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조계골 좌골 쌍폭의 우폭
이 골 저 골 물을
건느고 또 건느니
발밑에 우는 폭포
百이오 千이러니
朴淵을 이르고 보니
하나밖에 없어라
―― 가람 이병기(嘉藍 李秉岐, 1891~1968), 「朴淵瀑布」 3수 중 제2수
▶ 산행일시 : 2022년 8월 20일(토), 맑음, 연무
▶ 산행인원 : 3명(하운, 메아리, 악수)
▶ 산행코스 : 용문사 입구 버스종점,진등,용문봉,문례재,천사봉(문례봉,폭산),조계골,용문사 입구 버스종점
▶ 산행시간 : 8시간 43분
▶ 산행거리 : 도상 10.5km
▶ 갈 때 : 상봉역에서 전철 타고 용문역으로 가서, 버스 타고 용문사 입구 버스종점으로 감
▶ 올 때 : 용문사 입구 버스종점에서 버스 타고 용문으로 와서, 저녁 먹고 용문역에서 무궁화호 열차 타고
청량리역로 옴
▶ 구간별 시간
07 : 03 - 상봉역(용문 가는 전철 출발)
08 : 16 - 용문역
08 : 52 - 용문사 입구 버스종점, 산행시작
09 : 44 - △538.1m봉, 헬기장
11 : 43 - 용문봉(963.0m)
12 : 15 ~ 12 : 53 - 914m봉, 점심
13 : 06 - ┣자 한강기맥 갈림길
13 : 25 - 963.5m봉
13 : 54 - 천사봉(문례봉, 폭산, 1,002.5m)
15 : 51 - 조계골 좌골
16 : 10 - 조계골 좌골 우골 합수점
17 : 10 - 북진유격장
17 : 35 - 용문사 입구 버스종점, 산행종료(18 : 20 - 용문 가는 버스 출발)
19 : 45 ~ 20 : 07 - 용문, 저녁(20 : 20 - 청량리역 가는 무궁화호 열차 출발)
20 : 55 - 청량리역
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용두 1/25,000)
가는 날이 장날이다. 용문 5일장이다. 큰 장이다. 용문역사 앞의 삼거리 도로가 끝 간 데 없이 장터다. 용문사
가는 버스는 물론 어떠한 버스도 오갈 수 없다. 그런데도 아무 생각 없이 버스 오기를 기다렸다. 황해식당 여사
장(?)이다. 용문사 입구에 있는 자기네 식당을 이용하면 거기까지 오가는 교통편을 봉고차로 제공하겠다며
명함을 주곤 한다. 오늘도 그랬다.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 딱했는지 다가오더니 오늘은
장날이라 버스가 여기에 서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그때서야 알아챈다. 도로가 택시나 버스가 지날 갈 수 없는 장터라는 것이 비로소 보인다. 긴 장터를 벗어나서
예전의 버스 터미널 갈림길을 지나 버스정류장까지 한참을 간다. 용문사 가는 버스의 운행회수가 줄었다. 그나
마 운행시각표도 정확히 지켜지지 않는다. 용문사 가는 버스에서 창밖으로 언뜻 내다보는 용문천이 큰물로 흐
른다. 간밤에 여기도 비가 많이 내렸다. 오늘 산행의 하산을 조계골로 잡았는데 조금은 불안하다.
용문사 입구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용문산과 주변의 산들은 연무에 가렸다. 해는 보름달처럼 먹구름 사이를
바삐 지난다. 버스종점에서 황해식당 오른쪽의 대로로 들어 얼마 안 가 리치모텔 뒤의 풀숲을 헤친다. 아침부터
후덥지근하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지나 언덕바지를 두 차례 오르면 유격장이 나온다. 철조망을 약간 돌아
유격장 안에 든다. 유격장이 폭우로 토사가 쓸어내려 황량하게 변했다. 용문사와 정지국사 부도와 비가 있는 쪽
으로 가는 샛길을 지나면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여기는 올 때마다 염천이다. 한 겨울에도 염천이었다. 넙데데한 사면을 왼쪽으로 갈지자 그리며 땀 뺀다. 물
한 방울에 넘친다고 했다. 내 배낭에 여느 때와는 다르게 묵직한 카메라 삼각대를 넣었다. 릴리즈도 가져왔다.
