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cafe.daum.net/historywar/2LjP/1715
위 게시물의 링크도 같이 참조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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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8/06/17/1998061770283.html
1960년 육본 정보국에서 근무하던 육사8기 이영근(유정회 총무역임) 중령은 "장교들은 영내에서 점심을 굶고 '불식미'라는 전표를 모아 쌀로 바꾸곤 그릇도 마땅치 않아 신문지에 받아서 집으로 가져가곤했다. 미국에 군사유학까지 간 장교가 쌀이 부족해 군용파카의 털달린 안감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 살던 시대였다. 울분이 절로 솟았다"고 했다.
1960년 육군연감에 따르면 이해 복무중 각종 사고로 죽은 군인은 1천3백47명이나 됐다. 요사이 군 사고 사망자 비율보다 3-4배나 높았다. 사인별로는 근무중 순직사 45명, 병사 3백78명, 자살 2백51명.이해 탈영자는 1만6천7백87명이나 되었고 월북자는 12명, 월북기도자는 6명. 군기 위반으로는 무임승차가 많던 시절이었다. 1956-60년 사이 강원도 화천 3사단 포병중대의 행정병으로 근무했던 강호창(인천 거주)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증언했다.
- 1998년 6월 17일자 조선일보 기사 "[박정희 생애] 제8부 격랑속으로-④ 황용주의 격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