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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첩한 비대선
서울공대지 2020 Spring No.116
김효철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국내 조선 기술 1세대 원로’
조선공학자 김효철의 조선(造船) 연대기!
초대형 유조선의 겉보기 치수와 속도는 원유 공급지와 수요처를 연결하는 해운 환경에 따라서 쉽게 결정되지만 상세한 선체 형상은 조선 기술자의 섬세한 손끝에서 결정된다. 선박의 모형을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을 때 부드럽고, 무리한 곳이 느껴지지 않으면 선체를 스치며 지나는 물의 흐름도 원활하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조선 기술자가 물의 흐름이 원활하여 저항이 적은 선체 형상을 찾아내는 것은 대리석 덩어리에 숨겨진 비너스 상을 찾아내는 예술가의 심미안이 있을 때 비로소 물속에 잠겨 숨겨져 있으나 아름답고 합리적인 배의 형상을 겉보기 치수 안에서 찾아낼 수 있다.
학교 실험실에서 다듬어 초대형 유조선의 물에 잠기는 부분의 형상을 결정하였는데 발주자가 요구한 성능을 만족하였으며 해운시장에 취역하고 있는 기존의 유조선의 성능과 비교하여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는 선형이라 판단하였다. 새로이 개발한 초대형 유조선은 20.8m까지 잠기도록 원유를 적재하였을 때 배수량이 314,200ton이었다. 실험실에서 계측한 값으로부터 추정하여 32,000hp의 선박용 추진 기관을 선정하고 프로펠러가 선체주위의 물 흐름을 끌어드려 가속하여 선체 후방으로 밀어내면 선박은 선주가 지정한 속도보다 조금 빠른 15.6노트로 운항할 수 있으리라 판단하였다.
프로펠러를 설계할 때 통상적으로 물에 잠기는 선체 깊이의 2/3 정도가 프로펠러의 직경이 되지만, 프로펠러를 주조할 수 있는 최대 크기와 공작기계 가공능력의 제한이 있어 프로펠러의 직경을 9.8m로 결정하여야만 하였다. 선정한 선박용 디젤기관은 연속최대출력이 32,000hp로서 정격 회전속도가 분당 78회전이므로 매우 느리게 회전하지만 직경이 9.8m이어서 프로펠러의 날개 끝은 약 40m/s의 빠른 속도로 물을 가르며 물을 뒤쪽으로 밀어내게 된다. 프로펠러가 물을 10m/s의 속도로 밀어내면 배수량이 314,200ton인 선박은 조금 느려진 속도인 8m/s의 속도로 전진하도록 계획한 것이다.
실험실에서 개발한 선형은 선주가 요구하였던 300,000ton보다 14,200ton을 더 적재하면서 요구조건보다 조금 빠른 15.6노트로 운항할 수 있음이 확인되자 자연스럽게 후속하여 선형개발 연구기회가 주어졌다. 당시로써는 큰 규모인 5,600TEU급 컨테이너선의 선형개발에도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저속 비대선인 초대형 유조선과 고속선에 속하는 컨테이너 선의 선형개발을 하며 선체를 스치며 지나는 유동을 계측하여 추진 성능을 향상하는 부가 장치를 개발하는 연구 활동을 하였는데 자연스럽게 선박의 조종성능을 결정하는 선박용 타 장치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선박의 타 장치는 선박의 후방에 수직 방향으로 설치하는 날개로서 날개를 돌려주면 물의 흐름으로부터 양력을 받아 선박의 진행 방향을 바꾸어주는 조종 장치이다. 선박이 작고 프로펠러도 작을 때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으나 선박이 대형화하고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형 컨테이너 선에서 타 장치가 부식된다는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프로펠러 날개가 고속으로 물을 자를 때 물속에 생긴 거품 덩어리가 프로펠러 뒤쪽으로 흘러나와 타에 부딪히며 거품이 부서질 때 타에 충격을 주거나 프로펠러 후류 속에서 타각 변화로 인한 압력변화가 타에 부식을 일으키는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펠러 후류에서 사용하며 타의 표면에 부식이 진행되어 수리하기 위하여
조선소 독에 들어온 쌍 축 컨테이너선의 타이다.
