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오늘은 여유가 있다. 비가 온다는 연길의 일기예보... 틀렸다! 오늘 연길 날씨 또한 구름 한점 없이 맑다. 한반도 북쪽
끝자락, 두만강이 동해 바다와 만나는 곳, 리무진 버스는 훈춘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가 타고 가는 리무진 버스는 이층 버스다. 좀 더 먼 곳을
잘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든 이층 버스다. 연길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 허원무씨가 안내를 한다. 옆에 보이는 강이 혜란강이라고... ‘선구자’
노래에 나오는 혜란강이란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니 봉우리를 가리키며 저곳이 일송정이 있는 곳이라 한다. 그 곳에 오르면 혜란강 전체가 잘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노래에 나오는 그 소나무는 지금 없고, 대신 다른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중국의 고속도로, 고속철도,
중국의 경제 성장을 한 눈에 보는 것 같다. 얼마를 달리니 오른쪽 창으로 보이는 강이 두만강이고 그 강 넘어가 북한이라 한다. 산에 나무가
없다. 모두 땔감으로 쓴 것일까? 신기하게도 높은 곳까지 온 산에 나무가 없다. 중국 쪽의 산에는 나무가 울창한데... 나진, 선봉 지구로 갈
수 있는 다리에 잠시 멈추었다. 중국 세관이 있다 한다. 물건을 싫은 화물차 들이 북한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한반도의 끝이 점점
가까워지자 이 지형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버스가 달리는 길을 빼고, 왼쪽은 러시아, 오른쪽은 북한이라고...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지 역사
이야기도 함께 곁들인다. 드디어 한반도 끝이 보이는 곳, 동해바다가 육안으로 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날씨가 좋으니 저 멀리 동해 바다도 보인다.
북한에서 러시아로 들어가는 철교도 보인다. 왼쪽에는 러시아 기차역이, 오른쪽에는 북한 기차역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교차한다...
버스는 다시 도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도문에 도착하니 홍수가 났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두만강 가에 온통 수마가 할퀴고 간 자욱이
선명했다. 강 반대편 북한 쪽에서 요란한 확성기 소리가 들려온다. 모두 나와서 수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 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강
아래쪽, 그리고 마을 쪽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북한과 중국을 연결하고 있는 다리, 일제 강점기 때 놓은 다리라고 한다.
1941년이라 쓰여 있다. 허연일 회장이 중국 경비원과 한참 이야기를 하더니, ‘우리 모두 이 다리를 걸어가 보아도 좋다는 허락이 났다’ 이야기
한다. 두 개 조로 나누어 한 개조가 다리를 걸으며 구경할 때, 다른 한 개 조는 북쪽을 잘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오르기로
했다.
(다리 끝이 북한이다. 다리 중간에서 발길을 돌려 걸어오는 대종회 임원들, 이 다리를 건널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홍수로 인해 다리 밑의 모든 것이 휩쓸려 나갔다)
북한 쪽으로 향하는 다리를 걷기 시작했다. 만감이 교차하며 묘한 감정이 든다. 이렇게 계속 걸어가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니, 다리의
1/3 지점에 줄이 그어져 있는데, 이 줄을 넘어가면 벨이 울린다고 한다. 참 안타깝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 북쪽이 고향인 분들의
마음은 오죽하랴...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 모여 기념 촬영을 했다. 다리 끝 북한 쪽 건물에는 육안으로도 잘 보이는 김일성과 김정일 사진이
건물에 걸려 있었다. 수해 현장을 복구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일하는 모습 또한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선전 부대인지, 붉은 기를 좌,
우로 흔드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작업을 독려하는 것인지...
(북한 주민들이 수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한다.)
