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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크로스는 오늘밤에…
거리에는 크리스마스의 캐롤과 트리…
옷깃을 세우고 바쁜걸음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않음을 느끼며…
언제나 크리스마스가 오면 신이났다.
크리스마스의 赤, 白, 綠..色의 이미지…
크리스마스의 색도 赤, 白, 綠이다.
산타크로스의 의상도 붉은색이며, 소매부분은 흰색이다. 화이트크리스마스라는 언어도 白의 이미지에 연결되어있다. 그리고 상록수인 전나무는 녹색이다. 이러한 크리스마스의 풍경의 색이 상업적이미지 전략에 의해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의 칼라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산타크로스의 옷의 역사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산타크로스로 된 인물은 4세기경, 소아시아의 리키아의 뮤라(현 터어키 남서부)의 주교였던 성 리콜라스 이다.
그리스도교의 확대와 함께 성 리콜라스의 전설은 각지에 퍼지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그의 선행을 기념하여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하는것이 되었다는…
그러나 종교개혁이 일어난 16세기 이후에는 카톨릭의 성인인 성 니콜라스는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유럽의 국가들로부터 잊어버린 존재가 되었다.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가 시작되면서 네덜란드인은 지금의 뉴욕을 뉴암스텔담으로 신민지를 개척했다. 그때, 성 니콜라스의 신앙도 신대륙에 들어가게 되었다.
1822년 뉴욕의 사제의 아들로 태어난 신학자 크레멘트 크락크 무아(Clement Clark Moore) 가 성 리콜라스의 전설을 기본으로하여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 『크리스마스전야(초판은 성 리콜라스의 방문 A Visit from St. Nicholas)』 이라는 시를 만들었다. 이 시가 1823년 12월에 신문에 게제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시속에 성 니콜라스는 장미빛의 두볼, 흰 눈과 같은 새하얀 턱수염, 뚱뚱한 체구의 할아버지로, 여덟마리의 순록이 끄는 눈설매를 타고와 선물을 주러 굴뚝을 타고 내려 온다고…
산타의 이미지는 남북전쟁때 데뷰….?
뉴욕의 잡지 하파즈 워크리(Harper’s Weekly)가 남북전쟁중의 1863년 1월 3일호에 「군캠프의 산타크로스(Santa Claus in Camp)」라는 제목의 일러스터를 연재했다. 하파즈 워크리는 공화당, 링컨대통령의 동조자로 당연히 북군지지였다.
산타크로스가 준둔중인 북군의 병사들을 위문하여 선물을 나누어주는 그림. 그림 오른 쪽에 앉아있는 사람이 산타크로스이다. 저에겐 수염을 기룬 조그마한 체구의 아저씨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일러스트의 작가는 공화당지지자의 풍자만화가 토마스 나스터(Thomas Nast). 그는 남북전쟁후 민주당의 동조자의 정치기계「타마니 협회」의 윌리엄 보스 쯔터의 부정을 풍자한 만화로 강력히 비난하여 실각하게 만드는 한사람이다. 구체적인 것은 아일란드계 이민과 다마니협회를 참고하시길…
다른 일러스트 작가들도 산타크로스의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지고 있지만, 이렇게 하여 나스터가 그리는 이미지상이 널리 세상에 퍼지게 된다.
산타크로스의 복장의 색(色)에관해서… 지금은 적(赤)색으로 되어있다.
적(赤)색으로 결정한 이유는 이것도 나스터의 일러스트가 발상(發祥)이다.
나스터의 산타크로스를 포함한 과거에 발표한 크리스마스의 일러스트를 한권의 책으로 모은 「Thomas Nast’s CHIRISTMAS DRAWINGS」(토마스 나스터의 크리스마스 화집)이 1890년에 출판되었다. 그 화집 속에 이렇스트가 66점, 칼라는 6점이다.
