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년주일 예배
참고말씀: 출14:21,22; 신1:31,33; 32:11; 수3:15,16; 시77:19,20; 전7:10; 사30:21; 43:18,19; 히11:9,10
읽을말씀: 삼상7:12; 빌3:13,14
주제말씀: 빌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첫째,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삼상7:12)
올 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할 수 있으며, 또 송년주일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먼저, 여기까지 우리를 도와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다 누구 덕분입니까? 순순히 내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찬찬히 되돌아보면 다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길로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신 덕뿐입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삼상7:12)
생각해보십시오. 인생의 고비를 만날 때마다 어떻게 이를 벗어날 수 있었으며, 인생의 막다른 골목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출구를 찾을 수 있었습니까? 다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길을 찾아주시고 우리의 갈 길을 보여주셨기 때문이요,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는 자이시니라.”(신1:33)
넘기 힘든 곳에서는 안아서 옮겨주셨기 때문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아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신1:31) 나락으로 떨어질 때마다 받아서 다시 올리주셨기 때문이며,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여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신32:11)
우리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칠 때마다 어김없이 뒤에서 알려주셨기 때문이며,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사30:21)
길이 없는 곳에서는 길을 만들어서라도 인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43:19 하) /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시77:19,20) /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출14:21,22) /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 새.”(수3:15,16)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여기까지 우리를 도와주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원컨대 사무엘처럼 이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그리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삼상7:12)
어떤 기념비들이 있을 수 있습니까? 구체적인 감사제목들을 적어서 헌금을 드릴 수도 있고, 한 해 동안의 굵직한 사건들을 사진이나 영상물로 제작하여 남기거나 시와 그림으로 남겨서 오랫동안 소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둘째,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빌3:13 상)
송년주일에 또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이전 일, 곧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빌3:13 상)
왜 잊어버려야 합니까? 이미 지나간 일들일 뿐만 아니라,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사43:18) 이런 지나간 일들이 때로는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전7:10)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빌3:13 중) 과거는 과거 그 자체로써 남겨두고, 오직 앞만 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3,14)
결국 이는 무슨 말입니까? 과거의 기억들을 싹 다 지워버리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는 과거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이 자신의 미래와 구원에 대한 관심을 빼앗아 진보를 방해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또 무슨 말이 아닙니까? 지난날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들까지 모두 다 잊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어째서입니까? 본문은 내가 한 일을 잊으라고 했지,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빌3:13 중) 지난날에 부어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들마저 잊으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이런 은혜들은 어찌 해야 합니까? 오랫동안 기억하고 간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전 일, 곧 뒤에 있는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있습니까? 지난날의 성공이나 실패가 더 이상 우리의 행보를 가로막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까?
셋째, 앞을 바라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3,14)
송년주일에 우리는 또 어찌 해야 합니까? 앞을 바라보고 그리로 다시 달려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첫째, 신앙생활은 언제나 현재에 충실하되 미래지향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 했고,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12) 또 믿음의 선진들이 다 그리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의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11:9,10)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새로운 일들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43:19 상)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위해 새 일들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어찌 우리가 이전 일(옛날 일)만 생각하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사43:18)
셋째, 하나님의 시선이 언제나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응당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잡기 위해 달려가기를 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달려가노라.”(빌3:13,14)
끝으로, 송년(送年)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배우는 학생들에게 중학교나 고등학교 졸업이 배움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배움의 시작인 것처럼, 우리 인생의 경우도 한 해의 마무리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인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송년주일을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나 믿음의 선진들처럼,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고 그리로 다시 달려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