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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31주일 [마음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도, 하나님은 또한 그를 통해, 우리를 계속 인도해 주신다.
[그리스도께 운명을 의탁함]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단지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받은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한 우리가 우리 운명을 그에게 맡겼다는 것에 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은 것 뿐 아니라, 앞에 놓인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께서 보살펴주시도록 모든 것을 맡긴 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 맡겨도, 삶의 현장에서 당장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만나서, 싸워야 하는데, 우리에게 부족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 당장 부딪혀서 사건을 겪어야 하는 처지를 본다면, 영적인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
앞으로 올 일에 대해서, 미리 보지도 못한다.
당장 사건들이 나타나서, 맞부딪혀야 그 때서야 깨달을 뿐이다.
우리가 영적인 현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영적인 통찰력이 없다면, 굉장히 불편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 감각도 없고, 충만한 인식도 없이 그냥 산다면, 굉장히 힘들 것이다.
또한, 이 세상에서는 우리 육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외적 환경에 대한 통제력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이렇게 저렇게 바꿀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 세상을 사는 것도, 구원의 여정을 이어가기에도 벅차다.
첫째는 영적 눈이 어두운 이상, 우리 마음과 생각을 도와줄 힘이 중요하다.
누군가 우리 마음을 도와주어서, 나의 영에 관한 것, 또한 나의 육에 관한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
부족한 것을 보완해주고, 강화해주고, 동기를 부여해줄 힘이 필요하다.
둘째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에게 닥쳐오는 환경과 싸울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도 필요하다.
세상의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다른 힘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홀로 이 세상을 이겨갈 수 있다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우리 내부의 우리 영적인 문제도 해결할 뿐 아니라, 환경과도 싸워야 한다.
예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는 우리를 구속하셔서,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셨다.
이제 그의 보호와 인도에 의해서, 견인으로 도움을 받아야 한다.
꺼내주신 것은 지옥에서 건져주신 것이다.
당연히 지옥에 가는 것을 막아주시고, 꺼내어주셔서 해방해주셨다.
해방된 상태라도 방치하면 안된다. 자체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을 해쳐갈 마음과 생각 속에서 도와주셔야 한다.
[성령만 계시면 충분?]
본문은 예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다.
우리는 항상 성령이 계시는 것만 생각해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고, 예수님보다 조금 못하신 성령이 대신 오셔서, 우리속에 거하신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격을 바꿔버린다.
예수는 원래 구원의 주이신데, 그가 떠나시고, 성령이 대신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성령은 능력 주시는 분으로만 인식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할이 바뀐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예수는 구원하시고, 그 자리에 성령이 오셨는데, 성령의 역할은 능력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의 문제는 사라져버리고, 그저 능력 받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 때, 우리가 생각하는 능력은 올 생각도 안하고, 우리 영혼은 구원받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여전히 죄에 대해 취약하다.
죄의 세력을 저항하고, 대적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방금 전까지 그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평생 살아온 것을 물리치는 힘이 상당히 부족한 것이다.
하나님이 갑자기 성령으로 바꾸어 오셔서, 이제 하나님의 역할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성령은 예수의 하시는 일을 한다.
[예수님은 멀리 계신 것일까?]
성령은 우리의 구원을 계속 이루기 위해 오셨다.
성령은 첫째, 우리를 정결케 하신다.
예수 피로 씻으시듯, 우리를 점차 씻으셔서, 죄의 때를 벗기신다.
둘째,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 사용되게 하신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본질적으로 예수의 하시는 일과 일치한다.
일관성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 성령을 너무 강조하는 사이에, 예수님의 임재에 대해서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약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어쩌면, 어른보다 어린아이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 가슴을 가르키면서, 여기 계신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는 내 마음에 계신다는 것을 말하기를 기피하는 편이다.
더 어딘가 깊은 곳에 계셔야 한다고 믿고 싶어한다.
내 영혼에 계신다고 해야, 시원해지면서 만족스럽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나가면, 문제가 있다.
자기를 가르킬 때, 영혼이라고 하면, 영혼은 나와는 다른 존재로 여겨진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는 활동 주체는 내 마음이다.
