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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천강문학상 아동문학 부문 우수상]
<감나무 위 꿀단지>
양정숙
봉석이 사기로 된 하얀 꿀단지를 안고 외양간 옆 모퉁이에 앉았다. 지난주 밤손님이 소를 끌고 가 버려 외양간이 텅 비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앗싸!”
봉석이 히죽히죽 웃었다.
단지 뚜껑을 열자 몽글몽글 엉긴 노르스름한 꿀이 보였다. 검지로 꿀을 퍼 연거푸 입에 넣었다. 꿀덩이가 사르르 녹으며 달콤하면서도 아릿한 향이 입 안 가득 고였다.
“봉석아!”
아버지가 불렀다.
봉석이 후다닥 뚜껑을 덮고 꿀단지를 안았다. 그러고는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왜 이렇게 늦어?”
“무거워서…….”
아버지는 씩 웃으며 꿀단지를 받았다.
봉석은 입에서 단내가 날까 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언젠가 꿀을 훔쳐 먹다가 어머니한테 들켜 야단맞은 일이 떠올랐다.
“이놈아, 할아버지가 기침하시면 네가 대신 꿀단지에 들어앉을 것이여?”
“엄니, 이제 안 먹을게.”
봉석은 어머니 말처럼 꿀이 될 자신은 없었다.
봉석이 집에서 꿀은 없어서는 안 될 상비약이다. 할아버지가 천식으로 기침을 할 때 따뜻한 물에 타 드리면 거짓말처럼 멎었다. 뿐만 아니라 식구 중에 누가 배탈이 났을 때도, 아버지가 일하다 지쳐 식은땀을 흘릴 때도 꿀물을 마시면 뚝 멎었다.
얼마 전 봉석도 감기에 걸려 콧물을 줄줄 흘렸다. 이마를 짚어 보던 어머니가 꿀 한 숟갈을 떠서 미지근한 물에 타 주었다. 그 맛이 어찌나 좋던지 또 감기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나무에 꿀단지를 올려놓고 아버지가 내려왔다. 꿀 먹은 것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봉석은 신바람이 났다.
‘야호!’
찝찝했던 마음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마당 귀퉁이에 서 있는 감나무는 심은 지 오래였다. 아버지가 태어난 기념으로 할아버지가 심었다고 했다.
“감나무가 효자여. 저게 없었다면 어쩔 뻔했어.”
우뚝 솟은 감나무를 바라보며 할아버지가 중얼거렸다.
“그럼요, 아버님. 감나무는 우리 재산을 지켜 주는 파수꾼이에요.”
아버지도 거들었다.
아버지는 감나무 가지에 판자를 걸쳐 얹고 삼끈으로 얼기설기 엮어 반반한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날이 어두워지면 밤손님을 피해 중요한 물건을 올리는 곳이다.
사람들은 밤이면 나타나는 빨치산을 밤손님이라 했다. 그들이 들어오는 날이면 네 것 내 것이 없었다. 닥치는 대로 주워 담아 줄행랑을 쳤다.
하루는 봉석이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면서 감나무 위로 올라갔다. 어머니가 보더니 깜짝 놀라며 야단을 쳤다.
“봉석아! 거기 올라가면 큰일 나!”
“낮에는 아무것도 없는디?”
“그게 아니여. 낮이고 밤이고 그곳은 비밀이란 말이여!”
“비밀?”
‘어제는 마루 밑을 파고 묻은 쌀독이 비밀이라더니. 우리 집은 왜 이렇게 비밀이 많지?’
봉석이 머리를 갸웃했다.
며칠 전 밤손님이 들어왔던 일을 떠올리자 어머니는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명주베 한 필을 들고 할아버지 방으로 갔다. 어머니가 엉덩이에 못이 박이도록 베틀에 앉아 몇 달을 걸려 짠 것이다.
“아버님, 도련님 혼사 때 쓰려고 아껴 두었던 것이어요. 혹 모르니 아버님 이불 밑에 넣고 계시면 좋겠어요.”
“그러마. 설마 이 늙은이까지 어쩌지는 못 하겄지야.”
할아버지는 명주베를 받아 요 밑에 넣었다.
밖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창호지에 들기름을 먹인 암막을 문에 둘러쳤다.
