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봉사
조흥원
한 달에 한두 번 시각장애인
운동보조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일명 등산봉사라 한다. 봉사
방법은, 계획된 장소로 이동하여 시각장애인에게 팔의 한쪽을 내주어 잡게 하고 같이 걸으면서 그의 눈을
대신하는 것이다. 계단이 있습니다, 높이가 조금 높은 계단입니다, 턱이 있습니다, 가파른 길입니다,
좁습니다, 내리막입니다, 등등 가능한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안내를 한다. 가급적 동정이나 과잉친절은 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이해하면서 행동하면 된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두어 시간 걷고 나서 점심식사를 한다. 시각장애인이므로 앞이 보이지 않지만 수저나 밥과 반찬의 위치를
알려주면 대부분 혼자서 식사를 잘한다. 밥과 반찬의 위치를 잡아주고 쉽게 집을 수 있도록 보조접시에
찬을 놓아주고 하면서 같이 식사한 다음 커피도 마시면서 담소를 즐긴다.
오전 9시 집합장소에 모였다. 하늘에는 군데군데 구름이 떠 다니고 바람이
살랑살랑 약간 시원한 느낌이 드는 전형적인 가을날씨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예상된다. 시각장애인과 봉사자들이 같이 차를 타고 이번 목적지인 증평 좌구산으로 갔다.
구름다리 밑에서 내려 각각 한 명씩 파트너를 정하고 짝을 지어 계단을 올랐다. 구름다리
높이가 50미터란다. 계단을 한참 올라 다리 입구에 도착하여
안내 표지판을 보았다. 모두 이곳이 처음이라 자작나무 테마숲길 세 코스 중에서 2코스인 2키로 거리의 70분
산행을 선택하기로 했다. 구름다리는 현수교로 양쪽에 기둥을 세우고 굵은 밧줄을 늘어뜨려 연결한 다리인데
폭이 2미터로 넓다. 다리 길이가 계곡을 가로질러 230미터나 되어 중간쯤 가니 출렁거리는 느낌이 들고 아래 보이는 깊은 계곡의 시야와 함께 짜릿한 게 제법 스릴을
느끼게 한다. 다리에서 보이는 저 앞쪽 위로 짚 라인을 타고 계곡을 횡단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와! 재미 있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 우리 일정에는 없다.
다리를 건너 잘 닦아
놓은 임도를 따라 걸었다. 아스팔트는 아니지만 길에 자잘한 돌을 뿌려 다졌고 많이 가파르지 않아 걷는
데는 최상의 길이었다. 좌우 산림의 초록빛과 숲 내음이 마음을 맑게 하고 시원한 바람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오늘 내 파트너는 작년 정년퇴직 하신 교수님이시다. 십
년쯤 전에 원인 모르게 시신경이 손상되어 실명하신 분이다. 나와는 자주 파트너를 하고 있는데, 역사가 전공이라 주변에 역사적 산물이 있을 경우 현장강의를 실감나게 하시곤 하셨다. 오늘은 요즘 시국이 그런지라 나름대로의 의견을 피력하신다. 나도
조금은 열을 내며 같이 의견을 나누면서 대화를 했다. 우리나라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함께 자신의 미래를
우려하는 것은 누구나 어쩔 수 없으리라. 그렇게 40분쯤
걷고, 잠시 쉬면서 몇몇 사람이 준비해 온 커피, 음료와
간식을 먹는다. 먼저 온 사람들은 기다리면서 대화를 나누고 마지막 사람들이 도착하면서 커피타임이 막바지가
되었다. 한 팀이 걷다가 앞에 뱀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놀랐단다. 그
얘기를 듣고 반응이 엇갈린다. 대부분은 무섭고 징그럽다는 반응을 했지만, 일부는 맛있는 음식이고 보약인데 잡을 걸 그랬단다. 다시 출발하여
또 한참을 걸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안내표지판에서 본 쉼터나 거북바위가 나오지 않고 무슨 마을 쪽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우리가 초행이고 이정표가 아직 완전하지 않은 탓에 길을 잘못 들었나 보다. 이미
한 시간쯤 걸었다. 다음에 다시 제대로 돌아보기로 하고 뒤로돌아 온 길을 되돌아 갔다. 그래도 기분은 상쾌하고 좋았다. 좋은 날씨에 운동도 충분하였고 코스도
괜찮았다.
점심식사는 버섯요리를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버섯이 풍년이라며,
맛있는 버섯요리를 먹고 싶다는 의견으로 통일되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근처에 버섯요리
식당이 안 잡힌다. 의견을 조율하며 차를 타고 조금 내려오다 보니 마을회관 표지가 있는 옆에 버섯찌개
간판이 보인다. 운이 좋았다. 원하는 곳을 바로 가까운 곳에서
찾았으니. 밤버섯, 싸리버섯, 갓버섯, 가다바리버섯, 능이버섯
등이 들었단다. 서비스로 제공한 두부김치도 맛있었고, 찬도
맛깔스런 나물들로 준비되어 모두 좋아한다. 생막걸리와 함께 즐거운 식사를 했다.
시각장애인 봉사를 하면서
나는 나름 느끼는 것이 많다. 내가 시력을 잃는다면 나는 전부를 잃은 것으로 느낄 것이다. 즐겨보는 인터넷도 핸드폰도 텔레비전도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하고
싶은 것도 스스로 하지 못하고 움직이는 것도 제약이 많이 따를 텐데,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좌절로 위축된 마음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내가 봉사하면서 만난 시각장애인들은 나름 행복해한다. 도움을 받아서
고맙고 행복하고, 이웃과 즐겁게 지낼 수 있어 행복하고, 받는
만큼 봉사할 수 있어 행복하단다. 수영, 시 낭송, 오카리나 연주, 독서 등 다양한 취미생활도 하고, 핸폰으로 전화도 하고, 인터넷도 이용한다. 물론 그림이나 사진은 못 보지만... 그리고, 안마사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봉사 받는 만큼 노인정에 다니면서 자원봉사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사소한 불편이나 작은 불행에도 쉽게 한탄하고
절망하던 나를 다시 돌아본다. 시각장애인들에 비해 내가 더 불행하고 더 힘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그들도 희망을 가지고 즐겁고 행복하게 이웃들과 어울리면서 살고 있는데... 그래
맞다. 복에 겨운 게다. 너무 건강하고 행복해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복을 누리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는 게야. 푸른 하늘 햇살이 다시 보이고, 건강한 내가 무언들 못하랴 하는 의욕이 생긴다. 결국 나는 봉사하면서
베푼 것보다 배우고 얻은 게 훨씬 더 많음을 실감한다. 오늘도 등산봉사를 즐겁게 마치고 행복을 안고
집으로 향한다.
첫댓글 회장님 좋은일 하시네요. 마음은 있어도 실천은 어려운 일을 하시고 계시네요.
보람도 있으리라 생각 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발표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앗습니다. 의견들을 종합하여 내용과 순서를 수정하여 평생공부교실에 올립니다.
이 글은 초안으로 지우지 않고 그냔 두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은 발표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시고 조언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