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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3장 33절 ~ 40절
O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주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말할지니 "무슨 엄중한 말이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라. 33)
And when this people, or the prophet, or a priest, shall ask thee, saying, What is the burden of the LORD? thou shalt then say unto them, What burden? I will even forsake you, saith the LORD. 33)
burden ① 짐 ② (정신적인) 짐 ③ (배의) 적재량 ④ …에 무거운 짐을 지우다
여기서 burden of the LORD를 말씀보존학회는 말씀이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탤릭체로 쓰고 크기를 작게 하였습니다.
이런 번역은 의역이라고 느껴집니다. 즉 의미를 확장해서 번역한 것이 맞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직역의 의미도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 것이 킹제임스 성경을 읽는 의미가 됩니다.
burden of the LORD는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주께서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 의무, 부담 이렇게 봐야 합니다. 이를 말씀으로 번역함으로만 전달함은 거짓선지자와 논쟁에서 자칫 말씀을 부인하는 것으로 공격받을 여지가 있게 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들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속이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자를 분별하는 방법은 그들의 열매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이 그들이 받은 의탁과 그 열매로 그들의 모습이 드러나는 데, burden을 말씀으로 번역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burden of the LORD(선지자가 받은 의탁)로는 그들이 받은 의탁의 열매로 그들을 분별 할 수 있지만, 그들의 주장을 주의 말씀으로 생각한다면 그들을 분별할 수 없게 됩니다.
많은 이단들이 성경의 단어하나를 왜곡하여 성경에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는 와중에 이런 확장된 의역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하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라고 하셨고
개역한글 예레미야 23장 33절
O 이 백성이나 대언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주}의 엄중한 부담이 무엇이냐?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무슨 엄중한 부담이냐? {주}가 말하노라. 내가 심지어 너희를 버리리라, 하라.
킹제임스 흠정역 예레미야 23장 33절
킹제임스 흠정역은 주의 엄중한 부담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개역한글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개역한글은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으므로 킹제임스 영문에 대하여 구속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말씀보존학회가 개역한글의 영향을 받은 것은 그들의 열매입니다.
말씀보존학회의 이송오목사는 구약을 번역함에 있어서 신약에서보다 소홀하게 번역한 모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말씀보존학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의 신약은 번역에 고민한 흔적이 많이 나타나지만 구약에는 개역한글성경을 그대로 옮긴 흔적이 많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위의 여러가지를 참조하여 가장 원문의 뜻에 가깝게 해석을 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께서 부여한 의탁이 무엇이냐?"
흠정역의 표현인 부담보다는 사명이라는 것이 더 적합하고, 사명은 신앙의 전반적인 의미가 크므로 선지자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생각한다면 의탁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엄중함보다는 우리에게 부과됨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여집니다.
"주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는 선지자와 제사장과 백성에게는 내가 그 사람과 그 집을 벌하리라. 34)
And as for the prophet, and the priest, and the people, that shall say, The burden of the LORD, I will punish that man and his house. 34)
주께서는 사람들을 섬기라고 하셨지 지배하고 약탈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단과 거짓선지자들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약탈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열매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신천지나 안상홍등과 이익을 위하여 운영중인 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에게 부여된 마지막 의탁은 그들이 버림을 받아 지옥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니라.
사도행전 16장 31절
위의 말씀은 서로 상반되지만 같은 말씀입니다. 위의 사도행전에서 구원의 약속을 말하는 이는 예수님이 아닌 바울일행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 23장 34절이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정반대이지만 같은 내용이므로 바울 일행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나님의 burden이 변질되지 않음입니다.
너희는 각기 자기 이웃과 각기 자기 형제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주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고 주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냐?"하고 35)
Thus shall ye say every one to his neighbour, and every one to his brother, What hath the LORD answered? and, What hath the LORD spoken? 35)
위 말씀에 나오는 주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고, 주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냐가 바로 burden of the LORD입니다. 이것은 말씀으로 번역하기에는 넓고, 사명이라고 번역하기에도 넓습니다. burden of the LORD는 주의 특정한 지시사항 즉 주의 의탁이 가장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이러한 이유는 특정한 사안에 대해서 왜곡하는 백성과 선지자와 제사장들의 주장의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신천지도 counsel을 개역개정에서 모략이라고 번역함을 왜곡하여 counsel을 거짓말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차이가 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의탁을 변질한 열매의 예가 됩니다.
