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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를 향한 잔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1. 들어가는 글
2. 모딜리아나의 작품 경매 가격
3.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비극적 죽음
4. 천국에서도 모딜리아니의 모델이 되겠다던 잔느
5. 잔느가 목숨을 바쳐 사랑했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6. 모딜리아니가 그린 목이 긴 여인 잔느 에뷔테른
7. 모딜리아니의 초상화 작품들
1. 들어가는 글
어제 저녁 송골매 콘서트를 보고나서 글을 하나 올렸다
이지님께서 댓글을 달아 주셨는데
닉네임 옆의 작은 프로필 사진이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느였다
내가 워낙 모딜리아니를 좋아해서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몇 차례 댓글이 서로 오고갔다
그리고 오늘 점심을 먹고나서 이 글을 올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좀 슬픈 사랑이야기이긴 하지만 즐감하시기 바란다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모딜리아니와 그의 모델이자 아내였던 잔느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모딜리아니가 죽자마자 바로 그의 뒤를 따라간 잔느 에뷔테른
내가 모딜리아니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졸업식 때
개근상 상품으로 받은 두툼한 일기장에서 였다
딱딱한 회색의 표지를 넘기면 빨간색 바탕에
목이 긴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여인의 조각상 사진이 붙어 있었다
이 일기장에는 나의 고교시절 이야기 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무려 55년 전의 이야기 들이다
일기를 쓸 때마다 이 목이 긴 여인 조각상 사진을 보았다
참으로 기이하게 기형적으로 목이 긴 여인의 조각상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모딜리아니가 누군지도 몰랐다
나중에 그 조각상이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딜리아니가 잔느를 그린 목이 긴 여인 들 그림과
이 조각상 사진은 나에게 똑같이 모딜리아니를 연상시켰다
나중에 인터넷시대가 도래하면서 모딜리아니에 대해 검색을 할 수 있었다
모딜리아니가 그렇게 유명한 인상파 화가인 줄 미처 몰랐다
그리고 쭉 보아왔던 목이 긴 여인의 슬픈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아주 훤칠하게 잘 생긴 이탈리아 출신 미남자인 모딜리아니를 보고 놀랐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모딜리아니의 작품 사진 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특히 묘하게 그려진 갖가지 포즈의 누드화 들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그 작품 들이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려 1억7천만 달러에 팔린 모딜리아니의 누드화도 있었다
그 간의 경고를 감안하여 이 들 누드화 들을 올릴 수 없음이 유감이다
더불어 그 모딜리아니가 살아 생전에 엄청나게 가난했었다는 사실
그로 인해 36세 되던 해에 결핵성수막염으로 요절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모델이자 아내였던 잔느 에뷔테른이 바로 그를 따라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친정집 6층에서 투신자살 했다는 것
이 때 쟌느의 나이 겨우 22세 였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궁핍하게 살다가 요절한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이
지금은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중에는 모딜리아니를 모델로 한 영화도 보게 되었다
이제부터 그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2. 모딜리아니의 작품 경매 가격
모딜리아니 ‘나부’ 5월 경매… 예상가 1600억 역대 최고
전채은 기자
2018-04-26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원본 작품 게재는 생략합니다
대표작 ‘누워 있는 나부’ 22점중 1점
Nude Looking over Her Right Shoulder. 1917.
Oil on canvas. 89 x 146 cm. Private collection.
이탈리아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의 대표작 ‘누워 있는 나부’
(Nu couch´e·1917년·사진)가 경매에 부쳐진다. 추정가가 1억5000만 달러(약 1600억 원)
이상으로 예상 낙찰가로는 미술품 경매 사상 가장 높은 액수다.
24일(현지 시간) 미국 CNN은 세계 최대 미술품 경매회사 소더비가
다음 달 14일 뉴욕에서 열리는 인상주의 모던아트 이브닝 경매에
‘누워 있는 나부’를 출품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누워 있는 나부’는 벌거벗은 채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프랑스 여성이
뒤를 돌아보는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2015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누워 있는 나부’ 시리즈의 또 다른 작품은
1억7040만 달러(약 1800억 원)에 낙찰됐다.
