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양탕 초등 모임
내 초등학교 졸업생은 모두가 28명이다.
남자 18명에 여자 10명이니
도시의 한 학급 반밖에 안 되는 인원이다.
그 중에 두 명은 젊어서 이미 이승을 떠났고
몇몇은 고향을 떠나버린 후 세월을 등지고 있다.
아무러나 멀리 떠나가 있더라도,
고향과 연락을 하지 못한다 해도
그들도 옛 유년시절의 소꿉친구들을
기억 속에서야 지우지 못하고 있겠거니.
이제 모두가 회갑을 넘어선 초로의 나이들인데
언젠가는 소식도 듣고 얼굴도 뵈올 날이 있지 않을까.
지난 일요일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 하나가
각지의 친구들을 연락해 불러 모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남의 자전거포에서 일하더니
지금은 조그만 농기구 수리점을 운영하는 친구다.
여름 복더위도 가까워졌는데 얼굴도 볼 겸
황구 한 마리 잡아 보양을 하자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내려가고 청주에서 몇 명이 달려오고
그래 보아야 다 모여도 열댓 명을 넘지 못하지만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좀 늦게 도착했을 때 마당에선 황구탕이 펄펄 끓고 있었다.
전날부터 불을 지펴 푹 고아냈기에 냄새 또한 구수하다.
역시 보신탕은 가마솥에다 장작불을 지펴 끓여내야 한다.
토종 된장을 풀고 대파를 집어넣어 오랜 시간을 삶아
고깃살을 결에 따라 죽죽 찢어야 제 맛이 난다.
서로 간에 오고가는 대화도 수십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아무개, 이 놈 저 놈으로 격도 허물도 없다.
기억 속엔 모두가 까까머리의 코흘리개 악동들이고
부끄럼에 얼굴 붉히던 단발머리 애띤 소녀들인데
까마득한 세월을 넘어서 이제 주름살이 깊게 패인 얼굴들-
유년의 친구들은 허물이 없어서 좋다.
세상의 이비(理非)에 눈뜨기 전 순수의 정으로 만났으니
잘 나고 못난 놈도, 가진 자 없는 자도 따지지 않는다.
그저 살아있기에 만나는 것이고 동창이기에 만날 뿐이다.
그래, 부디 건강들 잘 챙기고 철이 되면
이렇게 만나서 옛이야기라도 나누자꾸나.
그리운 친구들아, 소중한 옛 동무들아.
2010. 7. 12.
첫댓글 낭산님 글을 읽으니 왜 눈물이 고이는지...돌이켜 까마득한 세월을 거슬러 올라 저도 옛 추억의 얼굴들을 떠 올려 봅니다. 낭산님 즐거운 한 때 보내고 오셨군요~^^
그리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