조계골 폭포를 근사하게 찍어볼 요량이다. 익숙하지 않은 배낭 무게라 걸음걸음이 무척 힘들다. 땅에 코 박는
오르막이라 부엽토 썩는 냄새를 한껏 맡는다. 풀숲의 너른 무덤이 나오면 첫 번째 오르막은 끝난다.
여기서 쉬면 다시 발동을 거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내쳐 간다. 땀을 눈 못 뜨게 쏟는다. 땀에 속속들
이 젖어 바지자락이 감기고 걷기가 불편하다. 전에도 몇 번이나 이 고역을 겪었으니 이제 진저리가 날만한데
그만 잊고 또 오고야 말았다. 시간이 산을 간다. △538.1m봉 헬기장이 나오고 두 번째 오르막은 끝난다. 소나무
그늘에 들어 휴식한다. 가쁜 숨을 가라앉히는 데도 오래 걸린다.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도 물 들이켜고 탁
주와 자두를 꺼낸다.
여기서부터 용문봉을 넘을 때까지는 암릉길이다. 인터넷 나무위키는 이곳을 사뭇 감동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산꾼들 중에는 용문봉으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구간은 등산로가 다듬어져 있지 않고 암릉이 매우
날카로운데다 안전시설도 미비하여 용아장성에 버금가는 위험함을 보여준다. 좌우가 낭떠러지인 곳이 군데군
데 있으며, 명실상부 용문산에서 가장 위험한 등로이니 이 길로는 가지 말자. 이쪽 등산로는 산행경력이 풍부한
사람도 추천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코스이다. 특히 하산 길로 택할 경우에는 안전 보장이 어려울 정도다.”
3. 암벽 틈에 간신히 피어난 돌양지꽃
4. 백운봉
5. 앞은 용문산 남동릉, 멀리 가운데 추읍산이 환영처럼 보인다
6. 용문봉에서 바라본 백운봉, 연무가 많이 걷혔다
7. 추읍산
8. 용문산 남동릉 너머 백운봉
9. 용문산(가섭봉), 아침에 용문사 입구 주차장에서 바라볼 때는 연무에 가렸었다
10. 추읍산
그러나 너무 과장했다. 설령 올 릿지를 한다 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암릉을 여덟이나 아홉 곳을 지나는데
우회로가 다 나 있고, 다만 용문봉 정상 직전의 암릉 암봉에서만 약간의 손맛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오히려
△538.1m봉 헬기장까지 오는 두 차례의 가파른 오르막이 더 힘들지 않을까 한다. 어쨌든 용문산 진등(긴 산등
성이가 변해서 긴등, 진등으로 변했으리라)의 하이라이트인 바윗길이다. 처음에는 완만한 돌길을 간다. 바위는
비에 젖어 짐작하기 어렵게 미끄럽다.
어차피 애써 암릉 암봉에 올라 가보았자 조망이 가렸다. 볼거리가 없다. 다소곳이 사면 도는 우회로를 따른다.
우회로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조계골의 물소리가 우렁차다 못해 온 산을 울린다. 혹시 우리가 부나비 신세가
되지는 않을까 은근히 걱정한다. 불에 타 죽을 모르고 불 속에 날아드는 부나비 말이다. 나이 먹어 느느니 겁이
다. 그새 연무는 많이 가셨다. 조망의 바로미터인 백운봉이 그 오연한 자태를 드러내고, 봉긋한 추읍산이 환영
처럼이나마 보인다.
용문봉 직전 암릉 암봉이다. 바위 턱 오르고 슬랩을 트래버스 한 다음 선반의 발자국계단을 늑목처럼 오른다.
진등 최고의 경점이다. 치악산은 물론 태기산이나 방태산, 오대산, 계방산, 발왕산, 가리왕산을 너머 설악산 안
산, 가리봉, 귀때기청봉, 대청봉도 보인다는 경점이다. 오늘은 눈 비벼 겨우 추읍산이나 알아볼 뿐이다. 크랙 타
고 내리고 완만한 슬랩 오르면 용문봉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노브랜드인 봉우리다.
