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이 가르쳐 준 하루
이 규철
2026.08.09
아침 여섯 시.
눈을 뜨면 아직 세상이 완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창밖은 어슴푸레하고, 집 안에는 고요가 내려앉아 있다.
예전 같으면 벌떡 일어나 오늘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하나씩 꺼내 보았을 시간이다.
출근해야 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고,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하루라는 시간은 늘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텔레비전을 켜고 기지개를 켠다. 몸을 천천히 움직여 보고,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간다.
걸음을 옮기며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고 새소리를 듣는다. 건강을 위해 걷는 일이니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산책에서 돌아오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은 무엇을 하지?'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없다.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도 없다.
시간을 맞추어 전화해야 할 사람도 없다. 하루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채울 이유가 조금씩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전화기는 늘 곁에 있지만 하루 종일 울리지 않는다.
더 서글픈 것은 전화가 울리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내가 먼저 전화를 걸고 싶은 사람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때는 전화 한 통이면 친구를 불러낼 수 있었고, 약속 하나면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이제는 친구도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살아 있는 친구들도 각자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사람은 결국 혼자 살아가는 존재라는 말을 젊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직장이 있고 사회가 있으니 혼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의 가지는 자연스럽게 잘려 나간다. 죽음이 자르고, 세월이 자르고, 각자의 사정이 자른다.
어느 순간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살다가 사람 사이에서 조금씩 빠져나와 자기 자신의 섬으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그 섬이 낯설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인생의 한 과정인지 모른다.
우리는 평생 시간을 아끼며 살았다.
젊어서는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팔았고, 직장에서는 승진을 위해 시간을 바쳤으며, 가족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놓았다.
자식이 자라면 교육에 시간을 썼고, 집을 마련하기 위해 허리를 굽혔고, 노후를 준비한다며 또다시 오늘을 내일에게 저당 잡혔다.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 우리는 늘 말했다.
"시간이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시간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시간을 어디에 썼는지가 문제였다.
인생이 짧은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며 살기 때문에 인생이 짧게 느껴진다는 말이 있다.
참으로 묘한 말이다.
젊을 때 우리는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의 소중함을 쉽게 내일로 미뤘다.
부모님께 전화하는 것도 내일이면 된다고 생각했고, 친구를 만나는 것도 다음에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도 시간이 생기면 하겠다고 미뤘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말은 어쩌면 **'나중에'**인지 모른다.
나중에는 시간이 있을 줄 알았지만 나중에는 몸이 예전 같지 않았고, 나중에는 함께할 사람이 줄어들었으며, 나중에는 하고 싶었던 일의 의미조차 희미해졌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인생을 너무 열심히 살았지만, 정작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늦게 배웠다.
인간은 지혜를 얻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 지혜를 사용할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젊은 사람에게 노인이 살아온 경험을 이야기하면 잔소리로 들릴 수 있다. 노인은 젊은 사람의 앞날을 걱정하지만 젊은 사람은 자기 인생을 직접 살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
사람은 남의 경험만으로 인생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뜨거운 불에 손을 대지 말라는 말을 백 번 들어도 한 번쯤은 직접 불 가까이 가 보고서야 그 뜨거움을 이해한다.
인간은 그렇게 어리석으면서도, 바로 그 어리석음 속에서 자신의 지혜를 만들어 간다.
그러니 지나온 세월을 후회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잘못한 일도 있었고, 어리석었던 선택도 있었으며, 하지 말았어야 할 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모두 지금의 나를 만든 재료였다.
인생은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조금씩 다듬어지는 한 편의 산문인지도 모른다.
젊은 날에는 앞을 보며 달렸지만 이제는 뒤를 돌아볼 시간이 생겼다.
어린 시절의 흙길도 생각나고, 학교 운동장도 생각나고, 함께 뛰놀던 친구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지금은 사진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그때는 그 시간이 그렇게 귀한 줄 몰랐다.
가난했던 시절도 지나고, 힘들었던 시절도 지나고, 웃었던 날도 지나갔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나니 남은 것은 결국 기억이었다.
추억이란 참 이상한 것이다.
살아 있을 때는 별것 아닌 장면이 세월이 흐른 뒤에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된다.
어린 시절 친구와 먹었던 한 그릇의 국수가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그리워지고, 낡은 학교 운동장이 어떤 명승지보다 아름답게 떠오른다.
아마 행복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행복은 당시에는 행복이라고 이름 붙이지 못한다. 지나가 버린 뒤에야 그것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지금의 평범한 하루도 소중하게 바라보려 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햇볕 아래 걸을 수 있다는 것,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하루의 끝에 조용히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이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에 남는 진짜 재산일 것이다.
해가 기울 무렵이면 나는 가끔 창밖의 석양을 바라본다.
하늘은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저녁이 되면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마치 하루 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말없이 정리하는 것 같다.
사람의 인생도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침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한낮에는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듯 살았다.
그러나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조금씩 속도를 늦춘다.
석양은 하루의 끝이지만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하루를 잘 내려놓는 아름다운 방법이다.
나도 이제는 인생의 모든 것을 움켜쥐려 하지 않으려 한다.
떠난 사람은 추억으로 보내고, 떠날 사람은 억지로 붙잡지 않으며, 오지 않는 전화는 기다리지 않으려 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먼저 만나고,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늦기 전에 고맙다고 말하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먼저 전화를 걸어보면 된다.
그리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날에는 혼자 있는 시간을 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혼자라는 것은 반드시 외로운 것이 아니다.
혼자 있을 줄 아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끄고 조용히 앉아 지나온 인생을 생각해 본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바쁘게 살았을까.'
정답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남은 시간만큼은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많이 가지려 하기보다 많이 느끼고, 많은 사람을 만나려 하기보다 소중한 사람에게 진심을 전하고, 하루를 바쁘게 채우기보다 하루에 의미 하나쯤 남겨 놓는 삶.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마지막 석양을 바라보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뒤돌아보며
"참 잘 살았다."
그 한마디를 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도 해가 저문다.
나는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본다.
전화는 여전히 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쓸쓸하지 않다.
전화가 울리지 않는 고요 속에서 지나온 세월이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알 것 같다.
인생의 마지막 행복은 새로운 것을 더 많이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곁을 지나간 수많은 것들의 가치를 뒤늦게라도 알아보는 데 있다는 것을.
석양은 매일 사라지지만 내일 다시 떠오른다.
사람의 하루도 그렇다.
오늘을 잘 보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일은 내일의 햇살에게 맡기면 된다.
나는 오늘도 천천히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그리고 석양을 바라본다.
이만하면,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