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잡담이라 해놓고... 사실은 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혹 눈썰미 좋으신 분들은 2010년부터 시작한 대한민국의 변화, 또는 변화를 위한 시도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점검해 보면서 왜 우리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지(물론 우리 마음에 꼭 드는 승리를 위해서는 우리가 지불해야 할 것이 많다는 점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깨달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직접적인 정치 선동으로 대중을 움직이는 후진국과는 달리, 매스미디어가 어느 정도 발달하고 국민들의 교육 및 생활 수준이 갖춰진 국가에서는 문화로 대중을 움직이곤 합니다. 여기까지는 상식이지요.
그렇다면 그 사례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보지요.
폴 포츠, 코니 탤벗, 수전 보일, 조나선 앤톤.
바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에서 그 이름을 알린 사람들입니다. 이 중 최연소자인 코니 탤벗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죄다 사연을 하나씩 갖고 있는 일반인들입니다. 폴 포츠는 사람들에게 무시와 비웃음을 산 나머지 자신감을 발휘하지 못했던 휴대폰 판매원, 수전 보일은 50이 다 되도록 결혼을 못한 똘끼 충만 할머니, 조나선 앤톤은 참 못 생겼다는 소리가 나올 만한 외모에 왕따 등등... 말 그대로 '일반인' 이지요.
이런 '일반인' 들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유도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나도 할 수 있다' 는 심리의 자극
2. 문화상품의 제작 및 소비심리 자극
3. 문화상품 관련 상품의 소비심리 자극(ex : 악기나 의상 구입)
4. 주변에 대한 관심 확대(ex : 내 주변에 뭐 잘하는 사람 없나? 있으면 나가 보라고 해야지)
이런 심리들을 건드려서 결국 경제적 효과를 일으키는 게 문화 또는 문화상품의 주된 효과입니다. 좀 안 좋은 예이긴 하지만, 한류스타들로 인해 아시아 및 러시아 여성들이 한국에 성형수술을 받으러 오는 것 또한 문화상품의 효과지요.
이 글의 제목이나 이 글의 첫 단락에서 저는 올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다양한 분야의 대중운동(또는 대중 참여)가 사실 이미 예고된 것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떤 문화 또는 문화상품이 이런 변화를 예고했거나 대중들로 하여금 행동하게 만들었을까요?
가장 선봉에 선 것은 무한도전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무한도전의 PD는 예전부터 시사와 관련된 주장이나 의견을 자막으로 내보내거나 방송 컨셉으로 잡는 것으로 유명했지요. 그 다음은 여러분도 익히 아실 슈퍼스타 K이구요.
그러나 전 세대에 걸쳐, 그리고 특히 사회에서 큰 영향력(또는 정치력)을 갖고 있는 세대인 20대 중후반~7080 세대에게까지 파급력을 행사한 것은 바로 이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나는 가수다'
사실 방송 컨셉부터가 자칫하면 좌빨 내지는 반체제 방송으로 오해받아도 할 말이 없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아이돌이나 중견급 연예인이 출연해서 노래를 경쟁하는 컨셉의 방송이야 예전부터 있었고, 일반인들이 출연해서 자신의 특기를 알리는 것도 나가수 이전부터 있었습니다(도전 100곡이나 스타킹을 생각하셨다면, 정답입니다). 허나 나가수는 시작부터 '진짜 가수들의 진검승부' 라는 식의 컨셉을 들고 나왔지요. 즉 성형과 기계음에 '술집 작부라고 해도 심한 말이 아닐' 복장을 걸치고 나와 난리를 치는 아이돌 위주의 가요프로그램에 대항하는, '진짜들이 진짜로 경쟁하는 걸 보여주지!' 라는 식의 주장을 담은 컨셉의 방송이 나가수란 이야기입니다. 이런 컨셉은, 거짓말과 우기기로 일관하는 '가짜 정치인' 들이 난리를 치던 당시의 상황과 맞물려 생각해 볼 때 사실상 사회에 반기를 드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캐스팅은 어떻구요? 이미 '친정권' 으로 소문난 김건모나 신자로 유명한 박정현과 김범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솔직히 윤도현과 이소라가 나왔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윤도현은 이미 오래전부터 좌빨에 빨갱이로 낙인찍혀 있었고, 이소라는 관계자들만 아는 이야기지만 정치에 굉장한 냉소를 보내던 사람입니다(정치를 모르는 사람이 투덜대는 수준이 아니라 정치의 속성을 알고 그걸 비웃던 사람이 이소라란 뜻입니다).