위에 게제한 1881년 1월의「Merry Old Santa Claus 」에 착색을하여 표지로 사용한다. 복장의 색깔은 적(赤)색. 현재의 이미지와 같은 밝은 붉은색이 아니라 와인의 붉은색이다. 이것으로 산타크로스의 복장이 적색으로 되었다.
산타의 이미지를 인간적으로…코카콜라의 광고
코카콜라사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선전으로 1920년대에 산타를 이미지 캐럭터로 사용했다. 이 시기는 토마스 나스터의 요정풍의 스타일을 계승했다.
1930년에도 코카콜라는 산타를 기용했다. 약간 인간적인 이미지를 혼합하여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1931년 시카코의 일러스트작가 핫돈 산드불롬(Haddon Sundblom)에게 더욱더 인간적인 산타상(像)으로 그리도록 의뢰했다. 그가 만들어낸 산타의 비쥬얼이미지가 큰호평을 받앗다. 산드불롬은 그 후 35년간에 걸쳐 산타를 그렸다. 코카콜라의 세계진출과 함께 전세계에 그의 산타가 알려졌다.
현재, 한국 일본에서는 산타크로스는 북극에 살고있는 할아버자라는 것으로 되어있다. 성 니콜라스와는 독립된 것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북구(北歐)에 전해져온는 산타크로스와 비슷한 에피소드를 가진 민화, 전설을 20세기전반에 미국에서 탄생한 산타크로스의 이미지와 합하여 만들어져 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롷게 현재의 산타는 비쥬얼이미지는 미국산, 그 에피소드는 미국산과 북구산의 합동… 현재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빨간 코의 순록(사슴?) 루돌프…
1822년 무아가 발표한 詩, 성 니콜라스의 방문에서는 여덟마리의 순록이다.
코카콜라가 만들어낸 산타크로스의 의상으로 크리스마스는 점점 화려한 행사로 되었다. 순록(사슴?)이 그는 눈설매를 타고 굴뚝으로 내려오는 산타크로스의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한것이 연출이였다.
언제나 겨울은 눈으로 가득한 시카코. 몽고메리 웃드 라는 백화점이 산타크로스의 꿈을 더욱더 부풀리기위한 화제를… 이라는 슬로건으로 기획한것이다.
이렇게 처음에는 하나의 백화점이 시작한 서어비스였지만 해를 거듭 할 수록 사람들에게 침투하여 뿌리깊은 인기를 얻게된다. 그리고 그 시에는 메이의 친구 죠니 막그스의 곡을 붙여 지금의 크리스마스 캐롤의 대표곡이되었다.
곡(曲)은 1949년에 레코딩되어 대히트였다. 빨간코의 루돌프는 유럽으로 건너가 한국, 일본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 일본에서는 이러한 산타크로스의 모습이 완성되어 전해졌기 때문에 아홉번째의 빨간 코의 순록이 무아에 의해 이름 붙여진 여덟마리의 순록보다 유명하다는 점이다.
호랑가시나무와 전나무
그것은 호랑가시나무와 전나무의 색깔이다. 어떻게 해서 이 두 나무가 크리스마스와 연결이 되는 것일까?
예수 그리스도는 가시나무의 관(冠)을 써고 십자가에 매달렸다.
그리고 잉글랜더에서는 떡갈나무와 같은 상록수는 불사(不死)를 상징하는 성(聖)스러운 나무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더욱더 겨울부터 빠른 봄에 노란색의 곷을 피우는 것으로 부터 힘을 잃어버린 태양이 봄을 향해 부활하는 것을 상징하는 나무로 생각하였다.
그리스도교가 전례된 시기는, 동지와 크리스마스가 가까웠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한 기생목의 고리를 걸엇다고 한다.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교를 선교하여 가는 과정에서 그리스도교의 해석에 좋은 방향으로 호랑가시나무를 사용하도록 권장하였다. 그 후, 크리스마스에는 호랑가시나무를 장식하는 것이 되었다. 기생목은 크리스마스에 집안에 장식하여 그 밑에서 키스를 하는 풍습으로 남아잇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등장은 호랑가시나무 보다 늦게 8세기 전반경에 독일에서 부터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시기의 독일에도 그리스도교가 전파되기전 까지는 떡깔나무가 신성시 되고 있었다.
