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 "기사" 자체는 "작위"의 일부가 아닙니다. "말을 탄다"는 뜻의 "기사(騎士)"라는 한자어로 인해 동양에서는 오도되는 경향이 좀 있는데, "knight"나 "chevalier"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전문적인 무인계급은 존재했었고, 그들 모두 개념적으로는 '기사'라는 단어의 속뜻에 포함되어 있는 "전문적인 무인"에 속합니다.
따라서, "기사"는 작위서열의 어느 곳에 들어가있는 그런 것이라기 보다는 평민이냐 성직자냐 무인-귀족 계급이냐를 구분하는 더 커다란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중세의 왕은 "기사이자 왕"인 것이지요. 중세의 귀족은 "기사인 귀족"이구요.
이것이 좀 애매한게, 남작에서 공작에 이르는 작위서열이 상하의 위계가 정해지게 된 것은 중세가 거의 끝나다시피 할 때 부터라서, 정작 중세에서는 오늘날의 서열개념상으로는 '공작'이나 '후작'아래 있는 일개 '남작'이 오히려 권력이 훨씬 큰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남작'과 같은 작위를 통해 귀족여부가 판가름난다기보다는, 혈통으로 내려오면서 무력을 통해 상위계급자에게 봉사하는 대가로 평민 이상의 권한을 관습법적으로 인정받게 되는 그러한 지위를 '귀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기사서임을 최초로 받은 맨 아랫단계의 '기사'도 분명 귀족의 말단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기사서임을 받는 즉시 봉토가 내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개 하급의 기사들은 보다 상급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장자가 아닌 관계로 독립해 나와야 했던 사람들과, 평민 중에서 출세를 노리는 사람들로 이루어져있었으며, 당연히 그 수자가 꽤 많았습니다. 그러니, 최초로 기사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보다 빵빵한 영주 밑의 일개 군인정도로 일하면서 보통의 영지군보다 조금 높은 계급의 무사들에게 제공되는 간단한 숙소 정도를 제공받았을 겁니다.
그러나, 비록 그 숫자는 많았으나 중세의 여러 환경으로 인해 무인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아주 짧은 편이었고, 당연히 늘상 이런저런 이유로 상급자의 자리가 비게 되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그러한 빈 공백을 메꾸면서 가장 말단 단계에 있던 젊은 기사들이 새로이 영지를 수여받게 되는 것이며, 비로소 그 단계에서 스스로 자신 아래의 기사들을 모집하여 부릴 수 있는 권한이 인정되는데요, 우리나라 군대로 치자면 -_-; 일등병이 드뎌 상병으로 올라간 뒤에 자기 직속 아래의 쫄따구들을 부려먹을 수 있는 자리에 오른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상급귀족의 자리로 올라가는 것은 아주 힘들었고, 그들 내에서 세습이 계속 되었지만, 하급귀족들은 직접 참전하여 싸우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에 끝없이 죽어나가고 새로 충원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첫댓글 답변 감사합니다^^
저도 일본 사무라이계급에 대해 설명할 때, 내 머리속에서도 곤란지극이라 밖으로 말이 되기는 더더욱 힘든데... 참 애매모호한거 잘 설명해주신듯하여 타의 모범이 되기에 이 상장을 수여... 사랑하는 온곡 온곡 초등학교...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