▶ 천사봉(문례봉, 폭산, 1,002.5m)
용문봉을 올랐으나 암릉은 당분간 계속 이어진다. 용문봉을 내리는 슬랩부터 까다롭다. 이다음 950m봉은 직등
하여 넘을 수 없는 암봉이고, 왼쪽 사면을 살금살금 기어 뚝 떨어져 내렸다가 한 피치 오르면 주릉이다. 그 다음
암봉도 왼쪽 슬랩을 기어오른다. 하늘 가린 숲의 그늘진 펑퍼짐한 안부다. 점심자리 편다. 이때는 날벌레가 달
려들지 않고 제법 선선한 산기운에 가을 냄새가 난다. 그러나 워낙 많은 땀을 쏟았던 터라 입맛이 도통 없다.
하운 님의 권고에 따라 물에 말아 삼킨다.
여태 지나온 길에 비하면 문례봉 가는 길은 신작로다. 거친 숨 내쉬며 봉봉을 넘는다마는 등로 벗어나 왼쪽의
바위 벼랑 위에 올라 조망을 살필 여유가 생긴다. 용각골을 오가는 얕은 안부에는 아예 길이 생겼다. 조금 더 가
면 한강기맥 ┣자 갈림길이다. 왼쪽의 등로 비킨 전망바위에 들러 추읍산을 한 번 더 보고 문례재로 내린다. 봄
날이면 얼레지가 발 디딜 틈이 없이 만발하던 사면인데 지금은 풀숲조차 사위어 쓸쓸하다.
아무 조망 없는 963.5m봉을 지나치듯 그 왼쪽 사면으로 난 길을 내리면 ┫자 갈림길 너른 안부다. 천사봉의 품
에 든다. 분명 천사의 은혜가 있으리라. 하운 님은 직진하고, 메대장님은 오른쪽 사면을 누비고, 나는 왼쪽 사면
을 누벼 오른다. 나는 그곳이 나를 반기곤 하던 덕순이가 사는 동네인 줄로 알았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미역줄
나무 덩굴이 완전히 점거한 정글로 변했다. 몸부림쳐 빠져나오느라 후줄근해져서 주릉에 복귀한다. ┣자 한강
기맥 갈림길인 헬기장을 직진하여 50m쯤 오르면 천사봉이다.
천사봉(千四峰)은 ‘天使峰’이기도 하다. 천사봉은 항상 그랬다. 오늘도 산행 후 음미할 만큼의 덕순이를 허락한
다. 천사봉에서 배낭 벗어놓고 긴 휴식한 다음 조계골을 향한다. 여기서는 조계골이 하산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곧바로 골로 가기보다는 한강기맥을 이웃한 지능선을 잡는다. 선답의 인적(지난날 우리들의 인적이다)은 폭우
가 쓸어버렸다. 새 길을 간다. 계류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고 마침내 그 현장에 다다른다. 층층 와폭의 계류
물살이 매우 거세다.
11. 한강기맥 갈림길에서 바라본 용문산 남동릉과 추읍산
12. 문례재
13. 천사봉에서 바라본 용문산
14. 천사봉에서
15. 천사봉에서
16. 싸리버섯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싸리버섯이 싸리버섯 외에도 산호싸리버섯, 답싸리버섯, 황금싸리버섯 등 19종
이 등재되어 있다.
17. 조계골 좌골 상류, 이 계류를 첨벙첨벙 건너야 했다
▶ 조계골
조계골 좌골의 상류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는 ‘조개골’이라고 하지만 명백히 ‘조계골(鳥溪-)’의 오기다.
그 오기가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조개골은 조씨(曺氏)가 사는 마을로 일명 ‘조계곡(曺溪谷)’이라고도 한다(두
산백과). 이 아래 마을 조현리는 曺峴里이고, 조계골 오른쪽의 용조봉은 ‘龍鳥峰’이 아니라 ‘龍曺峰’이다. 그런데
해방 이전의 지도에는 조계곡(鳥溪谷)으로 표기하고 있다.
예전의 징검다리는 다 잠겼다. 첨벙첨벙 건너는 수밖에 없다. 허벅지까지 차는 계류다. 물살이 견딜만한지 먼저
한 발 내딛어 예의 점검해보고 나서 건넌다. 한 번 계류를 건너고 마는 것이 아니다. 계류에 갇히고 말았다. 평
소에는 아는 채 하지 않던 지류들이, 지도에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던 지류들이 저마다 거품 물고 큰소
리치며 자기가 있음을 주장한다. 잡목과 풀숲을 헤치며 사면을 아무리 돌아도 그들의 포위망을 피할 도리가
없다.
