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족은 장모님의 회갑기념으로 장모님과 장인어르신을 모시고 기독교방송에서 주관하는 성지순례에 동행하였다.
그 어느 여행보다도 마음이 설레이었다. 그것은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면서 전지 전능하신 우리주님께서 역사 하신 발자국을 보고싶은 강한 마음이 저를 사로 잡았기 때문이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출애굽하는 과정을 따라 이스라엘을 거쳐 로마와 이태리, 유럽쪽의 성지를 둘러보는 여정이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이집트 카이로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출애굽기 2장3절 말씀의 "더 숨길 수없이 되매 그를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나일강은 어떤 모습일까? 그설레임으로 카이로로 향하였다.
카이로는 아랍권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교 사원(모스크)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카이로의 중심부에 세워진 카이로타워(높이 187m)에 올라가 시내를 내려다 보았다. 제일먼저 눈에 뜨이는 게 많은 무리의 이슬람인들이 시간에 맞춰 그들의 알라신에게 도로에 엎드려서 기도를 하는 모습이었다.
이슬람인들의 금식기간 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도시,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60년대를 연상시키는 극도의 빈곤이 존재하는 빈민가가 있고 초호화판 건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도시, 그러나 더 이해할수 없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사는곳보다 더 좋은 집들을 지어놓은 죽은 자의 무덤이 마을을 형성하며 이도시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나일강은 6,670 키로미터 라고 한다.
이먼길을 흘러내려 나일강은 지중해와 만난다. 나일강의 물줄기가 여러 지류로 갈라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이 현대와 고대가 한데 뒤엉킨 혼돈의 도시 카이로가 자리잡고 있다.
나일강에서 나룻배에 올랐다. 뱃머리의 귓전에 들려오는 소리는 이슬람의 예배시간을 알리는 반복되는 음악소리, 그러나 저 멀리 강나루에 서있는 여인은 그 옛날 목욕하러 나일강에 내려와 갈대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오게 한 바로의 딸을 연상케 하였다.
이처럼 이슬람교의 도시인 카이로에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콥틱교회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소수자로서 많은 수난을 겪어온 콥틱크리스천들은 그들의 손목안쪽에 작은 십자가 모양의 문신을 새겨 서로를 알아보는 표시로 삼았다. 콥틱교회는 세계교회 중에서 역사가 매우 오래된교회 가운데 하나이다
사도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을 떠났던 마가는 말년에 이집트로 와서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하여 콥틱교회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콥틱교회 에서도 순교자의 시대에 극심한 교회박해로 수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뒤로 한채 버스에 몸을 싣고 출애굽은 시작되었다.
가도 가도 끝이없는 광야의 사막, 버스는 시나이반도를 향해 마구달렸다. 어느새인가 수에즈운하에 도착하였다. 운하는 배를 타고 건널것으로 생각했는데 운하밑을 깊이파서 만든 지하터널을 통해 건넜다.
아마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갈랐을때 이 터널처럼 빠른 속도로 홍해를 건넜으리라.
터널을 지나서 버스를 세웠다. 출애굽의 발자취에서 지금은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현대문명의 이기인 운하에 손을 적시고 싶어서였다.
다시 끝없는 광야의 사막은 시작되었다. 뜨거운태양 끝없는 모래땅이 온통 짙은 보라색으로 변하는 망망한 광야의 사막은 아무리 달려가도 나무한그루 구경할수 없는 수평선의 연속이었다.
얼마 만큼 달려왔을까 오아시스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맑은 샘물에 두레박이 있는 우물, 또한 야자나무가 숲을 이룬 그런 마을 이었다. 그옛날 출애굽을 하여 시내산을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곳에서 환희에 찬 기쁨과 감격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목타는 갈증을 식혔으리라!
다시 출애굽은 연속이었다. 광야의 사막에서 이제는 돌산이 즐비한 산악지대로 변하였다.
웅장한 갈색의 바위와 병풍처럼 연속된 험준한 산이 우리를 맞이 하였다.
