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224) 주유의 또 다른 계책
유비의 영웅됨을 알아본 태부인은 몹시 만족하였다.
그리하여 속마음으로,
(이 만한 포부와 배짱을 가진 영웅이라면 딸을 주어도 아깝지 않겠다...) 라고, 생각하였다.
더구나 장막 뒤에서 유비의 동정을 살펴보던 자신의 어린 딸조차, 강동의 누구라도 괴이하게 여기는 쉰이 넘은 유비와의 혼사 응락의 피리를 불어대었으니, 태부인으로써는 기쁜 마음으로 이번 혼사를 빨리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리하여 만족한 눈길로 아들을 건너다 보며,
"이제는 두 사람의 혼례를 하루속히 준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고, 자신의 내락을 얹어 말하였다.
그러자 손권이,
"네, 속히 길일을 택하여 혼례를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바라던 대답을 흔쾌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리고 유비와 조자룡, 손건을 향해,
"황숙은 물론, 배행해 온 장군들도 함께 자리에 앉아, 오늘의 기쁨을 함께 합시다."
하고, 술잔을 들어보였다.
조자룡이 유비의 곁에 앉자, 태부인이 그를 보고 유비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누구요?"
"저의 장수 상산 조자룡입니다."
"아, 그러면 저 장수가 바로 당양 장판교 싸움에서 어린 아두(阿斗)를 품에 안고 조조의 백만 대군을 무인지경으로 달렸다는 그 장수요?"
"네, 바로 그 사람이옵니다."
태부인은 그 소리를 듣고 감탄해 마지 않으며 말한다.
"참으로 다시없는 천하의 명장이자 충신이오. 그런 뜻에서 내가 친히 술을 한 잔 권하겠소."
태부인이 친히 술을 권하자, 조자룡은 무릎을 꿇고 받아 마신다.
이렇게 살벌하였던 맞선 보기에 이어, 화기애애한 주연조차 끝나자, 유비는 조자룡과 손건의 배행을 받으며, 감로사 뜰 아래로 내려왔다.
유비는 방금 전 만족스런 결과를 얻은 것에 스스로 자신감이 용솟음쳤다.
리하여 뜰 한쪽에 커다란 바위를 보는 순간, 조자룡을 돌아보며 말한다.
"내 검을 주게."
조자룡이 돌아서 유비의 쌍고검을 들어 바치자, 유비가 그 중에 한개의 검을 빼내어 커다란 바위 앞으로 향한다. 그리고, 칼을 들어 속으로 다짐을 한다.
("천지신명이시어, 나 유비가 형주로 돌아가 대업을 이룰 수 있다면 검을 내리칠 때 이 바위가 두 조각이 나도록 해 주시고, 형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면 차라리 검을 부러뜨리소서.)
이렇게 하늘에 대고 맹세한 유비가 바위를 향하여 힘차게 검을 내리쳤다.
"으잇!"
"챵! ~..."
순간, 칼이 바위를 가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데도 불구하고, 유비가 내리친 칼에 단단한 바위가 두 조각으로 <쫙!>하고, 갈라져 버렸다.
이런 모습은 계단을 내려오던 손권이 뒤에서 지켜 보았으니, 그는 유비를 향해 물었다.
"그 바위가 무슨 잘못 이라도 했습니까?"
유비가 돌아서, 미소를 지으며,
"오후(吳侯), 이제 내 나이 쉰을 넘겼는데, 역적을 소탕하지 못한 것이 늘 한이 됬었소. 이렇게 태부인의 사위가 되어, 가족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하늘의 뜻을 물었소이다. 조조를 치고 한(漢)을 부흥시킬 수 있다면 단 칼에 바위를 쪼개달라고 말이오."
유비는 진실을 감추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자 손권이 둘로 갈라진 바위를 가르키며,
"하늘에서 그 바람을 허락하신 모양이군요. 좋습니다. 저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조조를 제거할 수만 있다면, 바위가 깨질 겁니다."
그리고 뒤에 선 장수 가화에게 명한다.
