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행위에 대한 규례는 상당히 방향성을 가지고 생각해야 할 면이 많다. 신명기 14장에서 말하는 포도주나 독주에 대한 권면이나 이혼과 일부다처에 대한 의무나 심지어 먹는 문제까지 우리는 성경의 어떤 권면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는 포도주와 독주를(발효된 술) 허용하는 듯 보이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전혀 허용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교인들이나 심지어 자칭 성직자라는 사람들의 파티에서도 포도주는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애매모호한 문제에 접근할 때는 방향성이 참으로 중요하다. 하나님의 뜻은 종종 인간의 완악함과 죄로 인하여 허용하는 수준이지 그것이 하나님의 본뜻이 아닐 때가 많다.
아브라함이 아내들을 취하였다고 해서 일부다처가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당시 풍습을 받아들인 부조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본뜻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하와만을 허락하셨다. 술과 독주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하나님의 원뜻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무엇이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에 가장 합당한가를 따져서 하나님의 원뜻을 읽어내고 그 방향으로 고쳐 나가야 한다.
(신 14:4) 너희가 먹을 만한 짐승은 이러하니 곧 소와 양과 염소와 (신 14:5) 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름한 사슴과 산 염소와 볼기가 흰 노루와 뿔이 긴 사슴과 산양들이라 (신 14:6) 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모든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 (신 14:7) 다만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것이니 곧 낙타와 토끼와 사반, 그것들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니 너희에게 부정하고 (신 14:8)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이 최상은 아니다. 하나님이 에덴에서 인간에게 주신 음식은 순수한 채식이었다. 그것이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음식이다. 그러나 부득이한 경우에(노아 홍수 후나 오늘날의 에스키모인들처럼 육식이 꼭 필요한 지역들처럼) 육식을 허락한 것이다. 허락한 것은 허락한 것이지 최선이라는 뜻은 아니다.
방향! 그렇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그 원뜻과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나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향하는가? 아니면 자기의 육체적 욕망을 따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처음에 서 있는 자리는 비슷해도 이 방향으로 인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성민이요 그분의 기업의 백성이라면 그분의 원뜻에서 가장 가까운 방향으로 따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식생활 습관을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점점 오염의 문제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탐욕과 감각을 만족시키려고 양심은 마비되고 무분별한 도살이 자행되며 비생명적 상술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의 기류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지 지혜로운 판단과 결단을 주시고 하나님의 원뜻을 쫓아가는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해 주십시오. 에덴의 원칙을 사모하며 바른길로 돌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