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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마태18,1-5,10.12-14
영웅적인 겸손과 빛나는 가난의 성녀 클라라!
목숨이라고 다 같은 목숨이 아닌 것 같습니다.
참으로 구차스럽고 굴욕적인 목숨이 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견뎌내는 데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목숨이 있습니다.
이게 과연 살아있는 건가? 하는 짙은 회의감이 들 정도로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목숨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기쁨과 의미로 충만한 목숨이 있습니다.
넘치는 생명력과 활기, 희망과 사랑으로 가득한 찬란한 목숨이 있습니다.
그런 목숨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고,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합니다.
참으로 살아있는 목숨입니다.
이 땅에 육화 강생하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목숨을 살아가셨습니다.
물론 적대자들의 미움과 분노로 인해 하루하루 목숨이 위태로운 생애를 사셨지만, 놀랍게도 매일 죽음과 맞닿은 삶을 사시면서도, 넘치는 생명력과 활기로 가득 찬 충만한 목숨을 살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오늘 우리에게 참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 아버지 마음에 들며, 어떻게 사는 것이 참 인간으로서의 목숨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인지를 명쾌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런 목숨을 만끽하라고 초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 24-25)
오늘 기념일을 맞이하시는 클라라 성녀 역시 그토록 놀랍고 충만한 목숨을 만끽하며 살다 가신 좋은 본보기입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클라라는 지극히 겸손했습니다.
다미아노 성당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 당시 아시시의 교구장이셨던 귀도 주교님께서는 극구 사양하는 그녀를 수녀원장에 임명하였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그 직책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수녀원장인 그녀였지만 수녀원의 허드렛일은 당연히 자신의 일이려니 생각하고 언제나 콧노래를 부르며 기쁘게 해나갔습니다.
그녀가 유독 좋아하던 일이 한 가지 있었는데, 동료 수녀들이 식사할 때 ‘서빙’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밭일을 끝내고 흙먼지투성이의 발로 들어오는 동료 수녀들의 발을 정성껏 씻어주는 일이었습니다.
발을 다 씻긴 그녀는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재빨리 수녀들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클라라의 잠자리는 아무것도 깔지 않은 맨바닥이었습니다.
냇가에서 주워온 돌이 베개였습니다. 작디작은 빵 한조각과 물 한잔이 매끼니 식사였습니다.
실내장식이나 난방은 고사하고 아무런 설비도 안 갖춰진 누추한 거처에서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가난이 무엇인지, 추위에 떤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고픔이 무엇인지, 피로에 지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제로, 온몸과 마음으로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더할 나위 없는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성 보나벤투라는 그녀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의 정원에 핀 첫 꽃송이로서 마치 빛나는 별처럼 반짝였으며, 희고도 순수한 봄꽃과도 같이 향기로웠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 안에 프란치스코의 딸이었으며 가난한 클라라회의 창설자였습니다.”
클라라는 한평생 봉쇄구역 안에서의 관상 생활에 전념하였지만, 자신의 삶을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으로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음의 서한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나는 하늘 아래에서 내가 바랐던 아무도 훔쳐 갈 수 없는 그 기쁨을 이미 소유하고 있기에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대도 주님 안에서 늘 즐거워하며, 슬픔이나 우울감이 그대를 덮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대의 마음을 영원의 거울 앞에 놓으십시오.
그대의 영원을 영광의 광채 속에 두십시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안식년
에제키엘 2,8─3,4 마태오 18,1-5.10.12-14
어른이 미각을 끊으면 어린이처럼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어린이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이처럼 된다는 말은 자신을 낮춘다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어린이처럼 되라는 말씀은, ‘겸손’하여지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자신을 낮추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라고 하시며,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교만해지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만 좋아하지만, 겸손하면 모든 이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어린이처럼 되는 것입니다.
‘응웬 차우 로안’은 ‘골형성부전증’이란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베트남 여성입니다.
이 병은 특별한 원인 없이도 뼈가 쉽게 부러지는 선천성 유전 질환입니다.
뼈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키가 매우 작고 허리가 굽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의 조롱으로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응웬 반 부옹’이란 청년이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겉모습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누구보다 착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부옹은 로안과 결혼을 하고 함께 평생을 기약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로안은 부옹에게 평생 짐이 될까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4년 4월 4일, 로안은 지인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초대받아 휠체어를 이끌고 결혼식장으로 향했습니다.