"검을 가져와라"
손권이 유비가 둘로 쪼갠 바위 앞으로 검을 들고 다가선다. 그리고, 방금전 유비에게 말한 것과는 다르게,
("형주를 얻고, 대업을 이룰 수 있게 된다면 바위를 두 쪽으로 쪼개주십시오.")
하고, 속으로 외친후, 바위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챠앙! ~..."
그러자 이번에도 바위는 여지 없이 두쪽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손권이 유비를 돌아다 보며 입을 연다.
"역적은 망하고, 한(漢)은 부흥하리, 우리의 소망은 이뤄질 겁니다."
유비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권에게 다가가서 그의 손을 맞잡고 함께 감로사를 떠났으니, 지금도 감로사 뜰에는 그 당시의 십자문 흔석(十字紋 痕石)이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다.
...
그로부터 며칠 후, 길일을 택하여 대혼례식(大婚禮式)이 거행되었다.
혼례식이 끝나자 축하연이 벌어졌고 그자리에서 유비는 크게 취하였다.
그리하여 태부인 앞으로 가서,
"태부인, 한잔 드십시오."
하고, 권하자. 태부인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대답한다.
"좋지."
태부인은 술 한잔을 마신뒤에,
"이보시게, 오늘 얼마나 마셨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불콰해진 유비가,
"글쎄요.. 사 오십 잔 쯤 마신 것 같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태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이런,이런.. 영웅 호걸이 백년 해로를 하려면 백 잔은 마셔야지!"
하고, 말하며 좌중을 향해,
"아니 그런가?"
하고, 동의를 구하자, 좌중에서는,
"하하하! 맞습니다."
"그러문요!, 허허..."
하는 대꾸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그 말을 듣고 유비가 뒤를 돌아다 보며, 좌중을 향해,
"좋습니다. 그럼, 태부인 말씀대로 백 잔을 마시겠습니다."
하고, 말하고 또 다시 잔을 들어보였다.
이렇게 왁자지껄, 주거니 받거니로, 일배부일배(一盃附一盃)를 하는 동안 밤은 깊어졌고, 축하연은 새벽에 이르러서야 끝나게 되었다.
유비가 시종의 안내를 받으며 대취하여 신방에 들려하니, 신방을 지키는 시녀들 모두가 허리에 칼을 찬 채로 좌우로 도열해 있는 것이 아닌가? 유비가 괴의하게 여겨 시종에게 말한다.
"여기가 신방이라구? 마치 무슨 병영같구먼."
"아가씨가 무예를 좋아하셔서 신방을 새롭게 꾸미신 것입니다."
"오?...허허허!..이제 자네는 물러가게."
유비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신방에 들었다.
신방에 들자, 유비가 상향을 보고 감격에 겨운 어조로 말한다.
"인생은 참으로 알 수가 없구려, 쉰을 넘기고도 이렇게 아름다운 부인을 맞이할 줄이야!...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구려..."
"부인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상향의 대답은 <톡> 쏘는 소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유비는 점잖은 어조로 되묻는다.
"응? 혹시 내가 싫은 것이오? 혼인을 원치 않소?"
"네! 싫습니다."
상향의 대답은 <똑> 떨어지게 나왔다.
"그럼, 감로사에서 어찌 피리를 분 것이오? 이번 혼사를 동의한 것이 아니란 말이오?"
"강동을 위해서였습니다. 이곳을 지켜야 하겠으니까요..."
유비가 그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상향을 마주보고 두 손을 모아 정중히 허리를 굽혀 반절을 해보인다.
그리고 입을 열어,
"솔직히 말해주어 고맙소. 그럼, 나도 솔직히 애기하겠소. 나는 부인을 보자마자, 첫 눈에 반했소이다.나, 유비는 사내 대장부로써 부인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형주의 주인으로서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대장부의 자격도, 그대의 남편이 될 자격도 없을 것이오. 그러니 지금부터 예를 갖추어 대하겠소. 그대가 원치 않는다면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겠소. "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상향은 그 소리를 듣자, 유비를 경애하는 눈망울로 올려다 보았다.
...
이렇게 꿈같은 첫날밤이 지나가고 이튼날 아침이 되자, 태부인이 몸소 상향을 찾아왔다.
"어머니!"