타 밑에 보이는 작업원과 비교하면 타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초대형 유조선을 운항할 때를 생각하면 배수량 314,200ton의 선박을 프로펠러에서 발생하는 추력으로 뒤에서 밀어줄 때, 타는 선박의 방향 안정성을 유지시키며 필요에 따라 원하는 방향을 전환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동아시아지역으로 운항하는 초대형 유조선은 믈라카 해협을 통과하여야 하는데 수심이 25m 이상 확보되는 해협의 폭은 가장 좁은 곳이 2.8km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번잡한 믈라카 해협을 운항하는 유조선은 예인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이 지역에서 운항하려면 우수한 직진 안정성을 가져야 하는 동시에 민첩한 조종성을 가져야 한다.
고성능의 타 장치를 연구하게 되었던 것은 컨테이너 선이 대형화되며 새롭게 대두된 타 손상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타의 성능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초대형 유조선에 장착하면 초대형 유조선의 조종성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되리라 생각하였다. 실험실에서 다듬어진 초대형 유조선 모형선을 제작하고 새로이 고안한 고성능 타를 장착하고 경정 경기가 없는 날 경정 경기장을 실험실 삼아 무선 송수신으로 자동운항하며 선회시험을 수행하였다. 경정 경기장의 경기판정 관측 탑에서 모형선의 항적을 영상으로 기록하여 획기적인 조종성능 향상이 이루어짐을 확인하였다.
전통적인 방식의 타 장치를 장착한 모형선의 항적으로서
선회 원의 직경이 모형선 길이의 4.4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이 개발한 고성능 타 장치를 장착한 모형선의 항적으로서
선회 원의 직경이 모형선 길이의 2.9배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컨테이너 선에서 발생하는 타의 손상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로 시작한 고성능 타 장치 연구이었는데 이를 초대형 유조선에 적용함으로 획기적인 연구성과가 얻어졌으며 국제회의에 발표하여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 기술을 초대형 유조선에 적용하는 것은 속도가 느리고 비대한 선박의 성능을 개선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특정 항로를 지나는 해운시장의 운항질서에도 변화를 주는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연구 성과가 확인된 2004년에는 조선 경기가 활황이어서 전 세계의 수주량이 7,000만 ton이었으며 건조량은 4,000만 ton에 달하였기에 초대형선의 성능개선은 해운업계에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배는 끊임없이 바로 서려 한다>
-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국내 조선역사의 산 증인이자 부흥을 이끌고 있는 ‘김효철’이라는 배의 항해기록을 담은 책!
이 책은 김효철 명예교수(서울대학교)가 1970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대학교 조선해양 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였으며 국내 조선 역사의 산 증인이자 우리나라가 조선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한 저자가 조선공학자로서 겪은 역동적인 삶의 기록들을, 그 동안 여러 지면에 투고하였던 기사와 미완이었던 원고를 다듬어 만든 문집이다.
한국전쟁 중 부산에 피난하여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며 막연하게 배에 대한 꿈을 키웠던 홍안의 소년이 오늘날 세계 최강 한국 조선(造船)의 살아 있는 역사이자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까지 진솔한 삶의 행적이 글 속에 깊이 배어있다.
부산 피난시절 항구에 정박해 있던 병원선과 발전선을 바라보며 배를 동경하였던 저자는 1959년, 유일하게 배를 배울 수 있는 서울대학교 조선항공학과에 입학하면서 조선학과 인연을 맺는다. 조선공학자로서 그 시작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조선항공학과에 입학 하였으나 변변한 교재가 없어 외국 공대의 책을 번역해가며 공부하였고, 1964년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에는 조선공학 전공자를 뽑는 산업체가 없어 부득이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석사학위 취득 후에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 탄광회사에 들어가 2년간 기계설계와 관련한 일을 하였다. 그런데 신입사원을 모집하는 일로 모교를 방문하였다가 교수가 던진 말 한마디에 진로를 바꾸어 학교로 돌아왔고 이후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는 학과의 요청과 책임감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공 분야를 고체역학에서 용접역학으로 다시 실험유체역학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저자가 조선공학자로서 크게 성과를 이룬 ‘사건’은 1970년대에 서울대학교에 실험실로는 최대 규모인 선형시험수조를 건설하여 모든 종류의 선박이 실제 해상에서 어떤 기능을 가지는지 모형실험으로 평가하는 우리나라의 기술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도록 한 일이다. 이외에도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던 경정용 보트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하였고, 선박의 횡 동요 감쇠장치를 비롯해 모형선의 성능 실험장비와 각종 힘 계측 센서 등을 개발하여 해외에 의존하던 기술의 자립을 이끌었던 일은 커다란 자부심이 되었다. 특히 저자는 <대한조선학회지>나 <서울공대>의 창간에 관여하면서 느꼈던 소회(所懷)와 교수로 재임하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에 담긴 일화를 세심하게 기술하였는데 삶에 대한 관조와 회한을 엿볼 수 있다.