결혼식장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었습니다.
이때 로안의 앞에 예쁘게 차려입은 소녀들이
등장했고, 소녀들은 로안을 결혼식장 한가운데로 이끌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박수갈채를 보내며 로안을 환영했습니다.
로안은 어리둥절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신랑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바로 자신의 남자친구 부옹이었습니다.
이것은 부옹이 로안을 위한 깜짝 결혼식이었습니다.
상처가 많아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로안을 위해 부옹이 준비했던 것입니다.
모든 사실을 안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결혼식 7개월 만에 부옹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로안도 병세가 악화하여 이듬해인 1915년에 남편을 따라 하늘나라로 향했습니다.
우리나라도 한쪽 얼굴에 붉은 모반을 가지고 태어났고 다른 쪽 얼굴은 암이 들어 뼈까지 깎아내는 수술을 해야 했던 김희아씨를 사랑해 결혼한 남편이 있습니다.
외모지상주의의 세상에서 이런 분들이 진정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여겨집니다.
받아들임이 곧 겸손입니다.
왜 어린이와 같은 이들은 세속적으로는 전혀 매력이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어린이들은 세속적인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예전에 청년이었다가 결혼하여 아기들을 데리고 나오는 신자들을 만납니다.
아기들은 식당 밥을 먹지 못합니다.
엄마가 미리 이유식을 준비해 오는데 저는 거저 줘도 안 먹을 전혀 간이 되지 않은 보기만 해도 맛이 없어 보이는 음식입니다.
그러면서 어른이란 세상의 맛에 길든 사람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미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에 길들었다면 그 사람은 어른이고 그러면 예쁘지 않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눈은 잃습니다.
자신은 예쁜 여자와 결혼해야 하는 사람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만은 사람을 받아들일 그릇을 좁힙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어린이처럼 될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바로 세상의 맛을 끊으면 됩니다.
요즘 좀비 영화가 한창입니다. 좀비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사람을 먹습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사람을 음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비는 인간이 아닙니다.
어린이의 마음을 잃은 사람들은 좀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맛볼 무언가를 만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실 선물을 바라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결혼을 하니 그 찾는 맛을 더는 발견할 수 없게 되면 곧 이혼을 생각하게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서 그 허기를 채우려 합니다.
그렇게 누구와도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요즘 초등학교 3학년부터 사춘기가 시작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부모님과 세상이 빨리 아이들을 성인으로 만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통해서 만들까요?
바로 스마트폰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세상의 맛을 빨리도 맛보게 만듭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투와 표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말투를 따라 합니다.
유아용 방송이라고 해서 세상의 맛이 없을까요?
교묘하게 숨겨진 유혹이 더 많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방송과 게임 등을 통해 세속-육신-마귀의 맛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깊이 각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스마트폰을 빼앗는 엄마까지도 미워하게 됩니다.
엄마도 이제 스마트폰이라는 맛을 주는 도구에 불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절대 7살 이전에는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쥐여준다는 것은 아기들을 빨리 어른으로 만들어 자신들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어렸을 때 맛 들인 것들을 끊는 것은 매우 힘이 듭니다.
10분에 맛 들인 맛을 끊는 데 10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시간이 나면 아직도 영화를 보는 게 낫지 따분한 활자들의 조합인 책을 읽으려 하지 못합니다.
억지로 노력하는데도 아직 잘 안 됩니다.
‘어렸을 때 TV를 보지 않고 책을 읽는 습관을 들였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겸손함이란 많은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의 크기입니다.
그 크기는 세상의 맛을 알수록 줄어듭니다.
겸손은 세상의 맛을 끊는 것과 하나입니다.