내 마음과 육신이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영혼이라고 하면서, 다른 타이틀을 갖고 있는 존재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이 견고하지 않으면, 이 세상을 이겨나갈 수 없다.
어떤 성도들은 영혼을 잘 지키면, 몸은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고 보는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이 저절로 조금씩 움직여진다.
내 영혼이 깨끗한데, 육신으로 죄를 범한 들, 대수인가.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지만, 영혼은 깨끗하고, 마음은 더러워도 된다는 법은 없다.
마음이 모든 죄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라는 체계를 통해 우리는 죄를 범해 왔다.
이제 구원에 대해, 성실하게 책임을 져야 할 자는 마음이라는 ‘나’이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도록]
엡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지난주의 말씀과 오늘 말씀은 이렇게 해서, 그 결과로 이렇게 구합니다 하는 것이다.
속사람을 강건하게 함으로써, 이런 결과가 순전히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네가지 중요한 말씀이다.
주늑들고, 압제당했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여, 얻어진 결과는 신자들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도록 하기 위함이다.
엡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원래 헬라어에도 그렇고, 영어성경에도 앞절과 이은 그럼으로라는 접속사가 들어있다.
그러므로, 마음에 모시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혼란이 있다.
예수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계시지 않았나?
[처음부터 내 안에 계셨는데…?]
헷갈릴 수 있다.
순서가 바뀐 것이 아니라, 예수가 처음 임하신 것을 생략하고, 지금은 더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구원받을 때, 우리 마음에 오시는 것이 맞다.
우선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신자가 구원받을 때, 처음으로 겪는 현상은 그리스도께서 그들 속에 임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통개념이다.
이 전통개념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 부분이 연약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이 부분이 약한 편이다.
성령이 오시는 것은 끊임없이 강조하는데, 예수의 임재에 대해서는 약하다.
단지 상징적, 시적 표현으로만 말할 뿐이다.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시다고 할 뿐이지,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는 것은 멀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예수께서 멀리서 관망하고 계시고, 떨어져 계신 분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변치 않고, 이렇게 강조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느냐.
골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심으로 한번에 모든 것이 설명된다.
요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이것은 이미 예수께서 그럴 것이라고 하셨고, 성취되었다.
순서에 관해서,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안에 오신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 전에는 애초에 성령도 오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가 신자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진리이며, 가장 우선순서로 발생한다.
중요성에서도 가장 우선적인 일이다.
말씀 하나를 소개하려고 하는데, 이 말씀은 어렵다.
하나님과 성령을 굳이 구분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해석이 굉장히 어렵다.
이 말씀과 관련된 새로운 상황과 문맥에 따라, 이 문장도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것은 일부로 성삼위 하나님을 구별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사실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사람안에 거하시는 것.
둘째, 이 조건 때문에 사람의 영혼이 살아나는 것.
셋째, 사람의 영혼이 살아나니까, 성령이 이 사람을 위해서 사역하시려고 들어오시는 것.
넷째, 성령이 투입되시다보니까, 하나님께서 이 사람의 몸까지 살려내신다는 것.
롬8:9-11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가장 우선적인 것은 그리스도가 신자 안으로 임재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삼위의 하나님을 굳이 구별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렵지만, 이 구절이 나타내려는 것은 명백하다.
순서적으로 예수께서 먼저 임하시고, 이에 따라 성령이 임하신다.
성령의 임하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원의 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 주인공이다.
갈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성령을 우리 마음에 보내신다고 해도 되는데, 굳이 아들의 영이라고 표현한다.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본문의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처음 신자안에 임하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변해갈 때, 그리스도께서 진짜 내주하시는 것에 대해서 가르키는 것이다.
[내 속에 거주하시려고 오셨다]
본문의 계시다는 말은 원어로 눌러 앉다는 의미가 있다.
완전히 정착하는 것이다.
잠시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 잠시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 멤버로써, 당신의 집처럼 편안히 거하시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처음 들어오셨을 때, 어색하고, 안정이 안되신 상태와 이후에 그가 편하게 거하시는 질적인 상황이 다름을 말하고 있다.
