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3장 11 - 13절
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13.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9세기 말에 부루 므하르도라는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독일의 산악 지대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목회를 하셨던 분입니다. 목회를 하던 중에 1차 세계대전이 발생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 이 목사님의 이름이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종말 신앙에 대해서 이 목사님이 강조를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 전쟁의 상처를 두 눈으로 목격한 독일 사람들에게 종말에 대한 믿음을 전하니까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년 첫 예배 때마다 이 목사님이 전한 메시지가 뭐냐면 “올해는 주님이 오시는 해입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폐쇄적인 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고 진실하게 성실하게 삶을 살면서 종말에 대한 대비를 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전쟁 후 실의에 빠진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면서 종말 믿음으로 인해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종말의 때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 앞에 서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교훈해 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날에 아버지 앞에 서게 되는데 그 때는 거룩함에 흠이 없는 모습으로 서게 됩니다. 우리가 잘 나서, 공로가 많아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놋뱀을 쳐다보는 순간 죽어가던 사람들이 아무 공로 없이 흠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런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애벌레가 화려한 나비가 되는 장면을 보면 너무 신비롭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죄 많던 우리가 거룩함에 흠이 없는 모습이 된다는 것은 그보다 더 큰 변화이고 영광스러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생활을 죽기 살기로 하는 이유는 바로 그날 그 영광을 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서 이 소망 때문에 믿음을 굳건히 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지 아침 안개와 같은 것에 우리의 소망을 두게 되면 우리의 인생은 허망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대되는 모습이지 않습니까? 거룩함에 흠이 없는 모습! 우리가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경험하지 못한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 이런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면서 하루, 하루 최선을 다 하면서 믿음의 생활을 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영광스러운 모습을 얻으려면 서로 사랑함이 넘쳐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2절 말씀에 보면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날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는 사람이 되려면 피차간 사랑해야 하고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을 넘치게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신데 사랑이 부족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면 모순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할 때는 더욱 많이 해야 하고 넘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들 하는 것처럼 하면 그런 사랑은 항상 부족한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봐도 너무 사랑이 넘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사랑을 해야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넘치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피차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색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피차 사랑하는 모습 자체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피차 사랑하는 것을 절대 하찮게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피차 사랑할 때는 주께 하듯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밥퍼 목사로 잘 알려져 있는 최일도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거리의 노숙인들에게 수 십 년 동안 무료로 밥을 퍼주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빈민구제나 사회정의구현에 관심이 많았던 분은 아니었습니다. 독일로 유학을 가서 학위를 마쳐 큰 교회의 목사가 되거나 교수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던 야심만만한 젊은 신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1988년 초겨울 그의 인생행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청량리역 광장을 지나다가 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앞에서 쓰러지는 것을 목격했지만 도와드릴 생각을 못하고 일정대로 춘천행 기차를 탔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최 목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의 앞에서 쓰러진 그 할아버지가 한밤이 될 때까지 그대로 누워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일도야, 언제까지 차가운 길바닥에 나를 눕혀 놓을 테냐.” 이런 나지막한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고 합니다. 이 낯선 목소리에 자신의 사명이 이 땅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가 버너와 코펠을 들고 광장에 앉아 라면을 끓이면 그 라면을 먹기 위해 40여명의 걸인들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밥퍼 식당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은 한해에만 무려 1만 7천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또 매월 1만원씩 후원하는 수 천 명의 손길로 다일천사병원을 열어서 무료로 어려운 환자들을 치료해 주는 귀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다일공동체는 ‘지금부터, 여기부터,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라는 표어를 실천하고 있는 단체라고 합니다.
참 멋진 표어이지 않습니까? “지금부터, 여기부터,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 이런 마음을 가지고 피차 사랑하면 되는 것인데 피차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중에, 다음부터, 큰 것부터, 다른 사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피차 사랑을 하되 더욱 많이 해야 하고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우리에게 먼저 주셨고 우리를 구별하여 세우셨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는 모습으로 설 수 있는 그 날을 소망하면서 이런 사랑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교인들을 사랑해서 오늘 예수님이 오실지라도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