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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
어떤 것을 알면 그것을 안다고 한다는 뜻으로, 앎의 기본이 정직함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말이다.
知 : 알 지(矢/3)
之 : 갈 지(丿/3)
爲 : 하 위(爪/8)
知 : 알 지(矢/3)
之 : 갈 지(丿/3)
처마 끝의 제비가 지저귀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던 선비가 논어(論語)에 나오는 글과 같이 운다고 글 읽기를 좋아하는 새로 일컬었다는 우스개가 있다.
연속되는 음이 많은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에 또 비슷하게 부지위부지(不知爲不知)가 이어지니 그럴 만도 하다. 뜻도 좋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도 문제지만 모르면서 아는 척하면 보아주기 어렵다.
문맹이 많았던 시기에 제비가 공자(孔子)를 읽으니 더욱 귀여움 받는 새가 된 셈이다. 덕으로 정치를 한다는 뜻의 위정이덕(爲政以德)에서 나온 위정(爲政)편에 실려 있다. 공자가 여러 제자와 함께 문답으로 가르치고 있는 논어 두 번째 편이다.
가장 나이 많지만 젊은 시절 거리에서 주먹을 자랑하여 배움이 늦었던 중유(仲由)에게 가르침에 대해 말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중유는 자인 자로(子路)로 더 알려져 있고 직선적인 무골의 의리로 공자의 주유천하 때 끝까지 수행한 사람이다.
조금 아는 것이 뒤떨어지더라도 솔직하게 모르는 것을 인정하면 그것이 앞서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소크라테스가 남과 다른 것은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 한 것과 통한다.
노자(老子)도 도덕경(道德經) 제71장 지병장(知病章)에서 비슷하게 깨우친다.
知不知上 不知知病.
자기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
夫唯病病 是以不病.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에 병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성인에게 병이 없는 것은 병을 병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세상만사 돌아가는 이치를 모두 알 수는 없다. 분야가 많은 만큼 전문가도 곳곳에 있다. 서뿔리 아는 체를 했다가 곧잘 망신사기 십상이다.
모르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 손아랫 사람이나 지위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공자천주(孔子穿珠), 불치하문(不恥下問), 역시 공자말씀이다.
지지위지(知之爲知)
지지위지(知之爲知)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이 말은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원문을 보면
子曰 由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아는 것이다.
자로(子路; 由)는 힘이 세고 용기가 있으며 무술이 뛰어난 사람으로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자로의 이러한 성격은 자로로 하여금 자기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거나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공자는 자로를 깨우치고 싶어 말을 걸었습니다. “유야.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
남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 “모른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실력자이다. 실력이 없는 사람은 남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두려워 모른다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자신 있는 사람만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대답할 수 있다.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유몽인이 임진왜란 때 중국 사람 황백룡을 만났다. 그가 유몽인에게 조선 사람은 몇 가지 경서를 공부하느냐고 물었다.
유몽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삼경(三經) 또는 사경(四經)을 읽지요. 심지어는 제비나 개구리, 꾀꼬리도 경서 하나쯤은 읽을 줄 압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제비도 논어를 읽을 줄 안답니다. 그래서 지지위지지(知之謂知之), 부지위부지(不知謂不知), 시지야(是知也)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개구리도 맹자(孟子)를 읽을 줄 안다는 얘기는 맹자 양혜왕(梁惠王) 하편 가운데 독락악여중락악숙락(獨樂樂與衆樂樂孰樂)이란 구절이 나온다. 이것을 또박또박 소리대로 읽으면 개구리의 ‘개굴개굴’ 하는 소리와 흡사하기에 이르는 말이다.
또 꾀꼬리는 장자(莊子)를 잘 읽는다. 장자에 이지유지지비지(以指喩指之非指), 불약이비지유지지비지(不若以非指喩指之非指), 이마유마지비마(以馬喩馬之非馬), 불약이비마유마지비마야(不若以非馬喩馬之非馬也)란 말이 나온다.
이 구절을 빨리 읽으면 꾀꼬리의 노래하는 소리와 흡사했던 까닭으로 유몽인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뜻은 “엄지를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엄지가 아닌 것을 가지고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만 못하다. 백마를 말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백마가 아닌 다른 동물을 가지고 말이 아니라고 하는 것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조선의 제비는 능히 논어를 읽을 줄 알았고, 개구리는 맹자를 읊었으며, 꾀꼬리는 그 어려운 장자를 노래할 줄 알았다. 하물며 이 나라의 미물들도 진리를 얘기하고 진실을 논하는 세상이다.
모른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실력자이다. 실력이 없는 사람은 남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두려워 모른다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자신 있는 사람만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대답할 수 있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모른다는 걸 모르면 위험하다
바야흐로 팩트 체크 시대다. 팩트폭격이란 말까지 한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과 아는 것에 대해 질문하고 검증하는 경우는 드물다. 다음 경우에 '예' '아니요' 어떻게 답하겠는가.
