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마태 20,20-28
0725.mp3 2.66MB 복음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0-28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7)
죽기까지 섬김을 실행한 사랑의 사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되풀이해 자신의 수난을 예고하시면서 부활의 기쁨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첫 예고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합니다(16,21). 두 번째 예고 때는 제자들이 하늘 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 묻습니다(17,22-23; 18,1).
제베대오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종말에 다시 오시어 다스리실 좌우에 앉혀달라고 청합니다(마르 10,35). 그들은 예수님의 야이로의 딸의 소생과 베드로의 장모의 치유, 거룩한 변모와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번민의 증인이었고, 그분의 사랑 받는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권력에 대한 야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고난의 잔을 마셔야만 종말에 함께 다스릴 수 있으며, 종말에 자리를 배치하는 일은 성부의 전권에 속한다고 대답하십니다(마태 20,22-23). 그분께서는 압제와 폭정을 일삼던 당대의 비정한 정치 현실을 꿰뚫어보시고, 그와는 달리 제자단과 교회에서는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낮추어 섬겨야 함을 가르치십니다(20,27).
“모든 제자들을 앞서 보려던 마음이 있었던 요한은 그 후 설교할 때나 기적을 행할 때나 항상 베드로에게 우선권을 줍니다. 야고보는 이 일이 있은 후 오래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열성으로 불타올라 세속의 온갖 관심사를 버리고 덕행의 정상에 도달하여 즉시 치명당할 수 있었습니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우리 또한 나약함 가운데서도 사도들을 본받아야겠습니다. 나아가 인류 구원을 위하여 목숨 바쳐 인간을 섬기신 예수님을 본받아 섬김을 받으려 하기보다 앞장 서 서로의 구원과 행복을 위하여 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는 종의 삶에 헌신해야겠습니다(20,28).
아무리 좋은 일을 위한 봉사라 해도 그것을 위해 주어진 권한이나 책임을 소유하게 되면 그것은 하느님과 무관한 것이 되고 증오나 폭력의 수단으로 바뀌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힘을 섬기기 위한 수단으로 내놓고 사랑의 성장을 위해 나누면 서로를 살리고 인간다운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일찌기 장 쟈크 루소가 말했듯이 권력은 마약과도 같아서 한 번 맛을 들이면 중독되어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닌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2코린 4,7). 따라서 주님께서 주신 힘을 서로를 섬기고, 살리고, 일으키는 데 사용해야겠지요.
우리도 사도들처럼 예수님의 생명을 드러내기 위해 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니고,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기도 합니다(2코린 4,11-12). 그러나 우리 모두 세상의 힘에 굴복하지 말고 주님께서 주신 사랑의 힘으로 저 낮은 곳에서 주님의 힘을 전달하고 나누는 진정한 섬김을 실행해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