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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에도 졸업식이 있다면
이 규철
2026.08.08
칠십을 넘기고 나니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인다.
젊었을 때는 친구가 많다는 것이 자랑이었다.
동창이 많고, 아는 사람이 많고, 전화번호부에 이름이 빼곡하면 내 인생도 그만큼 풍성한 줄 알았다.
한 달에 몇 번씩 사람을 만나고, 술잔을 기울이고, 경조사를 챙기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는 사람과의 인연이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칠십이라는 언덕을 넘어 뒤를 돌아보니,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사람을 데려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느 친구는 병으로 먼저 떠났고, 어느 친구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또 어떤 친구는 오랫동안 연락이 없다가 나중에야 그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소식을 들려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떠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동창회 명단에서 이름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친구도 안 보이네.”
“지난번에 소식 들었는데 건강이 좋지 않다더라.”
“그 사람은 이제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는대.”
그렇게 한 사람씩 자리가 비어간다.
동창회에 나가 보면 그것이 더욱 선명하다.
젊은 시절에는 넓은 식당 하나를 빌려야 할 만큼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몇 줄의 테이블이면 충분하다. 빈 의자가 눈에 들어오고,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화제에 오른다.
그 빈자리는 단순히 사람이 오지 않은 자리가 아니다.
그 자리에는 지나간 세월이 앉아 있다.
우리가 함께 웃었던 시간, 함께 술을 마셨던 밤, 함께 여행했던 기억, 서로의 자녀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세월이 그 빈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다.
사람은 죽어서만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사람은 죽어서만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으면서도 관계를 끝내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때로는 내가 먼저 관계를 정리했고, 때로는 상대가 나를 정리했다.
특별히 싸운 것도 아니다.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어느 날부터 전화가 오지 않고, 만나자는 약속도 없어지고, 서로의 생활에서 상대방의 자리가 조금씩 작아진다.
처음에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바쁘겠지.”
“나중에 연락하겠지.”
그런데 계절이 몇 번 바뀌어도 연락이 없다.
그제야 알게 된다.
아, 나도 이 사람의 인생에서 조금씩 퇴장하고 있었구나.
사람은 누구나 살아오면서 관계를 정리한다.
싫어서 정리하기도 하고, 섭섭해서 정리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해관계가 달라져서, 때로는 가치관이 달라져서, 때로는 아무런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냥 멀어진다.
젊을 때는 그것을 인간관계의 실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년이 되어 보니 반드시 실패라고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인생에는 만남에도 때가 있고, 이별에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도 남을 정리했지만, 나 역시 정리되어 왔다
살면서 나는 여러 사람을 마음속에서 정리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있었고, 믿음을 저버린 사람도 있었다.
만나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사람도 있었고, 더 이상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관계도 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관계의 가지를 쳐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이상한 일이다.
내가 사람을 정리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나를 정리해 왔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친구였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이제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모르고 살았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했을 것이다.
인간은 참 묘한 존재다.
자기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떠날 자유는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서 떠나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관계를 끝내는 것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고, 상대가 나를 정리하는 것은 ‘섭섭한 일’이 된다.
그러나 결국 같은 이야기다.
인연은 한쪽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라고 해서 평생 친구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때 가까웠다고 해서 죽는 날까지 가까워야 할 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다.
인연은 만나는 동안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시간이 끝나면, 각자의 길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연에도 졸업식이 있으면 어떨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학교에는 졸업식이 있다.
오랫동안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며 서로의 앞날을 축복한다.
그런데 인간관계에는 이상하게도 졸업식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만나지 않게 된다.
전화가 끊어진다.
명절에 연락하던 사람이 연락하지 않는다.
동창회에서 몇 번 빠지다 보면 어느새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는다.
그렇게 관계가 끝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 인생에도 ‘인연의 졸업식’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더 이상 만나지 않기로 한 사람이라도 마지막에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동안 고마웠네.”
“자네를 만나서 내 인생이 즐거웠네.”
“좋았던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겠네.”
“서운했던 일은 이제 내려놓세.”
“앞으로 자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건강하게 잘 살게.”
그 말 한마디를 하고 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이별이 조금 덜 서럽지 않을까.
사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인생을 지나가는 사람이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지나왔다.
국민학교 시절의 친구들, 중학교와 고등학교 동창들,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사업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동네에서 만난 사람들.
그중에는 한때 아주 가까웠던 사람도 있고, 지금은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내 인생에 남긴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 함께 뛰어놀던 친구 덕분에 내 어린 날이 즐거웠고, 힘든 시절 함께 술잔을 기울여준 친구 덕분에 견딜 수 있었던 날도 있었다.
사업이 잘될 때 축하해준 사람도 있었고, 어려울 때 말없이 곁을 지켜준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지금 내 곁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내 인생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람은 떠나도 기억은 남는다.
그리고 기억 속의 사람은 때때로 현재의 사람보다 더 가까이 다가온다.
늦은 저녁 혼자 앉아 있으면 문득 오래전 친구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어느 길을 지나면 함께 걸었던 사람이 떠오른다.
그 순간 깨닫는다.
인간의 인연이란 결국 함께 살아 있는 동안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동안에도 계속되는 것이구나.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많이 갖는 것보다 좋은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었을 때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이 중요했다.
전화번호가 많아야 했고, 모임도 많아야 했고, 경조사에 갈 곳도 많았다.
