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고요 속 자신의 존재조차 잊으려한 수도자들
[작품3] 주두성자(柱頭聖者) 성 시메온 (389~459): 그는 그를 추종하는 사람을 피하고자 기둥 위에서 고행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시스(터키 남부 아다나)에서 출생하였고 그가 지낸 기둥은 모두 4개였으며 마지막 거처한 기둥은 20m 높이였다. 기둥 밑에는 그의 어머니가 기둥을 잡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곳을 순례하였고, 비잔틴 황제도 조언을 구했다고 전한다.
4세기 초 그리스도교 공인
특권과 부 집중되며 교회 세속화
신심 깊은 신앙인들
순교자 정신 배우고자
사막이나 황야로 거처 옮겨
고통 감수하는 생활 선택
사막은 시험과 정화의 장이자
하느님의 영광 드러나는 곳
1. 왜 이콘은 사람의 형체를 마르게 그릴까
나는 인간을 자석에 흔들리는 쇳가루로 생각했습니다. 자석은 쇳가루와 화학적으로 같은 철(Fe)이고 근본적인 성분은 같은 데 모든 쇠붙이를 끌어당기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쇳가루는 자석에 붙어 있을 때 안정적이고, 자석에서 스스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이 위에 쇳가루를 놓고 밑에 자석을 둘 때에도 쇳가루는 종이를 사이에 두고 자석에 모두 들러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간에 종이가 있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이 경우 쇳가루는 자석에 붙어 있는 것일까요?
쇳가루는 자석에 붙어 있음으로써 안정성을 갖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중간에 끼인 종이라는 가림막 때문에 자석에 붙어 있어도, 누가 종이를 잡아당긴다면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죄가 있는 인간을 배척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에 의한 가림막 때문에 인간 스스로 하느님께 가까이할 수 없는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의 본성은 선이시고, 나오는 빛이 아름다운 것처럼, 부활을 통해 나도 그 빛을 받아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가림막은 그 빛을 차단하는 것이 아닐까요?
죄의 가림막을 치우고자, 또는 스스로 하느님과 닮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앙과 윤리, 도덕과 깨달음에 따른 행위로 그것을 이루려 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육체적인 것까지 동원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공인됨으로써 지하 교회가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교회는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며 무수한 개종자와 함께 부가 넘치게 되었고, 그 결과 교회의 세속화는 가속되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신심 깊은 신앙인들은 탈출기 때의 이스라엘, 예수님 사도 시대 때의 순교자 정신을 배우고자 이집트 사막이나 황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신앙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사막은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이며, 시험과 정화의 장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동굴이나 비좁은 방에서, 때로는 묘지에서 완전한 고요와 정적(靜寂, hesychia)을 추구하며, 부단한 관상과 기도로서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려 하였습니다. 이를 정적주의라고 합니다. 팔라마스 그레고리우스(1296~1359년)에 의하면, 그들의 목적은 하느님의 본질로부터 나오는 하느님의 빛, 즉 창조되지 않은 빛을 보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것은 타보르 산에서 제자들이 보았던 예수님 몸에서 나오는 빛과 같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에서 보여준 하느님의 빛을 내면화하는 것을 추구하였습니다. [작품1]
침묵과 관조의 상태에서 신과 만남을 체험하려는 그들은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종을 본받으려 하였습니다. 그들은 성스러운 고요 속에서 모든 개념적 사고(思考)를 지워버리고, 자신의 존재조차 망각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럼으로써 내적인 평정을 이루고, 그 내적인 평정은 자기 비움 속에서 겸손에 도달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육체와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를 통해, 즉 잃어버린 하느님의 얼굴을 되찾고, 그리스도의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사막은 우선 비가 자주 내리지 않는 곳으로, 낮에는 무척 강렬한 태양에 의해 뜨겁고 건조합니다. 그러니 동굴 속에 들어앉아 태양이 내리쬐는 황량한 들판을 내려다보면, 황갈색의 모래와 검은 바위들만 보였을 것입니다. 게다가 해질 무렵의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애절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밤하늘에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면서 끝없이 밀려오는 적막함과 외로움을 생각하면, 우선 생각만으로도 나를 지치게 합니다.
[작품1] 팔라마스 그레고리우스: 그리스 아토스 산, 성 사바스 수도원 출신, 테살로니카 대주교. 그는 그리스도가 성령에 의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던 그 빛을 찾아 내면화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고독과 정적을 극복해낸 사막의 은둔자 성 안토니우스(251~356년)는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서 305년경에 수도 공동체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는 관상과 기도와 공동체에서 실행할 도덕적·원리적 자기 수행 규범을 가르쳤습니다. [작품2]
이 규범의 근본은 ‘하느님을 닮으려는 것(신화)’과 부분적으로 일치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비움과 낮춤을 통해서 보여준 겸손과 하느님께 대한 순종을 본받으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묵상(관상), 고행과 금욕, 자기절제를 실행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과 수도자들의 훌륭한 금언(金言)들이 점차 이집트에서 아토스 산으로 전해지며 10~11세기에 많은 수도원이 설립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종은 앞서 설명한 하느님의 신비(부정주의)와 일맥상통한 점이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비를 일상생활의 삶 속에서 자기 수행을 통해 마음 안에 받아들이려는 노력입니다. 결국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과 사랑을 본받아 자기 비움, 겸손과 하느님 뜻을 받아들이는 순종을 우리의 실생활에서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 수행하는 장소에서 하느님과 만나려는 방법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정상적이지 못할 정도이고, 그 고행을 보며 아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침잠(沈潛) 또는 고행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품2] 성 안토니우스: 템페라, 50 x 40cm, 이콘 마오로 미술관, 안성, 한국. 그는 악마의 덫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기도, 겸손, 확고한 금욕과 고행의 자세 등을 두루마리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기둥 위에 거처를 마련하고 고행하는 사람도 있고, 침묵에 걸림돌이 된다고 혓바닥이 가장 위험한 유혹자가 될 수 있다고 여기고 3년 동안 돌을 입안에 넣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바보처럼 행동하여 주변 사람으로부터 천대와 무시를 당하며 수행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은 바오로 사도의 겸손한 표현으로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1코린 15,8 참조) 또는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1코린 3,18 참조)를 수행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작품3]
요한 세례자, 또는 스승을 본받아 생활한 이들 수도자들의 모습은 세속적인 생활을 멀리하고, 가난과 고행, 반복적인 기도를 수행함으로써 마른 형체로 변합니다. 이콘에서는 그런 모습을 그려 수도자의 맑은 영혼을 표시합니다. 육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을 중요시하며, 관조와 고행·금욕·반성하는 삶을 추구하다 보니 이콘에서는 성인들의 팔과 다리를 비정상적으로 가늘고 길게 그렸습니다. 머리와 전신 길이와의 비율이 1:9까지 길게 그려지며, 발에서 무릎까지의 길이가 전신의 1/3에 이를 정도로 의도적으로 변용하였습니다. 이콘에서는 각자 은둔 장소의 형태, 얼굴은 거친 머리카락, 마르고 긴 얼굴, 발까지 내려온 수염에 매부리코, 푹 파인 볼, 숙인 고개, 고뇌하는 표정, 갈색의 피부 색깔 등으로 금욕적 생활을 한 초월적 성자(聖者)로 표현하였습니다.
김형부 마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