그 맛 때문에 사람을 있는 그대로 공감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의 맛을 끊어가야 하는 이유이고, 어린이처럼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성사담당사제
복음: 마태 18,1-5.10.12-14: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라도
오늘 복음은 제자들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1절) 인간은 본능적으로 서열을 묻고, 비교하며, 더 큰 자리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시선을 완전히 뒤집어 놓으신다. 한 어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시며,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3절)라고 선언하신다. 하늘 나라의 위대함은 세속적 경쟁과 권위가 아니라, 겸손과 단순함, 그리고 작은 이들에 대한 사랑에 달려 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본보기로 삼으신다. 아이는 부모의 말에 순수하게 믿음을 두고, 온전히 사랑한다. 이런 단순한 신뢰와 겸손이야말로 신앙인의 핵심이다. 예수님께서는 “종의 모습을 취하시어”(필리 2,7) 자신을 낮추셨고, 하늘 나라의 위대함은 바로 이런 낮춤을 통해 드러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10절) 작은 이들은 사회적으로 보잘것없고, 쉽게 무시되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느님을 뵙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 각자가 하느님 앞에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예수님은 작은 이들의 소중함을 잊어버린 양의 비유로 다시 설명하신다. 아흔아홉을 두고서라도 잃은 하나를 찾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곧 복음의 핵심이다. 구원은 다수를 위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아버지의 집요한 사랑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주님은 제자들이 큰 자리를 다투자, 어린이를 가운데 세우셨다. 이는 그들에게 단순함과 겸손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었다.”(Hom. in Matt. 58)라고 한다. 성 이레네오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어린이와 같이 단순한 마음 안에 더욱 완전하게 드러내신다.”(Adversus Haereses, IV 요약)라고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오히려 더 크게 현존하신다.”(Sermones 요약)라고 하였다.
교리서는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린이들을 당신께 가까이 오도록 초대하시며, 그들 안에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을 보여 주신다.”(526, 2785항 참조) 사목 헌장은 이렇게 선언한다. “인간의 존엄은 사회적 지위나 능력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에 누구도 업신여김을 받아서는 안 된다.”(12, 27, 29항 참조) 교회의 전통은 언제나 가장 작은 이들, 가난한 이들, 목소리 없는 이들을 우선으로 돌보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가르쳐 왔다.
잃은 양의 비유는 우리 각자가 하느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 준다. 아흔아홉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 주님은 찾아오신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며, 동시에 다른 이들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지금 봉당 청년들과 창세기 청년 성서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특별히 요셉 이야기를 통해 깊은 묵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시샘으로 이집트 노예로 팔려 가고, 그곳에서도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자기를 팔아넘긴 형제들을 향해 어떤 마음이 있었을까요? 미움의 감정이 사라지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집트 재상이 되고, 기근으로 형제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미워하는 마음을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대신 형제들을 시험합니다. 막내 벤야민도 요셉을 팔아넘긴 것처럼 자기들의 안위를 위해 넘길 것인지를 말입니다.
유다를 비롯한 형제들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버지를 미워해서 죽지도 않은 요셉의 옷에 동물의 피를 묻혀 죽었다고 전하는 잔인함을 가지고 있었던 형제들이었는데, 이제는 아버지를 향한 지극한 효심을 드러냅니다.
이 모습에서 회개가 무엇인지를 묵상하게 됩니다. 회개란 말로만 뉘우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전과 같은 상황에 부닥쳤을 때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똑같은 상황이 주어졌는데 변함없이 똑같은 죄를 짓는다면, 이는 회개가 아닙니다. 진심 어린 회개는 나의 굳은 의지에 하느님의 도우심을 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마태 18,1)라고 묻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로마 제국이나 유다의 궁정처럼 서열과 권력이 존재하는 곳으로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이 하나를 그들 가운데 세우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단순히 동심으로 돌아가라는 감성적인 요구가 아닙니다. 세상의 권력 지향적인 가치관에서 돌아서서, 스스로를 가장 낮은 자리로 내어놓고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면서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마태 18,10)라고 하십니다.
작은 이들은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 신앙이 약한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천사들의 호위를 받을 만큼 무한한 존엄성과 가치를 지닌 존재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느님 중심의 마음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계속 작은 이들을 무시하고 멀리한다면 말로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 지향적 가치관만을 따르는 것 역시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회개를 위해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어린이는 천국의 열쇠다(찰스 스타다드)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8.11.화.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불필요한 자아의 껍질을
벗겨 본래의 신뢰를 회복하는
영적 성숙이 중요합니다.
어린이는 하늘 나라를
그저 받아들입니다.
받아들이는 힘이
참된 회개입니다.