“엄니, 왜 기름종이를 문에 쳐?”
“불빛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할라고.”
“불빛이 밖으로 나가면 어째서?”
“밖에서 보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여야 혀.”
이제 오늘 밤 지낼 준비는 마쳤다. 날이 샐 때까지 아버지는 좁고 캄캄한 장롱 뒤에서 지내야 한다.
얼마 전 할아버지랑 같이 자던 막내 삼촌을 의용군이라는 구실로 밤손님이 끌고 갔다. 그후로 아버지는 해만 지면 숨을 곳을 찾느라 안절부절못했다. 궁리 끝에 묘안을 짜냈다.
장롱을 앞으로 끌어당기고 사람 하나 들어갈 만큼의 틈을 만들었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옷걸이를 세워두었다.
아버지가 이마에 땀을 훔치며 말했다.
“여보, 이제 됐지?”
“그래요. 아무도 눈치 못 채 겄어요,”
그때부터 아버지의 침실은 장롱 뒤가 되었다. 밤이 되면 장롱 뒤의 침실로 숨어드는 것이 아버지의 일과가 되었다.
“크르릉, 크르르~~~.”
침실로 들어간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금세 새어 나왔다.
‘밤손님이 들으면 끝장이라고 혔는디…….’
봉석은 얼른 장롱 밑에 숨겨 놓은 줄을 세 번 당겼다. 코 고는 소리는 뚝 그쳤다.
밖에서 개 짖는 소리로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두두두두두, 골목에서 뜀박질하는 소리도 들렸다.
버선을 깁던 어머니는 얼른 호롱불을 껐다. 방 안은 칠흑 같은 어둠에 싸였다. 동네 분위기는 흉흉하고 공포로 뒤덮였다. 불을 켠다 해도 안방에는 어린 봉석과 어머니 둘 뿐이었다.
“타당, 탕, 탕, 탕!”
요란스레 두드려 송판 대문이 부서질 것 같다.
“문 열라우!”
“오늘은 떼로 몰려온 모양이어요.”
어머니는 소리를 낮춰 장롱 뒤의 아버지에게 속삭였다. 그러고는 이불을 둘러쓰고 봉석을 꼭 끌어안았다.
“엄니, 무서워!”
“가만있음 그냥 가기도 혀.”
조용하다 싶어 살며시 암막을 들추고 밖을 내다봤다. 모자를 눌러쓴 군복 차림의 남자 대여섯 명이 어스름 달빛에 비쳤다. 그들은 마당을 건너 안채로 걸어오고 있었다. 잠깐 사이 서너 명은 담을 뛰어넘어 옆집으로 사라졌다.
“불 붙이라우.”
한 사람이 말했다.
뒤따르던 사람이 성냥을 그었다.
불빛이 환해서 보니 유리병에 솜을 틀어막은 것이었다.
석유병 횃불을 든 그는 턱수염이 텁수룩했다. 장총을 어깨에 메고 있었고, 누리끼리한 헝겊 모자를 썼고, 해져서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은 누런 군복에, 눈썹까지 내려오는 맞지 않은 헐렁한 모자를 쓴 사람이 낫을 들고 있었다.
마루로 올라온 그들이 방문을 발로 툭툭 찼다.
“문 열라우!”
어머니는 문을 열고는 정신 줄을 놓지 않으려고 눈을 꼭 감았다. 엄마 손을 잡고 있는 봉석의 손도 파르르 떨렸다. 텁수룩한 수염의 남자가 방안에 고개를 들이 밀고 횃불을 비추며
휙 둘러봤다. 어머니 가슴에 총구를 대고 쿡쿡 찌르며 윽박질렀다.
“네 남편 어드메……. 콜록콜록 코르륵……?”
텁수룩한 수염은 말을 하던 중 바튼 기침을 했다.
“우리도 소식을 몰라요.”
“봤다는 사람이 있어. 다 알고 왔디비!”
어머니 치마꼬리를 잡고 있던 봉석이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가만 보니 방바닥이 흥건하도록 오줌도 흘러나왔다.
“괜찮혀, 괜찮혀.”
어머니는 봉석의 등을 토닥였다.
“간나새끼, 재수 없이 울고 디랄이구먼.”