이미 함빡 젖었다. 건너고 또 건넌다. 무덤도 집터도 별 소용없다. 함께 갇혔다. 큰 바위가 나오고 그 앞의 계류
를 건너서야 온전한 길을 만난다. 그 길을 돌아가면 왼쪽 아래로 쌍폭이 나온다. 잡목 헤치고 비탈진 사면 내려
쌍폭에 다가간다. 쌍폭의 성난 모습을 보아버렸다. 사실 이 쌍폭을 근사하게 카메라에 담으려고 삼각대를 가져
온 곳인데 물살이 이렇게 거세고 거칠어서는 삼각대가 소용없다. 가쁜 숨 멈추고 치약 짜듯 셔터를 살며시
누른다.
쌍폭을 지나 계류 멀찍이 떨어진 잘난 숲속 길을 10분쯤 내려오면 조계골 좌골과 우골의 함수점이다. 여기 역
시 징검다리는 보이지 않게 계류에 잠겼다. 발로 더듬어 건넌다. 정작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이제 시작하려
하고 있다. 처음 몇 번 계류를 건널 때는 재미났지만 계류 폭이 더 넓어지고 물살 또한 더 거칠어지다 보니 심
각해진다. 그렇지만 외길이다. 다행인 것은 계류 속 돌출된 바위나 계류 가장자리의 바위 슬랩은 이끼가 물살에
씻겨나가 조금도 미끄럽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말고 아무도 오가지 않는 조계골이다. 우리가 조계골을 독점한다. 임도 옆 계류에 들어 알탕을 하며 물장
구를 친들 볼 사람이 없다. 임도는 폭우로 토사가 다 쓸려나가 너덜 길로 변했다. 북진유격장 외줄타기 두 줄타
기 등 여러 시설을 지나고 연병장 가로 질러 낮은 포복으로 철조망 문을 통과한다. 오늘은 올 때도 그랬지만 갈
때도 버스 운이 없는 날이다. 서둘러 용문사 입구 버스종점에 갔는데 용문 가는 버스의 운행시간표가 바뀌었다.
40분 넘게 기다린다. 진작 알았더라면 택시를 부를 텐데 뒤늦게 알았다. 주차장에 내려가 바라보는 용문산은
그 웅자를 변함없이 드러내고 있다.
다산 정약용의 「아, 이 또한 유쾌하지 아니한가(不亦快哉)」 20수의 제5수다.
지금쯤 용문봉이 이럴 것 같다.
岧嶢絶頂倦游筇 높은 산 정상을 힘겹게 올랐는데
雲霧重重下界封 구름 안개 겹겹이 시야를 막는구나
向晩西風吹白日 저무는 저녁 서풍 불어 태양이 드러나고
一時呈露萬千峯 만학천봉이 일시에 다 보인다
不亦快哉 아, 이 또한 유쾌하지 아니한가
18. 조계골 좌골 쌍폭의 좌폭 상단
19. 조계골 좌골 쌍폭의 좌폭
20. 조계골 좌골 쌍폭의 우폭
21-1. 조계골 합수점 부근
21-2. 조계골 합수점 부근
22. 조계골, 왼쪽 암사면을 돌아내려야 한다
23. 조계골
24. 왕원추리, 신점리 마을 화단에서
25. 금꿩의다리
26. 산행 마치고 나서 용문사 입구 주차장에서 바라본 용문산
첫댓글 전 담날 계곡만 돌다가 나왔는데 물은 건널만 했는데 미끄러져 빠졌읍니다
션하더군요
덕수니들 겨울에 봐 두었는데 그새 먼저 득하셨군요 ㅠㅠ
동분서주하시느라 바쁘십니다.
자연 알탕하셨겠네요.^^
후덥지근한 날씨에 땀을 비오듯 뱉어내고, 조계골의 폭포수같은 물로 깔끔하게 씻어내면서, 시원스레 내려왔네요^^
유난히 힘들었던 하루였습니다.
초장에 녹아났습니다.^^
더운데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무거운 카메라다리까지 가지고 가셨으니 더 힘드셨겠네요.
덕분에 구경은 잘 했습니다.
돌양지꽃이 다른 때보다 더 이쁜 것 같습니다.
늦 여름의 절정이군요. 산도 물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