산길을 한동안 달려오니 이런 산악지역에 뜻밖에도 매우 넓은 평지가 눈에들어왔다.
시내산 기슭에 도착한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지 석달만에 도착하였다는 시내산, 그 광야사막
400여 키로미터를 버스는 쉼없이 달려왔다. 저녁을 먹는둥 만는둥 하고 이곳 산장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새벽2시에 시내산 정상에 등정하기 위해서이다. 섭씨40도가 가까운 광야에 비해 이곳의 밤은 매우 추웠다. 산악지대로 낮과 밤의 기온차가 매우 심한듯 하였다.
왠지 깊은 잠이 들지않았다. 시내산 등정의 기대 때문이리라. 눈을 뜨니 새벽1시였다. 컵라면을 끊여 몸을 녹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먹었다는 만나의 맛이 바로 이런 맛이 아니었겠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였다
손전등을 준비하여 새벽2시가 되어서 숙소를 나섰다. 시내산 정상은 2,285m, 이곳의 산기슭은 1,530m라고 한다. 그래서 실제 등산하는 높이는 755m정도 이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등산하는 입구에 낙타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시내산의 베두인 소년들은 우리들을 낙타를 타라며 안내하였다. 올라가는데 10불씩 받았는데 아마도 그들의 생계수단인 것 같았다.
그런데 베두인 소년 한명이 5-6마리의 낙타를 이끌고 올라가는데 낙타들은 목동같은 그들의 소년을 따라 그 캄캄한 한밤중에 묵묵히 잘도 올라 가는것이 아닌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 갔듯이 그 베두인 소년을 따라서 낙타들은 정상을 향해 올라 갔다. 정상의 200m 못 미친 지점이 낙타들의 종착지역 이었다. 이곳 부터는 경사가 가파른 돌계단이기 때문에 걸어서 올라 가야하기 때문이다.
가파른 정상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였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이다.
저 산기슭에서 모세는 불붙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지 않았을까?
모세를 따라 노예의 땅 애굽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산을 향해걸었고 모세는 이 산의 정상에서 40일 주야 금식을 하며 기도한후 두 돌판에 새겨진 십계를 받아 두팔에 안고 내려 왔다고 하지않는가.
드디어 정상에 도착하였다. 시나이 반도 남쪽에 위치한 신비하고 웅장한 시내산 정상에 서게된것이다.
아직 시내산 일출은 시작되지않았다. 언제 등정했는지 많은 무리의 순례인 들이 운집해 있었다.
드디어 멀리 동쪽에서 여명의 태양이 병풍처럼 둘러 쌓인 산 능선위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태양빛을 받아 시내산 주변의 돌산들이 일제히 붉은 빛으로 변하면서 환하게 빛을 발산했다.
너무나도 장엄하고 황홀하며 신비스런 광경이었다.
오 주님! 할렐루야! 이곳저곳 에서 찬양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인 20여명은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며 뛰면서 주님께 찬양하였다. 어느새 그들의 틈에 나도 끼어있었다.
열정적으로 찬양하는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는 바위를 붙들고 엎드렸다.
만유를 창조하신 주님!
그 무한한 능력앞에서 아무 보잘것없는 이 사람은 그저 엎드릴뿐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역사에 그저 감사 드릴 뿐입니다. 우리일행은 목사님 인도하에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주님! 주님의 그 오묘한 비밀중에 그 위대한 창조의 역사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시나이 반도 동쪽 홍해 해안을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해 버스는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하신 그 고난과 영광의 주님의 발자취을 향하여.......................
이스라엘과 로마, 소아시아의 성지순례는 나중에 올려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주님의 발자취는 위대하였다.
위대하신 주님의 발자취를 통하여 부족한 나 자신을 다시 보면서 조용히 주님께 눈을 감았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그 주님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서서 라고 하는 그런마음을 어떤 환경에서라도 갖게 해달라고........................
남이 잘 되는 걸 보고 하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이닷
친구가 아니고 서로 오물을 뒤집어 쓰고 피 터지게 싸우는 웬수여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