2019년 11월, 한국의 조선산업은 다시 날개를 달았다. 최근 3개월 연속 중국을 제치고 전 세계 선박 수주량 1등을 기록한 것이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LNG선의 기술력에서 비교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선의 83퍼센트 가량을 수주하였다. 물론 그 배경에는 1960년대부터 공릉동 5호관 모형 제작실에서 땀 흘리며 선박 모형을 제작하고 선형시험수조에서 성능을 실험하며 선박에 대한 기술력을 쌓아온, 저자를 비롯한 초창기 조선공학도들의 선구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어 있다.
저자는 2006년 정년 퇴임 후, 인하대학교 정석물류통상연구원에 연구교수로 새 둥지를 틀고 조선공학자로서 제2의 삶을 시작한다. 재임 5년 동안 30편의 논문과 2건의 도서 집필, 8건의 특허를 출원하였으며 이때 비조선 기술자를 위한 조선기술 해설서 집필을 구상하여 2011년 12월 『조선기술』을 출간하고 대한조선학회 창립 6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영문 번역하여 『Shipbuilding Technology』를 전 세계에 공급하였다. 그 사이 저자는 중소기업에 꼭 필요한 기술지원에도 변함없는 관심을 기울여 태양광 발전사업에 뜻을 둔 신생기업을 후원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조선해양시스템기술협동조합을 설립 하고 이사로 취임하였는데 수년 전 국가 연구기관이 조파기(造波機)를 해외에서 도입한 것이 마음에 걸려 이를 국산화할 생각에 연구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책 후반부에서 저자는 작지만 큰 소망을 드러낸다. 지금과 같은 건강을 유지하면서 정년퇴임 후에도 연구활동을 지속하여 발표 논문 수 100편 그리고 여력이 된다면 전체 300편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학문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것, 기술적으로는 특허출원 40건을 이루고자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틈틈이 서툰 글을 쓰고 다듬어 두 번째 문집 『배는 끊임없이 항해하려 한다』를 내고 싶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모든 소망은 그간 후학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온 저자의 부단한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보건대 틀림없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지은이의 말
“어느 날인가 나의 정제되지 않고 투박한 글을 접하였던 도서출판 지성사의 이원중 사장께서 투고된 글을 모아 문집을 출간하자고 제안하셨다. 몹시 망설여지는 일이었으나 나의 글에서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물러서지 않고 풀어가려는 노력하는 자세를 독자들이 느낄 것이라는 말씀에 용기를 내었다. 그 동안 투고하였던 기사를 모아 문집 원고를 구성하고 미완이었던 원고를 다듬어 정리하였다. 많은 일들이 호리병 속과 같은 나만의 공간에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호리병 속의 기억을 1959년 조선공학에 입문하여 60년을 지나는 동안을 시기를 따라 살펴보며 정리하여 회고하는 글을 써서 문집 말미에 붙였다.”
차 례
1부 인연
학생과 삼공펀치의 인연
석봉의 부친
학부모와의 동침
현해탄에 세우는 다리
40년을 함께한 낡은 두 바퀴
장석과 함께 맞은 태풍 글래디스
조선학의 큰 어른 황종흘 선생님을 기리며
2부 열정
등 뒤에 맺힌 땀방울
호리병 속의 학회지 창간호 - 첫 번째 이야기
호리병 속의 학회지 창간호 - 두 번째 이야기
호리병 속의 학회지 창간호 - 세 번째 이야기
잊힌 첫 설계
한강의 마징가
공릉동 캠퍼스 1호관 301호실의 회상
가계부와 연구비
빛바랜 수료증과 80통의 편지
덕소에 불던 강바람
북극곰의 꿈
실험하는 로봇을 만들다
관악산의 바다로 나아가는 길
관악산의 나비
<서울공대> 창간의 뒷이야기
연간소득 253,800원의 투자 이야기
접어서 만드는 배를 짓다
초대형 유조선과 손으로 쓴 명함
수면 위를 나는 배와 준마처럼 달리는 배
민첩한 비대선
경정보트,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하다
선박을 일관작업으로 건조하는 꿈
상상의 수면 위에서
움직일 줄 모르는 배 아닌 배
한 번으로 끝난 반월호 선 댄서의 춤
도시의 작은 농장
3부 회고
‘창우호’ 승선과 항해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