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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에게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겨준 소설 '설국(雪國)'의 첫 문장입니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도 기후현과 나가노현 사이에 있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북알프스 품안이었습니다. 머리에 흰 눈을 이고 있는 3,000m급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참고로 '설국'의 무대는나가노현 동북쪽에 붙은 니가타(新潟)현이고, 지금의 행정구역 겐(県)을 예전엔 구니(國)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국경은 지금으로 따지면 현의 경계입니다)
비너스라인이라고 부르는 녹색 구릉을 헤집고 맨 처음 도착한 곳은 기리가미네(霧ヶ峰) 고원입니다. 지명과 달리 안개는 없어 시야가 청명합니다. 우리는 로프웨이(스키장용 리프트)를 두 번 타고 최고봉 구루마야마(車山)에 올랐습니다. 지리산 천왕봉보다 10m 더 높은 1,925m인데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가쁜 숨 한 번 몰아쉬지 않고 정상을 밟았죠.(참고로 우리는 리프트와 곤돌라와 케이블카를 구분해 부르는데, 일본에서는 통틀어 로프웨이라고 합니다. 유럽에서 푸니쿨라라고 일컫는 경사형 산악철도를 케이블카라고 합니다)
사방이 일망무제로 펼쳐져 있습니다. 일본 최고봉이자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富士山)도 희끄무레하게 보입니다. 우리가 갈 노리쿠라다케(乘鞍岳)와 다테야마(立山)도 보입니다. 조그만 신사(神社)도 꾸며져 있네요. 일본 100대 명산에 꼽힐 만합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손쉽게 올라온 탓인지 감동은 다소 떨어집니다.
다시 리프트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합니다. 버스 안에서 구수회의를 엽니다. "아무래도 숙소에서 한잔 해야 하지 않겠냐?" "물론이지, 사케 안 마시면 서운하지"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서 가자" "돈은 어떻게 걷을까?" "다른 사람은 놔두고 술 마시는 사람만(피 선배, 저, 산바람, 한 교수, 꿈푸리) 1만 엔씩 미리 내자" "가상이가 안주 많이 집어먹으면 어쩌지?" "내가 말릴게"
슈퍼마켓에서 술과 안주감을 집어듭니다. 1.8리터짜리 월계관 청주 대병 하나와 중병 일본주 하나, 맥주 6캔을 사고 문어, 오징어, 참치, 연어 등도 샀습니다. 값이 생각보다 싸 카트가 넘칠 정도로 담았는데도 7천여 엔밖에 안 들었습니다. 우리의 대화를 엿들었는지 가상이는 자기가 마실 무알코올 맥주와 과자 등을 따로 삽니다.
스와코(諏訪湖)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전통 온천여관입니다. 호수 주변을 걷거나 뛰는 사람이 눈에 많이 띕니다. 새벽에 산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다미가 깔려 있는 방에 짐을 풀고 온천탕에 몸을 담갔습니다. 여독이 한꺼번에 풀리는 느낌입니다.
저녁식사는 여관에서 제공하는 가이세키(會席)입니다. 네모난 상자에 생선회와 채소조림 등이 예쁘게 담겨 있습니다. 왼쪽에는 샤부샤부용 고기와 채소와 국물이 놓여 있고요. 양이 적다 싶었는데, 그 뒤로도 음식이 계속 나오더군요. 여행 비용이 비싼 게 아니었습니다. 이후로도 숙소와 식사는 대만족이었습니다.
맛난 식사에 술이 빠질 수 없죠. 전체 경비에서 술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방에서 술자리가 예정돼 있긴 하지만 반주를 곁들여야죠. 피 선배가 나마비루(생맥주) 한 잔씩 쏘겠다고 하자 최 소장이 "10명 넘긴 기념으로 제가 쏘겠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사실 10명을 넘겨 혜택을 본 나머지가 사야 하는데, 바뀐 듯합니다. 아무래도 좋죠.
김 교수 내외를 뺀 8명이 저와 꿈푸리가 자는 방에 모였습니다. 여성 방은 불편하고, 산바람과 한 교수가 자는 방은 한 교수가 어색해할 수도 있어 저희가 독박을 자청한 거죠. 최 소장에게 연락하니 내일 일정 정리할 게 있어서 빠지겠다는군요. 하긴, 저희는 놀러왔지만 최 소장은 일하러 온 거니까요. 여행에 동참한 동기와 첫날 소감, 앞으로의 기대 등을 털어놓으며 잔을 기울이니 거대한 술병이 금세 바닥을 드러냅니다. 여성 네 분은 먼저 자리를 뜨고 나머지 네 명이 중간 술병마저 비웁니다.
