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청약 시장 급랭
부동산 시장이 급랭하면서 한때 ‘로또 판’으로 통하던 아파트 청약 시장도 인기가 급속도로 식어가고 있다. 곳곳에서 미분양이 속출하고, 당첨 후 계약 포기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집값 하락 우려가 확산하면서 분양 시장도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통째로 미분양
최근 청약 시장의 가장 큰 화제는 경기도 성남시의 ‘이안 모란 센트럴파크’였다. 지난 5월 74가구 청약을 모집했는데, 당첨자 전원이 계약을 포기하면서 단 1채도 팔리지 않은 것이다. 이 아파트가 지하철역에서 다소 떨어지고 나홀로 아파트란 단점이 있긴 하나, 수도권 인기 주거지 중 하나인 성남에서 통째 미계약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 아파트는 결국 7월 27일 무(無)순위 청약을 진행했는데, 여기서도 27명만 신청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청약통장이 필요 없는 무순위 청약 마저 절반 넘게 남았다”며 “경기가 무척 안 좋다는 증거”라고 했다.
미분양은 이 아파트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 미분양 주택은 작년 12월 1만7710가구에서 올해 6월 2만7910가구로 58% 급증했다. 특히 수도권 미분양은 1509가구에서 4456가구로 3배 가까이로 폭증했다. 서울 미분양 주택은 2020년 3월 이후 꾸준히 100가구를 밑돌았는데, 올해들어 네 자릿수를 위협하고 있다.
또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올 상반기 분양해서 1차 계약을 마친 9개 아파트 중6개 단지가 최초 청약에서 완판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순위 청약도 줄줄이 실패
미분양 해결을 위해선 무순위 청약을 진행해야 하는데, 무순위 청약마저 실패하는 곳도 많다. 도봉구 창동 ‘창동 다우아트리체’는 지난달 무순위 청약을 했던 63가구 중 60가구가 계약을 포기했다. 이 아파트는 5월 최초 청약 때 12대1의 경쟁률로 1순위 마감했다가, 전체 89가구 중 63가구가 계약을 포기해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는데, 여기서도 수요자의 외면을 받은 것이다. 또 지난 6월 말 입주를 시작한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 수유팰리스’는 분양가를 15% 할인하는 결단을 했지만, 전체 216가구 중 아직 26가구가 미분양 상태다.
이밖에 강북구 미아동 ‘한화 포레나 미아’는 완판에 실패해 무순위 청약을 실시했는데, 여기서도 계약을 포기한 경우가 82가구나 나왔다. 이 아파트는 두 번째 무순위 청약 경쟁률이 1.47대 1에 그쳐, 3번째 무순위 청약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인기있는 지역 대단지 아파트들은 미분양 걱정은 없지만, 청약 경쟁률은 뚝 떨어졌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 들어 7월 말까지 전국 아파트 평균 청약 경쟁률은 11.7대1로 집계됐다. 작년 평균 경쟁률(19.8대1)의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미분양 막기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
올해 들어 분양 인기가 추락한 것은 작년 말부터 주택 경기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출 규제 강화와 금리 인상으로 무주택 수요자들의 자금 마련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을 펴고 있어 청약 수요자들 사이에선 ‘좀 더 기다리겠다’는 심리가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값이 너무 비싸다는 인식도 원인이다. 부동산 시장 관계자는 “기존 집도 비싸다 생각하는데, 요즘 일부 청약 아파트는 기존 집보다 싸기는커녕 오히려 비싼 경우도 많다”며 “분양만 하면 완판한다는 얘기는 이제 쏙 들어갔다”고 했다.
미분양을 방지하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경기도 하남시 오피스텔 ‘미사 아넬로 스위첸’은 청약 신청자 중50명에게 백화점 상품권을 증정하고, 계약자 중 추첨을 통해 경품으로 BMW 미니 차량을 지급한다는 홍보를 하고 있다. 경북 칠곡군의 ‘왜관 월드메르디앙’도 추첨을 통해 명품 핸드백과 의류 건조기, 무선청소기 등을 경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중도금 무이자, 계약금 정액제 등 금융 혜택은 흔하다.
부동산 시장 한 전문가는 “부동산 경기가 꺾이는 상황에서 분양가 인상으로 가격 부담이 매우 커진 만큼, 청약 시장에서 입지·가격에 따른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수요자들이 원하는 입지에 원하는 수준의 상품이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