을 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에
뜨개질을 한다.
저런 부지런함으로 아이를 키우고 공부시켰다.
꼭 행복하세요.
밤에는 저렇게 휘황찬란하던곳을
아침에 나가보면 화장안한 민낯을
보는것 같다.
연극세트장 같이 겉과 속이 다르다.
어둠은 모든것을 감춰주는 포용력이 있다.
아직 중국에서 적응안되는중에 하나가
열린 화장실.
도시에서는 북경올림픽을 기해 많이 없어졌지만 시골에는 아직 남아있다.
그래서 중국 갔다온 화제는 당연히 화장실 이야기였다.
특히 시외버스타고 가다가 휴게실 화장실이라고
해서 들어가 보면 구멍만 뻥뻥 뚫린것도 있었다.
좀 민망하지만 중국식으로 편하게 생각하면 된다.
누울 자리가 있다면 남을 의식하지않는
실용적 생각.
음식이 맛있으면 그만이지 그릇이야 이가
좀 나가도 어떻느냐하는 생각이다.
집에 오니 해산한 딸래미가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있었다.
오랫만에 집에 아이 울음소리가 난다.
옛부터
三好聲이라하여
선비 글읽는 소리
여인네 다딤잇돌 두드리는 소리
애 우는 소리는 담밖으로 나가도 좋다고 한다.
손주가 오니 집이 거득하다.
집에서 편안한 휴일을 맞는다.
이렇게 이번 여행은 끝을 맺습니다.
오랜 여행 같이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짜이찌엔.
첫댓글 건강하게 잘 다녀오셨으니 다행입니다....
토요일에 얼굴뵈올수 있어 다행입니다...
건강하게 잘 계셔서 다행입니다....
토요일에 얼굴뵈올수 있어 다행입니다...
짧게자른 머리가 시원해보입니다.
무탈하게 잘 다녀오셔서 좋습니다.
하도 더워 이발소에 가서 중국스타일로 짤라 달라고 했습니다.
무사 귀환을 환영합니다.
매일 스마트폰으로 작성하다가 컴퓨터에서 작성하니 아주 편하네요.
모든 여행이 편안함을 주진 않지만 부득 오지만을 찾으시는 교수님을 100% 이해하진 못합니다.ㅎㅎ~
교수님의 이번 중국 여정의 세심한 기록과 사진을 보며 눈과 마음이 호강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훗날 간접 경험으로 삼고자 합니다.
중국의 경쟁상대인 미국도 10만 Strong Initiative가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중국을 그저 옛날 중국으로 알고 있으면 안될거 같다는 교수님 생각에 동감합니다.
관광이 아닌 진정한 여행자가 되기를 꿈꾸며...
제가 꿈꾸는 이상향은 어릴때 시골집에서 보았던 풍경입니다.
논에는 푸른 벼가 거득하고
보리가 바람에 넘실대고
늦여름에는 하엽정 뒤에 만발했던 코스모스
이런 모습을 그리워하며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내일은 제사라 그리던 시골집에 갑니다.
교수님께서 여행을 떠나신 후 이곳은 연일 폭염으로 35도을 웃도는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 속에서 글과 사진 그리고 그림을 함께 올려주시는 교수님 덕분에 무더위 속에서 책을 읽으면서도 때론 시원한 소나기를 만난듯 즐거웠습니다.긴 여행 건강하게 마치고 오셨네요. 그럼, 토요일 이습회 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