밖으로 나가 나 했는데 건넌방 할아버지한테로 들어갔다. 헐렁모자는 말없이 텁수룩수염의 꽁무니를 따랐다.
할아버지는 눈을 똑바로 뜨고 서 있는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영감, 아들 어드메 감췄디?”
“이놈들! 너희는 어미 애비도 없느냐?”
“내놓으라면 어서 내놓을 일이디 무신 말이 많노?”
텁수룩수염은 아들을 내 놓으라며 할아버지 이마에 총부리를 대더니 툭툭 밀었다. 할아버지는 뒤로 벌렁 넘어졌다. 바닥을 짚고 겨우 일어난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이 천벌을 받을 놈들아!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텁수룩수염이 헐렁모자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재껴!”
헐렁모자는 놀란 표정으로 텁수룩수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순간 두 손을 모아 낫을 등뒤로 감추었다.
“죽여라, 이놈들아! 생때같은 자식을 빼앗긴 늙은이가 무슨 미련이 있겄냐?”
할아버지의 악에 바친 소리가 온 집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들과는 대화가 되지 않았다. 봉석 어머니는 그저 고분고분 말을 들어주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온 그들은 닭장 문을 확 열어젖혔다.
“날래 담으라우!”
푸드덕푸드덕, 닭들은 잡히지 않으려고 요동을 쳤다.
그들은 닭들을 마구잡이로 가마니에 주워 담았다. 봉석은 어머니의 치마꼬리를 잡은 채 벌벌 떨었다.
“장꽝이 어드메야?”
“저쪽으로 돌아가야 혀요.”
“앞장 서라우.”
횃불에 비친 헐렁모자의 얼굴은 복숭아처럼 털이 보송보송한 앳된 얼굴이었다. 헐렁모자를 보는 순간 봉석어머니의 가슴에는 싸하니 찬바람이 일었다.
‘우리 도련님도 어느 하늘 아래서 밤이면 저렇게 남의 집을 뒤지고 다닐까?’
교복을 입은 도련님이 겁먹은 얼굴로 뒤돌아보며 끌려가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장독대로 돌아가는 사이 가까이 따라붙은 그들에게서 역한 냄새가 훅 코를 찔렀다. 오랫동안 씻지 않은 것이 역력했다.
“날래 된장 퍼 담으라우! 고추장도 있디비?”
어머니는 된장과 고추장을 작은 단지에 나누어 담으며
‘다 가져가도 좋으니 어서 우리집에서 나가거라.’
하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봉석 어머니가 고분고분 따르는 척하며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얼마나 힘이 드시요?”
“무신 말이야요?”
텁수룩수염은 갑자기 누그러진 말씨로 답했다.
“우리 도련님 생각이 나서요.”
“도련님이 누굽네까?”
“애 아부지의 동생이요.”
“동생이 어쨌시요?”
“열일곱 살 학생인디 며칠 전에 의용군으로 갔어요.”
텁수룩수염은 머쓱해 하더니 턱을 쓱 한 번 문질렀다. 봉석 어머니는 헐렁모자도 끌려가 밤손님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갈라진 입술에 껍질이 허옇게 일어난 걸로 보아 둘 다 무척 허기져 보였다. 봉석어머니는 마음이 짠해왔다.
“시장하지요? 내 얼른 따신 밥 차려 드릴게요.”
밥을 차려 준다는 말에 텁수룩수염의 눈빛이 번쩍하는가 싶더니, 기침을 해댔다.
“쿨럭쿨럭 쿠르르 웨에엑~!”
밤마다 찬바람을 쏘여 병이 깊어진 듯했다. 텁수룩수염은 터져 나오는 기침을 참지 못해 허리를 구부리고 가슴을 쥐어짜듯 움켜쥐었다. 전염이 됐는지 곁에 서 있던 헐렁모자도 같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두 남정네가 한밤중에 토해내는 기침소리에 곁에 선 봉석 어머니는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봉석 어머니는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우선 따신 물로 목을 축이시오.”
물 한 그릇을 들이키고는 텁수룩수염이 멋쩍은 듯 말했다,
“기 놈의 기침이 나와서래 기만…….”