첫째, 솔개가 부리와 발톱을 쪼고 갈아 재생시킨다는 환골탈태의 혁신은 사실일까.
둘째, 미지근한 물의 개구리는 정말 뜨거운 냄비 속 개구리보다 위험할까.
셋째, 답안지의 고친 답은 첫째 답보다 틀릴 확률이 더 높을까. 실제 답은 모두 '아니다'이다.
솔개는 부리를 쪼면 재창조되지 않는다. 뜨거운 냄비 속 개구리는 화상을 입을 위험이 더 높으며, 연구 실험에 의하면 고친 답이 처음 답보다 정답일 확률이 더 높다.
공자는 확신파 제자 자로에게 진정한 지(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너에게 지(知)라는 것을 일깨워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이니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또 제자 자장이 벼슬을 구하는 방법을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많이 듣고서 그중에 의심스러운 것을 빼놓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허물이 적어질 것이다. 많이 보고서 그중에 위태로운 것을 빼놓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행한다면 후회가 적어질 것이다. 말하는 데 허물이 적고 행하는 데 후회가 적으면 녹봉과 벼슬자리는 바로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논어 '위정'편)
진정한 지혜는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다. 의심나는 것은 비워놓고 여지를 남긴 채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는 유연성과 개방성이야말로 지식인의 기본 자세다. '모르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 지식, 경험에 갇혀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안다고 자신할수록 고루해지고, 고집불통 화석이 되기 쉽다.
애덤 그랜트 와튼스쿨 교수는 이를 '어리석음의 산'에 비유한다. 자기가 가진 지식에 대해 과신한다는 것은 지식이 얕음의 반증이다. 잘 알수록 "나는 다 알고 있다"에서 "알고는 있지만, 모르는 게 더 많다, 더 공부해야 한다"의 겸손 모드로 바뀐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연구에 의하면 '저명한 과학자들의 차별성은 상황 변화에 따라 기꺼이 의견을 바꿀 수 있는 태도의 유연성'이었다.
또 역사가들과 정치학자들의 미국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위대한 대통령의 공통 특성은 지적 호기심과 개방성이었다. 진정한 지혜는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다. 매번 스마트폰은 업데이트하면서 막상 우리의 과거 생각은 얼마마다 업데이트하고 있는가.
▶️ 知(알 지)는 ❶회의문자로 口(구; 말)와 矢(시; 화살)의 합자(合字)이다. 화살이 활에서 나가듯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말한다. 많이 알고 있으면 화살(矢)처럼 말(口)이 빨리 나간다는 뜻을 합(合)하여 알다를 뜻한다. 또 화살이 꿰뚫듯이 마음속에 확실히 결정한 일이나, 말은 마음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알다, 알리다, 지식 등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知자는 '알다'나 '나타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知자는 矢(화살 시)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知자는 소전에서야 등장한 글자로 금문에서는 智(지혜 지)자가 '알다'나 '지혜'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슬기로운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 智자는 '지혜'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고 知자는 '알다'라는 뜻으로 분리되었다. 智자는 아는 것이 많아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만큼 말을 빠르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知자도 그러한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그래서 知(지)는 (1)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정신의 작용하는 힘. 깨닫는 힘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알다 ②알리다, 알게 하다 ③나타내다, 드러내다 ④맡다, 주재하다 ⑤주관하다 ⑥대접하다 ⑦사귀다 ⑧병이 낫다 ⑨사귐 ⑩친한 친구 ⑪나를 알아주는 사람 ⑫짝, 배우자(配偶者) ⑬대접(待接), 대우(待遇) ⑭슬기, 지혜(智慧) ⑮지식(知識), 앎 ⑯지사(知事) ⑰어조사(語助辭)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알 인(認), 살펴 알 량/양(諒), 알 식(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닐 행(行)이다. 용례로는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을 지식(知識),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지혜(知慧), 지적 활동의 능력을 지능(知能), 지혜로운 성품을 지성(知性), 지식이 있는 것 또는 지식에 관한 것을 지적(知的), 알아서 깨달음 또는 그 능력을 지각(知覺), 지식과 도덕을 지덕(知德), 아는 사람 또는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봄을 지인(知人), 새로운 것을 앎을 지신(知新), 은혜를 앎을 지은(知恩), 지식이 많고 사물의 이치에 밝은 사람을 지자(知者), 제 분수를 알아 마음에 불만함이 없음 곧 무엇이 넉넉하고 족한 줄을 앎을 지족(知足), 자기 분에 지나치지 않도록 그칠 줄을 앎을 지지(知止),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안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 여러 사람이 어떤 사실을 널리 