모딜리아니는 나체로 누워 있는 여성 그림을 모두 22점 그렸다.
지금까지 경매 전 추정가가 가장 높았던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이다.
2015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가 1억4000만 달러로 예상됐었다.
실제 경매에서는 예상치보다 높은 1억7900만 달러에 낙찰됐다.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 낙찰가는 4억5030만 달러(약 4800억 원)를 기록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모딜리아니'라는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한것은
위 그림을 보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온 순간 부터였다.
초코렛색과 연한 커피색 바탕에 노랑색 무늬 있는 침대에
한 여인이 하얀 치아를 보이며 살며시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모습.
흔히 누드라고 하면 얼굴과 가슴을 가리는 것이 보통인데
적당한 크기의 젓가슴과 가느다란 허리,그리고 풍만한 허벅지를 그대로 보이고 있다.
허리와 얼굴이 길어 조금은 과장되어 표현한 그림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모델의 황홀한 얼굴 표정과 양팔을 위로 올린거리낌없는 몸짓에 아릇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우연히 주간정보지에서 다시 그의 그림과 설명을 보면서다시 한번 그를 기억하게 되었다.
원본 그림의 게재는 생략합니다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목이 긴 여인의 누드화
2015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7천4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3.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비극적 죽음
1920년 1월 겨울 어느날,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추정되는 자화상을 완성시켰다.
20세기 최고의 초상화가로 꼽히는 그이지만
특이하게도 자신의 자화상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얼음장 같이 차가운 방안에서 환자는 피를 토하며 끊임없이 기침을 해댔고,
이젤엔 오일이 채 마르지 않은 바르고니의 초상이 미완성인채 남겨져 있었다.
그 옆에는 만삭의 잔느가 웅크리고 앉아 죽어가는 모딜리아니를 조용히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 자신이 모딜리아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잔느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딜리아니는 의식이 몽롱한 채,
"나는 딸이 크는 것조자 보지 못하고 죽는다.
사랑하는, 내 사랑하는 이탈리아여!
내가 죽으면 잔느는 친구 수탄하고 살아"라고 중얼거렸다.
이것이 생전의 모딜리아니가 마지막 남긴 말이었다.
1920년 1월 24일 저녁 8시 50분에 그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고 만 것이다.
그는 얼음장 같이 찬방에서 피를 토한 채 쓰러져 있었다.
그의 침대 주변에는 몇 개의 빈 포도주 병과
반쯤 얼어버린 정어리 통조림이 뒹굴고 있었다.
친구들이 달려와 이 모습을 발견하고는 곧 병원으로 옮겼다.
다음날 아침, 죽은 남편의 시체를 보러 병원에 간 잔느는
오랫동안 말없이 물끄러미 시체를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없이 뒷걸음질 쳐 영안실을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줄께요" 라고 전설처럼 말했다는 잔느 에뷔테른...
그녀 역시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자신의 양친의 집 6층 창에서 투신 자살한다.
그의 아기는 단 한번도 입 밖으로 울음소리를 토해내지 못한 채 부모의 뒤를 따랐다.
이때 이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말하는 많은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데
일설에는 모딜리아니가 자신의 아내인 잔느에게
"천국에서도 나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했다는 말도 있고,
또는 잔느가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주겠다"고
사랑을 다짐했다고 한다
다만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란 임신 9개월의 여자가
남편을 따라 투신자살한 사건은 인간도 동물인 이상
뱃속의 아기를 지켜야 한다는 모성 본능을 초월한 일대 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들 부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모딜리아니의 장례식은 비참한 그의 생애에 비해 무척이나 화려했다.
온통 꽃에 파묻힌 그의 관이 실린 영구차의 뒤에는
파리의 유명한 모든 화가들이 뒤를 따랐다.
피카소, 데리앵, 우틸로, 작크 립시츠, 키슬링, 올티즈, 자라데, 부랑빙 ...