봉석 어머니는 시레기국에 열무김치를 내놓았다. 그들은 그릇까지라도 집어삼킬듯 후적후적 밥을 긁어 목구멍으로 들이부었다. 어머니는 솥을 열어 양푼째 밥을 내놓았다.
‘저 어린 헐렁모자도 자기 집에서는 부모가 애타게 기다리는 소중한 아들이 겄지. 텁수룩수염도 올망졸망한 어린아이들을 둔 가장일 텐디. 가족은 생사를 몰라 얼마나 애를 태우고 있을까?’
어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감나무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사다리를 찾아 더듬거리며 감나무 위로 올라갔다. 어머니는 꿀단지를 보듬어 안았다.
단지를 안고 나타난 어머니를 보자 그들은 놀란 듯 움찔했다.
“꿀이어요.”
“……?”
“가져가 드시고 몸 조심하시요. 집에서는 귀한 아들이고, 어린아이들이 기다리는 가장일텐디요.”
텁수룩수염은 어색하게 두 손을 내밀어 꿀단지를 받아 가마니에 담았다. 그들은 닭과 고추장과 된장이 들어 있는 가마니를 하나씩 짊어지고 유유히 집을 빠져나갔다.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봉석 어머니는 ‘휴~.’하고 안도의 숨을 토해냈다.
새 날이 밝았다. 어젯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동쪽에서는 붉은 해가 떠올랐다. 봉석 아버지는 헛간으로 가 닭장 문을 열었다. 암탉, 수탉 합해 스물한 마리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우르르 뛰어나오는 닭을 세어 보니 모두 일곱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삼분의 일이 남았네.”
닭들을 바라보는 봉석 아버지의 눈길이 허허로워 보였다.
“다행이어요. 그라도 남겨 놓고 가서 얼마나 고마워요?”
“누구한테 고맙다고 하는 거지?”
봉석 아버지가 봉석 어머니를 쳐다보며 내뱉었다.
봉석 어머니는 겸연쩍은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디요, 봉석 아부지…….”
“무슨? 당신답지 않게 왜 뜸을 들이고 그래.”
“꿀단지를요…….”
“꿀단지가 어째서? 어젯밤 감나무 위에 올렸잖우?”
“밤손님이 하도 기침을 해서 조금만 타서 준다는 것이 그만…….”
“그래서?”
“제가 잘못혔어요.”
“허어…….”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봉석 아버지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여? 아버지는 어쩌라고!”
눈을 부릅뜨고 봉석 아버지가 큰소리로 어머니를 나무랐다. 그때 할아버지가 나왔다.
“뭔 일로 이렇게 소란스럽냐?”
“아버님, 죄송혀요. 어젯밤 밤손님들이 하도 기침을 혀서……. 조금만 주려고 생각혔는디…….
엉~엉~~~.”
“그만 그쳐라. 우리 식구 아무 일 없으니 됐다.
할아버지 말에 봉석 아버지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뒤통수만 벅벅 긁었다.
봉석 어머니는 마음이 바빠졌다.
“봉석 아부지, 낼 모래는 어머님 제사구먼요.”
“어머님 제사도 깜박할 뻔했네.”
“제사 음식 감추기 전에 밤손님이 내려오면 안 되어요.”
“그래, 우선 재봉틀부터 감춰야 해.”
봉석 아버지는 재봉틀 나사를 풀었다.
“봉석아, 어두워지기 전에 올리자.”
봉석이 재봉틀을 어깨에 메고 앞서 가는 아버지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아부지, 꿀단지는?”
“지난밤에 밤손님이 가져가 부렀어.”
그 말을 듣자 봉석은 철퍼덕 주저앉아 느닷없이 엉엉 소리 내 울었다. 봉석 아버지가 의아해 물었다.
“봉석아, 왜 그래?”
“꿀이 없으면 할아버지가 기침을 많이 하잖아!”
“그렇구나. 우리 봉석이는 역시 할아버지 손자야.”
봉석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봉석 어머니도 기특한 봉석을 달랬다.
“봉석아, 재봉틀을 안 가져갔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대신 사카린이 있어. 그거 드리면 돼.”
“사카린?”
봉석이 얼굴이 환해졌다.
해가 뒷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봉석 어머니는 보자기로 단단히 여민 전 채반을 들고 왔다.