아는 것을 주지(周知), 어떤 일을 느끼어 아는 것을 감지(感知),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붕지(朋知), 기별하여 알림을 통지(通知), 인정하여 앎을 인지(認知), 아는 것이 없음을 무지(無知), 고하여 알림을 고지(告知), 더듬어 살펴 알아냄을 탐지(探知), 세상 사람들이 다 알거나 알게 함을 공지(公知), 서로 잘 알고 친근하게 지내는 사람을 친지(親知), 자기를 가장 잘 알아주는 친한 친구를 일컫는 말을 지기지우(知己之友),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적의 형편과 나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말을 지피지기(知彼知己), 참 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따라야 한다는 말을 지행합일(知行合一), 누구나 허물이 있는 것이니 허물을 알면 즉시 고쳐야 한다는 말을 지과필개(知過必改)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爲(할 위)는 ❶상형문자로 为(위), 為(위)는 통자(通字), 为(위)는 간자(簡字)이다. 원숭이가 발톱을 쳐들고 할퀴려는 모양을 본떴다. 전(轉)하여 하다, 이루다, 만들다, 다스리다의 뜻으로 삼고 다시 전(轉)하여 남을 위하다, 나라를 위하다 따위의 뜻으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爲자는 '~을 하다'나 '~을 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爲자는 원숭이가 발톱을 쳐들고 할퀴려는 모습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爲자를 보면 본래는 코끼리와 손이 함께 그려졌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코끼리를 조련시킨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爲자의 본래 의미는 '길들이다'였다. 하지만 후에 코끼리에게 무언가를 하게 시킨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을 하다'나 ~을 위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爲(위)는 ①하다 ②위하다 ③다스리다 ④되다, 이루어지다 ⑤생각하다 ⑥삼다 ⑦배우다 ⑧가장(假裝)하다 ⑨속하다 ⑩있다 ⑪행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움직일 동(動), 옮길 사(徙), 옮길 반(搬), 흔들 요(搖), 옮길 운(運), 들 거(擧), 옮길 이(移), 다닐 행(行), 구를 전(轉)이 있다. 용례로는 나라를 위함을 위국(爲國), 백성을 위한다는 위민(爲民), 다른 것에 앞서 우선하는 일이라는 위선(爲先), 힘을 다함을 위력(爲力), 첫번을 삼아 시작함을 위시(爲始),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행동함을 위아(爲我), 생업을 삼음 또는 사업을 경영함을 위업(爲業), 사람의 됨됨이를 위인(爲人), 정치를 행함을 위정(爲政), 주되는 것으로 삼는 것을 위주(爲主), 예정임 또는 작정임을 위계(爲計), 진실한 즐거움을 위락(爲樂), 어떤 것을 첫 자리나 으뜸으로 함을 위수(爲首), 기준으로 삼음을 위준(爲準), 나라를 위한 기도를 위축(爲祝), 부모를 위함을 위친(爲親), 자기를 이롭게 하려다가 도리어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위총구작(爲叢驅雀), 치부致富하려면 자연히 어질지 못한 일을 하게 된다는 말을 위부불인(爲富不仁), 바퀴도 되고 탄환도 된다는 뜻으로 하늘의 뜻대로 맡겨 둠을 이르는 말을 위륜위탄(爲輪爲彈), 겉으로는 그것을 위하는 체하면서 실상은 다른 것을 위함 곧 속과 겉이 다름을 일컫는 말을 위초비위조(爲楚非爲趙), 되거나 안 되거나 좌우 간 또는 하든지 아니 하든지를 일컫는 말을 위불위간(爲不爲間), 선을 행함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말을 위선최락(爲善最樂), 도마 위의 물고기가 된다는 뜻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위어육(爲魚肉), 어떤 사람을 위해 벼슬자리를 새로이 마련함이나 남을 위해 정성껏 꾀함을 일컫는 말을 위인설관(爲人設官), 자손을 위하여 계획을 함 또는 그 계획을 일컫는 말을 위자손계(爲子孫計), 가난을 면하지 못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위귀소소(爲鬼所笑), 자기가 정한 법을 자기가 범하여 벌을 당함을 일컫는 말을 위법자폐(爲法自弊),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을 전화위복(轉禍爲福),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라는 뜻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됨 또는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을 이르는 말을 지록위마(指鹿爲馬),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도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 있는 인내로 성공하고야 만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마부위침(磨斧爲針),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사람도 환경에 따라 기질이 변한다는 말을 귤화위지(橘化爲枳), 손이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한다는 뜻으로 주객이 전도됨을 이르는 말을 객반위주(客反爲主), 인공을 가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또는 그런 이상적인 경지를 일컫는 말을 무위자연(無爲自然),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된다는 뜻으로 작은 것도 모이면 큰 것이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진적위산(塵積爲山), 하는 일 없이 헛되이 먹기만 함 또는 게으르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무위도식(無爲徒食)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