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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2,000년 유럽의 모든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중국 문명은 오랜 기간 동안 유럽 문명보다 앞서 있었다. 유럽은 중국으로부터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인쇄술, 제지술, 나침반, 화약, 운하의 수문을 획득했다. 그렇지만 경제 성장이 먼저 일어나고 다음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난 곳은 유럽이었다. 유럽은 뭘 어쨌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을까?
1480년에 중국의 명 황제는 해외 탐험과 무역을 금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어떤 유럽의 왕도 그런 권력을 확보하거나 사용한 적이 없으며 자기 파괴적인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중국의 황제는 자신과 동등한 권력을 지닌 그 어떤 경쟁자도 없다는 이점 또는 덫을 지니고 있었다.
서유럽에서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단일한 권력이 영토 전체를 통제하는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로마의 정복자들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다양한 게르만 부족들이었다. 그들은 아주 작은 영역의 주인이었으며 제국을 정복했다기보다는 제국이 그들의 발밑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럽 역사의 많은 부분이 이 순간으로부터 비롯된다. 국민에 대한 정부의 지배력은 아주 약했다. 유럽의 정부는 국민의 충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해야 했다.
여러 세기 동안 국왕의 통제에 대한 위협은 그의 신민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세력, 즉 토지 소유 귀족들로부터 왔다.
"모든 것이 왕의 것은 아니다."
이 말이 유럽의 자유와 번영의 기초다.
이 책은 모든 유럽 사회가 공통적으로 지니는 특성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제시한다.
유럽 문명을 구성한 세 요소는
1) 그리스와 로마의 지식-그리스인의 생각은 '세계는 단순하고 논리적이며 수학적이다'
2) 기독교-세상은 악이고 그리스도만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다신교(상대주의적 전통)였지만, 유대인은 신은 오직 하나라는 유일신 믿음(절대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3) 게르만 전사-전투는 재미있다. '피는 명예이며 우리는 평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유럽 문명을 형성한 것은 바로 이 세 요소의 혼합이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믿게 되고 기독교 교회가 로마화된다. 로마제국은 게르만 전사에게 기독교를 믿으면 더 많은 적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고, 게르만 전사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게르만 전사들은 왕, 귀족이 되었으나 그들은 문맹이었기 때문에 나라가 조세제도를 운영하지 않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나라가 허약해졌고, 이때 개인이 소유한다는 개념이 생겼다.
이 요소가 중세로 넘어오며 "게르만 전사들이 지원한 로마 기독교 교회가 보존한 그리스와 로마의 지식"으로 형태가 바뀌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15세기 르네상스 시기가 도래하며 고전이 최고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이어 16세기 종교개혁: '기독교가 로마의 것이 아니다'가 주장하기 된다.
(17세기 초 - 근대 과학과 진보)
17세기 과학: '과학은 그리스인들이 틀렸다'는 지적을 하게 된다.
그리스인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하였지만, 17세기 초 지구는 태양을 따라 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것에서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나오고, 교회의 권위가 하락하였다.
(18세기 - 계몽주의)
사회 개혁, 도덕, 신학 등에 이성을 적용하여 종교는 미신이라고 생각하였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에 힘입어 백과사전이 만들어진다. 백과사전은 ABC 순 색인으로 지식을 정리하며 교회가 이야기하는 진리와 다른 지식을 동일선상에 놓는다.
(18~19세기 - 낭만주의)
낭만주의라고 하면 민족주의, 정서, 문화, 해방을 나타내는 반면, 계몽주의는 이성, 과학, 진보를 나타내기 때문에 둘은 반대되는 개념이다. 낭만주의자들은 게르만 전사들을 존경됐고, 이때 교회의 권위는 더더욱 하락했다.
*프랑스 계몽주의(이념, 기준 설정), 독일 낭만주의(개별, 집단), 영국 경험주의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 계몽주의, 낭만주의 운동이 모두가 상이한 방식으로 교회의 권위를 약화시켰다.
유럽 사회는 세 가지 거대한 침입을 맞게 되는데
첫 번째가 게르만족이 로마제국을 침입(3~6세기) 한 것이고 다음엔 무슬림(7~8세기), 마지막은 바이킹(9~10 세기)이다. 게르만족 침입으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한다. 잉글랜드에도 게르만족이 장악하여 기독교로 재개종이 일어난다. 그 이후 12세기 십자군 운동이 시작 되고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멸망한다. 콘스탄티노플이 멸망하자, 고전 그리스 지식을 보존하고 연구했던 기독교 학자들은 고대 필사본을 가지고 이탈리아로 간다.
정치적으로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아테네의 민주정치로 시작한다. 로마의 정치형태는 공화정이다. 공화정은 왕이 없고 집정관이 있는데 매년 2명씩 원로원 (의원수 300명, 귀족들로 구성)에서 선출했다. 평민들이 참여하는 민회가 있었지만 힘이 없었다. 평민들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나중에 호민관이라는 제도가 생긴다. 그 이후 공화정 시대가 끝나고 황제가 등장한다. 첫 황제가 바로 율리아스 카이사르의 조카딸의 아들이자 그의 수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 이다.
중세 시대 초기에는 봉건 군주들도 힘이 약하고 자신 만의 군대 조직이나 세력이 없었다. 그러나 1400년 경부터 군주들이 우위를 점하며 절대군주가 등장한다. 의회를 소집할 필요도 없었다.
영국은 의회와 왕이 세력 다툼을 하고 의회파와 왕당파는 전쟁을 벌인다. 의회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의회파 사령관인 올리버 크롬웰이 1649년 왕인 찰스 1세를 처형한다. 크롬웰은 살아 있는 동안 왕을 대신해 통치한다. 그 이후 왕과 의회의 권력은 의회에 의해 정의 된다. 이때 <권리장전>이 나오고 피를 전혀 흘리지 않아 '명예혁명'이란 이름을 얻는다. 이렇게 영국은 의회정치 틀을 마련한다.
1800년대 나폴레옹이 등장한다. 그는 로마의 사례를 중요히 여겼다. 파리 개선문도 로마에 있는 콘스탄 티누스 개선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책에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각 나라의 시대별 상황에 대해서도 핵심 사건을 중심으로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