너희는 "주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다시는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신의 무거운 짐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주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켰음이라. 36)
And the burden of the LORD shall ye mention no more: for every man's word shall be his burden; for ye have perverted the words of the living God, of the LORD fo hosts our God. 36)
perverted ① 이상의 ② 변태의 ③ 도착의 ④ (일반적으로) 그릇된
의탁이 words로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burden of the LORD와 words of the living God은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쓰인 것입니다. 이단들과 거짓 선지자 거짓 목회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주의 뜻이라고 사람들을 낚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말씀이 그대로 현실에 나타나는 모습인 것입니다.
주의 의탁을 자신들의 마음대로 만들어 사람들을 속이는 자들은 실제로는 자신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이 땅의 유익은 무가치하고 소멸되는 것이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의 심판앞에서 가장 큰 손실을 겪는 것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선지자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께서 네게 무엇이라고 응답하셨으며 주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느냐? 37)
Thus shalt thou say to the prophet, What hath the LORD answered thee? and, What hath the LORD spoken? 37)
위 말씀은 위의 35절과 매우 유사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분리하여 그대로 반복되는 표현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위 말씀이 35절과 차이가 나는 부분은 35절은 그 대상이 형제와 이웃인데 37절은 그 대상이 선지자, prophet으로 바뀐 것뿐입니다. 이렇게 반복하신 말씀의 뜻은 형제와 이웃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뜻의 의탁이 선지자에게 주어지는 것과 동일하다는 의미로 느껴집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앞에서 똑같은 것입니다. 선지자나 이웃이나 형제들에게 모두 말씀의 의탁이 주어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이 말씀은 뜻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의 의탁을 받았다는 것이며, 그것을 잘 분별하여 변질시키지 말고 잘 간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주의 엄중한 말씀이라." 고 말하니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보내어 "주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말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주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말하였기에, 38)
But since ye say, The burden of the LORD; therefore thus saith the LORD; Because ye say this word, The burden of the LORD, and I have sent unto you, saying, Ye shall not say, The burden of the LORD; 38)
주의 의탁이 아닌데 그것을 주의 의탁이라고 거짓되이 말하는 것은 주로부터 버림을 받는 방법입니다. 이런 일은 대담한 일로 차라리 침묵을 하고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위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나누는 제 자신이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혹시 실수로 잘못 또는 저의 의가 들어간 글이나 말이 나오는 것이 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드는 것이죠. 그러나 두려워서 하지 못함도 역시 주의 의탁을 나의 뜻대로 변질시키는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일은 애매하지 않고 분명하게 구분이 될 것으로 느껴집니다. 주께서는 애매하게 심판하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심판에 관련된 일은 모두 선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짐승의 표도 선명하게 드러나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짐승의 표를 짐승의 표라고 인정할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뱀이 여자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반드시 죽지는 아니하리라.
창세기 3장 4절
이 말을 한 옛뱀이 우리에게 다시 나타나서 짐승의 표를 받아도 반드시 지옥에 가지는 아니할 것이라고 속일 것입니다. 옛 뱀은 선악과에 대해서 부인한 것이 아니라 선악과는 인정하고, 그 결과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속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짐승의 표가 어떤 것인지 확인하는 작업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보라, 나, 곧 내가 너희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너희와 내가 너희 조상에게 준 이 성읍을 버리며 내 앞에서 너희를 내버리리라. 39)
Therefore, behold, I, even I, will utterly forget you, and I will forsake you, and the city that I gave you and your fathers, and cast you out of my presence: 39)
또 내가 영원한 책망과 영속하는 수치를 너희에게 가져오리니 그것은 잊혀지지 않으리라. 40)
And I will bring an everlasting reproach upon you, and a perpetual shame, which shall not be forgotten. 40)
위의 말씀은 말씀에 대한 은사가 있는 이웃과 형제 그리고 선지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여겨집니다.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우상을 숭배함에 대해서 그들을 버리겠다고 하신 것처럼 주의 의탁을 변질하여 자신의 의탁을 주의 뜻으로 내세우는 것에 대한 경고인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에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적어도 주의 의탁을 받은 사람들에게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탁이 목회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처럼 아무 직분이 없는 사람에게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에게도 주어지는 의탁은 애매하지 않고 선명하게 보일 것이며, 그것을 변질시키는 것도 애매한 허물이 아니라 선명하게 보면서도 자신들의 욕심을 위하여 왜곡하여 일으키는 죄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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