상향이 느닺없이 나타난 모후를 보고 예를 표하자,
"새 신랑은?.."
하고, 홀로 있던 딸에게 묻는다.
"말을 타러 갔습니다."
"뭐가 어째? 어찌 신부를 버려두고 아침부터 말을 타러 나갔단 말이냐?"
"어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다른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단지 홀가분한 마음이 들어서 바람을 쏘인다고 나간 것이니까요."
모후가 그 말을 듣고, 샐쭉 눈을 흘기며 말한다.
"이런.. 혼인을 하자마자 신랑의 역성을 드는 것이냐?"
하고, 딸에게 귀여운 핀잔을 주었다.
상향이 모후의 그 말을 듣고, 눈을 내리 깔며 미소를 지었다.
모후가 그런 딸의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더 한다.
"녀석 ... 하룻 밤 사이에 딴 사람이 된 것 같구나..."
...
한편, 감로사에서 유비를 시해 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여몽은 주유를 찾았다.
"대도독, 이 일 이 지경이 된 것은 저의 불찰입니다. 대도독께 실망을 안겨드렸습니다."
하고, 말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주유는,
"자책할 필요는 없네, 일이 성사 되는 것은 하늘에 달린 것이지."
하고, 대답한다.
여몽이 주유에게 묻는다.
"그럼, 앞으로 어찌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두 사람의 혼인이 정말 성사 되었으니, 계속 비위를 맞춰줘야 하겠지."
"무슨 의도를 가지고 말씀하신 겁니까?"
"유비를 우리 동오에 계속해 붙잡아 둔 뒤, 호화 주택을 주고 많은 미녀와 시종을 딸려 보내, 안락한 생활에 빠지게 하여 형주로 돌아갈 생각이 없게 만들게 되면, 필시 주인 없는 형주에서는 변란이 일어날 것이니, 그때 우리는 군사를 일으켜 형주를 치면 될 것이야."
"대도독, 유비는 큰 뜻을 품고 있어, 물질로써 그의 포부를 꺾을 수가 있겠습니까?"
"걱정 말게, 황숙이라곤 하지만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야. 게다가 지금까지 천하를 누비며 떠돌아 다니면서 죽자고 고생만 했지, 인생의 즐거움을 누린 적이 없었을 것이야. 그걸 경험하게 해 주면, 사나흘 굶주린 사람에게 진수성찬을 차려 주는 것과 같은 것이지, 그러니 그를 한번 <호랑방탕>에 빠뜨려 보자구!"
주유는 자신감을 가지고 말하였다.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주공께서 태부인의 허락을 받아 소주공 손책 장군이 쓰던 궁전을 유비에게 내 주셨네. 잘 수리해서 화초요화도 흐드러지게 심고, 집기도 최고급으로 바꾸도록 하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시종도 수십 명을 보내도록 하고, 보석도 준비하게. 유비에게 쾌락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도록."
"알겠습니다."
여몽이 고개를 숙이며 명을 접수하였다.
...
며칠이 지난 뒤, 유비는 시종의 안내와 함께 조자룡의 호위를 받으며, 수레를 타고 어느 호화 저택으로 인도되었다.
"황숙! 이곳은 손책 장군께서 쓰시던 동궁(東宮)으로 태부인께서 두 분께 내주라 하셨습니다."
시종이 이렇게 아뢰자,
"아, 이런.. 내가 어찌?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고, 사양하는 듯이 말하면서도 기쁜 얼굴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조자룡이 난생 처음 보는 산호초를 가리키며 묻는다.
"주공, 저게 뭡니까? 처음 보는 것인데요."
"남해에 산호라는 것인데, 나도 실물로 이렇게 큰 것은 처음 보는군."
"그럼, 이건요?"
조자룡은 온통 귀하고 처음 보는 것에 대해 의문이 많았다.
"서역의 오기(五器)네."
"엄청 화려한데요."
"그래, 못 해도 몇만 냥은 하겠군,"
이렇게 대답하는 유비의 입가에는 만족, 또 만족의 미소가 번졌다.
(후 훗!... 처갓집도 부자고, 게다가 아내도 <쮸쮸 빵빵>에 이팔 청춘이니... 허 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