문득 슬픈 생각이 든다. 저렇게 일 한 후의 저녁 식사는 어떤지... 식량이 넉넉지 못하다는 북한, 저들은 저렇게 동원되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저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측은한 마음이 든다. 우리는 맛있는 점심 식사를 배불리 먹고, 구경을 하고 있다. 바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점심 식사 때 맛있는 많은 음식들을 남겼다 생각하니 미안하고,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부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저들도 도울 수 있다 생각한다. 그런데 어제도 오늘도 뉴스에 노동자들의 파업 관련 소식이다. 세계 경제는 물론,
한국 경제도 어렵다는데... 보리고개로 어려웠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우리 모두 배가 너무 부른 것 같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지
못 하듯, 우리 또한 엊그제의 보리고개를 모두 잊은 것 같다.
버스는 다시 도문을 떠나 연길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대종회 방문단이 주최하는 만찬이다. 연변 종친회 분들이 초청되었다.
연길에서 손꼽히는 일식집에서의 만찬이다. 신선한 회를 포함 각종 요리들이 들어온다. 접시에 가득 담겨있는 손바닥 길이만한 큰 새우 구이가 시선을
끈다. 백두산에서 흘러 내리는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산천어를 소금으로 두껍게 쌓아 불에 구운 요리가 망치와 함께 각 테이블 마다 들어온다. 각
테이블 마다 주빈이 망치로 소금을 깨는 것이란다. 초밥, 튀김 등 많은 요리가 끊임없이 들어온다. 이 일식집은 연변 종친회의 허순자 부회장이
운영하는 요리점이다. 허순자 부회장이 우리 방문단을 위해 특별한 배려를 해 주었다. 이곳저곳에서 건배, 또 건배, 이야기 꽃 또한
만발이다.
(대종회 방문단이 주최한 만찬)
연길에서의 마지막 밤이 아쉬운 듯, 헤어지기가 아쉬운 듯, 호텔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작별이 아쉬웠는지 호텔 방에서 건배
소리가 들린다...
(떠나는 날),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기 위해 호텔 로비에 모였다. 허일범 대종회 회장이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연변 종친회 방문과 백두산 여행
등, 마무리 말을 했다. 대종회 사무총장 또한 간단한 경과보고를 했다. 연길 공항에 도착하니, 많은 종친들이 배웅을 나왔다. 선물로 받은 수건과
양천허씨 노래가 담긴 DVD, 작별이 아쉽다고 선물로 준비한 중국 술을 한 병씩 나누어 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선물을 받아 넣을 공간이
없다...
짧지만 정말 인상 깊은 방문이었다. 연변 종친들의 얼굴 하나 하나가 내 머리 속에 깊게 자리했다.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케하는 방문이었다. 또한 연변 종친회 종원들의 한 없는 사랑과 배려에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각별한 신경을 써 주신, 연변종친회의 허연일 회장, 허룡 부회장, 허동린 부회장, 허순자 부회장, 허미란 부회장, 허춘림 작곡가, 허극진 총무,
외손인 김선생님, 더 많은 분들이 있는데 이름이 모두 기억나지 않지만 이분들 모두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한분 더 꼭 감사드려야
하는 분이 있다. 연길 공항 도착부터 출국 할 때까지 그림자처럼 우리 방문단을 쫒아 다니며 사진을 찍어 주신 황 선생님. 역사를 한 몸에 담고
계신분이다. 황 선생님은 올해로 86세가 되신다했다. 황 선생님은 일본과 중국이 싸울 때,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이 싸울 때, 종군 기자로서
활동하셨고, 또 중국 국가 주석이었던 등소평, 주은래, 강택민 등의 순시에 측근에서 사진 촬영을 담당했던 분이다.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이 외국
순시 때, 사진 촬영을 특별히 부탁하기도 했던 분이다. 오래 전 은퇴한 분이나 이번 대종회 방문단을 위해 사진 촬영을 흔쾌히 수락하셨다 한다.
황 선생님께서 건강히 오래 오래 사시기를 기원한다.
끝으로, 이 여행 준비부터 여행 기간 동안 모든 방문단이 아무 탈 없이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여행 보험 가입 등 음,양으로
많은 신경을 써 준 대종회 허동 사무총장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합천공파 종회 총무
대종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