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인 고개를 쳐들고 눕혀
이자켓
그 나무에서 더는 기름 나지 않았다
진액에 엉겨 붙은 잔털과
물여우 사체뿐이다
그 강을 건너면 안 됐다
강물이 마을을 뒤덮기 전에도
후에도 빠지면 빠졌지
건너서는 안 되었다
급류에서 빠져나온 이들은
열무 트럭 다니던 뒷길로
동네 전전하였다
중지로 강을 쑤셔 숨 쉬었노라
떠벌리고 숙식했다
집주인과 동침한 뒤
곯아떨어진 것을 두고
식탁에 앉았다
입천장에 매달려 떨리는
비린내를 게우며 몽매하였다
동네는 동네로 이어지나
그 마을은 외따로
수살목은 꽁하여
잠 가신 이들은 밧줄 쥐게 하였다
정처 없이 애타 기어가도록
한 품 찾아 안기도록
날 선 가위로 양상추 써는 아침
물그릇에 매달리도록
끓는 물에 데이지 않을 만치 들이대도록
몸뚱이를 흔들었다
이들은 날붙이 한 자루 훔쳐 쓰지 못하고
걸레를 짜고 짰다
꼬인 천은 흘렀다
목 휘젓는 들개의 침으로 구정물로 흘렀다
머리칼과 먼지를 내비치며
흙길로 넘쳐 떠내려갔다
지붕을 더듬다 내려온 그는
사다리에 기대어 날갯죽지를 돌렸다
사다리를 들어 지붕으로 던져두었다
피우지 말고 태우라
하나, 하나, 하나
저 땅은 무밭으로 개간됐다
무밭과 무밭 사이를
진입로가 구획한다
나무를 센다
중턱에서 내려다보이는
가로수를 손으로 짚으며
하나, 하나, 하나
까마귀를 내쫓는 주민이
내달린다 균형을 잡고
아니지 나무를 센다
다시, 하나
진입로에 가로등이 부족하다
가로등마다 포대가 기대어 있다
통 덫을 나누어 든 모자가
경사로 내려가 밭을 가로지른다
흐릿한 그림자를 손끝으로
따라가지만 어둠이다
까마귀는 자리를 옮길 뿐
도주하지 않았다
명아 이, 이(손목 돌려
손을 회전시키며) 마을은
들락거리지 마라
섬에는 와도 괜찮다
배를 타고 지나쳐도
비행기로 내려다보아도
혼내키지 않을 테니 이, 이
마을엔 얼씬하지 마라
오는 다리 하나인 둥근
자락은 피해 가라
허수아비다
비탈길에 누워 꼼짝 않는
또박또박 주소 부르는
아니다 나무를 손꼽는다
땅밖에 노출된 뿌리를
발끝으로 차면서
셈한다 하나, 하나
바위를 우회하면
중턱에서 내려갈 수 있다
저리 가지 않고
돌아갈 수 있다
돌아갈 장소를 파악한다
어둑하다 세기 어렵다
삼시 세끼 먹었다
저녁으로 삶은 달걀 까먹었다
조각난 껍질을 벗기자 속이 둥글게 파인
흰자뿐인 달걀이었다 퍽퍽하였다 저녁이었다
일어서면 발밑의 흙과 자갈이 굴러떨어졌다
가방에서 물통을 뽑았다
살림 구덩이
그러지 말아야지 하여도 벌어지는 일이 있다. 이때 ‘벌어졌다’라는 말을 축으로 보자면 내가 ‘그러지 말’ 수 있는 힘이나 선택권이 있었는지 되묻게 된다. 되돌릴 수 없는 상태나 상황 속에서 ‘말아야 한다’라는 부정은 이미 불능 상태로 되려 그 상황을 수긍하는 방식으로 전락하는 것인지, 혹은 다시 이러한 일이 벌어질 것을 기다리는 말이 되는 것인지 의아하다.
살고 있는 동네 근처에는 묘지가 있다. 비가 오는 저녁에 가여도 으스스하지 않고 세련된 곳으로 선교사 혹은 순교자의 묘가 줄지어 선 곳이다. 위치가 다소 외져서 이사를 오고도 몇 달 동안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우연히 길을 따라 걷다가 볕 좋은 묘지에 이르게 되었을 때, 겨울에 이사하고 초여름에 정착하였다는 감각이 일시적으로 선명해졌다. 돌로 만든 각기 다른 묘비가 햇빛에 놓여 있었다. 아주 작은 십자가도 줄지어 세워졌는데 간략한 이름만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겠다, 중얼거리면서도 과연 그것이 좋거나 나쁨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곳에는 묘지가 있고 이미 벌어진 일로 인해 세워진 묘비가 있고 그렇기에 그곳에 갈 수 있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지치기하는 인부가 있었고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철창으로 밀고 들어와 자라날 잘린 가지가 있었다. 어느 시기에는 내 덩치보다 조금 크고 조금 깊은 구덩이를 들어가야 한다. 거기서 묻힐 수도 있고, 숙박만 하고 나올 수도 있으며, 당차다면 볶음밥이라도 해 먹으며 살림을 차릴 수도 있을 것이다. 살림을 차린다면 볶음밥만 먹어야 할 것이다. 무언가를 구분할 수 없이 눈앞에 놓인 것이 모두 뒤섞일 테니까. 그리고 덮인 흙을 털고 개운치 못한 신체를 일으켜야 할 수도 있다. 몸을 두고 나오더라도 지갑이나 휴대전화처럼 재빨리 알아차릴 수 없으리라 추측한다.
진정 그러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렇다면 정말로 벌어지지 않을 수 있는지 물을수록 우스꽝스러웠다. 눈의 초점을 잃고 웃게 됐다. 다시 묘지에 방문하였다. 으스스하지 않은 저녁이었다. 세련되기까지 한 묘지였으며 우산을 쓰고 걸었다. 우산이 비를 감당하고 있다고 여겼으며 자연스레 빗물을 흘려내는 자태가 우아하다고 받아들여졌다. 그런 우산이 대견하여 손잡이를 받들고 있다고 느꼈다. 비는 고통이 아니다. 비는 비다. 나는 우산이 아니다. 우산일 수 없다. 비가 비애라면 여지없이 나는 우산이 아니다. 우산을 추대하는 빈손일 뿐이다. 묘지는 스산하지 않으나 어두웠다. 묘비는 작거나 클 수 없었고, 좋거나 나쁘지 않았으며, 동일할 수도 없었기에 각개의 묘비를 모두 묘비라 불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