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תּוֹרָה)”의 어원적 의미
히브리어 토라(תּוֹרָה)는 어근 야라(ירה)의 파생명사로, 기본적으로 ‘가르침’과 ‘교훈’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어근이 동사로 사용된 경우들을 보면,
출4:15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겔44:23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잠4:4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욥6:24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사28:26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토라(תּוֹרָה)가 가진 ‘이끌다, 인도하다’라는 의미가 잘 드러난 본문은 잠언 6장 23절입니다.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토라)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하나님의 명령이 곧 토라이고, 토라는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등불이고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토라는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 너를 보호하”는 것입니다(잠6:22). 즉, 히브리어 토라(תּוֹרָה)의 의미는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토라(תּוֹרָה)는 우리말 성경에서 다양하게 번역됩니다. 개역개정의 예를 들자면, “율법”으로 번역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법”이나 “규례(레위기의 경우)”로 번역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소수의 번역으로는, “법도”(창26:5, 출18:16, 18:20, 민15:16, 겔44:24), “율례”(겔44:5), “도”(렘32:23), “교훈”(잠13:14, 욥22:22) 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義)는 율법에 충실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며(롬1:16-17, 3:21-22), 율법은 죄를 드러내고(롬3:20, 7:7, 7:22-23, 갈3:23), 죄를 유도하는(롬5:20, 7:8-11) 것일 뿐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율법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5:17-18)
“하나님의 의”
(The Righteousness of God)
로마서 (Romans) 3:21~24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But now a righteousness from God, apart from law,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and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예수님의 “율법”과 바울의 “율법” 사이의 간극을 메꾸어 하나로 연결하려는 시도는 이천 년의 기독교 역사에서 수도 없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기표(시니피앙)가 같다고 기의(시니피에)도 같은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율법”이라는 단어를 썼을 때 어떤 의미를 그 안에 담았는지 문맥에서 찾는 것입니다.
기표(記表, 프랑스어: signifiant 시니피앙[*])와 기의(記意, 프랑스어: signifié 시니피에[*])은 페르디낭 드 소쉬르에 의해 정의된 언어학 용어이다.
"시니피앙"은 프랑스어 동사 signifier의 현재분사로 "의미하는 것"을 나타내며, "시니피에"는 같은 동사의 과거 분사로 "의미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기표란 말이 갖는 감각적 측면으로, 예컨대 바다라는 말에서 "바다"라는 문자와 /bada/라는 음성을 말한다. 기의는 이 기표에 의해 의미되거나 표시되는 바다의 이미지와 바다라는 개념 또는 의미 내용이다. 기표와 기의를 하나로 묶어 기호(記號, 프랑스어: signe 사인[*])라고 한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 즉 의미작용(意味作用, 프랑스어: signification 시니피카시옹[*])은 그 관계에 필연성이 없다(기호의 자의성).
예컨대 "바다"를 "바다"라고 쓰고 /bada/라고 발음하는 데 있어 필연성은 어디에도 없다. 만약 그것이 있었다면 모든 언어에서 바다는 /bada/로 발음되고 있을 것이다.필연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해하는 체계 속에서는 필연화되고 있다. 기의, 즉 "의미 내용" 또는 "개념"은 "지시 대상"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지시 대상"은 레페렌트(referent)라 하며, 기의와는 구별된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든 율법의 예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구약에 있는 수많은 율법의 명령 중에서 예수님이 든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살인하지 말라(21절),” “간음하지 말라(27절),”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38절),”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43절).”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형제에게 화를 내지도 욕하지 말고 화목하라고 하시고(22-24절), 마음으로 음욕을 품지도 말라고 하시며(28절), 오른뺨을 맞거든 왼편도 대주고 속옷을 원하면 겉옷도 벗어주고 오 리를 가자면 십 리를 같이 가주고(39-41절), 원수마저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44절) 가르치십니다.이러한 예수님의 명령은 율법을 더 지키기 어렵게 만들어 죄를 드러내고 죄로 유도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한 해석은 예수님의 율법 이해와 바울의 율법 이해를 혼합하여 내린 최악의 해석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율법”이라는 단어 아래 어떤 명령들을 나열하였는가, 그리고 어떤 명령들을 언급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안식일법이나 음식 규정, 제사법, 정결례, 할례 같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명령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언급된 율법은 이웃과의 관계에 관한 규정들입니다. 이 명령은 마태복음 19장에서 부자 청년과의 대화에서 다시 한번 반복됩니다.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마19:17-19)
율법 중 어느 계명이 큰가 묻는 율법사에게 예수님의 대답은 잘 알다시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마22:35-39). 이 두 율법 계명이 구약(토라와 느비임)의 핵심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율법 이해입니다(마22:40).
반면에 바울이 율법의 행위를 언급하면서 드는 예들은 할례나 정결례, 음식 규정 같은 것들입니다. 예수님의 율법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것들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이렇게 단순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바울이 “율법이 아니라 사랑이다”라고 외칠 때, 예수님은 “율법은 곧 사랑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 참고- 토라의 여러 사본
잠언 6장 알레포 코덱스
22 네가 걸을 때 그녀가 너를 인도하시고, 네가 누울 때 그녀가 너를 지키며, 네가 누울 때 기름 부을 것이다.
23촛불은 계명이고, 율법은 빛이고, 삶의 방식이며, 도덕에 대한 꾸짖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