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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 도서관 더 필요한데…
정부는 지난 5년간 '학교 도서관 활성화 사업'을 추진했지만, 적지 않은 학교에서 여전히 도서관이 낡은 상태로 방치돼 있다. 대부분 규모가 작은 농어촌지역 학교들이다. 정부가 도서관 지원을 할 때 학교 규모를 불문하고 '교실 크기 2칸 이상의 공간이 있을 것'이란 조건을 단 탓이다.
전남 완도군 노화도의 노화북초등학교에는 아예 도서관이 없다. 도서관을 설치할 수 있는 유휴(遊休) 교실이 전무한 탓에 정부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 학교 유동렬 교장은 "교육청 예산이야 뻔한데 건물까지 지어달랄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시골 학교 학생들에게는 학교를 제외하고는 독서를 경험할 공간이 없다. 노화도에 있는 유일한 공공도서관인 노화공공도서관은 이 학교에서 6㎞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10분 이상 걸리는 거리다.
노화북초등학교 학생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은 교실 창가에 마련된 '학급문고' 100여권이 전부다. 4학년 신경호(10)군은 "매년 1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여기 있는 책들은 다 읽는다"고 했다.
이 학교 학부모는 대부분 전복 채취나 농업 등에 종사한다. 아이들이 '방과 후 학교' 후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4시이지만, 부모님들은 해가 저물고도 한참 지나야 귀가한다. 그동안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TV 시청이나 인터넷 게임뿐이다. 경호는 하루 4~5시간을 컴퓨터 앞에 붙어 있는다고 했다.
'학교 도서관이 학교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한 연세대 이지연 교수는 "농촌지역 아이들이 학교 도서관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매일 한 번 이상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는 초등학생 비율은 농촌지역이 17.1%로 도시지역(10.9%)보다 높았다. 농촌지역 중학생은 50.6%가 매일 학교 도서관에 들렀다.
얼마 전 이 학교를 졸업한 경호의 형 경국(13)이도 겨울방학 때 매일같이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씩 걸리는 노화공공도서관에 갔다고 했다.
"학교에 책이 워낙 적어서 심심했는데 공공도서관 가면 다 읽지도 못할 정도로 책이 많았어요. TV를 보니 도시엔 학교마다 도서관이 다 있더라고요. 정말 부러워요."
◆도서관이 '빈곤 대물림' 낳는다
경국이가 부러워하듯 서울을 비롯한 도시지역의 학교 도서관은 상당한 수준이 됐다. 지난 21일 취재하러 간 서울 개포동 양전초등학교는 장서 수 1만1500권에 도서구입·도서관운영 예산만 1년에 200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새로 리모델링한 현대식 시설에 강남구청에서 파견한 사서(司書) 1명이 상주하고, 학부모 25명이 돌아가면서 대출·정리 업무를 도와 하루 8시간 도서관을 개방한다. 이 학교 학생들은 1년에 평균 74.1권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반면 4000권의 낡은 책들이 비치된 전북 함라초등학교 도서관의 개방시간은 하루 2시간. 이 학교 학생들이 빌려 읽는 도서는 연간 20.3권이었고, 도서관이 없는 전남 노화북초등학교는 0권이다.
가톨릭대학교 교육대학원 성기선 교수는 "지역별 학교 도서관의 격차를 줄여주지 못하면 이 때문에 가정의 불평등이 대물림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열악한 학교 도서관이 '빈곤의 대물림'의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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