하느님의 힘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 없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어린이처럼 하느님께
이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다시 은총을
발견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받으며
깊어지는 신뢰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향한
신뢰가 참된 신앙입니다.
어린이처럼의 본질은
작음이 아니라 신뢰이며,
그 신뢰의 절정은
지금 여기에서 깊이 머물고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맡기는 것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열리고,
이웃에게 열리고,
공동체에 열리고,
자신의 변화 가능성에
열려 있는 어린이처럼
끊임없이 믿고 사랑하는
오늘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열린 마음이
끊임없는 회개이며
끊임없는 사랑이며
끊임없는 빛의
충만한 시간입니다.
성녀 클라라처럼
그리스도의 빛을 가득 담는
은총의 날 되십시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용기는
끊임없이 부어주고 계신 그 힘과 용기는
어떤 것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갖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잘못을 깨우치는 힘입니다.
상대를 업신여기지 않는 힘입니다.
그분의 뜻을 기다리며
하늘나라를 기다리는 힘입니다.
잘못된 일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용기입니다.
작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용기입니다.
무엇보다 귀한
하느님을 향해 돌진해 나아가는 용기입니다.
※김경진 베드로 신부님 - 한마음청소년수련원
하느님의 순수함은
자기를 돌보지 않는 나눔에 있습니다.
‘영적인 단순함’이 마음 안에 가득 차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가
그만큼 더 쉬워집니다.
단순함이 커지고 많아지면
욕심도 작아지고 적어집니다.
많이 먹고자 욕심을 부리면 탈이 나듯이
버릴 수 있을 때 버리고, 나눌 수 있을 때 나누고
용서할 수 있을 때 손을 잡아주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면 삶이 단초로워집니다.
하느님의 순수함을 잊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식별 기준이 이 세상 기준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기 때문에 세상의 가치 기준을 두고
이것 저것 재고 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욕심만 챙기고
남에게 베풀고 챙길 줄 모른다는 것은
하느님의 순수함을 잃어버렸다는 반증이 됩니다.
하느님의 순수함을 품고 살아야겠습니다.
그럼 어른도 희망이 있습니다.
얼른 주변을 돌아보고
먼저 챙기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18,10)
'낮춤(겸손)과 작음이신 예수님!'
오늘 복음(마태18,1-5.10.12-14)은 세 단락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과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마라'와 '되찾은 양의 비유'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마태18,1)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렇게 이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18,4)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18,10)
이어서 '되찾은 양의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18,14)
오늘 복음의 화두는 '낮춤(겸손)과 작음'입니다.
이는 구원의 길이며,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도구입니다.
오늘은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먼저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성녀 클라라는 자신을 '복되신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라고 말했을 정도로, 성 프란치스코를 닮고자 했던 제자입니다.
성녀 클라라는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친구이자 동반자입니다.
성녀 클라라는 성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거룩한 단순성과 겸손과 가난의 삶'을 따라 살았습니다.
'Minorum', 곧 '낮춤(겸손)과 작음'은 성 프란치스코가 찾은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육화(성탄) 안에서 발견한 보화입니다. 그래서 수도회의 이름을 '작은 형제회(O.F.M. Orodo Fratrum Minorum)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말씀'(마태25,31-46)에서 당신 자신을 '가장 작은 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에 있는 가장 작은 이가 예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25,45)
우리 주위에 있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내가 낮아져야 작은 이들이 보입니다.
내가 작아져야 예수님이 보입니다.
내가 낮아지고 작아지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온 세상을 두루다니면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고, 우리도 '기쁨의 찬가'를 부를 수 있습니다.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와 성 프란치스코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이사36,22)
복음말씀
제1독서
<그 두루마리를 내 입에 넣어 주시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2,8─3,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8 “너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
저 반항의 집안처럼 반항하는 자가 되지 마라.
그리고 입을 벌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먹어라.”
9 그래서 내가 바라보니, 손 하나가 나에게 뻗쳐 있는데,
거기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10 그분께서 그것을 내 앞에 펴 보이시는데, 앞뒤로 글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적혀 있었다.
3,1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네가 보는 것을 받아먹어라.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
2 그래서 내가 입을 벌리자 그분께서 그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주시며,
3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
그리하여 내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4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집안에게 가서 그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1-5.10.12-14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