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평화를 주신다.
이 평화는 세상의 거짓 평화와 다르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사랑과 진리에 바탕을 둔 평화이다.
이 평화는 주님께 온전한 믿음을 두고
세상에 사랑과 정의를 실천할 때 누릴 수 있다(복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그런데 그다음 구절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하시니,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입니까?
프란치스코 성인이 어느 날
우물에서 물을 긷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운 뒤 작은 나뭇조각을 물에 띄우고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왜 물통에 나뭇조각을 띄우고 갑니까?” 하고 프란치스코가 묻자
그녀는 “물통이 흔들려도 물이 넘쳐흐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죠.”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에서 성인은 ‘마음의 동요가 일 때,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띄우면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십자가를 전제로 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고 하셨지만,
이후 제자들의 삶은 평화롭지 않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박해를 받았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결코 평화롭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평화를 잃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평화를 위해서는
돈, 무기, 강력한 통치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가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화를 위해서는 오직 하나,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필요합니다.
그 안에서 온갖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평생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한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어떤 이가 그에게 질문했습니다.
“수사님은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데
어찌 그리 밝게 사시는지요?”
수사님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지나간 일은 슬퍼하지 않습니다.
닥치지 않은 걱정을 미리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지금 일’에만 전념한답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불안이 없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평화의 본질은 아닙니다.
고통과 아픔을 겪지 않는 것이 평화로운 인생도 아닙니다.
주님의 평화는 기쁨에 있습니다.
그분께서 주시는 ‘삶의 기쁨’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웬만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주님의 에너지가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사셨던 수사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요한 14,27)
때로
혹독한 고난 중에 있는 이가
오히려 더
평화로워 보이는
이유는
고난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그들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네.
주님의 평화는
불의한 세상에서
우리가
두려움 없이
세상의 폭풍을 건너갈 수 있는
강력한 힘이라네.
- 김혜선 아녜스 -
첫댓글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사랑과 진리에 바탕을 둔 평화이다.
이 평화는 주님께 온전한 믿음을 두고
세상에 사랑과 정의를 실천할 때 누릴 수 있다. ..
그러니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
아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주님의 평화는 기쁨에 있습니다.
그분께서 주시는 ‘삶의 기쁨’입니다.
그 기쁨은 고난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웬만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주님의 에너지가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