한 숙소에서 며칠 머물면 술을 냉장고에 두었다가 마셔도 되는데, 계속 이동하다 보니 술을 사는 대로 다 비울 수밖에 없더군요. 안주도 신선식품은 먹어 없애는 수밖에요.
쓸데없는 농담도 끼어듭니다. "일본이 독도를 탐내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글쎄, 해양자원도 많고 전략적 가치도 크고..." "독도를 일본인들이 뭐라고 부르죠?" "다께시마 아닌가" "그걸 거꾸로 해보세요" "마시께다" "거봐요. 맛있겠다고 생각해서 먹으려고 하는 거예요" "나 원 참!" "대마도도 원래 우리 땅이었는데 일본이 빼앗아간 거라고 하잖아요." "그래" "대마도는 일본어로 뭐라고 하죠?" "쓰시마잖아" "거꾸로 하면?" "마시쓰" "먹어보니까 맛있거든요. 그래서 또 먹으려고 하는 거죠" "말 되네"
아침도 여관에서 제공하는 1인용 정식입니다. 깔끔해서 좋습니다. 이제 버스를 타고 이동입니다. 하지만 예보대로 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이런 예보는 좀 틀려도 되는데. 오후에 갠다고 하니 기대를 품어봅니다.
노리쿠라 고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현지 셔틀버스로 이동합니다. 여기서는 개인 차량은 운행할 수 없습니다. 해발 2,700m 다타이다이라(壘平)까지 버스로 올라간 뒤 노리쿠라다케 정상인 겐가미네(剣ヶ峰 3,026m)까지는 걸어서 올라야 합니다. 노리쿠라에 겐가미네라. 노리끼리하고 야리꾸리한 산에 가는 게 맞는 건지 긴가민가하네요. ㅋㅋ
박 대표가 "저는 한 시간이면 충분히 올라가는데, 넉넉잡고 두 시간 걸릴 겁니다. 내려오는 건 시간이 덜 걸리니 세 시간 남짓이면 되겠죠"라고 말합니다. 버스에서 내리니 긴장감이 감돕니다. 주차장 바로 옆에는 눈 쌓인 자연 슬로프에서 리프트도 없이 스키를 타고 있습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습니다. 바람도 많이 붑니다. 우비를 챙겨 입고 등산화에 아이젠을 차고 트레킹폴(지팡이)을 꺼내 듭니다. 모두들 걱정스러운 표정이 역력합니다. 산바람은 "악천후를 뚫고 꼭 올라가야 하나?"라고 투덜댑니다. 버스에 함께 탔던 다른 한국인 등산객들도 갈지말지를 놓고 설왕설래합니다.
오전 11시 반입니다. 최 소장이 출발하자고 합니다. 아직 준비가 덜 끝난 대원들이 있습니다. 박 대표가 최 소장한테 먼저 올라가라고 합니다. 최 소장이 맨 앞에 서고 이 교수와 정 이사가 따라갑니다. 저는 그 다음입니다. 7부바지를 입은 이 교수가 많이 추워 보입니다. 저 복장으로 정상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정 이사도 가냘픈 다리로 눈길을 오르는 모습이 위태위태합니다. 저더러 먼저 올라가라고 길을 양보합니다. 제가 최 소장 바로 뒤에 따라갑니다. 뒤를 내려다보니 따라오는 기색이 없습니다. 그래도 일단 위험한 구간을 지나서 기다리자는 생각에 내처 걸었습니다.
눈길이 끝나고 경사도 완만해졌습니다. 저와 최 소장 앞뒤로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려오는 등산객도 뜸합니다. 마침 여성 한 명에게 최 소장이 말을 겁니다. 일본어를 잘 모르지만 "아부나이"란 단어가 오갑니다. 위험하다는 뜻이죠. 최 소장이 "위험한 구간이 있긴 한데 여기까지 오셨으니 그냥 가시죠. 힘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도로 내려가면 되니까요"라고 합니다. 언제 여길 또 올지 모르는데 포기할 수는 없죠. 비는 다행히 그쳤습니다.
50분쯤 오르니 산장이 나옵니다. 중년남성 한 명이 바람을 피해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네요. 한 시간쯤 걸릴 거라고 하네요. 여성 말대로 위험한 구간이 나타납니다. 60도쯤 되는 경사의 비탈길을 걸어야 합니다. 비탈길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여서 자칫하면 끝도 없이 굴러야 할 듯합니다. 바람도 세차게 붑니다. 트레킹폴이 바람에 휘청휘청합니다. 모자의 끈도 바짝 조였습니다. 가벼운 사람들은 바람에 날아갈 듯합니다. 정말 목숨 걸고 걸었습니다.