우리 속사람이 성령의 강하게 하심의 힘을 받아 일어나야 한다.
성령의 힘주심에 반응하여, 성령께 복종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사람 안에서 편하게 거하신다.
처음 예수 믿을 때, 신자 안에 거하시지만, 빈약한 속사람 속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불편하게 계실 뿐이다.
그래서, 우리 속사람이 성령의 힘주심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순종하고, 복족해야 한다.
전적으로 나를 새로 만드셔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 마음에 당신의 집처럼 거하실 수 있다.
성령이 우리를 통치하시는 입장이 활발히 진행되어야, 비로소 예수께서는 편하게 계실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께서 불청객처럼 불편하게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 상태에 대해서,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살릴려고 오셨는데, 왜 왔어? 한다면 주님이 모르시겠는가.
주님이 억지로 계시는 것이다.
본문의 말씀은 마음 속에 꺼림칙하게 있었던, 그리스도를 구석에 처박아둔 상태를 빨리 벗어나자는 것이다.
[내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평안히 거하시는 집]
아브라함과 사라는 세명의 손님을 맞았다.
그들이 보기에 사람 셋이었다.
그들에게 신처럼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의 모습이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그들을 극진하게 대접했다고 묘사했다.
하늘에서부터 구름타고 내려왔으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 사람을 하나님 모시듯 했다.
그것을 하나님 섬기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신기하기도 하고, 미련하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그 결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집에서 편히 계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은 타락한 장소에서 맞지 않아서 고난을 당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거기 사는 롯도 구원하시려고 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집에 계시고, 두 천사를 거기로 보냈다.
하나님도 가셔도 되는데, 거기가 편하신 것이다.
두 천사가 롯의 집을 구원하기도 했지만, 편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의 가정과 롯의 가정은 차이가 있었다.
롯도 신자였고, 의인이었지만 그랬다.
우리 마음은 어떨까.
[성도로서 입장]
주님은 나의 자세, 생각 다 보실 것이다.
나는 용서받았다, 이제 의인이다, 이제 마음대로 죄를 범해도 된다, 영혼만 깨끗하면 된다.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아남아야 하는데, 인생은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이다.
마음 속에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고, 나의 훌륭함을 강조하고 싶다.
[사생활]
삶의 문제에 대해서, 이것은 내 사적 문제이고, 주님은 종교문제만 다루시고, 참견하지 마세요.
그리고, 가끔씩 나 죄없는 것 확실하죠? 끝까지 지켜주세요.
주님은 여전히 구석에 몰려서 무관심 속에 버려져 있다.
[예배]
그리고, 예배 참석만 중요하고, 주님께는 관심이 없다.
예배는 드렸다, 의무는 해냈다.
예배는 주께 영광 드려야 할 시간인데, 그 핵심은 전혀 없다.
[교회 봉사]
교회 봉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부차적인 것이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적당히 하면 한 것이다.
헌금은 적당히 했다. 나도 살아야지.
주님은 다 보고 계신다.
[성도 섬김]
성도 섬김에 있어서도, 내 자존심이 있는데, 별로 사랑하고 싶지 않은데, 내 위에 올라가서 나를 무시하겠지.
거기서 주님은 변치 않는 옛사람을 보게 된다.
[교회 사랑]
나는 교회에 최소한의 의무만 하면 됐다. 나는 중립이다.
교회가 무너지면, 누군가 하겠지?
교회에서 나를 높여주지 않으면, 나도 교회에 관심을 주고 싶지 않다.
주께서 내 속에서 이런 것을 다 보고 계시는데, 어떻겠는가.
‘나’라는 집안에 모셨는데, 주님은 종교문제라며 한구석에 몰려 있고, 온통 세상 욕망으로 가득하다.
주님은 구석에서 눈치만 보고 계시고, 주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순간 우리 마음에 오신다.
그래서, 그날부터 우리를 견인하여, 영원한 그의 나라에서 영생을 살게 하려 하신다.
우리는 그의 피로 일어나고, 그의 목숨으로 영생을 산다.