자... 나가수가 방영되고 나서, 수많은 대중은 열광했습니다. 그도 그럴 법 했거든요. 시대의 트렌드, 혹은 시대가 요구하는 감정선을 정확하게 잡아낸 방송이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김건모가 중간에 초를 치고 쌀집아저씨가 교체되긴 했지만, 그 다음에 등장한 임재범과 김경호 자우림은 기본적으로 체제에 저항하는 정신을 담은 음악인 '락' 장르의 가수들이었지요. 여담입니다만 '나는 꼼수다' 역시, 나가수가 시작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나가수의 프로그램 이름을 패러디했지요. 방송 기획이야 2011년 기준으로 3년 전인 2008~2009년부터 했다 치더라도, 이름을 하필 나는 꼼수다로 지은 건 나가수가 불러 일으킨 '진짜를 원하는' 붐에 편승하겠다는 김어준 총수의 잔대가리(웃음)가 작용한 결과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이후 우후죽순 등장한 기성 연예인들의 노래대결이나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컨셉을 잘 들여다보면 진짜 승부를 강조하는 걸 하나같이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보는 보이스코리아는 아예 '가수의 조건은 목소리다' 라는 전제 아래 처음 합격자를 뽑을 때 심사위원이 뒤로 돌아서서 참가자의 노래만 듣고 합격을 결정하는 형태였지요. 거기에 7080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컨셉들도 많았습니다. 대선배의 곡을 부른다는 컨셉만 해도, 나가수 및 나가수와 경쟁 구도를 만든 불후의 명곡이 채택했었고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채택했다는 건 각종 가수 경연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을 챙겨 보신 분들이라면 익히 아실 겁니다.
방송 관계자에게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방송국에서 가장 정치적인 부서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잠깐 생각하다가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능 또는 연예를 다루는 부서요(MBC로 치면 예능국인가요?)'
깔때기를 좀 대자면... 이 정도야 제게는 상식인지라, 놀라는 관계자를 보면서 씩 웃어줬습니다. 처음에 예로 든 브리튼즈 갓 탤런트만 해도, 영국의 정치나 경제 상황을 이해하면 저런 컨셉의 방송이 제작된 게 우연이 아니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당시 영국은 나날이 증가하는 실업자와 빈부 격차, 광우병 등으로 인해 가뜩이나 침체에 빠진 경제가 더더욱 수렁으로 빠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브리튼즈 갓 탤런트의 방영에 담겨 있었던 겁니다(훗날 금융위기가 터진 다음에는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 지원하는 사람이 더 증가하고, 촬영장의 세트나 그래픽 효과와 같은 것들은 더 화려해졌지요).
각설하고, 왜 예능 관련 부서가 가장 정치적인지 이유를 설명해 드려야지요? 그건 바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파하기 가장 좋은 수단이 예능, 문화상품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무리 인터넷이 발전했다 한들, 대중들이 가장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프로파간다의 수단' 이 TV란 점 역시 예능 관련 부서가 가장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특히나 사는 게 팍팍한 시대일수록, 예능 부서는 그 방향이 어느 쪽이든 간에 정치적인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가만히 2010년부터 지금까지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특히 시청자들로 하여금 많은 지지를 받았던 프로그램들을 곱씹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 예능 프로그램들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그 당시 우리나라 상황은 어땠는지. 그 다음 제가 한 말인, '이미 문화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는 말을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예능방송을 지배하고 있는 것, 또는 지배할 수 있는 것이 누구인지도 고민해 보셨으면 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승리를 얻을지 안 얻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이기긴 이길 거라는 겁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대중문화와 그 선두주자인 예능방송은 아방가르드Avantgarde, 전위대 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지금 더 필요한 것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승리를 위해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일 겁니다. 왜냐구요? 위에서 예로 든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가수들의 경연 프로그램이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의도' 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이것입니다.
'이젠 네가 해 보지 그래?'
첫댓글 씨익^^ 대단한 총각님..!!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과 집중을 하시고 정리를 하시다니...!!!ㅎ
그저, 언제나 응원해 주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음``총각님의 예리한 판단력 댓글은 못달지만 늘 님의글은 꼭보는 애독자입니다.
이렇게라도 달아주시면 제가 좀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