수도 헤아릴 수 없는 화가들이 페르 라쉐즈 묘지로 가는 슬픈 행렬을 이룬 것이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36세의 짧은 생을
그림이라는 예술형식에 묻힌 채 열정적으로 살다간,
어쩌면 행복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행적에서 삐죽이 드러나는 예술에의 의지는 실로 대단하고,
그 집념은 무서운 광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죽음을 암시하는 잔느 에뷔테른(Jeanne Hebuterne)의 작품 몇 점
1. 자화상/잔느 에뷔테른작
2. 푸른색의 자화상/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작/ 모딜리아니의 몇 안 되는 자화상 드로잉.
병상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푸른색이 잔느를 두고 떠나는 모딜리아니의 우울함을 표현한 듯 하다
3.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잔느 에뷔테른 작/ 둘이 함께 그린 그림으로
가벼운 드로잉이지만 임산부 잔느와 손을 꼭 잡은 아름다운 모딜리아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고 생활고에 쫓기게 되자
모딜리아니는 다시 방탕한 생활에 빠져 들고 점점 괴팍한 성격으로 변해 갔다.
결국 파리로 돌아왔지만 이미 모딜리아니의 건강상태는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모딜리아니의 불안과 분노는 잔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남편의 죽음을 준비하며 잔느는 유언처럼
자살’Le Suicide’ 이란 작품을 남겼다.
그 안에는 극에 달했던 잔느의 불안한 심리가 담겨 있다.
이 작품을 남기고 잔느 에뷔테른은 1920년 1월26일 5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을 한다.
모딜리아니가 눈을 감은 1월24일로부터 이틀이 지난 후의 일이다.
그림 생략
< 자살 / 종이에 수채 / 20.7 x 27.9 cm > - 잔느 에뷔테른
에뷔테른이 남긴 최후의 작품
[자살/Jeanne Hebuterne 잔느는 병상을 지키며 모딜리아니에게 드리운 죽음을 보았다.
천국에서도 자신의 모델이 되어달라는 모딜리아니의 말을 들어주기라도 하는 듯,
이 그림을 그리며 모딜리아니와 함께 떠날 준비를 했다.]
그림에서와 같은 포즈를 취해
모딜리아니가 누드를 그릴 수 있도록 한 장소에서 자살하는 장면의 그림
특히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모딜리아니의 나이프로 자신을 찌른 것이 더 쇼킹하다
위의 그림들은 에뷔테른이 병들어 점점 죽음에 가까워져가는 모딜리아니를 의식하며
그녀 또한 죽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잔느는 모딜리아니의 품으로 달려가 영원히 그만을 위한 모델이 되려 했다.
이들이 니스에서 함께 했던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은
화가 모딜리아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초상화 작품을 가장 많이 그린 시기이기 때문이다.
< 니스에서의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우) /
종이에 수채 / 27.8 x 20.8cm > - 잔 에뷔테른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에뷔테른 모친인 외독시, 에뷔테른, 모딜리아니다
평온한 분위기의 그림이지만 검게 칠해진 에뷔테른의 눈,
모딜리아니의 검정 넥타이의 상징으로 봐서
죽음의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가고 있다
그림 속 검은 고양이는 불길한 징후를 상징하고
테이블 위의 나이프 또한 죽음을 암시한다
4. 천국에서도 모딜리아니의 모델이 되겠다던 잔느
잔느 에뷔테른
잔느는 엄격하고 좋은 카톨릭 가정에서 자라서 19살의 청순한 소녀로
그림 공부를 한다고 몽파르나스에서 모딜리아니와 만나 그림도 그리고
모델도 하며 사랑하게 되어 부모의 반대를 무릅 쓰고 모딜리아니와 결혼하였다
잔느의 머리는 붉은색에 얼굴은 희고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로
1918년 20세에 잔느는 14살 차이나는 가난한 화가 모딜리아니 나이 34세에 임신한다,
그해 11월말 니스 병원에서 딸을 출산하고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준다
충실한 반려자였던 잔느는 집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끝없는 사랑을 주었다,
만 1년 2개월 만에 모딜리아니가 세상을 떠나자
바로 둘째 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친정집 6층 창밖으로 뛰어 내려
사랑하는 이의 뒤를 따랐다, 이때 잔느의 나이 22세였다 .