억압당하고, 저주받았던 우리를 당신의 행복으로 채워서, 올라설 수 있도록 하시는 참 희생의 주님이시다.
그가 평안하셔야 마땅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주님을 외롭게 두고 있다.
그러나, 주님은 선하시고, 은혜가 많으시기에 많이 참으신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서 그가 편하지 않으시고, 나가고 싶으실 것이다.
우리는 그가 우리 마음에서 당신의 주권을 휘두르시도록 해야 한다.
주님을 모신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시려고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신다.
요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사람들이 주님을 잘 모시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이런 말씀도 하셨다.
본문의 말씀은 예수께서 처음 거하시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가 환영받으시고, 견고하게 계실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성령도 우리 속에 거하시는데, 예수도…?]
그러면, 예수님도 계시고, 성령도 계시는 것인가요?
성령이 계시는 것과 주님이 계시는 것은 차이가 없다.
신자의 경험속에서는 성령이 계시는 것은 주님이 계시는 것과 동일하다.
고전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리스도는 자주 영으로써 자기를 나타내신다.
갈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성령을 보내신다고 해도 되는데, 아들의 영이라고 표현한다.
성령은 고유의 특별한 특징을 나타내지 않으신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 우리 안에 계신다.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가 아니면, 성령이 임하지도 않으신다.
성령을 체험하므로, 그리스도의 성품이 우리 속에서 자리 잡고, 확대되는 것이다.
성령충만한 동안에 우리 구원의 주, 그리스도가 편안히 계시고, 더 그의 위치를 확보하시고, 그가 통치자로서 우리를 견인하신다.
[마음, 가장 정직하고 진실한 중심]
그의 임재는 마음에 이루어져야 한다.
에베소서에서 마음은 한마디로 인격의 중심이다.
생각하는 자아.
사고, 감성, 지성, 의지의 기능이 위치된 곳이다.
이것은 속사람과는 다르다.
속사람은 사람의 참 영적개체를 구성하는 핵심이다.
이 사람의 진짜 정체, 핵이다.
마음은 사람의 내면의 베이스를 말한다. 사람의 생각은 마음에서 나온다.
그런데, 마음은 원래 중립지역이다.
모든 정신활동의 기능을 담당하는 곳이다.
속사람이 능력을 받아, 강건해져서, 겉사람을 밀쳐내기 시작하면, 속사람이 그 사람의 정신기능을 쟁취한다.
마음은 원래 겉사람을 도왔는데, 이제 속사람을 도와야 하고, 거기에 예수께서 거하셔야 한다.
엡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이제는 속사람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온전한 인격체로서 마지막날까지 가야 한다.
엡4: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러나, 마음이 그리스도로 지배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편히 계시지 않는 것은 굳어진 마음이다.
마음은 모든 신앙의 표현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기관이므로, 무시할 수 없다.
엡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6: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찬양할 때도 나의 진실한 마음으로 하고, 사회에서도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다.
하나님을 대하듯, 세상 상관에게도 신실함으로 대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신다는 것은 신자들의 삶을 인도하시도록 그를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믿음은 상호 신뢰 관계]
이것은 믿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엡2:5,8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권한도 믿음으로 얻어졌다.
엡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그리스도께서 마음 속에 평안히 거하시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다.
내가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도 나를 신뢰하셔야 한다.
상호신뢰.
주님이 나의 의지를 빼앗아가시는 것이 아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믿음은 내가 갖고, 내가 사는 것이다.
삶은 내가 해 나가는 것이고, 주님은 나의 힘의 원천이시다.
나를 도우시지만, 내가 내 삶을 통제한다.
내 의지로 하는 것이다.
내가 주님을 신뢰해서 해야 하고, 나의 모습을 통해 주님이 나를 신뢰해야 한다.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상태다.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상태]
엡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주님이 우리 안에서 편하시도록, 당신의 뜻과 맞는 환경에서 편하게 거하실 때,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가 되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또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가 되기 바란다.
그래야, 비로소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내 마음에 계시다.
이 세상 마지막 순간까지 잘 모시는 자들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