“봉석 아부지 이것도 올려 주시요.”
“이제 더 이상 빈자리가 없는디.”
“할 수 없죠. 개울 다리 밑으로 가는 수밖에.”
다리 밑은 모기가 득시글거리고 쥐가 다니지만 어머니는 다른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니는 전과 삶은 고기 등을 모두 옹기 항아리에 담았다. 그 위에 보자기를 씌우고 무거운 뚜껑을 덮었다.
“봉석 아부지, 됐어요.”
“어떻게?”
“항아리에 담았더니 딱이어요.”
이제 집 안에서 제사 음식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정이 넘어 가도록 밤손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봉석 아부지 오늘 밤에는 밤손님이 안 올 것 같아요.”
장롱 뒤에 대고 어머니가 속삭였다.
“그럼 나도 제사 같이 지낼까?”
“그렇게 하시요. 곧 첫 닭이 울 시간인디 이제사 올랍디여.”
온 가족이 제사 지낼 준비를 했다. 아버지도 나와 제사 음식을 내리기 위해 감나무 위로 올라갔다, 중간에 봉석이 사다리에서 받았다. 다음은 어머니가 땅에서 받아야 한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무성한 나뭇잎이 움직일 때마다 버스럭거렸다. 아버지는 식혜가 담긴 항아리를 내밀며 봉석에게 받으라 했다.
“아부지, 잘 안 보여.”
“그렁게 더듬어서 두 손으로 꽉 붙잡아야지.”
“철푸덕!”
봉석은 그만 손을 놓치고 말았다. 받아 놓은 음식들을 하나씩 광으로 옮기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제사상에 식혜가 빠졌다고 노할 니 할미가 아니다. 우리 봉석이 다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나무 밑에서 뭣들 하는 거입네까?”
우뚝 선 그림자는 밤손님이었다. 모자를 눌러쓴 그때 모습 그대로의 헐렁모자와 텁수룩수염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텁수룩수염은 날이 번쩍이는 낫을 쥐고 있었고, 헐렁 모자는 마대를 어깨에 둘러메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나무 위에 쪼그려 앉은 봉석 아버지가 부들부들 떨었다. 숨소리라도 들릴까 봐 입을 꾹 다물고 나뭇가지에 매미처럼 달라붙었다. 고구마 캐 먹다가 들킨 사람들처럼 봉석 식구들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뚝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텁수룩수염이 말했다.
“마음 놓으시라요. 오늘은 당신네들 해치려고 온 게 아니야요.”
그들은 메고 온 마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리는 오늘 이후로는 이 집에 오지 않을 거입네다.”
그러고는 뒤돌아서 그대로 천천히 자리를 떴다.
그제야 봉석 아버지가 나무에서 내려왔다.
“아버님, 이게 무슨 일이래요?”
“허어~. 꼭 꿈을 꾸는 것만 같구나.”
어머니는 살을 꼬집어 봤다. 아팠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총총했다.
그들이 놓고 간 마대를 바라보며 봉석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도 뭣이 들어 있는지 확인은 해 봐야 안 해?”
불을 켜자 봉석 어머니가 조심조심 마대 입을 벌렸다. 누런 포대 종이로 둘둘 뭉친 베개만 한 뭉텅이가 나왔다.
칡넝쿨로 묶은 뭉치를 푸는 순간 쌉싸래한 도라지 향이 코를 찔렀다. 흙이 부슬부슬 떨어지는 한 무더기의 도라지였다.
"아버님, 도라지여요!”
봉석 어머니는 굵기가 각기 다른 도라지 한 움큼을 가슴에 안고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산도라지는 기침에 좋다 혔는디…….”
온 식구는 할 말을 잃은 듯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
* 양정숙- 무등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2016), 여수해양문학상 단편소설 당선(2010),
광주전남아동문학인회 동시 우수상(2010), 대한문학상(수필 부문)((2004),
수필과 비평 신인 문학상(1995) 동화집 :『구리구리 똥개구리』(2017) 그림동화 :
『새롬 음악회』(2014) 수필집 :『 엄마, 이 세상 살기가 왜 이렇게 재밌당가』(2003)
제10회 천강문학상 아동문학부문 심사평-
일상의 경험을 시의 방법으로 묘사한 동시를 대상으로
금년으로 제10회를 맞는 천강문학상은 이제 그 지명도가 국내는 물론 해외동포에게 까지 전해져 해를 거듭 할수록 응모 작품이 늘고 있다. 운영위원회에 따르면 금년은 역대 최다 5천 여 편의 작품이 접수되었다고 했다. 물론 아동문학부문도 예외일 수 없이 많은 편수의작품이 응모 되었다.