" 천국에서도 나의 모델이 되어달라" 던 남편의 말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얼굴이 길어 슬픈 여인
한 모델을 대상으로 여러 점의 작품을 남겨 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작가로
모딜리아니 (Amedeo Modigliani, 1884-1920)를 꼽을 수 있다.
평생을 모딜리아니의 곁에서 모델이 된 여인은 이 작품의 주인공인 그의 아내 잔느였다
파리의 몽마르뜨나 몽파르나스지역에 모여 활동하던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 파리파)
사이에서도 로맨티스트로 유명했던 모딜리아니를 사랑했던 잔느는
`얼굴이 길어 슬픈 여인' 이라는 그만의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원천이 되었다.
20세기 초엽 인상주의 물결이 휩쓸던 유럽에는 많은 화가들이 파리로 모여 들었다.
새로운 시각이 고정된 형태나 관념을 탈피해 다양한 형태(양식)로 시도되는 시기였다.
고전적인 초상화의 틀에서 벗어나 왜곡된 얼굴의 형태(유달리 길다란 목과 얼굴)속에서도
우수에 찬 표정에 담겨져 있는 인물의 심성을 반영하는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목이 길쭉한 인물 스타일은 아프리카 원시 조각이나 모딜리아니가 활동하던 시기에
유럽에서 유행한 일본의 우끼요에 에서 영향을 받고,
세잔느와 입체주의가 가미된 그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인물작품에서 눈동자를 표현하지 않은 점은 매우 특이한데
오히려 그러한 눈의 표정은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영원으로의 응시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아마도 모딜리아니가 죽자 모든 생의 의미를 포기하고 그의 뒤를 따른 그녀의 순애보적 사랑이
바로 그의 모델이 되어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은 아닐런지.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운명적 만남과 사랑
모딜리아니가 자신의 마지막 여인 잔느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19살이었고 모딜리아니 자신은 33살이었다.
잔느는 일본 태생의 츠구하라 후지타의 모델을 했었는데
모딜리아니의 모델로 왔다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모딜리아니가 창조의 에너지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완성할 수 있게 잔이 도왔다면,
모딜리아니는 잔느가 여성적이고, 현실적인 화풍에서 벗어나 한층 더 발전할 수 있게 도왔다.
때로는 둘이 함께 그림을 그렸는데,
구체적인 현실의 어떤 것도 반영해 내지 못하고 시대밖에서 맴돌던 모딜리아니의 화풍이
잔느의 매우 여성적이고 일상적인 화풍과 결합하여 또 다른 화풍을 빚어내기도 했다.
둘이 함께 그린 드로잉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에는
임신한 잔느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모딜리아니의 행복한 한 때가 담겨있다.
이들이 니스에서 보냈던 짧지만 행복했던 시간,
바로 그 시간이 오늘날의 모딜리아니를 만들었다.
잔느 에뷔테른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모딜리아니가 이렇게 유명해 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14년 16세의 잔느 에뷔테른과 잔느 에뷔테른을 만났을 무렵의 모딜리아니
모딜리아니, 그는 또 다른 자신이었다.
모딜리아니의 뮤즈였던 잔느 에뷔테른, 그녀 역시 화가였다.
그러나 모딜리아니의 그늘에 가려 잔의 작품들은 잘 알려지지 못했다.
15세에 이미 화가를 꿈꾸며 미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옷과 장신구를 직접 디자인 할 만큼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에게
모딜리아니는 예술적 스승이기도 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마주친 것은 파리 몽파르나스의 카페 ‘로통드’. 잔은
학교 수업이 끝나고 자주 들르던 그 곳에서 깔끔한 코듀로이 재킷에 붉은 스카프를 두른
미술 역사상 가장 잘 생겼다는 화가 모딜리아니와 마주쳤다.
