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계명을 지킨다.
주님을 사랑하는 삶의 모습은
입술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삶에서 드러난다(복음).
부부가 서로 닮는다고 하지요.
특별히 금슬이 좋고 사랑이 깊은 부부일수록 더욱더 닮는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다 해 주고 싶고, 늘 함께 있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면 함께 기쁘고, 슬퍼하면 같이 슬프고,
아파하면 그 고통이 같이 느껴지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닮을 수밖에 없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가게 됩니다.
그분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하게 되고 그분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피하게 됩니다.
그분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했지요(1요한 4,20 참조).
이처럼 우리가 아무리 입으로 주님께 사랑을 고백해도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우리의 행동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삶의 표현은 십계명에서 말하는
윤리적 질서를 갖고 사는 것이 기초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만족하면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이웃에 대한 희생과 봉사를 하는 삶이 있어야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삶이 됩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주님, 사랑합니다.” 하고 말할 수 있지만,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엎어지고 넘어져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당신과 살게 될 것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꿩 사육장을 가 보았습니다.
모든 꿩이 테가 굵은 플라스틱 안경을 쓴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앞만 볼 수 있도록 그렇게 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가두어 놓았기에 울타리를 보면 본능적으로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그걸 막으려고 앞만 볼 수 있는 특수 안경을 씌운 것이었습니다.
인간 본능의 조절을 위해서는 이러한 특수 안경이 필요합니다.
‘가르침의 안경’입니다.
동양에서는 일찍이 윤리와 도덕을 내세워 ‘다른 것’을 못 보게 했습니다.
특수 안경을 씌웠던 것입니다.
유다인은 ‘그 안경’을 율법에서 찾았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킬수록 그만큼 가르침에 충실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율법에 매달렸던 이유입니다.
나중에는 본래 취지보다 형식에 더 많이 빠져 들었지만
그 정신은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안경’을 주십니다.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일을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사랑의 대상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늘 만나는 가족입니다. 자주 만나는 이웃입니다.
그들을 소홀히 하면 삶의 방향은 당연히 흐려집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이웃에 대한 희생과 봉사를 하는 삶이 있어야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삶이 됩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주님, 사랑합니다.” 하고 말할 수 있지만,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멘
이밤도 좋은 말씀에 감사하며
하루 일과를 접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의 대상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늘 만나는 가족입니다.
자주 만나는 이웃입니다.
그들을 소홀히 하면 삶의 방향은 당연히 흐려집니다.
늘 ‘사랑의 안경’을 끼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