다행히 100m 남짓 걸으니 위험 구간이 끝납니다. 여기서부터는 너덜지대입니다. 두 차례의 너덜지대가 끝나니 완만한 길이 나타납니다. 화산지대 특유의 검은 흙길입니다. 고산지대여서 풀과 나무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마침내 절의 일주문 격인 신사 입구의 도리(鳥居)가 보입니다. 정상입니다. 산장에서 40분가량 걸렸습니다.
최 소장과 사진을 번갈아 찍고, 버스에서 챙겨온 무알코올 맥주로 정상주 기분도 냈습니다. 해발 3,000m라니. 이보다 높은 스위스 융프라우나 고르너그라트, 카자흐스탄 침불락에 오른 적이 있지만 그건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로 정상 근처까지 오른 것이죠. 비록 고도를 300m 남짓 높인 것에 불과하지만 두 발로 걸어서 올랐으니 제 인생에서는 기록적인 날입니다.
아쉬운 대목은 동료들이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과 주변이 온통 뿌연 곰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우리를 제외한 일행 열 명 가운데 일부는 조금 올라가다가 일찌감치 포기했고, 나머지도 위험한 구간이 있으니 산장까지 올랐다가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연락을 받지 못해 그냥 올라간 것이고요.
하산하는 길에 박 대표와 최 소장의 전화가 연결돼 그제서야 사정을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를 계속 기다릴 수 없어 오후 1시 15분 버스를 타고 내려간다네요. 다음 버스는 3시 15분이어서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내려가다가 산장에서 만났던 중년남성과 마주쳤습니다. 한 시간 걸린다는 길을 우리는 40분 만에 와서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올라와 보지도 않고 짐작으로 말했던 모양입니다.
너덜지대를 통과하니 눈길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올라왔던 길과 달라 보입니다. 저는 "너덜지대 따라 더 내려가면 등산로가 나오지 않겠냐"고 했더니 최 소장은 "잘못하면 다른 골짜기로 내려가는데, 그러면 오늘 중으로는 일행과 못 만난다"며 손사래를 치더군요. 다시 위로 올랐다가 내려가기를 거듭한 뒤 마침내 길을 찾았습니다. "휴! 살았다"
우리가 지나온 위험 구간입니다. 여성 3명과 남성 1명으로 구성된 팀을 만났습니다. 산장 위에서 정상에 이르는 구간에서는 두 번째 만난 팀입니다. 올라가는 줄 알았더니 내려가더군요. 위험 구간을 되돌아가는 듯합니다. 이제 날씨가 개었습니다. 파란 하늘이 보이다가 햇빛까지 납니다. 이 멋진 풍경을 정상에서 보지 못한 게 한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원영적 사고로 받아들여야죠. (원영적 사고는 걸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식 초긍정적 사고를 말함. 어떤 좋지 않은 상황이 닥쳐도 좋은 점만 떠올리면서 "난 정말 행운아"라고 여기는 것)
주차장까지 내려오니 2시입니다. 불과 두 시간 반을 걸었을 따름이지만 워낙 높은 곳을 오른 데다 위험구간을 지나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마치 장시간 산행을 마친 듯 뿌듯한 성취감과 나른한 피로감이 몰려 옵니다. 정상에서 먹지 못한 도시락을 뒤늦게 꺼내듭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도시락을 밑에 두고 가는 건데... 멋진 경치를 내려다보며 늦은 점심을 먹으니 꿀맛입니다.
셔틀버스를 타고 주차장에 도착하니 표정들이 좋지 않습니다. 저는 나머지 일행을 대표해 악천후를 뚫고 정상을 올라갔다가 왔으니 환영하고 축하해줄 줄 알았는데 웬걸요. 이들의 논리는 "산장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로 했는데, 둘만 올라가서 나머지 일행을 두 시간이나 기다리게 하고, 실종되면 어쩌나 큰 걱정까지 끼쳤으니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들은 반도코로오다키(番所大瀧) 폭포의 절경도 구경하고 찻집에서 커피도 마셨으면서 마치 우리를 줄창 기다리기라도 한 듯 말입니다.
물론 미안한 마음은 없지 않았습니다. 고봉을 올랐다는 성취감을 둘이서만 누렸으니까요. 어쩔 수 없죠. 만일 최 소장과 저도 다함께 출발했다면 모두의 안전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회군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겠죠.
버스에서 또 객쩍은 농담을 늘어놓습니다. "날씨가 개었죠" "뭐 개 같았다고" "요즘 젊은이들은 '개'를 영어 '베리'란 뜻의 접두사로 쓴다면서요?" "여기 교수님들 몇 분 계신데 3월이나 9월에는 교수에게 덤비면 안 된대요" "왜?" "개강하니까요" "풋!" "방안에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섹시한 게 뭔지 아세요?" "뭔데?" "이불이요" "?" "개야하니까요" "푸하하!"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