모딜리아니는 잔느를 인식하지 못했지만
잔느를 스쳐간 모딜리아니는 이미 잔느의 마음을 사로 잡아버렸다.
그날 이후 잔느는 카페에서, 공원에서
마치 그의 주변을 맴돌듯이 여러 번 모딜리아니를 볼 수 있었다.
얼마 후 둘은 한 조각가의 소개로 다시 만났다.
조숙하면서도 반항기 있는 묘한 눈빛의 18세 소녀를 만나던 순간
32세의 모딜리아니는 전율을 느끼며 매료되었다.
여성 편력이 심했던 그는 잔느와 함께 지내는 동안에도
다른 여자들을 모델로 삼아 작업실로 끌어 들였으나
잔느는 그런 모딜리아니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모델들과의 관계가 예술적 영감을 표현하는데 불가피한 것이었기 때문에
잔느는 오히려 그런 과정을 거쳐서라도 모딜리아니가 더 많이 알려지기를 바랐다.
자아가 강했던 잔느는 방탕한 생활에 젖어 있던 나약한 모딜리아니를 위해
모델, 아내, 정신적 후원자가 되어 그의 육체와 정신을 보살폈다.
잔느에게 모딜리아니는 또 하나의 자아였기에
모딜리아니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따라서 모딜리아니의 죽음은 곧 자신의 죽음이었다.
만약 모딜리아니에게 잔느가 없었다면 그의 천재성은
빛을 보기도 전에 방탕한 생활과 지병으로 인해 시들어 버렸을 것이다.
두 사람은 1917년에 만나 몽파르니스 작업실에서 2년여 동안 생활하다
결핵을 앓던 모딜리아니의 병세가 악화되자 니스 해변가로 요양을 갔다.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둘만의 시간을 가지며 많은 작품을 남긴다
5. 잔느가 목숨을 바쳐 사랑했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역사상 가장 잘 생겼다는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Amedeo Modigliani(伊, 1884.07.12 ~ 1920.01.24)
모딜리아니, 피카소, 앙드레 살몬
Self-Portrait. 1919.Oil on canvas.
100 x 64.5 cm.Museu de Arte Contemporanea da Universidade, San Paulo, BrazilAmedeo Modigliani -
죽기 얼마 전에 그린 자화상 1920년 1월 겨울 어느날,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추정되는 자화상을 완성시켰다.
20세기 최고의 초상화가로 꼽히는 그이지만 특이하게도
자신의 자화상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술사에서 가장 격동적인 시기였던
1914-1920년의 현장이 담겨 있다.
이는 미술계에서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에게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이유다.
당시 몽파르니스에는 이방인 예술가 집단 ‘에콜 드 파리’를 중심으로
전 세계의 갈 곳 없는 아티스트들이 모여들었다.
그 대표적인 화가들이 생 수틴, 줄스 파스킨, 모이세 키슬링, 마르크 샤갈 등이다.
몽파르나스에 모인 예술가들은 큐비즘, 다다이즘, 추상예술, 구상예술 등의 이름으로
그룹을 이뤄 경쟁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미술사의 큰 줄기를 이루게 된 것이다.
잔느가 모딜리아니와 처음 마주친 카페 ‘로통드’는
당대의 철학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에콜 드 파리의 요지였다.
6. 모딜리아니가 그린 목이 긴 여인 쟌느 에뷔테른
쟌느 에뷔테른, 화가의 아내, 1918
Jeanne Hebuterne in a Large Hat
(also known as Portrait of Woman in Hat) circa 1918
Oil on canvas 55 cm X 38 cm, Private collection
◈ Jeanne Hebuterne
◈ Jeanne Hebuterne
◈ Jeanne Hebuterne
◈ Jeanne Hebuterne
Jeanne Hebuterne With Hat And Necklace, 1917
Jeanne Hebuterne With Necklace, 1917
(Jeanne Hebuterne)
Amedeo Modigliani ◈ Yellow Sweater (aka Portrait of Jeanne Hebuterne,1919)
7. 모딜리아니의 초상화 작품들
Christina
폴란드 출신의 레오폴드 즈보로프스키의 초상
Modigliani - 반 뮈덴 부인 초상
Modigliani 걸작 - 푸른 옷을 입은 소년
Portrait of Chaim Soutine Seated at a Table. 1917
Oil on canvas. 91.7 x 59.7 cm.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Amedeo Modigliani ◈ Seated Woman with Child aka Motherhood (1919)
Amedeo Modigliani(伊,1884-1920) ◈ Portrait of Mario Varvogli (1919-20)
Man with Pipe (The Notary of Nice). 1918.Oil on canvas. 92 x 60 cm. Private collection.
