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북쪽 변방으로 귀양 가며
윤선도(尹善道)
탄식과 미친 노래로 목이 쉬도록 우네
사나이 품은 뜻 펼치기 어렵구나
서산에 해 저무는데 까마귀 떼 어지러이 날고
북쪽 변방 찬 서리에 외기러기 울며 가네
천리 밖 나그네 신세 세밑이 다가와 놀라니
이 지방 백성들이 하늘이 기울었음ㅇ르 두려워하네
차라리 눈멀고 귀머거리 되어
고향 산천에 돌아가 이 생애 마쳤으면
被謫北塞(피적북새)
歎息狂歌哭失聲(탄식광가곡실성) 南兒志氣意難平(남아지기의난평)
西山日暮群鴉亂(서산일모군아란) 北塞霜寒獨雁鳴(북새상한독안명)
千里客心驚歲晩(천리색심경세만) 一方民意畏天傾(일방민의외천경)
不如無目兼無耳(불여무목겸무이) 歸臥林泉畢此生(귀와임천필차생)
[어휘풀이]
-被謫北塞(피적북새) : 북쪽 변방의 귀양살이
-歲晩(세만) : 한 해의 마지막 세밑
-天傾(천경) : 하늘이 기울어짐
-歸臥(기와) : 벼슬을 떠나 고향에 돌아가 은거함.
[역사이야기]
위의 시는 고산이 직간으로 비방을 받아 함경도 삼수(三水)러 귀양 가며(1660년) 지은 시다.
윤선도(尹善道:1587~1671)는 조선 중기 문신이며 시인으로 호는 고산(孤山)이다. 서인으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 이로 인해 일생을 거의 우배지에서 보냈다.(20여 년간 귀양 살이를 하고 19년 간 은거 생활을 함). 고산은 경사(經史)에 해박하고, 의약, 복서(卜筮), 음양, 지리에도 통하였으며 특히 시조에 뛰어났다. 그의 시조 작품은 우리말의 깊이와 정서를 한층 깊게 하였다. 이러한 학풍은 증손 윤두서와 외증손 정약용에게까지 이어졌다.
남이과 서인 사이에 벌어졌던 제1차 예송논쟁(복제논쟁)에서 서인에 대한 정치적 공격을 가하여 예론을 당쟁으로 비화시킨 인물로 평가될 만큼 조선 후기 당쟁의 중심에 있었다. 문학사에서시조의 제1인자로 평가된다. 병자호란 때 전남 보길도에 정착하여 그 일대를 부용동이라 부르고 낙서재를 지어 시작 활동에 전념했으며 1651년 「漁父四時詞(어부사시사)」를 남겼다.
40여 년에 걸친 유배 및 은거생활 중 자연을 문학의 제재로 삼아 주옥같은 시조 및 한시를 지었다. 정철, 박인로, 송순과 함께 시조 시가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며 정철의 가사문학과 더불어 조선 시대 시조문학에서 쌍벽을 이룬다.
출처 : 한시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