현재와 같이 전나무를 장식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이전부터의 풍습이라는 것과, 16세기 초의 종교개혁이 계기를 만든 마르틴 루터가 성야의 별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워 자기집의 전나무에 납촉(蠟 燭)을 걸고 불을 밝혔다는 것이 시작이라는… 여러 설이 있다.
그리고 전나무에 양말을 걸어두는 것은 성 니콜라스의 위업을 전승한 사람들이 자식들에게 선물을 하는 과정에서 중세이후의 풍습이라는 설도 있다.
최근에 크리스마스에 장식하는 식물로 된 포인세치아. 이 식물을 크리스마스에 장식하게된 것은 1828년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가져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스페인의 침공후 그리스도교화 된 멕시코은 18세기경부터 적(적)과 녹(녹)의 잎을 동시에 지니는 식물의 잎을 그리스도의 탄생을 제시한 베들레햄의 별에 비유하여 성서스운 밤의꽃으로 불렀다.
그리고 초대 미국대사로 멕시코에 온 죠엘 로버트 포인센트가 그 풍습을 알고 미국에 가져 갔다는 것이다. 빨강과 녹색의 채색도 좋고 멕시코인들의 비유도 좋아 이 식물이 크리스마스에 제일 적당한 것이 되었다. 포인세치아는 대사의 이름으로부터 온것이다.
산타크로스는 오질 않는다…
몇일전의 TV뉴스에서 화이트 하우스의 트리 점화관경을 보았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락크의 하늘에…
성 니콜라스의 산타가 아닌 모습으로….
산타의 복장으로 코카콜라가 아닌 석유를 이락크의 냉장고에서 꺼내려…
아홉마리의 전차와 폭탄과 무기를 선물로…
오랫만에 도심에 나갔다.
산타크로스가 순록이 끄는 눈설매를 타고 품짐한 선물을 가지고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산타크로스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되었고, 한국의 대학시절엔 유치원의 크리스마스 산타역 아르바이트도 몇년간 하였다. 아이들을 많이 울린 기억이 남아있다. 난 아마 나쁜 산타였나보다…
그 기수의 이름은 신의 말(言)이라고 했다. 즉, 이 흰색과 붉은색은 그리스도교의 진실, 그리고 힘의 상징이다.
그리스도교 국가의 국기에는 이러한 색들의 조합이 많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부터 그리스도교(카톨릭)에 귀의하여 민중을위해 봉임하는 길을 선택했다. 가난한 가정에 금화를 던져주고, 기적적으로 어린이들을 사고에서 구하고, 조난당한 배들을 구조하는 등, 선행을 하여 성인으로 추양되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그의 죽음 이후, 전설이되어 더욱더 신성화되어 성 리콜라스는 넓게 대중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죽은 날이라고 알려진 12월 6일에 행하여 졌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전야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선물도 과일이나, 캔디, 목형인형 등 이였다. 그리고 그 당시의 복장도 추기경의 색깔이라고 불리어지는 짙은 붉은색의 가운으로 발끝까지 내려오는 것이였다는 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는 카톨릭을 지켜온 사람들속에서 성 니콜라스의 전설이 남아 12월 6일에 그 행사를 계속하였다.
네덜란드의 세력은 시간이 갈수록 약해져가고 있었지만, 성(세인트) 니콜라스의 이름은 스인다 크라스로, 그리고 영어로 산타크로스가되어 프로테스탄트의 사람들에게도 널리퍼지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강생을 축하하는 미사, 그리스도・미사가 크리스마스로, 성 니콜라스의 전설이 연결되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무아의 시에서 표현된 산타의 이미지상(像)은 시를 근원으로 여러종류의 그림, 일러스터가 그려졌다. 그러나 제일 알려진 비쥬얼 이미지는 남북전쟁중(1861- 65)에 뉴욕에서 등장한다.