‘하늘이 내린 의로운 문학상’이라는 상 이름부터가 남다른 ‘천강문학상’이 제정된 의의는 이미 널리 알려져 아는 이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문학상 심사를 위촉 받고 기대하는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심사과정의 유의사항에 대해 운영위원회의 세세한 설명은 물론 휴대전화기 까지 심사 동안 떼어놓도록 하는 철저한 심사의 엄정함에 기꺼이 동참하였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동시 20명의 작품 140편과, 동화 14명의 작품 15편이었다. 먼저 동시부문, 스무 명의 작품 중에 네 명의 작품을 뽑아 분리시켰다. 뽑힌 동시를 숙독하면서 부족한 부분보다 마음에 드는 부분에다 점수를 준 다음 다시 읽어 보았다. 너무 의도적인 주제로 선자의 눈길을 끌려고 하거나, 응모한 작품 대부분이 소품이어서 응모자의 능력과 역량을 가늠키 어려운 작품은 제외하였다. 최종으로 남은 두 편은 ‘기러기 연’과 ‘주황색 응원’이다. ‘기러기 연’은 쇠기러기 떼의 움직임을 V자 연으로 표현하였고 함께 응모한 작품에서도 시에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느낌을 주어 시를 엮어내는 솜씨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주황색 응원’은 귤껍질을 벗겨보면 어깨 겯고 있는 예닐곱 조각들을 초승달로 표현하고 ‘잘해보자, 잘 자라자’ 서로서로 응원하는 모습이 정겹고 따스하였다. 시에 대한 자신감과 단단한 시의 틀이 응모 편 모두에서 읽을 수 있었다. 두 편이 비슷한 수준의 작품이었으나 ‘주황색 응원’을 위에다 올렸다
다음은 동화부문, 동화는 다른 산문과는 달리 무엇보다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끌어낼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문단구성이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한 글은 제외하였다. 동화에서도 두 편을 골랐다. ‘디디는 디디해’ 사전 속에 있거나 드물게 사용되는
아름다운 말을 찾아내어 동화로 꾸몄다. ‘너의 단어는 너의 모든 생을 결정지어 줄 거다’ 이 말은 동화가 내세우는 의미이기도 하여 새로운 소재 선택에 있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감나무 위의 꿀단지’는 6.25전쟁이 바탕이 된 작품이다. 밤손님은(빨치산) 마을을 휩쓸고 닥치는대로 먹을 것을 약탈해 갔다. 막내 삼촌을 의용군으로 보낸 엄마는 기침을 하는 어린 빨치산에게 꿀단지를 내어준다. ‘다시는 이 집에 오지 않을 거 입네다’그들은 그렇게 떠났다. 어찌 보면 뻔한 소재의 동화를 지루하지 않게 쓸 수 있다는 것은 기본기가 없이는 어렵고 또 체험 없이도 힘들다. 동화에서도 글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선자가 제대로보았다는 생각으로 ‘감나무 위의 꿀단지’를 위에다 놓았다.(‘꼬마 두 번째 버전’,이 작품은 로봇과 인간과의 교류, 장수시대에 필요한 소재가 아닐까 하여 한 마디 언급하고 싶었다.)
동시와 동화 중에 어느 작품에게 대상의 영예를 주어야 하나 머뭇거렸다. 동시와 동화를 분리해 심사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하게 되었다. 일상의 경험을 시의 방법으로 묘사한 동시, 그것도 아주 따뜻하고 희망으로 읊은 동시를 대상으로 결정했다. 아동문학은 ‘해피엔딩’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 심사위원: 정두리(아동문학가, 새싹회 이사장)
첫댓글 재미있고 감동적인 동화 잘 읽었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동화 잘 읽었습니다.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