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이 울렸을 때 그녀는 남편을 구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 1963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마흔여섯의 나이에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암살 당한 순간, 그의 아내 재클린은 팔로 남편을 감싸안았다. 그녀의 분홍빛 샤넬 정장은 피와 뇌로 뒤덮여 버렸다. 그 뒤 몇 년이나 그녀는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목의 통증 때문에 침대를 벗어나는 일도 힘겨워했다. 그녀의 무릎에는 남편의 머리 조각이 흩어져 있어 이를 붙잡느라 신경이 망가졌다.
다음달 2일(현지시간) 출간되는 전기 작가 모린 캘러헌의 책 '묻지 않았어요. 케네디 가문과 그들이 파괴한 여인들'(Ask Not: The Kennedys and the Women They Destroyed)은 재클린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이 남편의 끔찍한 죽음뿐만 아니라 미국을 대표하는 가문이 그녀에게 비밀스러운 지옥이 된 속사정과 남편의 바람끼 때문이라고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 충격적이라고 야후! 뉴스 블로그 '인 터치 위클리'가 26일 전했다.
재키가 머물던 세상은 “권력과 명예, 부의 정점에 있었지만 그녀의 삶은 누군가가 깨달은 것보다 본인 스스로 만들어낸 고통과 비극에 의해 훨씬 깊이 망가졌다”고 책에 나온다.
예순네 살이던 1994년 비호지킨 림프종으로 세상을 뜬 재클린과 JFK의 10여년 결혼 생활은 눈으로 보여진 것과 달리 꿈결같지 않았다. 재키는 캐롤라인 케네디 슐로스버그(현 호주 주재 미국 대사)와 JFK 주니어(1999년 비행기 사고로 38세에 운명)의 엄마가 됨으로써 위안을 찾았지만 상실감은 여전히 그녀를 괴롭혔다. 딸 아라벨라를 사산했고, 아들 패트릭은 태어난 지 39시간 만에 죽었다. 캘러헌은 재키가 여러 차례 유산을 경험했는데 남편이 다른 여인들로부터 옮겨 온 성병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의심했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JFK만 혼외 정사를 즐긴 것은 아니었다. 약해질대로 약해진 재키는 남편과 형을 잃은 "트라우마를 나누던" 시동생 로버트 F 케네디 법무장관과 몇 년이고 뜨거운 사이였다가 바비(로버트 케네디의 별칭)이 196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종지부를찍었다고 캘러헌은 썼다. 그 해 대선 유세 중에 RFK가 마흔두 살에 암살된 지 몇 달 뒤 재키는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재혼했는데, 오나시스 역시 몇 주 뒤부터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캘러헌은 재키가 “결혼 계약으로 모두 170개 조항에 타협했다”고 주장했다. 얼마나 자주 성관계를 가질 것인지, 재정적인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내용 등이 망라됐다. 예를 들어 오나시스는 재키에게 “선금으로 300만 달러를, 자녀 일인당 100만 달러씩을, 여기에다 여행 경비로 일년에 6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오나시스 역시 재키에게 구세주가 아니었다. 예순아홉 살이던 1975년 세상을 뜨기 2년 전에 이 억만장자는 아내의 비극적인 운명이 자신에까지 화를 끼쳤다고 타박했다고 책은 폭로했다. 오나시스가 이전 결혼을 통해 얻은 아들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뜬 것이다. 오나시스는 재클린이 “케네디 가문 저주의 살아있는 현신”이라면서 그녀 때문에 또 한 사람의 삶이 너무도 일찍 끝장났다고 믿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