하지만 칠십을 넘기고 나니 생각이 달라진다.
많은 사람보다 마음 편한 사람이 소중하다.
매일 만나지 않아도 서로를 걱정하는 친구가 좋고, 몇 달 만에 만나도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좋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도 좋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귀한 사람은 굳이 이해시키려고 애쓰지 않아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몇 명만 있어도 인생은 충분히 풍요롭다.
인생 후반부에는 인간관계도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관계를 줄이고, 억지로 유지하던 관계를 내려놓고, 마음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마음을 쓰는 것이다.
젊을 때는 관계의 양을 늘리는 데 힘을 썼다면, 노년에는 관계의 깊이를 살피는 것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쉽게 헤어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관계를 담담하게 정리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만나고 싶다.
친구를 만나 밥 한 끼 먹고 싶고, 커피 한잔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싶다.
어제 본 뉴스가 어떻고, 자식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몸은 어디가 불편하고, 옛날에는 우리가 얼마나 철없이 살았는지를 이야기하며 웃고 싶다.
사람이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사람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더 필요하다.
다만 젊을 때처럼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닐 뿐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한 사람.
내가 안부를 묻고 싶은 한 사람.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한 사람.
그리고 어느 날 내가 보이지 않으면 “그 친구 요즘 왜 안 보이지?” 하고 기억해줄 한 사람.
그 정도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관계의 숫자가 아니라 관계의 온도다
인생을 마무리할 때 통장 잔고나 명함의 숫자나 휴대전화에 저장된 연락처가 나를 위로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기억나는 것은 사람일 것이다.
누가 나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었는가.
내가 힘들 때 누가 내 편이 되어주었는가.
내가 웃을 때 누가 함께 웃어주었는가.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것이 마지막에 남는 인간관계의 성적표인지도 모른다
.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이미 멀어진 사람을 억지로 붙잡지는 않되, 아직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하고 싶다.
오래된 친구에게 먼저 전화도 한 번 해보고 싶다.
“별일 없나?”
이 짧은 말 한마디가 어쩌면 그 친구에게는 하루의 작은 햇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자존심 때문에 하지 못했던 말도 해보고 싶다.
“그때는 내가 좀 심했네.”
“그동안 고마웠네.”
“자네가 있어서 내 인생이 그래도 재미있었네.”
나이가 들수록 이런 말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귀한 말이 된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 역시 언젠가는 누군가의 동창회에서 이름으로만 불릴 것이다.
“그 친구는 참 오래 살았지.”
“그 사람 예전에 참 재미있었는데.”
누군가는 내가 했던 농담을 기억할 것이고, 누군가는 함께했던 여행을 기억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내가 무심코 건넨 한마디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어떤 사람으로 남게 될까.
그 생각을 하면 지금부터라도 조금은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단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상처를 덜 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는 아끼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친구여, 우리에게는 아직 마지막 인사가 남아 있다
친구여.
우리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동창회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우연히 길에서 마주칠 수도 있고, 어느 날 전화 한 통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도 있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만났을 때 너무 많은 것을 따지지 말자.
누가 더 성공했는지,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 누가 더 잘 살았는지를 따지는 것은 이제 그만하자.
우리는 이미 충분히 살아왔다.
젊은 날에는 앞만 보고 달렸고, 중년에는 가족을 위해 뛰었으며, 이제는 지나온 길을 돌아볼 나이가 되었다.
그 길에서 서로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빚이 있다.
나는 당신을 만나서 웃었던 날들이 있었고,
당신 덕분에 힘든 날을 견딘 적도 있었으며,
함께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내 인생이 조금 더 재미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혹시 우리가 앞으로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섭섭해하지 말자.
누가 누구를 먼저 정리했느냐도 따지지 말자.
인연은 정리한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
좋았던 인연은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남아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다시 찾아온다.
그러니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친구야, 그동안 고마웠다.
너를 만나서 내 인생이 더 재미있었고, 더 따뜻했고, 더 보람 있었다.
우리 함께했던 세월은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자.
앞으로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건강하게 잘 살아라.
그리고 혹시 내가 먼저 가더라도 나를 너무 오래 슬퍼하지는 마라.
나도 너를 만나 참 좋았다고, 그것만은 꼭 기억해다오.”
어쩌면 이것이 노년의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마지막 인사인지도 모른다.
인생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학교에도 입학과 졸업이 있고, 직장에도 입사와 퇴직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간관계에는 졸업장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끝난 인연을 붙잡고 오래 마음 아파하거나, 끝내 하지 못한 말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그러나 칠십을 넘긴 지금쯤에는 알 것 같다.
모든 인연을 평생 끌고 갈 필요는 없지만, 함께했던 시간만큼은 함부로 지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떠나는 사람을 원망하기보다 고마웠다고 말하고,
나를 떠난 사람을 붙잡기보다 잘 살기를 빌어주고,
아직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조금 더 따뜻하게 웃어주는 것.
그것이 인생 후반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관계의 정리가 아닐까.
그리고 언젠가 정말 마지막 졸업식이 찾아오는 날,
나는 내 인생의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여러분과 함께 살아서 좋았습니다.”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인생이라는 긴 학교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반 친구였고,
잠시 함께 웃고 울다가,
각자의 시간표가 끝나는 대로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