Gypsy Woman with Child. 1919.Oil on canvas. 115.9 x 73 cm.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Portrait of Jean Cocteau. 1916.
Oil on canvas. 100 x 81 cm. The Art Museum Princeton University, Princeton, NJ, USA.
Monsieur Lepoutre. 1916.Oil on canvas. 92 x 65 cm. Private collection
Portrait of a Girl (Victoria). c. 1917.Oil on canvas. 81 x 60 cm. Tate Gallery, London, UK.
Portrait of Elena Pavlowski. 1917.
Oil on canvas. 64.8 x 48.9 cm .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USA.
Woman with Red Hair. 1917.
Oil on canvas. 92.1 x 60.7 cm.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Landscape. 1919.
Oil on canvas. 61 x 46.5 cm. Galerie Karsten Greve, Cologne, Germany.
Portrait of Paul Alexandre Against a Green Background. 1909.
Oil on canvas. 100 x 81 cm. Private collection
Portrait of A Woman, 1915
Head of A Woman in A Hat, 1916
Young Girl Wearing A Rose, 1917
첼리스트, 1909
검은 넥타이를 맨 여인, 1918
Alice, 1918
Boy in Short Pants, 1918
Dark Young Woman Seated by a Bed, 1918
Germaine Survage with Earrings, 1918
Girl in a Sailor's Blouse, 1918
Girl on a Chair, 1918
Marie, Daughter of the people
파란옷을 입고 목걸이를 한 여인
첫댓글 청솔님~
모딜리아니와 잔느 사랑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갔다는 것
정말 슬픈 일이네요
얼마나 사랑했기에 그길을 택했을까요
저는 전에 모딜리아니와 잔느 의 이야기를 책에서 얼핏 읽은 적이 있는데
청솔님이 정말 상세하게 올리셨군요
확실히 알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남은 오늘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모딜리아니 36살, 잔느가 22살 벌어진 일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지금 우리보다 조숙했나 봅니다
이 두 사람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저립니다
저런 사랑을 할 수 있다면 한이 없겠지요
감사합니다
잘 읽고 보고 갑니다.
얼마 전 한가람 미술관에서 전시회도 열렸었는데요
다시 보는 느낌이네요.
눈동자를 그리자 않은 건 참 신비스런데요.
당시의 큐레이터 설명으로는
다른 사람과 시선을 맞추지 않게 하기 위한 거라 했는데
화가의 독창적인 표현 기법일 뿐이겠지요.
전시회가 있었군요
8년 전에도 예술의 전당에서 전람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는 가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너무 흥분되고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훔뫄 ㅡㅡㅡ
포스팅 마이도 하셨네요
애잡쐈어요 감사감사 감사르ㄹㄹㄹㄹㄹ
모아뒀던 자료 바로 복사해 온 것입니다
누드화 들 빼고는 대충 다 올렸습니다
워낙 경고가 많은 곳이라서요
목이긴 여인그림은 모딜리아니
화가 라고 비교적 외우기 쉬웠지요 미술 시간에요
네 그랬습니다
그래서 모딜리아니도 그렇게 생긴 줄
착각했는데 아니더라구요 ^^*
어머나 놓칠번 했어요. 이 귀한 글과 그림을...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와 목이 긴여인 그림.
너무나 아름답고 절절한 사랑이야기도 함께...
글 그림 잘 보고 갑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과 그림이 좋다고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절절하네요
날씨가 춥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