나스터는 남북정쟁후에도 하파스 워크리지에 산타크로스를 몇번이고 그려 호평을 받는다.
왼쪽의 그림은 「Merry Old Santa Claus 」의 제목인 1881년 1월의 일러스트.
그러나 나스터의 일러스트의 게제당시에는 흑백. 위에서 설명한 클레멘트 무아의 시에도 복장의 색깔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않다. 다른 일러스트 작가들의 칼라작품들도 청(靑), 적(赤)등등의 여러색깔의 복장이었다.
토마스 나스터가 그린 산타는 작은요정의 이미지. 달리 말하면 인간답지 않다구… 그것을 현재의 조금 인간적인 이미지로 바꾼것은 청량음료회사 코카콜라이다.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빤짝이는 코
언제나 크리스마스 캐롤으로 들여오는 노래이다.
우리들의 크리스마스 이미지로 연상되는 루돌프…
그러나 이것 역시 미국의 상법전략의 산물이다.
이 시를 근본으로 그려진 산타와 순록의 그림들도 여덟마리의 순록으로 표현되어있다.(좌, 우의 그림참조)
이것에 응한 카피라이터 로버트 L. 메이가 산타크로스가 선물을 나누어줄때 도와주는 보조역으로 아홉번째의 순록(사슴?), 빨간 코의 루돌프를 생각해낸 것이다.
1939년의 겨울부터 우리들이 현재의 이미지랑 같은 산타크로스의 그림과 메이의 詩가 들어 있는 책자를 몽고메리 웃드 백화점에서 나누어 주었다. 이 책자의 자료를 많이 찾아보았으나… 결국은 발견하지 못함.
크리스마스의 이미지 하면 또 하나의 색, 녹색이다.
일본에서는 절분(節分)에 호랑가시나무의 가지에 정어리의 머리를 꽃아 현관의 옆에 세워두어 귀신을 물리친다… 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있다. 그 잎은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호랑가시나무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진다고 생각되는 점은 이 가시가 가시나무를 연상하게하여 호랑가시나무의 빨간열매가 그리스도가 흘린 피의 상징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나뭇잎을 집에 장식하는 풍습은 그리스도교 선교 이전의 유럽에서는 넓은 지역에서 찾아볼수 있다. 그렇지만 그 나무는 호랑가시나무가 아니고 기생목. 겨우살이목 이였다.
재생력이 있어 떡갈나무, 졸참나무등의 너도밤나무과의 수목에 기생하는 이 나무의 생명력에 고대의 사람들은 자연의 강한 힘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기생목은 자손번영과 가정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나무로 믿어져 왔다고 생각된다.
이 지역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사람은 영국의 선교사 보니파티우스였다. 그는 사람들이 너무나 떡깔나무를 신성시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떡깔나무를 짤라 이 나무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얘기햇다. 그때, 쓰러진 떡깔나무의 곁에 전나무의 새순이 있는것을 본 보니파테우스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기적이라고 연결하여 신앙의 상징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이것은 일설에 불가하다. 예전부터 전나무도, 떡깔나무도 신성시 되어있었다. 그리스도교가 널리퍼지는 과정에 혼합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산타와 크리스마스에 관한 긴 글을 쓰고있다.
그 이유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일지도…
10년전 뉴욕의 록펠러센타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러 간적이 있다.
뉴욕은 크리스마스 휴가로 어디를 가도 크리스마스 세일이었다.
티파니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흐름이…
1달러에 100엔의 시절이다. 한국도 경제 급성장 시기였구…
뉴욕의 무역센타도 사라버린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흰 눈이 아닌 폭탄의 눈을 내렸다.
남북전쟁때의 산타를 부시는 이락크에 방문하여 미군인들을 위문했다…
한국과 일본은 산타가 되어 이락크를 방문하려한다…
코카콜라가 아닌 기름통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